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가치 세계 28위, 소속팀 토트넘 선정 ‘올해의 선수’, ‘10년 몸값 2억→’19년 1,070억 원으로 535배 상승…. 수퍼쏘니 손흥민의 화려한 성적표다. 이는 절대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손흥민의 첫 에세이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은 축구소년 손흥민이 어떻게 축구에 입문해 지금의 월드스타가 되었는지 소상히 담고 있다. 풋사과가 최고의 당도를 품은 사과로 익어가듯, 축구선수로서 점점 영글어가는 그의 인생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하루 두 시간씩, 7년을 버틴 세 가지 이유

“아빠, 저 축구 하고 싶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손흥민은 축구선수 출신 아버지에게 축구를 배우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힘들고 냉혹한 축구의 세계를 단호히 설명해 주었다. 어린 흥민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 축구를 가르쳐 달라’며 의지를 내비쳤다. 그렇게 시작한 축구… 하지만 정말 아버지의 말대로 뼈저릴 만큼 힘든 훈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두 시간씩, 7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드리블과 볼 다루기 등 기본기 훈련만 했다. 그 지리한 7년을 어떻게 버텼을까? 손흥민은 다음의 세 가지 이유를 꼽는다.

첫째, 그래도 축구가 너무 재미있었다. 손흥민은 타고났다고 할 만큼 축구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남달랐다. 웬만한 아이돌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는 지금도 뇌리에는 늘 ‘축구 생각’뿐이다. 그런 흥미와 관심이 축구를 지속할 원동력이 되었다.

둘째,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 감히 지루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유럽에서 프로선수가 된 뒤에도 시즌이 끝나면 아들을 한국으로 불러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아버지 앞에서 그는 지루하다, 힘들다는 말은 꺼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힘들다는 생각이 떠난 마음의 공간에는 ‘기본기가 탄탄해야 세계 최고가 된다’는 아버지의 음성이 깊이 자리잡았다.

셋째, ‘필요하니까 하는 거겠지’라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나를 알아야 둘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매일 기본기만 연습시킬 뿐, 빨리 기술을 가르쳐 주지도, 실전에 나갈 기회도 주지 않은 아버지. 손흥민은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전적으로 따랐다.

높은 건물을 지으려면 탄탄한 기초를 다지는 작업이 필요하다. ‘기본기가 없는 축구선수는 모래 위에 지은 건물과 같다’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물론 축구를 하려면 개인기, 조직력, 정신력 등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기본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전에서 아무 소용이 없다. 7년을 땅속에서 묵묵히 견뎌낸 굼벵이라야, 여름철 하늘을 날며 세상을 시원한 울음소리로 채우는 매미가 된다. 아버지는 7년간의 담금질을 통해 아들에게 넓고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 수 있는 날개를 선물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흥민이, 오늘만 기억상실증 걸리게 해 주세요’

체중계에 올라가 몸무게를 재 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올라가면 바늘이 움직여 체중계의 눈금을 가리키지만, 내려오면 체중계의 바늘은 0으로 돌아와야 한다. 바늘이 정확히 0을 가리키는 체중계라야 계속 쓸 수 있다. 아들이 좋아하는 축구를 계속하길 바랐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마음의 바늘을 늘 0에 맞추라’고 끊임없이 충고했다.

“흥민아, 축구선수한테 제일 무서운 게 교만이야. 한 골 넣었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아. 지금 네가 할 일은 다음 경기 준비야. 내일 보자.”

2010년 10월 30일, 독일 분데스리가 데뷔골을 넣고 들뜬 아들에게 아버지가 한 말이다. 그날 밤, 아버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느님, 흥민이가 오늘 하루만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어린 아들이 자만에 빠질까 봐 걱정한 것이다. 손흥민이 2011년 아시안컵을 마치고 공항에 입국하는 순간, 수많은 취재진과 팬들이 그를 둘러쌀 때도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 좋다고 꼴값 떨고 교만해지고 나대면 안 된다. 반대로 조금 상황이 힘들다고 소심하게 있을 것도 아니다. 항상 자기 선을 지켜야 한다.”

2013년, 손흥민이 레버쿠젠 팀으로 옮긴 뒤 팀 역사상 최고액 선수가 된 뒤에도 아버지는 ‘겸손해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유럽진출 기회를 잡았을 때, 첫 프로계약을 맺었을 때, 국가대표팀에 처음 선발되었을 때도 귀에 못이 박이도록 아버지가 되풀이한 한마디는 바로 ‘겸손’이었다.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은 손흥민이 쏘니가 되기까지 거쳐야 했던 과정들을 담담하게 소개한다. 문득 생각해 본다. 그가 탄탄한 기본기와 체력 없이 유럽 무대에서 뛸 수 있었을까? 교만해지려는 마음을 버리고 자신을 끊임없이 눈금 0에 맞추지 않았다면, 그가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을까? 이 두 가지를 그에게 준 것은 바로 아버지였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한 아버지가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아시아를 대표하는 수퍼스타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상훈
춘천교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원주 버들초등학교 교사 및 상지영서대학교 평생 교육원 ‘생활속의 심리학’ 담당교수다. 청소년과 소외계층을 위한 인성교육과 마인드강연을 꾸준히 진행해 왔으며, 강원리더십센터, 원주·춘천교도소 우수강사로 선정되었다. <문학광장> 신인작가 공모전을 통해 등단한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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