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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휴대폰처럼 전달되고
박옥수 | 승인 2018.06.29 15:31

우리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할 때 휴대폰 안의 발진기가 전파를 만들어내서 거기에 소리를 실어 나릅니다. 발진기가 없으면 휴대폰에 대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소리를 상대에게 전할 수 없습니다. 행복도 행복을 만들어내는 발진기가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행복해지려고만 합니다.

어느 날 아침, 휴대폰을 들고 어떤 분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하는데 휴대폰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배터리가 다 됐나?’ 하고 충전을 시켰는데, 그래도 휴대폰이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메시지를 보내야 했기에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아침에 교회 사무실에 나와서 함께 지내는 젊은 목사님에게 ‘휴대폰이 고장난 것 같은데 고쳐야겠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 그 목사님이 “이 휴대폰, 충전하니까 괜찮은데요?”라고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이쪽에서 충전해도 안 되고 저쪽에서 충전해도 안 되던데….” 고장난 것이 아닌데 저는 고장난 줄로 알았습니다. 제가 휴대폰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기 때문에 왜 그런지 지금도 모릅니다. 우리가 어떤 부분에든 정확한 지식을 갖지 못할 때, 문제가 생기면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답답한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휴대폰에는 여러 기능이 있는데, 저는 주로 통화하는 데에 사용합니다. 특별히 요즘은 해외에서 한국에 있는 분들과 무료로 통화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이 있어서 좋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휴대폰 안에는 발진기가 있어서 전파를 만들고, 그 전파에 소리나 영상을 실어서 기지국으로 보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미국에서 한국에 있는 제 아내에게 전화를 하면, 제 휴대폰에서 음성을 실은 전파가 미국에 있는 기지국으로 보내지고, 그것이 한국에 있는 기지국으로 보내지고, 다시 제 아내의 휴대폰으로 보내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기지국을 거치는지는 모르지만, 중간에 기지국들이 저와 제 아내의 휴대폰을 연결시켜 주어서 제가 “여보, 내일 저녁 다섯 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해요.” 하고 아내와 통화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연결되어서 행복이나 사랑이 전달되는 것도 이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목사이니,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예로 들어 말해 보겠습니다.
구약 성경 열왕기하 5장에, 아람(지금의 시리아)의 군대장관인 나아만이 나옵니다. 그는 나환자였습니다. 그의 집에, 나아만이 이스라엘에 쳐들어갔을 때 잡아온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나아만의 아내의 몸종으로 지냈습니다. 포로로 잡혀와 외국에서 몸종으로 지내는 여자아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아이에게 휴가가 있겠습니까, 월급이 있겠습니까, 정년이 있겠습니까, 가족을 만날 기약이 있겠습니까? 굉장히 비참할 것 같은데, 아이는 밝게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이야기하겠습니다.

나아만의 집에 그 여자아이와 대조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나아만의 아내로, 그 여자는 돈과 지위를 가진 데에다 미모도 뛰어났을 것입니다. 군대장관의 아내와 포로인 아이, 두 여자는 한 집에서 주인과 몸종으로 자주 만나며 지냅니다. 한 여자는 근심이 깊습니다. ‘우리 남편의 병이 더 심해졌어. 군대장관 자리에서 쫓겨나면 어떻게 하지? 그리고 이젠 남편에게 가까이 가기가 힘들어.역겨운 냄새가 나.’
여자아이는 정반대입니다.
‘장군님이 나병에 걸렸구나. 내 고향이스라엘 사마리아에 엘리사 선지자가 계시는데, 장군님이 선지자에게 가면 저병이 나을 텐데…. 병이 나으면 이 집을 덮고 있는 어둠이 물러가고 집안에 행복해지겠다.’ 여종이 그렇게 생각한 것은, 이스라엘에 살 때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 선지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나병에 걸린 나아만 자신만큼 병에서 낫기를 간절히 바랐던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병에서 낫기 위해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애쓸 뿐이지, 시간이 흘러도 낫지는 않았습니다. 나아만은 병이 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을 뿐, 그의 마음에 ‘병이 낫는다’는 소망은 없었습니다. 여종은달랐습니다. ‘장군님이 선지자를 만나면 병이 나아!’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어 있었습니다.

나아만은 군대장관에 오를 만큼 힘과 용맹과 기개와 지략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여러 전쟁에서 승리하여 명성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나병은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나병을 이길 힘이 없었을 뿐 아니라, 병을 이길 수 있는 길도 몰랐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행복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합니다. 건강, 다른 사람보다 나은 실력,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얻어가면서 기뻐하는 사람이 있고, 얻지 못해 슬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원하는 것들을 얻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의 병이 심각합니다. 몸이 문드러지는 나병처럼 남에게 보일 수 없어서 늘 감추고 살아야 하는 악함이나 어두움이 있을 때, 외적인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어도 마음은 무겁거나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하지만,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전화 통화를 할 때 휴대폰 안의 발진기가 전파를 만들어내서거기에 소리를 실어 나릅니다. 발진기가 없으면 휴대폰에 대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소리를 상대에게 전할 수없습니다. 행복도 행복을 만들어내는 발진기가 있어야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행복해지려고만 합니다.
나에게 행복을 만들어내는 발진기가 있는지 없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수학문제 앞에서 푸는 법을 찾고 있다면 나는 그 문제를 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문제를 풀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서 ‘저 문제 푸는 법을 가르쳐 줄까, 말까?’ 하고 있다면 나는 문제 푸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행복도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하지?’ 하고 있다면 나는 아직 행복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내가가진 행복을 저 사람에게 전해줄까?’ 하고 있다면 나는 행복을 가진 사람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나병에서 낫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면낫는지 몰랐기에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여전히 병에사로잡혀서 고통스럽게 지내야 했습니다. 여종은 ‘우리주인이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에게 가면 저 병이 낫는데…’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을 근거로 한, 분명하고 확실한 소망을 마음에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행복한 미래를 꿈꿉니다. 여종은 나아만의 집에서 늘 웃고 지냅니다.
‘우리 주인에게 내 마음에 있는 소망을 전해야지. 주인이 병이 나아서 돌아오면 얼마나 기뻐할까? 이 집에서 근심이 떠나겠구나.’
그 일을 생각만 해도 행복합니다.
‘주인이 병이 낫고 집안에 기쁨이 가득해지면, 주인 내외분이 나에게 고마워하겠구나. 그러면 나도 사랑을 받고, 내 삶도 달라지겠구나.’
여종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 집에서 일어날 여러 일들을 그려보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언제 할까? 어떻게 할까?’ 하며, 이야기할 방법과 시기를 찾습니다. 어느 날, 여종이 나아만의 아내에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이 병을 고칠 것입니다!”
휴대폰에서 발생한 전파가 기지국으로 전해지고, 다시 다른 기지국으로 전해지는 것처럼, 여종이 자신의 마음에 있던 소망을 나아만의 아내에게 전해준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는 기지국의 성능이 좋은지 나쁜지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전파를 보내도 상대 기지국에서 그 전파를 받을 수 없다면, 그 전파에 담긴 음성이나 영상은 더 이상 전해질 수 없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아내가 여종의 이야기를 듣고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네. 건방진 것 같으니라고!” 하면 끝입니다. 소망은 그 여종의 마음에서 더 이상 전해질 수 없습니다.
다행히, 나아만의 아내는 여종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장군님이 문둥병에서 나을 수 있다고?” 말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여종에게 있던 믿음과 소망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니까 나아만 아내의 마음도 여종의 마음처럼 소망으로 채워졌습니다.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에 있는 소망을 남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기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야기합니다.
“여보, 당신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에게 가면 그가 병을 고칠 거예요!”
막연하지 않고 정확하게 연결되면 같은 소망을 품게 되고, 그 결과로 같은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말이 전해지는 것과 마음이 전해지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사람들은 주로 말을 듣습니다. 여종이 나아만의 아내에게 이야기할 때 우리가 옆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고 해봅시다.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말이 전해진 사람은 ‘뭐, 병이 나을 수도 있고 안 나을 수도 있겠지.’라는 생각에 머물 것입니다. 마음이 전해진 사람은 ‘야, 이제 저 집은 불행이 끝나고 행복이 시작되겠구나!’ 할 것입니다.

이해하는 세계에서는 공부를 잘한다든지 머리가 똑똑하다든지 등의 조건이 요구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으습니다. 사람마다 각기 조건이 서로 다르더라도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우리 교회 어른이 여든두 살에 암에 걸렸습니다. 그분은 서예의 대가이며, 충무공 기념회의 협회장을 맡고 계셨습니다. 그 어른이 암 진단을 받은 후,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가 살 만큼 살았다. 지금 죽어도 괜찮다. 그런데 내가 교회에서 죄를 사함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 박옥수 목사님에게 전화해서 지금 만날 수 있는지 여쭤 봐라. 어쨌든 하늘나라에 가게 해다오.”
그분이 두 따님의 부축을 받으며 제가 있는 교회 4층으로 오셔서,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구원받지 않았다고 하면 창피할 것 같아서 받은 척했습니다. 복음을 듣고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면 바보라고 할까 봐 안다고 했습니다. 이제 이 나이에 암에 걸렸는데, 무얼 가리겠습니까? 죄 사함 받는 이야기 좀 해주십시오.”
두 시간 남짓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굉장히 기뻐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마음을 숨기고 삽니다. 자신의 위치나 평판을 고려해서 그렇게 처신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두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소망과 행복을 얻는 것이야말로 참된 지혜일 것입니다.

얼마 전, 고향 친구들이 저를 찾아와서 “박 목사, 우리 저녁에 같이 모여서 시간을 갖자.”라고 했습니다. 저는 일 년 일정이 짜여져 있어서 평일 저녁에 시간 내는 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일정이 없는 날이 일 년에 하루나 이틀 정도 있습니다. 마침 5월 24일이 비어 있어서 그날 만나자고 했습니다. 고향 선산에서 같이 자란 친구들 열아홉 명이 모였습니다. 한국 나이로 일흔다섯, 세상을 떠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남아 있는 친구들도 이젠 소망이 없었습니다. 한때는 돈 벌어서 아파트를 샀다고도 하고, 잘나간다고도 했던 친구들인데….

저는 모든 소망을 잃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열아홉 살 때였습니다. 당시 가장 어려웠던 것이, ‘지금은 가난하고 형편없지만 내일은 좋아질 거야’라는 소망조차 가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 자신에게서나 형편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내일을 꿈꾸지 못하며 하루하루를 어둡게 보낸다는 것이 나를 정말 힘들게 했습니다.
열아홉 살의 어느 가을날에 거듭난 후, 지금 저는 소망의 바다에서 삽니다. 무엇을 하든지 될 것 같고, 실제로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이 복되고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소망이 실제 삶에서 드러나 그 꽃을 피우는 날이 있습니다. 여종의 말대로 군대장관 나아만이 사마리아에 가서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 병이 낫고 돌아왔을 때, 나아만의 집은 전혀 다른 집이 되었습니다. 한숨과 눈물과 절망이 물러가고 기쁨과 감사와 행복이 자리 잡았습니다. 여종에게도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도 소망을 만나고 그 소망이 꽃을 피우는 날, 상상하지 못했던 행복이 우리 삶을 덮습니다.

그런데 소망을 받아들일 때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활짝 핀 꽃이나 다 익은 열매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씨앗만 가지고는 열매를 확인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도 이해해 주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소망을 가지고 걷는 길이 어려운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힘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무시 등 시련도 있지만 참된 소망은 결국 열매를 맺습니다. 잠깐의 어려움이 두려워서 그 길을 가지 못하고 힘없이 어렵게 산다면 분명히 후회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서툴러도 마음을 열고 묻고 배우면서 마음에 소망을 담는다면 좋은 기지국이 되어, 자신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전달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의 설립자이며 목사이다. 세계 최초로 마인드교육을 창시한 청소년 문제 전문가로 전 세계를 다니며 강연한다.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길, 곧 마음의 세계를 성경에서 찾은 그는 젊은이들에게 물질세계가 아닌 마음의 세계를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한다. <나를 끌고가는 너는 누구냐>에 이어 <마음을 파는 백화점>을 냈고, 지난해엔 <내 안에 있는 나 아닌 나>를 집필했다. 잠비아에서 마인드교육 교재로 사용하는 <나를 끌고가는 너는 누구냐>의 콘텐츠를 만화로 옮겨 올초에 <신기한 마음여행> 만화책을 출간했다.

박옥수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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