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인기스타’ 마사이 족이 유명해지며 그들의 이름과 문화를 차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마사이 족은 무분별하게 도용되는 마사이 브랜드에 지식재산권을 요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지식재산에 정당한 대가를 치불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물질이 순수한 마사이 족의 정신세계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마사이 부족이 등장한 자동차 브랜드 '랜드로버'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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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최고 인기스타 마사이 족

아프리카 대륙에는 다양한 종족들이 살고 있다. 추억의 코미디 영화 ‘부시맨’으로 기억되는 남부 아프리카의 산 족, 낙타를 타고 사하라 사막을 오가는 유목민 투아레그 족, 유쾌한 방송인 샘 오취리의 출신부족인 가나의 아칸 족 등 크고 작은 인종 집단의 수가 무려 3천이 넘는다. 태곳적부터 내려온 각자의 고유한 문화와 다채로운 개성을 품고 있는 이들은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조화롭게 모여 거대한 아프리카를 이룬다.

아프리카의 여러 부족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들은 단연 마사이 족이다. 케냐와 캐나다도 구분하지 못할 만큼 아프리카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마사이라는 이름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누렇게 바랜 사바나 초원 위에 곧게 서 있는 호리호리한 마사이 남자. 어깨에 걸쳐 내린 강렬한 붉은 천 밑으로 군살 하나 없이 단련된 검은 몸이 드러나 있다. 실없게 흔들리지 않는 진지한 얼굴은 장신구와 물감으로 유난스레 치장됐다. 먼 데를 주시하던 그의 눈빛이 불현듯 반짝인다. 시선의 끝, 우거진 덤불 아래에는 몸을 웅크리고 습격의 기회를 노리는 젊은 수사자가 있다. 마사이 전사는 문득 손에 쥔 창을 뻗어 사자와 힘을 겨뤄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매섭게 으르렁대는 갈기 긴 짐승에게 초원에서 가장 강한 자가 누구인지 가르치고 싶은 욕망으로 심장이 뛴다.

문명의 이기에 둘러싸여 유약해진 현대인의 관점으로는 맹수와 맨몸으로 대결하는 마사이 전사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초인처럼 느껴진다. 위험 가득한 야생에서 굳세게 살아가는 마사이 족. 독특한 전사 제도와 유목 생활,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전통 의상과 장신구 등 고유한 문화를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야생의 땅 아프리카에 걸맞은 자연인의 표본으로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12억이 넘는 아프리카 인구 가운데 마사이 사람들은 2백만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소수 민족이다. 인구 비율상으로는 미미한 숫자지만 마사이 족이 아프리카 토착민을 대표하는 인기스타라는데 의문을 품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사이 이름 사용하려면 돈을 내세요”

ⓒLAND ROVER.
ⓒLAND ROVER.

마사이 족이 유명해지며 그들의 이름과 문화를 차용하는 사례가 많다. 의상 디자이너들은 붉은색과 푸른색이 섞인 마사이 전통복 ‘슈카’의 디자인을 본떴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은 2011년 파리에서 열린 패션쇼에서 마사이 느낌이 강하게 담긴 남성 의류들을 선보였다. 어떤 발명가들은 마사이 족의 생활 습관에 주목했다. 들판을 장시간 걷는 마사이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모방해 만들었다는 기능성 신발 MBT는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 되었다. 자동차 회사 랜드로버는 광고에 마사이 부족민들을 등장시켰고, 필자가 종종 찾는 커피숍에서는 ‘마사이 커피’라는 이름으로 케냐AA 커피를 내놓는다. 그 외에도 마사이 쇠고기 스테이크, 마사이 당구채, 마사이 만년필 등 각종 마사이 상품들이 줄을 잇는다.

여기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마사이 이름을 쓰는 기업들은 전 지구적 인기스타 마사이의 이미지를 등에 업고 좋은 브랜드 효과를 누린다. 그렇다면 기업은 마사이 이름의 본래 주인인 마사이 사람들에게 상표 사용료를 내야할까? 다양한 답변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일단 아직까지 현실에서는 기업들이 별다른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있다. 마사이 브랜드와 문화적 상징, 이른바 지식재산권을 공짜로 쓰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지식재산권은 매우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특허권이나 상표권, 저작권 등 무형의 자산들이 법으로 보호된다. 종종 이를 침해한 기업이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의 벌금을 물게 됐다는 기사를 접하곤 한다. 최근 미국 법원에서 삼성전자가 애플의 스마트폰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약 5800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마사이 족 역시 무분별하게 도용되는 마사이 브랜드에 지식재산권을 요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마사이 지식재산권 이니셔티브(MIPI:Maasai Intellectual Property Initiative)’라는 단체는 마사이 브랜드를 이용하는 기업들로부터 사용료를 받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기업과 라이선스를 맺고 약 5%의 사용료를 거두어 마사이 족을 위해 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MIPI 측은 천 여 곳의 기업에서 마사이 상품으로 이익을 얻고 있지만, 정작 마사이 사람들에게는 수익이 배분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마사이에 관한 지식재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면 기업들로부터 연간 수천만에서 수억 달러를 보상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MIPI 케냐지부 회장 아이삭 티아롤로는 만일 기업과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면 법정싸움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지식재산권이 마사이를 도울 수 있을까?

만약 정말로 마사이 사람들이 지식재산권 청구에 성공해 연 수천만에서 수억 달러에 달하는 사용료를 받게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대부분 사회에서 불로소득은 양날의 칼처럼 작용한다. 구호자금은 사람에게 활력을 줄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그를 파괴할 수도 있다. 긍정적인 면은 쉽게 생각할 수 있으니 장밋빛 계획에 묻혀 자칫 놓칠 수 있는 부정적인 면을 생각해보자.

복권에 당첨되어 거부가 되었다가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흔히 들을 수 있다. 세계 5위 산유국 베네수엘라가 포퓰리즘으로 몰락한 안타까운 일도 있다. 미국과 캐나다 인디언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인디언들은 정부에서 생활비를 받기 때문에 직업을 갖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 그러다보니 삶의 의욕을 잃고 마약에 빠져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많다. 쉽게 돈을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어려운 일에 도전하려는 건전한 정신이 사라지게 되고, 결국 눈앞의 작은 이익과 욕망만 좇는 무기력한 사회가 되고 마는 것이다.

킬리만자로 산 커피, 마사이 족 전통 천 가방에 담겨 팔린다.
킬리만자로 산 커피, 마사이 족 전통 천 가방에 담겨 팔린다.

만약 마사이 족이 적은 돈이라도 무상으로 받기 시작하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마음에 받아들이면 매우 무서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쉽게 돈을 얻는 즐거움에 취하면 마사이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의 마사이일 수가 없다. 야생에서 사자와 겨루며 극한 어려움을 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마사이 전사의 정신이 쇠퇴할지도 모른다. 자연 속에 동화되어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는 진흙빛 소박한 마사이 마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들이 오랫동안 간직하고 지켜온 전통문화는 잊혀지고 돈벌이가 될 만한 상업적인 부스러기들만 남을지도 모른다.

나는 케냐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마사이 족 청년 존슨 라나에게 지식재산권이 과연 마사이족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마사이의 이름을 빌려주는 대신 돈을 받는 건 마사이 족다운 사고방식이 아니에요. 마사이 사람에게 중요한 가치는 공유와 나눔입니다. 우리는 돈 대신 친구를 원해요. 마사이에게 돈은 크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이 정말로 마사이 출신인지 모르겠네요. 제가 볼 때 진짜 마사이라면 그런 생각을 옳다고 여기지 않을 겁니다.”

마사이 족의 지식재산권 청구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온당한 행동이다. 이제 그들도 자신들의 권리를 누릴 때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 돈이 매우 위험한 돈이라는 경각심이 없다면 마사이 사람들을 더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마사이 청년 존슨 라나가 걱정하는 것처럼마사이다운 사고방식을 잃고 돈만 바라보는 가짜 마사이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마사이 족의 미래는 그들에게 달려 있다

마사이 족의 전통복 '슈카'를 본따 만든 패브릭
마사이 족의 전통복 '슈카'를 본따 만든 패브릭

마사이 족의 현실에는 어려움이 많다. 기후 변화로 목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고, 정부에서 정착생활을 유도하면서 유목민이었던 그들이 어울리지 않게 농부로 사는 경우도 목격된다. 유목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전해 내려오던 전통 문화는 사라지고 있다. 부족 사람의 80% 가량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통계가 있을 만큼 그들의 삶은 녹록치 않다.

지식재산권 청구는 이러한 마사이 족의 현실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부정적인 사례들을 떠올리면 우리는 이를 조심스런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문제는 일어날 수 있고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이 벌어질 수 있다. 지식재산권을 청구하는 이도, 그것을 관리하는 이도 마사이 족이다. 그들이 돈에 좌우되지 않고 얼마나 지혜롭게 처신하는지에 그들의 미래가 달려 있다. 아프리카 최고의 인기스타 마사이 족, 자연과 더불어 용맹과 강인함을 겨루며 살아온 그들의 가치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길 바란다.

송태진
YTN 아프리카 해외 리포터 및 케냐 현지 TV 방송국 GBS의 제작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아프리카 부룬디로에서 해외봉사한 이후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꿈을 꾸고 케냐로 갔다. 아프리카의 각양각색 모습을 취재하며 한국 독자들에게 머나먼 아프리카의 진짜 모습을 알려주는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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