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이의 심장박동 소리를 더 크게 만드는 책

책 <골든아워>의 저자 이국종 교수는 외과 전문의이자 중증외상 치료의 권위자이다. 그는1995년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외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3년 미국 UC샌디에이고 외상센터, 2007년 영국 로열런던병원 외상센터에서 연수하면서 선진국들의 중증외상환자 치료 시스템을 도입하게 된다. 이 분야에서 다수의 논문도 발표한, 중증외상 분야에 외길을 걸어온 학자이자 의사이다.
우리에게 조금은 생소한 중증외상은 일반응급과 차이가 있다. 일반응급은 말 그대로 응급상황을 이야기하며 중증외상보다는 범위가 훨씬 넓다. 넘어지거나 부딪치는 상황 등에서 발생한 골절이나 심한 복통,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고열 등 일반 외래에서 오래 기다릴 수 없고 빠른 시간 안에 진료가 필요한 상태를 말한다. 반면 중증외상은 외상 중에서도 건설현장 등에서 추락 사고나 차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등의 심한 교통사고, 폭발사고, 총기사고 등 생명에 당장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큰 외상이 발생한 상황이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그가 이번에 책을 낸 것은 박혜경 동아일보 기자가 ‘외상외과 의사로서 겪어온 일을 글로 옮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같은 제안이 전에도 있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던진 한마디에 이 교수는 얼어붙었다고 표현했다.
“교수님께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그토록 소중히 여기신다면, 그 헌신이 잊히지 않도록 뭐라도 하셔야 하는게 아닌가요? 지금 아무리 소중해도 몇 년만 시간이 흐르면 모두 잊힙니다. 그러나 활자로 남겨둔 기록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요.”
‘활자화’의 중요성은 의학계뿐 아니라 모든 학문 영역에서 강조되는 부분임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 후 그는 생각나는 대로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 교수의 전투적인 삶을 그린 중증외상 환자들이 겪는 고통, 죽어가는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집중하는 의사·간호사·응급구조사·의료기사 등의 의료인들과 소방대원들의 노력을 정확히 표현한 책 <골든아워>를 만나게 되었다. 생존을 향한 환자들의 절박한 사연, 또 그들을 이승으로 끌어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모습은 읽는 이의 심장박동 소리를 더 크게 만든다.

한 생명도 놓치지 않겠다는 몸부림

사고 직후 병원과 병원을 전전하다 중증외상센터로 오는 환자들의 이송 시간은 평균 245분, 그 사이에 살 수있는 환자들이 죽어 나간다. 사지가 으스러지고 내장이터져나간 환자에게 시간은 생명이다. 사고 직후 한 시간이내에 환자는 전문 의료진과 장비가 있는 병원으로 와야 한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골든아워golden hour’다. 그러나 금쪽같은 시간은 지켜지지 않고, 가까운 거리는 구급차로 이송 가능하지만 먼 거리는 상황이 다르며 가깝더라도 차가 막히는 러시아워가 되면 환자들은 길바닥에 묶인다. 그래서 그는 헬리콥터로 환자를 옮기며 ‘골든아워’를 지키기 위한 시스템을 추구했다. 이 교수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하다. 한 생명도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사람을 살리는 것, 그에게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 몸부림으로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한계 속에서 겪는 갈등, 자신과의 싸움, 그로 인해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관적이고 회의적이기도 하며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그의 온기를 책 속에서 느낄 수 있다.

<골든아워>의 첫 페이지는 ‘정경원에게’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유독 나의 궁금증을 유발했던 정경원은 이 교수와 함께 일해 온 후배다. 이 책은 이 교수의 진료기록, 수술기록 등을 바탕으로 이 교수의 기억들을 정리한 기록이다. 어쩌면 이 책은 앞으로 이 교수를 이어서 중증외상센터를 끝까지 이끌어갈 후배, 정경원을 위한 기록일 수도 있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고 아꼈다.특히 함께 팀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그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다.

책 속 이국종 교수가 쓴 표현들은 하나하나가 훌륭하다. 최종 수비수의 결연함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는 그가 늘 비장한 각오로 살아왔음을 의미한다. 이 교수가 사회 구조적인 한계에 대한 답답함을 신랄하게 표현한 부분이 가슴을 시원케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간결한 문체가 주는 힘에 있다. 그는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를 등뼈 삼아 글을 정리해보려고 애썼다고 한다. 책을 준비하는 동안 김훈 선생을 직접 만난 적도 있다고 한다. 김훈의 문장을 따라 했다고 고백하지만 어쩌면 이 모든 문장은 이국종 교수였기 때문에 구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의 표현대로 그의 문체는 전형적인 ‘이과 남자’ 스타일이지만 그 안에는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진정성과 따뜻함이 스며 있다. 이 교수는 <칼의 노래> 속 이순신을 통해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고스란히 감내하면서도 알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조직 내 중간관리자의 고통도 보았다고 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직장인이, 중간관리자가 이국종 교수 자신을 의미하고 있음을 말이다.

생명을 먼저 생각한 그가, 생명이 움트는 봄이 싫었던 이유

응급헬기가 올 때면 이국종(오른쪽 두 번째)은 영하 10도의 겨울에도 수술복, 가운만 입고 나간다.
응급헬기가 올 때면 이국종(오른쪽 두 번째)은 영하 10도의 겨울에도 수술복, 가운만 입고 나간다.

2011년 1월, 해군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해운 소속 선박 주얼리호를 소말리아 인근의 아덴만 해상에서 구출한 ‘아덴만여명 작전’을 기억한다. 당시 이 교수는 아덴만 작전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살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아울러 중증외상 치료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세상에 알리면서 정부가 한국의 중증외상 분야의 현실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

2012년 전국 거점 지역에 권역외상센터가 설립되고 국가가 행정적, 재정적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의술로 석 선장을 구해내는 일을 할 때 그의 마음을 표현한 글 속에서 사회구조적 한계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않는 법이다. 석 선장은 무겁게 떨어지는 칼날이었다. 환자의 상태가 극도로 나쁠 때 의사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환자가 살아나도 공은 제 몫이 되지 않고, 명을 달리하면 그 책임은 마지막까지 환자를 붙들고 있던 의사가 오롯이 져야 한다. 그것이 이 바닥의 오랜 진리다.”

투머로우 3월호를 읽고 리뷰를 보내주세요. 그중 다섯 분을 선정해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1>을 선물로 드립니다.
투머로우 3월호를 읽고 리뷰를 보내주세요. 그중 다섯 분을 선정해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1>을 선물로 드립니다.

<골든아워>는 평소에 나에게 부족한 시민의식, 주인의식과 마주하게 하는 책이다. 응급헬기가 뜰 때 주민들이 소음 때문에 민원을 넣거나 ‘집값 떨어진다’고 반응하는 것은 의료시스템의 중요성을 평소에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과서적인 치료원칙을 강조하며 생명 하나만을 바라보고 가는 그를 죽이고 있는 건 정작 우리가 아닐까? 이 책은 ‘돈’과 ‘경제논리’보다는 ‘사람’이 먼저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할 수 있게 한다.
이국종 교수는 봄이 싫었다고 했다. 추위가 누그러져 노동현장에 활기가 돌면, 사고로 떨어지고 부딪혀 찢어지고 으깨진 몸들이 병원으로 실려 오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도 봄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처럼 나도 봄을 생각해 볼 기회를 책을 통해 얻었다. 필자가 지켜왔던 교과서적인 치료원칙은 결국 ‘골든아워’를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의료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그의 몸부림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재발견하게 했고, 경직된 사회구조의 한계 속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이끌어 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역사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산사람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그가 이 시대에서 기억되는 의사로 남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는 말한다, ‘원칙을 지키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그리고 나에게도 물어온다. 냉혹한 현실에서 업業의 본질을 얼마나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글=반수정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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