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기택을 지하로 이끌고

<영화 '기생충'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계 3대영화제의 하나인 ‘칸 국제영화제’에서 우리나라 영화가 처음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수상 소식을 듣고 보니, 먼 나라 잔치 같았던 해외 영화제가 좀 더 가깝게 느껴지고 최고상을 거머쥔 ‘기생충’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극장 관람을 했다. 마지막 여운이 강해선지 상영이 끝나고도 제법 많은 이들이 객석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나는 주인공 가족의 스토리를 보면서 성경에서 읽은 가난한 포도원 농부가 떠올랐다. 기택과 농부의 마음은 데칼코마니처럼 닮은꼴이었다.

재미보다는 예술성을 중시하는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은 ‘기생충’이 국내 개봉 한 달 만에 누적 관객 수 1천만 명을 바라보고 있다. 이는 흥행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작품임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개봉 전에, 봉준호 감독은 “매우 다른 두 가족에게서 펼쳐지는 상황들을 보면서 관객의 마음에 갖가지 생각이 다 드는 영화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정밀화 같아서, 영화 보는 내내 눈으로는 스크린을 응시하지만 마음엔 오만 가지 생각이 들락날락거렸다. 평론가들은 영화 주제로 자본주의 사회에 나타난 새로운 계급 갈등을 언급하고 있으며, 부자와 빈자 사이를 가로막는 유리천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영화속 시대와 사회적 배경에 비중을 둔다면 정말 맞는 이야기다.

원래 영화 해석은 엿장수 맘대로라고 한다. 나는 이 영화가 이기적인 인간 본성을 잘 파헤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선량한 삶을 구현하려고 노력하지만, 실제의 인간 본성은 악의 축에 훨씬 더 가깝다. 우리의 마음 입구엔 천사가 자리한 것 같은데 왜 같은 마음 밑바닥에는 욕망과 어두움이 얼룩져 있는 걸까? ‘기생충’은 보는 사람들에게 이런 근원적인 질문들을 툭툭 던져준다. 글의 전개상 영화 줄거리를 상세히 소개한다. 스포일러가 많으니, 만약에 영화를 볼 예정이라면 관람한 뒤에 다시 기사를 읽길 바란다.

유튜브 영상을 보며 피자박스 접기를 연습하고 있는 기택 가족.
유튜브 영상을 보며 피자박스 접기를 연습하고 있는 기택 가족.

영화의 시작은 반지하 연립주택. 신체 건장한 부부와 대학생 또래의 남매가 모여 앉아 피자박스를 접고 있다. 성격이 낙천적인 아버지 기택은 되는 일이 없어도 가족사랑만큼은 각별나다. 네 가족은 경제적 고비를 겪으면서도 끊긴 휴대폰으로 이웃집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식빵의 곰팡이도 골라내 먹는 희망의 유전자를 지녔다.

어느 날, 아들의 친구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먹을 것이 아쉬운 집에 무거운 수석을 선물로 가져온 친구는 고액 과외선생 자리를 4수생 기우에게 넘긴다. 부와 명예를 상징한다는 수석이 들어와서인가! 박사장 아내 연교의 면접을 통과한 기우는 부잣집 딸 다혜의 영어선생이 된다.

거실 통유리창으로 그림 같은 정원이 보이는 다혜의 집은, 창 너머로 사람들의 신발만 보이는 기우의 집과 모든 것이 달랐다. 쾌적하고, 평화롭고, 사람답게 사는 곳이었다. 기우는 여동생 기정을 다혜의 남동생 미술선생으로 추천하고, 미대 낙방생 기정은 유학파 미술치료 전문가로 둔갑해 ‘꿀알바’ 자리를 얻는다.

기정은 연교에게 아들 다송의 상태를 전문가 뺨치게 설명해 준다.
기정은 연교에게 아들 다송의 상태를 전문가 뺨치게 설명해 준다.

아는 사람들끼리의 ‘믿음의 벨트’를 최고로 치는 연교는 해맑고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 그녀는 믿음직한 기정의 한마디에 멀쩡한 운전기사를 해고시킨 뒤, 기택을 후임자로 채용한다. 이로써 기택은 박사장의 벤츠를 운전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 충숙도 이 집에 가정부로 들어와 기택 가족의 100% 취업이 마침내 달성된다.

박사장의 막내아들 다송이의 생일을 맞아 온 가족이 캠핑 간 날, 기택 가족은 주인 없는 집 거실에서 술판을 벌이며, 어둠 속을 다니는 바퀴벌레처럼 깊이 깔아둔 속마음을 꺼내놓는다. 기우가 먼저 말문을 연다.

“아버지, 나 대학 들어가면 다혜와 정식으로 사귈 거예요.”

“네가 이 집 사위가 된단 말이냐? 그러면 여기가 네 처갓집이고, 네 엄마는 지금 안사돈 빨래를 해주고 있는 것이냐… 허허.”

며느릿감으로 싫지 않다는 말투다.

“기정아, 만약에 여기가 우리 집이라면 너는 어느 방을 쓰고 싶어?”

그들은 상상 속에서 주인집을 야금야금 점령해가고, 충숙은 돈만 있으면 누구나 착한 사람이 된다고 떠들어댄다.

“부자들은 착한 것 같아. 근데 부자가 착하기까지 한 거야? 부자니까 착한 거야?”

“돈이 다리미거든, 돈이 주름살을 좍 펴줘. 나도 이렇게 잘 살아봐라, 착하지 않겠어?”

충숙에게 가난은 자신을 찌들고 구겨진 사람으로 만든 원인이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며 영화의 장르는 스릴러로 전환, 예상치 못한 초인종 소리가 긴장 상태를 만든다. 찾아온 불청객은 박사장 집에서 억울하게 쫓겨난 베테랑 가정부 문광. 남은 짐을 가지러 왔다며 그녀가 향한 곳은 지하창고로 연결된 벙커였고, 남겨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남편 근세였다. 박사장도 모르는 비밀벙커에서 4년째 은둔 중인 근세는 박사장을 생명의 은인으로 알고 산다. 충숙이 경찰을 부르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문광은 빚 많은 남편을 숨겨달라고 사정한다. 원래 약자에게 강한 존재는 같은 약자들이다. 계단에서 숨어 보던 기택의 세 식구가 미끄러져 나뒹구는 순간, 기택 일가족의 전모를 알아챈 문광은 동영상을 찍어 협박한다. 뒤바뀌는 전세 속에서, 캠핑 갔던 박사장 가족이 귀가하고 기택은 문광 부부를 지하에 가두는데, 이 과정에서 문광이 뇌진탕으로 사망한다. 그날의 폭우에 반지하 집이 잠기고 기우는 수석만 챙겨 대피한다.

다음 날, 비온 뒤 하늘은 미세먼지 없이 청명하다. 연교가 다송의 생일 이벤트를 다시 준비하고, 기우와 기정은 손님으로 초대된다. 가방에 수석을 넣어 온 기우는 파티 중간에 몰래 지하벙커로 내려가다가 악심을 품고 올라온 근세와 마주쳤고, 기우가 빼앗긴 수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정원에서의 파티가 절정에 이른 순간, 기정이 케이크 커팅을 하려는데 식칼을 든 근세가 달려와 기정의 심장을 찌른다. 죽어가는 기정을 보고 눈이 뒤집힌 충숙은 바비큐꼬치를 들고 근세를 찌른다. 쓰러지면서 박사장과 눈이 마주친 근세가 ‘리스펙트’를 외친다. 이 상황에서도 악취를 거부하는 손동작을 취하며 자동차 열쇠를 달라는 박사장. 기택은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를 분노를 느끼며 그를 칼로 찌른다. 복수의 피바다로 변한 파티 현장… 기정과 근세, 박사장 세 사람이 즉사하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해 도망친다. 그 대열에 기우를 부축하고 뛰는 다혜가 보인다. 기택도 도망치려고 나오다가 세상엔 도피처가 없음을 깨닫는다. 그는 발길을 돌려 근세의 지하벙커로 조용히 잠적한다.

한 달 뒤, 의식을 되찾은 기우는 엄마와 재판을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경찰은 사라진 기택을 잡는 데 혈안이 되어 추적을 계속한다. 시간이 흘러 박사장의 빈 집엔 사건의 전말을 모르는 외국인이 이사를 온다. 경찰의 미행이 느슨해질 무렵, 기우는 아버지가 지하벙커에 있음을 우연히 알게 된다. 그리운 아버지를 향해 기우는 혼자 편지를 쓴다. “아버지, 공부는 뒤로 미루고 먼저 돈을 벌어 그 저택을 살게요. 언젠가 아버지를 만나러 꼭 갈게요.”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기택과 근세는 공생할 수 없었을까?

영화의 제목처럼 기택과 근세의 공통점은 박사장의 재력에 각각 빨대를 꽂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숙주가 죽으면 기생충도 같이 죽듯이, 박사장의 죽음으로 기생했던 두 가족도 소멸, 해체되고 말았다. 얹혀살던 기택과 근세는 공생할 수 없었던 걸까?

근세에게 박사장은 지금의 안락한 삶을 가능케 해준 울타리였다. 박사장을 향한 믿음과 존경심에 한 번도 흔들림이 없었던 근세. 그러나 기택 가족의 등장으로 아내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지하벙커라는 안전지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자, 근세에게 기택 가족은 위협과 공포의 대상이며 동시에 복수의 대상이었다.

반면에, 기택의 네 식구는 박사장 댁에서 영어선생, 미술선생, 가정부, 운전기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주인의 눈에 이들은 가족 아닌 남남이다. 만약 이들이 가족이라는 사실을 주인 부부가 알았을 때, 손 털고 백수로 돌아간다 해서 끝나지 않을 문제가 있었다. 명문대생은 4수생으로, 해외유학파는 미대 낙방생, 베테랑 운전사는 발레파킹 알바로, 상류층 가정부는 무직 주부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게다가 다혜와 사귄 기우는 미성년 성추행범이 될 수도 있다. 수면 위로 올라올 경력 조작, 문서 위조, 사기, 성추행 등의 죄목은 어린 남매의 앞날을 가로막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아는 근세를 해치운다면 박사장댁에서 당분간 먹고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을 것이다.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는 기택의 잘못된 마음이 근세 부부를 없애는 쪽을 선택하게 했다.

고마운 박사장에게 기택은 왜 그랬을까?

성경 속에 ‘포도원의 농부’ 이야기가 있다. 매우 가난한 그는 포도원을 맡겨준 주인이 한없이 고마웠다. 농부는 주인에게 잘하려고 했고 정성을 다해 섬기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주인이 세를 받으러 종들을 보내오니까 자기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종들에게 화를 내고 때린 것이다. 심지어 주인의 아들이 왔을 때에는 포도원을 차지할 속셈으로 죽여 버렸다.

왜 한 사람의 마음에서 극단적인 다른 생각이 나오는 걸까? 성경은 다른 마음이 자기의 마음이 아니라 고 한다. 주인을 존경하면서도, 주인을 해치는 쪽으로 행동하는 것은 악한 영이 농부의 마음을 그렇게 끌고 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준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나오는 생각이니까 내가 아닌 존재가 넣어줬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가난한 농부에게 포도원 주인이 베푼 제안은, 기택 식구에게 박사장댁의 일거리가 생긴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기택은 박사장을 위해 감사의 건배를 외친다. 자신이 박사장을 배반하리라고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박사장이 냄새로 수직적 신분을 나누고, 삶의 질을 선긋기하는 것이 약간 거슬리긴 했으나, 그는 자신이 착하려고 하면 착할 수 있으리라 믿는 사람이었다. 그건 포도원의 농부가 속았던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의 속임수였다. 생일파티 날, 코끝 냄새에 민감해하는 박사장의 모습에 기택은 자기도 모르게 칼을 쥐고 달려든다. 언젠가 반지하를 벗어날 날을 꿈꾸던 기택은 박사장을 살해한 후 반지하보다 더 깊은 지하벙커로 잠적했다. 두려움이 끌고 가는 세계의 끝이 늘 그렇다.

기택 가족은 언제 정말 행복했을까?

피자박스를 접어 생계를 이어가던 시절, 기택 가족에게는 빈곤하지만 끈끈한 가족애가 있었다.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말하는 무능한 아버지를 아들딸은 무시하지 않았고, 싸구려 캔맥주에 새우깡 한 봉지로도 온 가족이 웃음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창가에 방뇨하려는 취객이 나타나면 아들은 바가지를 들고 달려가 물세례를 퍼붓는 뚝심을 보였고, 딸아이는 그 장면을 유쾌하게 동영상에 담았다. 우리는 왜 바퀴벌레와 곱등이가 득실거리는 집에서 살아야 하냐고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 목욕을 해도, 빨래를 해도 사라지지 않는 반지하의 퀴퀴한 냄새를 불편하게 느꼈을 뿐, 절대로 불평하지 않았다. 이들은 서로를 진정 사랑하는 ‘가족’이었다.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아버지, 대학 수능시험에 네 번이나 떨어진 기우, 집안형편을 보면 재수하겠다는 말을 선뜻 꺼내지 못하는 기정, 투포환 선수라는 쓸모없는 경력만 갖춘 엄마. 그래도 그들은 자신의 약점을 알기에 다른 가족의 단점을 탓하지 않고 서로 힘을 합해 살아왔다. 영화 초반의 기택 가족은, 경제적 조건에 매이지 않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취직이 되면서 기택 가족은 조금씩 달라진다. 먹고 살만해지면서 잘났다는 생각이 들고, 때론 자기가 옳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잘하지 못해도 배우려고 하지 않고, 어려워도 왜 어려운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들로 변해갔다.

인간 내면의 악한 본성을 잘 표현해 준 영화 ‘기생충’. 우리 마음은 그릇과 같아서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악을 쏟아낼 때도 있고 선을 드러낼 때도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글=조현주(발행인ㆍ편집인)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