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한국장학재단 수기·UCC 공모전 수상작

아이들과의 첫 만남
지난 1월, 한 달 동안 초등학교에서 1학년 부진아 학생들 반의 학습을 지도하는 일을 맡았다. 첫 만남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감이 많이 없어 보였다. 이미 자신이 공부를 ‘못’해서 여기에 온 것이라고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위해 위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아닌, 옆에서 같이 달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고 이해시키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아이들의 생각과 고민을 함께 나눌,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르침을 배우다
나는 교육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초등학교 1학년이 뭘 배우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먼저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내가 잘나서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아님을 잘 알기에 매일 노력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 달 동안, 나의 하루는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아이들이 퀴즈를 맞히면 줄 간식을 사고, 전날 밤늦게까지 만든문제와 활동지를 프린트한 뒤 미리 교실에 들어가 따뜻하게 히터를 틀어놓고 아이들을 기다리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모든 게 계획한 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한 아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집중력이 훨씬 낮았는데 단 30분의 내 일방적인 설명은 아이에게 3시간만큼이나 길게 느껴지는 듯했다. 욕심껏 아이에게 활동문제지를 두세 장씩 한꺼번에 시키면 아이는 하기 싫어서 문제지를 찢고 연필로 온통 까맣게 낙서하는 등 반항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수업시간을 더 잘게 쪼갰다. 처음에는 30분 수업 후 10분 쉬는 시간을 갖곤 했는데 15분으로 줄이고 간단한 설명과 활동 후 5분씩 쉬는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하다 보니 내가 수업 시간이라고 종을 땡땡 울려도 아이들은 금방 또 쉬는 시간이 올 걸 알기에 제법 말을 잘 들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는 걸 아쉬워할 정도로 내 수업을 즐거워해 줬다.

더 큰 기쁨을 돌려준 아이들
마지막 시간, 끝으로 아이들에게 그동안의 우리 수업을 증명할 수 있는 시험지를 주었다. 아이들이 문제를 푸는 동안 나는 ‘이왕이면 아이들의 성적을 올려주셨으면 좋겠다’며 이따금씩 내가 수업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가시곤 했던 교장선생님의 당부와, 자신의 아이가 학습능력이 많이 부족하냐며 학원을 보내야 할지 고민이라는 학부모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이들이 나와의 수업을 통해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고, 그동안 자신보다 잘하던 아이들 틈에서 느꼈던 설움에서 벗어나 이 시험 문제를 풀며 아는 것을 쓱쓱 써나가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들은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선물을 준비했다. 내가 채점하는 동안 시험지가 동그라미로 하나씩 채워질 때마다 아이들은 그동안의 나의 노력에 보답하고,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내고,선생님들에겐 희망을 던져주었다. 첫 시험에서 스무 문제 중 열네 문제를 틀렸던 아이는 세 문제를 틀렸고, 스무 문제 중 아홉 문제를 틀렸던 아이는 한 문제를 틀렸다. 이 아이들 외에도 다른 아이 모두 성적이 올랐다. 채점을 하면서도 난생처음 느껴지는 감정에
마음이 많이 간지럽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마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었던 것 같다. 동그라미가 가득한 시험지를 보여주니 아이들도 믿기지 않는 듯했다. 자꾸 의심하듯 자신이 몇 개 틀렸는지 물었다. 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행복하게. 나도 행복했다.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사실 내가 학교에 간 것은 나의 꿈을, 꿈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위해서였다. 나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우리 과에서 선생님이 되기 위해선 대학원에 가서 교직이수를 해야 했고 그 뒤엔 고시 공부라는 길고도 불확실한 미래가 있었기에 나는 선생님이란 직업은 하늘에서 정해주는 것만 같아 이번 생엔 틀렸다고 애써 외면했다. 지금도 학자금 대출로 학교를 다니는데 대학원 등록금을, 또 고시 공부까지 내 욕심을 채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부모님은 이제 너무 나이가 드셨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내가 갈 길은 빨리 취업해서 부모님을 편히 모시는 길이라고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는 심정으로 온 곳에서 나는 이 아이들을 만났다.

내가 이 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내 이성이 알아차리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생각하며 문제를 만들고, 강의를 듣고, 더좋은 교구를 찾는 나를 발견하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을 보며 다시 내 꿈을 잡게 되었다. 길이 멀어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이 아이들을 생각하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꿈이 되어준 아이들이기에. 내가 전문적인 지식 없이 뛰어들어 한편으로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배우는 게 더 많아 내가 진짜 ‘선생님’이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래도 매순간 진심으로 사랑하고 가르치려 노력했음을, 너희를 혼낼 때도 미워해서 혼내는 게 아니었음을 알아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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