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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이 해냈으면 우리도 할 수 있다"주한 잠비아 대사 윌버 C. 시무사 Wylbur Chisiya Simuusa
김성훈 기자 | 승인 2019.06.14 17:47

“스마일 플리즈~!” 대사들과 인터뷰가 끝나고 이어지는 촬영시간, 사진기자는 대사들의 미소를 카메라에 담고자 연신 ‘스마일 플리즈’를 외친다. 하지만 시무사 대사에겐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부터 사진을 찍을 때까지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켜보는 취재진과 대사관 직원의 입에도 미소가 머금어진다. 그는 왜 이토록 한국에서의 외교관 생활에 행복해 하는 걸까?

시무사 대사를 만나러 서울 남산자락의 잠비아 대사관으로 가던 날, 차 안에서 그동안 본지에서 취재했던 잠비아 출신 리더들을 떠올려 보았다. 전·현직 청소년체육부 장관, 종교부 장관, 그리고 국립대학 총장까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한결같이 자신을 그 자리에 임명한 대통령의 의중을 위에 두고, 아래로는 하급자의 마음을 헤아리며 일하려는 자세가 느껴졌다. 틈만 나면 질문을 쏟아내고, 시간 약속을 정확히 지켰으며, 수행원들을 배려하는 태도 또한 돋보였다. 시무사 대사는 어떨까, 내심 기대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시간에 맞춰 회의실로 온 대사는 기자들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웃어 보였다. 그동안 잠비아 출신 리더를 여럿 만났기 때문일까, 초면임에도 그가 별로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 <투머로우>에서는 잠비아의 전·현직 장관이나 국립대 총장 등 리더들을 다수 인터뷰했습니다. 다들 겸손한 자세와 따스한 심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사님과의 만남이 살짝 기다려졌습니다.

윌버 C. 시무사
올해 쉰일곱인 그는 한국이 외교관으로서 첫 근무지다. 그전까지는 국회의원으로 있으면서 광산·광물자원부 장관, 농업부 장관, 토지·천연자원·환경보호부 장관을 역임했다. 2017년 11월부터 한국에서 근무하며 조국의 미래와 발전에 대한 영감을 얻고 있다.

하하하, 그것 참 반가운 이야기네요. 기자께서 그렇게 느끼셨다면 그건 잠비아의 문화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잠비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마을을 이루고 살면서 가정과 가정이 긴밀하게 교류하며 지내는, 공동체 의식이 삶에 깊숙이 배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른을 공경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예절을 지키라고 가르치지요.

에드가 룽구 대통령께서 대사님을 주한 잠비아 대사로 임명하신 게 지난 2017년 8월인데요.

그해 11월에 한국으로 왔지요. 도착하니 한국은 한창 겨울로 접어들고 있더군요. 평창올림픽도 참관했는데, ‘으악’ 소리가 나올 만큼 춥더군요(웃음). 제 인생에서 가장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따뜻한 봄이 온 것도 잠시, 바로 여름이 되었는데 작년 여름이 어디 좀 더웠어야 말이죠. 제 생에 잊지 못할 겨울과 여름을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기후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한국에서 몹시 흥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신임장 제정식에서 시무사 대사가 문 대통령에게 아들과 아내를 소개하고 있다.(사진출처: 청와대)

구체적으로 한국의 어떤 점이 흥미로우십니까?

우선 역사예요. 한국인들은 오래 전부터 역사를 기록하고 문서화해서 이를 보존하는 데 달인이었습니다. 그 한국의 역사를 보고 싶어 박물관에도 여러 번 다녀왔어요. 그밖에 다른 유적이나 사적지에도 다녀왔고, 전통 문화 행사도 많이 관람했습니다. 수천 년에 걸친 역사가 기록되어 누적되어 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한국은 대단한 문화유산과 정신자원을 간직한 나라입니다. 또 춤과 음악을 몹시 사랑하는 민족이지요.

주한 대사로서 제 임무 중 하나는 한국이 이토록 엄청난 경제성장을 일궈낸 요인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저는 그 요인 중 하나가 사람, 즉 인적자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각계각층의 한국인들을 다 만나봤습니다. 한국인들의 의식이나 자세를 가까이서 대하며 장점을 찾아내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한국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고추도 즐겨 먹게 되었지요. 그렇게 벌써 1년 반을 지냈습니다.

‘외교’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나라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관계를 맺는 일’이다. 시무사 대사가 생각하는 외교란 무엇일까? ‘외교의 본질은 상대를 이해하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두 나라에 모두 유익을 끼치는 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스스로를 한국 사회의 일원이자 잠비아를 대표하는 얼굴로 여긴다. “한국인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잠비아에 대해 잘 모르시더군요. 그럴 때면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서 한국에 잠비아를 알리고, 한국인들이 잠비아를 신뢰하도록 해야겠다’는 의욕이 솟습니다.”

잠비아에 전력 케이블을 공급하는 LS전선 공장을 찾은 시무사 대사.

대사가 되려면 외교관 시험에 합격해 서기관-영사-참사-공사 등을 거쳐 승진하는 길이 있고, 다른 분야에서 리더십과 역량을 인정받아 바로 대사직에 임명되기도 합니다. 대사님은 한국에 발령받기 전까지 장관으로 재직하셨으니 후자일 텐데요.

그렇습니다. 원래 제 직업은 광산 기술자였습니다. 잠비아는 구리나 코발트 등 광물자원이 풍부한 나라입니다. 코퍼벨트Copperbelt(구리광산지대라는 뜻) 지역에서 광산 기술자로 일하다가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이후 광산·광물자원부, 농업부, 토지·천연자원·환경보호부 장관을 거쳐 대사로 한국에 왔습니다.

원래 기술자셨다니, 뜻밖인데요. 기술자가 정치인으로 진로를 바꾼 사연이 궁금합니다.

당연히 그게 궁금하시겠지요(웃음). 코퍼벨트에서 기술자로 근무하면서 저는 지역주민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대표자를 맡았습니다. 마을을 깨끗이 관리하고 새로운 도로도 놓는 등 지역사회 발전 프로젝트에도 관여했습니다. 직장에서 일하고 남는 시간에는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을, 우리 지역을 더 살기 좋고 아름답게 꾸밀까?’를 생각하며 열정적으로 일했지요. 사비로 구입한 트랙터를 몰고 마을 곳곳을 다니며 쓰레기도 치웠고요. 작은 시도였지만,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 작은 노력이 모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지면서 나중에는 지역 주민들의 거주구역을 책정하는 일이나 도시의 교통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했어요. 열심히 했더니 금방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어요.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열려 출마했는데, 당선된 겁니다.

정치인으로서의 인생 2막이 열린 셈이네요.

하하, 그런가요? 처음에는 저도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우리 지역은 광산업이 주요산업이니까 광산업을 아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며 출마를 권하더군요.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였을 때 제 마음이 움직였고, 행동이 바뀌고, 전혀 다른 세계가 제 앞에 열렸습니다. 그때 발을 내딛지 않았다면 지금도 광산 기술자로 일하고 있었을 테지요.

갓 국회의원이 되었을 당시 제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광산지대의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주민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일이었습니다. 원래 잠비아에서는 광산이 모두 국가의 소유였습니다. 광산을 운영한 수익금으로 주민들이 살 집을 짓고 도로를 닦았습니다. 그런데 국가에서 광산을 개인이나 기업에 매각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환경보호에 별 관심이 없거나 무지한 광산주들이 광산에서 나온 폐기물을 무단으로 강에 방류하고 쓰레기도 도로 곳곳에 방치한 것이지요.

지역주민들은 ‘폐기물과 쓰레기를 깨끗이 처리함으로써 지역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도로도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 이 사안을 저는 지역의회에서 발표해 이슈화하고, 광산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환경정화 비용을 부담하라고 했습니다.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들었지만, 결국 성과를 거두어 주민들에게 쾌적한 삶을 선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보람 있고 행복한 시간이었지요.

시무사 대사와의 대화는 시간을 거슬러 학창시절로까지 흘러갔다. 중고교 시절 그는 부끄럼을 굉장히 많이 타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또 한 가지 좋아한 것은 운동이었다. “거리나 운동장에 나가조깅을 많이 했습니다. 책을 볼 때가 아니면 운동을 하고, 운동을 할 때가 아니면 책을 봤지요.” 그렇게 운동과 공부에 재미를 붙여 몰두하다 보니 학창시절에도 크게 말썽을 일으키거나 비행에 휘말린 적이 없다고 한다.

학창시절 길러놓은 체력이 외교관으로서 격무를 소화하는 데 도움이 되겠군요.

물론입니다. 한창 뛸 때는 국토종주 마라톤을 한 적도 있어요. 요즘도 운동으로 체력을 관리합니다. 트레킹과 사이클을 즐기는데, 대사관저가 있는 성북동 인근에는 경치 좋은 산길이 많아 산책하기 그만입니다. 사이클은 주로 밤에 많이 타지요. 한참 달리고 나면 힘이 솟고 일할 맛이 납니다. 그런데 일할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이 운동 말고도 하나 더 있습니다.

그런 방법이 있으면 저도 좀 가르쳐 주시지요.

바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떠올리는 겁니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뤘잖아요. 1950년대에는 GDP 기준으로 잠비아보다도 가난한 나라였는데, 지금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바뀌었고요. 오죽하면 ‘한강의 기적’이라고까지 하겠어요?

잠비아는 한국보다 더 크게 발전할 잠재력을 갖춘 나라입니다. 국토는 일곱 배나 되고 토질도 비옥하고 기후도 온화합니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이지만, 잠비아는 일곱 개 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무역과 교통의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한국처럼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힘과 의욕이 솟고, 그래서 오늘도 발걸음을 내딛는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꿈과 희망’을 품고 일하셔서인지 대사님 표정이 아주 밝습니다.

행복하니까요. 대통령께서는 제게 ‘두 나라의 우호와 협력을 증진시킬 방안을 찾으라’는 임무를 주셨습니다. 잠비아에서는 여러 부처에서 장관을 역임했지만, 대사는 장관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낯선 나라,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살고 일해야 합니다. 지금 저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모험가가 된 심정입니다. 물론 그 모험은 낯설기 때문에 오히려 즐겁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갖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재임기간 동안 시무사 대사는 하고 싶은 일이 굉장히 많다. 현재 한국과 잠비아 간의 가장 큰 프로젝트는 대우건설이 맡은 보츠와나-잠비아 교량공사다. 시무사 대사는 ‘한국 기업과 잠비아 정부가 긴밀히 소통함으로써 공사가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돕겠다’는 각오다. 제련공장과 케이블 생산공장을 유치하는 것도 꿈이다. 현재 우리 기업들은 잠비아에서 구리광석을 수입해 제련한 뒤 전선이나 케이블을 만들어 해외로 수출한다. 잠비아에 공장이 설립되면 운송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밖에도 한국의 선진 농업기술을 도입해 수확률을 높이는 등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그의 발걸음이 바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외교관으로 일하는 데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직업외교관이 아니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주어진 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일 겁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외국어능력이나 국제관계학 및 역사학에 대한 지식은 기본이겠지요.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지리학입니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 사람들은 이동하며 세력을 형성하고 관계를 맺거든요. 읽기능력도 중요합니다. 방대한 자료를 읽고 이해하며 요점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문학작품을 많이 읽으면 상대의 심중을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자서전도 좋아요. 성공한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과 지혜를 배울 수 있거든요.

지금 20대가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한때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세계를 무대로 일하는 기업가가 되어서 다른 문화를 배우고 혁신을 일으키고 싶은 생각을 해 봐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여러분의 가장 큰 재산은 바로 젊음입니다. 그 젊음을 아름다운 일에 쓰고 싶다면 먼저 가치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목표를 세우기 바랍니다. 스마트폰이나 게임 등 일시적인 유희를 위해 시간을 쓴다면 나중에 삶을 돌아볼 때 얼마나 허무하겠어요. 인생은 여러분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은 뭔가를 배우기에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가치 있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시무사 대사는 잠비아의 미래를 한국에 투영하고 있었다. ‘잠비아도 한국처럼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우리 잠비아가 발전할까?’만을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두 나라가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발전할까?’를 생각했다. 스스로를 ‘한국을 움직이는 당당한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생각한다’는 그의 모습이 참 순박해 보였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심지어 사진촬영을 할 때도 입가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은 건 어쩌면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시무사 대사가 선정한 잠비아의 자랑거리 Top 3

①아름답고 다채로운 관광자원

빅토리아폭포와 잠베지 강 등 볼거리가 많다. 사자와 치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사설 사파리도 존재하며 얼룩말, 기린, 하이에나 등 야생동물이 즐비하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마키시’ 축제에는 각기 다른 수천 개의 가면이 등장해 장관을 이룬다. 잠비아-탄자니아를 잇는 ‘타자라’ 관광열차도 있다.

②풍부한 지하자원

잠비아에는 구리, 코발트, 아연, 우라늄 등 광물자원은 물론 황금과 에메랄드까지 매장되어 있다. ‘천연자원에 관한 한 하늘의 축복을 받은 땅’이라는 게 시무사 대사의 말이다.

③무한한 발전가능성

잠비아는 국토는 넓지만 인구는 1,600만이 좀 넘는다. 도로나 통신 등 인프라가 덜 갖춰진 곳이 많아 외국의 기업이나 인재들이 진출할 여지가 크다. 미국, 중국, 일본 등은 경쟁이 치열한 데다 이미 큰 회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좋은 아이템이나 사업분야만 발굴하면 성장가능성이 충분하다.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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