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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저는 어려움이 참 좋습니다"㈜스멕 베트남 법인장 김범규
고은비 기자 | 승인 2019.05.23 09:50

한 취업포털사이트에 따르면 직장인 5명 중 3명은 자신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있다고 한다. 시기에 대해서는 취업, 결혼, 이직, 퇴사, 출산 등이 꼽혔다. 모두가 꿈꾸는 인생의 터닝포인트, 그 시기가 조금 특별한 사람이 여기 있다.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 해외봉사입니다”라고 말하는 김범규 씨를 만났다.

2000년 경북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7년간 1학년 1학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남아공으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뒤, 3년 만에 (주)스맥에 입사에 성공한다. 신입사원 때부터 해외봉사에서 배운 남다른 마인드로 돋보였던 그는 2017년,입사 9년 만에 해외 법인장이 되었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특히 SF영화에서나 나오던 로봇은 어느새 우리 삶의 일부로 성큼 들어왔다. 국제로봇연맹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로봇 시장 규모는 약 22조 원으로 그중 64%가 산업용 로봇이다. 2020년이면 300만 대가 넘는 로봇이 전 세계 산업현장에서 가동될 전망이다.

1999년에 설립된 (주)스맥은 산업용 로봇 제작 및 공작기계 전문기업으로 연간 160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다. 임직원 수 277명에, 생산공장 두 곳과 지사 세 곳을 거느리고 탄탄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생산 제품들은 국내는 물론 세계 7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지난 2017년에는 해외시장을 겨냥해 베트남에 첫 해외법인을 설립하고 법인장으로 김범규 씨를 발령했다. 당시 그는 서른여덟로, 입사 9년차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승진이었다. ‘부담스런 자리지만, 그만큼 배우고 도전할 기회도 많아 즐겁다’며 의욕을 내비치는 김범규 씨. 대학시절의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이다.

돈에 휘둘리고 빚에 찌들렸던 20대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열심히 공부해 지방 명문인 경북대에 진학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인지 공부보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열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어머니와 형, 저까지 세 식구는 같이 앉아 밥먹을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살았습니다. 참고서 살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고, 학비도 제때 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대학에 진학했으니 이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패스트푸드점, 노래방, 고깃집, 술집…. 학교는 뒷전에 두고 시급이 높은 곳만 골라 밤새 아르바이트에 매달렸다. 어머니 몰래 2천만 원을 대출해 화장품 도매사업까지 벌였다. 한겨울밤 혼자서 네댓 시간 동안 전단지를 붙이느라 손이 부르텄지만, 그는 힘든 줄을 몰랐다. 화장품 사업은 초반에는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듯했지만, 생각도 못한 변수들 때문에 그야말로 ‘쫄딱’ 망하고 말았다. 계산도 없이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맨땅에 헤딩하듯 덤벼든 사업이 잘될 리 없었다. 2년간 죽어라 일해 가까스로 빚을 갚았다.

“허탈했죠. 돈만 있으면 행복할 줄 알고 모진 고생도 기꺼이 견뎠거든요. 사업이 잘될 때는 돈을 맘껏 써 봤지만 행복하지 않았고, 망한 뒤론 빚에 시달리느라 삶이 완전히 지쳐 버렸어요. 마음도 황폐했고요.”

이름만 대학생, 돈 버느라 3년, 군대 다녀오느라 2년. 어느덧 그의 나이 스물다섯이 되었다. 학교로 돌아왔지만 이미 삶의 목표와 의욕을 잃은 터라 적응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또 다시 집으로 날아온 F투성이 성적표….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학교 게시판에 붙어 있던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포스터였다. 다시 1년이나 휴학을 하고 해외로 가겠다는 그를, 지인들은 뜯어 말렸다. 하지만 삶에 변화가 간절했던 그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남아공행 비행기에 올랐다.

어려움을 즐기는 법을 깨친 남아공에서의 1년
남아공은 아프리카 전체 GDP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아프리카 최대 경제국이다. 봉사단원들은 주로 빈민가 주변에서 활동했다. 쓰러질 듯한 판잣집에 열 명 넘게 사는 가정도 있었다. 처음에는 열악한 환경에 놀라기도 하고 경계심이 들기도 했지만,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

“빈민가 사람들이지만 영어, 불어, 포르투갈어 등 4개 국어를 기본으로 할 줄 알아요. 저는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이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 감사할 줄 알고, 남들을 챙기고 배려하더군요. 작은 빵 하나라도 나눠주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부끄러웠어요. 저는 거기보다 풍족한 한국에서 살면서도 늘 불평만 했고, 저 하나만 위해 살면서도 힘들다고 생각했거든요.”

그와 동료들은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현지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댄스 교실, 수백명이 참석하는 청소년 캠프와 세계문화박람회 준비…. 단원들은 각국 전통춤 등 댄스공연을 할 때가 많았는데, 190센티가 넘는 큰 키에 몸치였던 그가 사회를 볼 때가 많았다. 봉사단 지부장님은 그에게 통역을 맡겼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행되는 회의나 강연시간이면 그는 늘 마이크를 잡고 영어로 동시통역을 했다.

“통역이 끝날 때면 온몸이 땀으로 젖었어요. ‘How are you?’ 정도밖에 못하는 실력으로 통역을 하려니, 제가 하는 말이 영어인지 중국어인지도 모르겠더군요. 한 달쯤 하고 나니 도저히 못할 것 같아 그만두기로 결심했죠.”

그런데 어려운 결심을 한 그날 저녁, 강연을 통역하던 그가 크게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자신이 느낀 감동을 전혀 전달받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이젠 제대로 해 보자!’ 통역하다가 모르는 단어는 적어놨다가 영어 잘하는 사람에게 물어서 익혔다. 현지에서 사귄 한국인 유학생에게도 하루 한 시간씩 영어를 배웠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난 뒤, 그는 2시간짜리 강연을 술술 통역할 실력이 되었다.

“그때 통역 일을 그만뒀다면 지금 직장에도 입사하지 못했을 테고, 이렇게 인터뷰할 일도 없겠죠(웃음). 그 일을 계기로 어려움이나 문제와 맞서서 이겨내면 정말 많은 것을 얻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어려움을 보는 제 눈이 바뀌었죠, ‘어려움은 좋은 거다’라고요.”
남아공에서의 1년은 이렇게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하노이 최대 규모의 기계 박람회인 2018 MTA 하노이에 참가했다. 가족같은 직원들, 본사의 최영섭 대표와 함께.

7년간 1학년 1학기, 그런 그가 달라졌다
해외봉사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스물일곱, 1학년 1학기로 복학했다. 영어에도 재미를 붙여 영문학을 부전공하는 등 진지하게 공부에 임했다. 해외봉사단원들과 함께 각자 다녀온 나라와 문화를 소개하는 ‘세계문화체험 박람회’도 개최했는데, 주한 브루나이 대사의 영어통역을 맡기도 했다. 그의 고등학교 친구는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순조롭게 학교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3학년 때 (주)스맥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입사 첫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날 제가 한 일은 바닥청소와 인사하는 것 등 두 가지였어요. 시킨 일만 잘해도 문제는 없겠지만 전 한 발 더 나아가 ‘내가 뭘 해야 회사에 도움이 될까?’를 고민했어요. 아프리카에서 현지인과 자유롭게 대화하며 지냈듯, 회사에서도 서로 소통하면서 일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늘 남다른 태도로 업무에 임하던 그는 결국 일을 내고야 말았다. (주)스맥의 수출량 중 70퍼센트를 구매하는 영국, 미국, 독일 등 세 나라의 회사 사장들이 ㈜스맥의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김범규 씨가 수출 담당자가 되면 좋겠다’고 요청해 온 것이다. 이 일은 당시 회사 내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저 옆자리 동료가 부재중일 때 대신 전화를 받고 필요한 자료를 메일로 보내줬을 뿐이거든요. 우연히 마주치고 인사를 나눴을 뿐인데 절 좋게 보셨나 봐요.”

그 일로 그는 해외영업팀으로 옮겼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낭중지추囊中之錐(주머니 속 송곳이라는 뜻으로,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드러난다는 의미)라 했던가. 항상 회사 입장에서 상대의 마음을 살피며 일하는 태도는 돋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도전 뒤에 더 성장할 ‘나’를 그린다
2017년 12월부터 김범규 씨는 베트남에 설립된 (주)스맥의 법인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리더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유롭게 소통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직원들을 통솔하다 보면 부족한 점이 보이거나 제 기준에 못 미칠 때도 많아요. 실수를 할 때도 있고요. 그럴 때면 실수 자체를 지적하기보다 왜 그런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거래처 전화를 응대할 때도 상대가 두루뭉술하게 묻는다고 두루뭉술하게 답해선 안 됩니다. 상대 질문의 요점이 무엇인지 파악하려는 자세가 필요하지요.”

자칫 싫은소리로 들릴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늘 경청하는 직원들이 고맙다는 김범규 씨. 그는 열 명 남짓한 베트남 직원들과 업무 이야기는 물론 가족에 대한 고민까지 공유한다. 직원들에게 마음을 더 잘 전하고 싶어 최근 베트남어 공부에도 열심이다.

(주)스맥 베트남 법인은 현재 동남아지역 영업과 수출을 총괄하고 있다. 베트남 내 다른 지역에지사를 설립해 사세를 확장하는 것이 다음 목표이며, 생산공장 설립도 검토 중이다.

“베트남 법인은 저희 회사의 첫 해외법인입니다. 향후 회사에서 법인을 확장할 때 선례가 될 뿐 아니라, 후임자가 오면 지금 제가 하는 일이 큰 틀이 됩니다. 하나하나가 새롭게 개척하는 것이라 어려움도 많지만, 그렇다고 피하고 싶지 않습니다. 도전에는 성장통이 따르기 마련이니까요.”

김범규 씨의 인생은 해외봉사를 다녀오기 전과 다녀온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같다. 20대의 절반 이상을 ‘돈’만 좇으며 보냈지만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그에게, 해외봉사는 인생의 새 꿈과 목표를 선물했다. 올해면 그가 입사한 지 꼭 10년째가 된다. 10년 뒤 그는, 그리고 그의 회사는 어떻게 몰라보게 바뀌어 있을까? 내심 기대가 된다.

고은비 기자  bsh002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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