일찍 해가 뜨는 여름철에 열 살 딸아이는 아버지를 따라 아침 등산을 했다. 숨이 턱 밑에 차오를 때까지 올라가야 정상이 보이는 야트막한 산이었다. 거기서 ‘야호’를 냅다 외친 뒤 아버지 구령에 맨손체조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내려오는 길엔 덕담도 들었는데, 한번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돈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공부는 위를 올려다봐야 한다.” 당시 딸아이는 돈이 맨 위에 있길 바라는 인생을 희구했으나, 아버지는 검약하게 살면서 학업에 매진하는 삶이 좋은 것이라고 가르쳐주셨다. 그땐 누구나 어려운 환경을 견디고 결핍을 인내하는 것이 당연한 줄로 알았다.

얼마 전 지하철 계단에서 ‘우천 시 우산제공 안합니다’라는 벽보를 보았다. 그제서야 ‘우산대여’라는 제도가 있었고, 회수율이 저조해 폐지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원래 눈과 비는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는 자연의 영역이다. 소나기에 옷이 젖더라도 기상예보를 못 본 개인의 불찰이지, 갑자기 비를 내린 하늘을 원망하진 않았다. 그렇게 성장해온 지금의 중년들에게 폐지된 ‘우산대여’ 제도는 손바닥에 털 날 일처럼 걱정스럽게 보인다.
이전보다 생활이 넉넉해졌고 복지제도가 다양해진 사회가 도래했는데도 왜 우리 주변엔 암울한 사건들이 더 많아지고 있을까?

최근 보도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73.4%가 우리나라 청년들을 불행하다고 본다고 한다. 아이와 노인도 불행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엔 각기 52%, 59.2%가 그렇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이 느끼는 청년, 아이, 노인의 불행 정도가 모두 50% 이상이라면 우려되는 현상 아닐까? 다른 사람 눈에 둘 중의 한 명이 불행해 보일 때, 나머지 한 명은 과연 마냥 행복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사람이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인 이상, 불행이 옆에 있는데 행복이 깔깔거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불행에 빠져 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연금이나 지원정책을 높인다고 해결될지 의문스럽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에 오른 사람들이나,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행복의 안경을 벗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머로우> 7월 호에 소개한 메이저리거 류현진, 경북도지사 이철우, 헝가리 유람선 사고 때 통역봉사자 이주안, 한국의 쇼호스트 문화를 해외에 알리고 있는 최서은 등이 그랬다. 이들은 자신의 삶은 물론, 사회와 국가까지도 행복의 안경을 끼고 바라보며 긍정의 변화를 끌어내왔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지혜를 배우고 활력을 얻길 기대한다.

글=조현주(발행인ㆍ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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