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진의 'In 아프리카 아프리카人'

종족분쟁을 겪은 르완다 국민들은 더 이상 과거의 아픔에 좌절하지 않는다. 쓰레기가 보이지 않고 밤길 걷기에 안전한 거리, 청렴한 정부와 기업, 의무교육제도, 저렴한 의료보험 혜택까지 르완다는 바쁘게 성장 중이다. 

‘천 개의 언덕의 땅’으로 불리는 르완다. 몽글 몽글한 연록색 구릉이 펼쳐진 국토와 거기에 사는 둥글둥글한 르완다 사람들의 성품에 잘 어울리는 정감 있는 별명이다. 오랜 세월 전부터 르완다에는 목축을 하는 투치족과 농경을 하는 후투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었다. 14%의 투치족과 85%의 후투족은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이웃이었고 서로 통혼을 하며 친족으로 얽히는 경우도 흔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르완다를 식민지로 삼은 벨기에는 종족 관계를 명확하게 구분시켰다. 그런데 그 기준이 얼토당토않았다. 재산을 많이 가진 자는 투치족으로, 가난한 자는 후투족으로 밀어 넣었다. 또한 피부의 밝기, 눈동자의 생김새, 코가 길거나 짧거나 하는 우생학적 기준으로 주민들을 나누었다. 기준이 엉터리다 보니 본래 투치족으로 살던 이가 후투족이 되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흔히 생겨났다. 원활한 식민통치를 위해 만들어진 틀에 맞춰 두 종족이 가공된 것이다.

식민 통치를 위해 나뉜 종족 갈등이 불러온 참극
식민지배자들은 소수인 투치족에게만 교육의 기회와 공무원 자리를 주었다. 혜택을 받은 투치족은 벨기에 편에 서서 가난하고 무지한 다수의 후투족을 다스렸다. 열등한 계층으로 전락해버린 후투족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투치족을 향해 분노를 쌓았다. 교묘한 이간질로 꾸며진 인위적인 종족 갈등은 사람들의 단합을 방해했고, 결국 지배자들만 이롭게 해주었다.
1962년, 마침내 르완다는 독립했다. 정권을 잡은 후투족은 부역자 투치족을 박멸해야 할 ‘바퀴벌레’라고 부르며 온갖 폭력을 휘둘렀다. 공격을 당한 투치족도 반군을 결성해 저항했다. 갈등이 고조되던 1994년 4월 6일, 후투-투치간 평화협정을 마치고 돌아오던 후투족 출신 르완다 대통령의 비행기가 공중에서 폭발했다. 후투 극단주의자들은 투치 반군이 대통령을 살해했다며 대대적으로 애먼 투치족 주민들을 공격했다. 무려 80만 명의 목숨이 100일 동안 스러져버린 대학살의 시작이었다. 함께 농사를 짓고 음식을 나눠 먹던 이웃들은 단지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죽였다. 자신이 죽지 않으려면 먼저 옆집 사람을 찔러야 하는 처참한 전쟁. 군인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총과 칼은 물론 몽둥이, 낫, 돌처럼 무기가 될 것은 무엇이든 들고 싸워야 했다. 혼란속에서 방화, 성범죄, 유아 학살 등 차마 열거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가 자행됐다.
결국 투치족 반군이 정세를 장악하며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미 산업시설은 죄다 파괴되었고 200만명의 난민들이 이웃 나라로 탈출했다. 2000년에 발표된 르완다 정부의 통계에 의하면 생존자의 99%가 폭력현장을 목격했고, 전 국민의 79.6%가 가족을 잃었으며, 69.5%가 학살 장면을 보았다고 한다. 르완다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피폐한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식민시대에 조장된 종족 갈등이 인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참극을 낳은 것이다.


매년 추모의 물결, ‘용서하되 잊지 말자’
새로운 정권은 종족 간의 화합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언제까지 대학살의 후유증에 사로잡혀 있을 수 없었다. ‘용서하되 잊지 말라’라는 구호를 앞세워 내전 기간 일어난 광범위한 범죄들을 소상히 기록해 공개했으며 학살에 관여한 폭도들은 수용소에서 노역을 하며 죗값을 치르게 했다. 종족 구분은 없어졌고 후투 혹은 투치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됐다. 매년 4월이 되면 르완다 전국은 학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자줏빛 리본으로 물든다. 하지만 딱 그 기간에만 추모 분위기에 잠길 뿐, 평소에는 학살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슬픈 기억을 떠올리지 않게 하려는 암묵적 배려다. 아픔을 정리해 가슴에 묻은 르완다 국민들은 폐허 위에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데 온 힘을 쏟기 시작했다.
나는 르완다에 몇 차례 방문했었다. 물론 학살 이후 시간이 한참 흐른 최근의 이야기다. 수도 키갈리는 곳곳에서 새로 짓는 건축물이 착착 올라가는 역동적인 도시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키갈리에서는 다른 아프리카 도시에 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거리에서 쓰레기가 보이지 않았다. 세련된 시가지는 매우 잘 정돈되어 있었다. 쓰레기 없는 아프리카 도시라니! 가히 한국의 거리와 비교될 만했다.
르완다에서는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전 국민이 ‘우무간다’ 운동을 실시한다. 이 때는 차량의 운행이 통제되고 시장과 상점, 식당은 문을 열지 않는다. 18세 이상부터 65세까지는 의무적으로 거리 청소를 비롯한 마을의 공동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운동에 동참하는 걸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폴 카가메 대통령도 직접 청소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곤 한다. 작업 후 주민들은 한데 모여 마을 자치 회의를 한다.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우무간다는 르완다 전통사회의 풍습을 제도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고 단합하게 된다. 사람들은 르완다를 잘 살게 만들자는 기치 아래 똘똘 뭉쳐있다.

우무간다 운동으로 변화하는 르완다
새로운 르완다는 공무원과 기업의 청렴도가 돋보인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뇌물이 만연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달리 르완다는 부정부패를 아주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수시로 감찰을 하여 비위 공직자를 잡아내고 징계한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7 부패인식지수’에서 르완다는 세계 48위를 기록했다. 이는 51위를 차지한 우리나라보다도 높은 순위다. 뇌물이 통하지 않으니 행정은 법과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그만큼 능력 위주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투명성은 르완다에 투자 및 원조를 하려는 이들에게 신뢰를 준다.
르완다에서는 국민을 위한 법들이 속속 시행되고 있다. 만약 어린이가 신발을 신지 않고 밖에 다니면 부모가 처벌을 받는다. 가난한 부모가 자녀에게 신발을 사주지 않는 걸 막기 위해서다. 오토바이를 탈 때는 운전자와 탑승자 모두 헬멧을 써야한다. 국민의 안전을 챙기는 이러한 법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또한 9년의 의무교육제도를 시행하여 청소년의 95%가 초·중·고교를 다니게 되었다. 다음 세대에는 르완다에서 문맹을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뿐 아니라 국민의 90%가 1년에 2달러를 내는 저렴한 의료보험에 가입되어있다. 충분한 의료혜택을 누리기는 어렵지만, 병원에 갈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 사람들과 달리 르완다 국민들은 작게나마 안전망의 보호를 받고 있다. 이러한 법들은 국민의 실생활을 더 낫게 만들려는 필요에 의해 도입되었고 실제로 효과를 보고 있다. 허울 좋게 시작해 구색만 맞추곤 하는 다른 국가들의 전시행정과는 차이가 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한 제도를 만들고 국민은 거기에 열렬히 따른다. 나라가 잘될 수밖에 없다.
대학살을 거치며 사회경제적 기반과 인적자원이 파괴되어 폐허나 다름없었던 르완다. 하지만
르완다 국민들은 과거의 아픔에 사로잡혀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 관료들은 청렴하게 일하며 거시적인 경제계획을 세우고, 국민들이 의무교육과 의료혜택을 받도록 돕고 있다. 지식을 갖춘 건강한 국민들은 나라를 위한 일이 무엇인지 자발적으로 궁리하며 실천으로 옮긴다. 거리를 청소하기에 앞서 애초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그들은 이미 권리와 의무를 이해하고 있는 성숙한 국민으로서 마음가짐을 지녔다. 르완다는 건전한 성장을 위한 토대를 차근차근 갖추고 있다.


길 가장 안전한 아프리카 국가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6 세계경쟁력지수에서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3위(세계 52위), ‘2016 세계은행기업환경평가Doing Business 2016’에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2위(세계 62위), 2015 갤럽조사에서는 밤길 걷기 안전한 나라 세계 5위를 기록하며 국가 경쟁력을 검증받았다. 르완다는 2003년 이후 꾸준히 연평균 7.5%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르완다 커피와 농작물 수출은 호조를 보이고 있고, 항공 산업과 MICE 산업의 거점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프리카 최초로 전국에 4G망을 구축하며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지식정보 산업 투자도 활발하다. 르완다는 CNN이 선정한 2018년 최고의 방문지 18곳에 포함될 만큼 관광업도 성장 중이다. 매력적인 화산과 호수, 야생 고릴라를 보기 위해 해마다 12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여러 가지 긍정적인 지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르완다는 1인당 GDP 731달러(2015, IMF)의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다. 열악한 제조업 수준과 농업 중심의 경제구조는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해외원조에 크게 기대고 있는 재정 역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2000년에 집권한 후 막강한 리더십으로 장기집권을 이어가는 폴 카가메 대통령의 의문스런 행보도 심상치 않다. 르완다가 중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선 아직도 갈 길이 먼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르완다 국민들에게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한 고통을 넘어온 사람들이다. 대학살의 끔찍한 기억을 가슴에 묻은 그들은 뒤를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오직 희망이 있는 밝은 미래만 바라본다.
르완다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집중한다.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면 거리의 쓰레기든 부정부패든 모두 치워버릴 수 있는 사람들, 자신의 가족을 죽인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들, 신발을 신지 않은 어린이의 발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갈 나라는 분명 특별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을 것이다. 르완다가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희망찬 나라로 서는 날이 분명 찾아올 것이다.


송태진
아프리카 교양서 〈아프리카, 좋으니까〉의 저자. 2008년 부룬디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다. 2015년부터 아프리카 케냐 GBS TV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직접 느낀 경험을 그만의 따뜻한 필치로 본지에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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