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영화 ‘아마데우스’는 노력파 음악가였던 살리에리와 천재 모차르트의 삶을 통해 이 질문의 해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아울러 자신의 기준과 틀에 갇혀 상대의 장점과 마음을 살피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일깨워준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제목은 음악가 모차르트의 풀네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서 따온 것이다. 일견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비극으로 끝난 그의 생애를 그린 영화 같지만, 엔딩크레딧에도 나오듯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살리에리다. 그는 배경 없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갖은 노력으로 오스트리아 황제의 궁정악장이 되어 부와 명예를 거머쥔 당대 최고의 음악가다. 그런 그가 잘츠부르크에서 비엔나로 온 청년 모차르트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이후로도 살리에리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았다고 고백한다. 도대체 왜?

열정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욕망

영화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노인 살리에리가 신부에게 자신의 삶을 회상하며 고백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살리에리는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었고, 그 열정으로 신을 찬양하고자 했지만 신이 재능을 주지 않았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그의 그런 마음은 냉정히 말하면 ‘열정이라는 이름의 욕망’이었다. 그가 소년시절에 했던 기도를 보자. “주여,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가 되게 해 주소서. 음악으로 당신을 찬양하고, 저 또한 영원히 추앙받는 작곡가가 되게 해 주소서.”

영화 속 모차르트는 천재 작곡가이지만, 영화 내내 ‘으히히히’ 하고 경망스런 웃음소리로 주변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영화 속 모차르트는 천재 작곡가이지만, 영화 내내 ‘으히히히’ 하고 경망스런 웃음소리로 주변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가 신에게 구한 건 영감靈感이 아닌, 위대한 음악가라는 지위였다. 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위치에 가도 음악 하는 것 자체를 즐길 뿐이다. 하지만 욕망이 끼어들면 순위를 매기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게 된다. 살리에리는 음악가 아버지를 둔 모차르트를 부러워했고 네 살때 협주곡을, 일곱 살 때 교향곡을 작곡한 그에 대한 소문을 들을 때마다 질투가 났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가 음악에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면, 자신이 천재 모차르트와 동시대에 살며 가까이서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살리에리는 열정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자신의 마음 속 욕망을 감각하지 못했고, 자기도 모르는 새 고통의 늪에 빠지게 된다.

욕망으로 채워진 삶에 찾아온 고통과 저주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향해 불편함과 질투심을 감추지 못한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향해 불편함과 질투심을 감추지 못한다.

극 중 살리에리는 “그때부터 내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소”라고 두 번 말한다. 첫 번째는 음악가가 되려는 욕망을 채워주지 못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날 때였다. 꿈을 막던 아버지가 사라지자 그는 비엔나로 넘어가 맘껏 음악에 정진하고 노력한 끝에 황제를 모시는 궁정음악가가 되었다. 신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었다고 믿고, 더욱 헌신하고 봉사하며 행복한 시절을 보내던 살리에리…. 그러나 모차르트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다시 한 번’ 바뀌었다. 그는 모차르트의 작품을 대하며 ‘지금까지 듣지 못한, 신의 음성과도 같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 곡을 쓴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의 기대와 달리 ‘음탕하고 무절제하며 경망스런 웃음소리로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이었다. 살리에리의 고통은 질투로 바뀌고, 그는 신에게 의문을 던진다.

“왜 신은 저 녀석을 도구로 선택했을까요? 그건 정말 실수였을 거예요.”
자신이 애써 작곡한 행진곡을, 모차르트는 딱 한 번 듣고 그 자리에서 더 멋지게 편곡까지 해내 주위의 이목을 끌자 그는 신을 노골적으로 원망한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이 사모하던 오페라 가수마저 모차르트에게 마음이 기울자 살리에리는 신을 저주하기에 이른다. “내 가슴은 그 작자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찼죠. 내 생애 최초로 저주를 배웠소.”

한편 모차르트는 연인이었던 콘스탄체와 결혼했지만, 변변한 직업도 없이 사치와 낭비를 일삼으며 가난한 생활을 이어갔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의 작품집을 들고 살리에리를 찾아가 남편의 일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한다. 수정할 데라곤 단 하나도 없는,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려진 악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차르트의 악보를 보고 살리에리는 절망에 빠진다. 그리고 신에게 정면으로 맞서기로 다짐한다. “당신의 도구로 저렇게 음탕하고 지저분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사람을 쓰다니, 맹세코 당신을 매장시키겠소. 있는 힘을 다해 당신의 피조물에 해를 끼치겠소.”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파멸시킬 계획을 세운다. 모차르트는 때마침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폐렴 등으로 거의 폐인이 된다.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등의 명작을 발표하지만 그의 천재성은 살리에리에게만 엿보였을 뿐, 흥행에는 실패한다. 경제적으로도 궁핍한 가운데서도 밤을 새며 곡을 쓰던 모차르트에게, 살리에리가 가면을 쓰고 찾아와 돈을 주며 진혼곡을 의뢰한다. 진혼곡이 완성되면 모차르트를 죽이고 그의 장례식에서 그 진혼곡을 연주하며, ‘이 곡은 내가 모차르트를 위해 작곡했다’고 세상을 속이며 신을 비웃어 줄 작정이었다.

진혼곡을 쓰기 위해 마음에서 죽음의 세계를 경험하던 모차르트는 서서히 죽어간다. 마지막에는 펜을 들 힘도 없어 그가 머릿속에서 완성된 악상을 불러주면 살리에리가 받아적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결국 모차르트는 죽음을 맞고, 진혼곡은 미완성으로 남는다. 살리에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그는 자신이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남은 생을 고통 속에 살았다.

자기라는 틀 안에서는 남의 마음을 볼 수 없다

위대한 음악가가 되겠다는 열정과 욕망을 품은 살리에리는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했다. 노력으로 최고의 음악가가 된 그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더 높은 음악적 성취를 이룬 모차르트를 마음에서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정말 살리에리의 생각대로 마냥 방탕하고 무절제한 사람이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저는 저질스런 놈이지만, 제 음악은 아닙니다”라는 대사처럼, 모차르트는 한편으로는 음악이나 사람을 향해서는 참 순수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늘 엄격하기만 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진심으로 슬퍼했다. 하지만 살리에리는 아버지의 죽음에도 전혀 슬퍼하지 않았다.

부와 명예에는 관심 없이, 주위의 혹평에도 개의치 않고 가난과 싸우며 곡을 쓴 모차르트의 집념, 유명한 가수 대신 자신을 사랑한 평범한 여자를 아내로 선택한 순수함…. 쳇바퀴에 들어간 다람쥐는 쳇바퀴를 돌리느라 바깥세상의 풍경을 보지 못한다. 노력이라는 자기 기준에 갇힌 살리에리는 그런 모차르트의 마음을 볼 수 없었다. 그의 눈에 모차르트는 그저 놀고먹으며 빈둥대는 한량일 뿐이었다. 살리에리는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모차르트를 미워했고, 급기야 신까지 저주하며 스스로를 고통으로 몰고 갔다.

99%의 노력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지막 1%

진혼곡을 작곡하며 모차르트는 서서히 죽음으로 달려간다. 결국 살리에리가 와서 모차르트가 불러주는 악상을 받아쓰며 곡을 완성해 나간다.
진혼곡을 작곡하며 모차르트는 서서히 죽음으로 달려간다. 결국 살리에리가 와서 모차르트가 불러주는 악상을 받아쓰며 곡을 완성해 나간다.

결국 살리에리는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세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자신이 죽도록 노력해 만든 곡들은 후세의 기억에 거의 남지 않았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작품은 지금도 널리 알려져 연주되고 있다. 허탈하게 웃는 살리에리의 마지막 모습은 세 시간을 집중해 온 관객들에게 시원한 마침표가 된다. 살리에리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던 노력이란 정신적 굴레에서 벗어났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살리에리는 정신병원에 갇힌 사람들에게 외친다.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여, 너희 모두의 죄를 사하노라! 죄를 사하노라!” 살리에리의 외침은 ‘노력이라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자유를 만끽하라’는 뼈아픈 조언으로 들린다. 성취는 99%의 노력으로만이 아닌, 마지막 1%의 영감이 채워질 때 완성된다.

안현지 춘천교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21세기에 필요한 교육은 지식전달이 아닌, 올바르고건전한 마인드를 형성하는 데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일반시민, 학생과 학부모, 심지어 재소자 등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바 있으며, 강원도 교육청 인성놀이 교원학습공동체 회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하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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