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오랫동안 써온 물병이 있다. 가볍고 튼튼해서 가지고 다니며 사용하기 참 좋다. 어느 날 문득 목이 말라 물을 마시다가 빈 물병을 보며 생각했다. ‘이 물병은 몇 번이나 비워졌을까?’ 셀 수는 없지만 수백 번 채워지고 또 비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물병은 단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다. 그저 묵묵히 자신을 채우고 겸손히 비워낼 뿐이었다.  

요즈음 사람들은 자신을 가득 채우기에만 급급하다. 지식과 경험, 인맥 등으로 경쟁이라도 하듯 자신을 채운다. 반면에 자신이 가진 것을 비워내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드러내거나 잘못을 인정해야 할 때도 있건만, 사람들이 가득 채운 자기 자신을 비우지 못해 괴로워한다. 자신의 것이 무시 받는 상황이 오면 굉장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도 바닥까지 비워져야만 새롭게 채워질 수 있는 법이다. 우리가 가진 것, 믿고 의지하는 것을 모두 내려놓고 다른 이와 마음을 나눌 때 새로운 마음이 우리를 가득 채울 것이다. 

물병은 물을 가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 마실 때 가치가 있다. 자신이 비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품 안에 담긴 것을 내어놓지 않는다면 그 물병은 하등 쓸모없는 것이 될 뿐이다. 다른 이에 의해 채워지고 다른 이를 위해 비워지는 용기容器. 채워짐에 감사하고 비워질 때 가치 있는 용기. 가득차도 언제든지 바닥까지 비워질 수 있는 용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勇氣가 아닐까!

글과 사진 | 이제향(전역을 앞둔 대학생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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