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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도, 무대도, 인생도, 나에게 달려있는 것은 없다마인드 에세이
김병조 | 승인 2018.06.20 14:14

김병조 국립무용단원. 그는 20대에 국립발레단 최연소 연수단원으로 활동하며 각종 콩쿠르에서 주목받던 발레리노였다. 군 제대 후 한국무용으로 전공을 바꿔 2011년에 국립무용단에 입단해 무용계 내에서 화제가 되었다. 이후, 김병조는<춤, 춘향>, <어린, 봄>, <춘상> 등에 출연했으며, 제8회 젊은작가전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원, 투, 쓰리, 포. 다시 원, 투, 쓰리, 포….’ 동작 하나하나가 박자와 잘 맞는지 수없이 체크하며 거울 속의 나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손끝과 발끝의 각도를 맞추고, 호흡조차 짜여진 계산속에 들이쉬고 내쉰다. 무대에 선다는 설레임과 긴장감, 그 부담을 이겨내고 공연을 마쳤을 때의 성취감과 무대를 보며 기뻐하는 관중들을 보며 느껴지는 행복감…. 무대는 수많은 감정을 내포한다. 관객들은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와 함께 때론 기뻐하고, 때론 슬퍼하며 위안을 받거나 상처를 치유받기도 한다.

관중 앞에서 작품을 선보이기까지 배우는 피나는 노력을 한다. 짧게는 한두 달, 길게는 1~2년 동안 하루 평균 열 시간씩 연습을 하며 최대한 완벽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땀을 흘린다. 무대가 끝나면 배우는 온몸으로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지만, 사실 그 박수갈채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 더 많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무대 설치, 조명, 의상, 영상, 미술, 음향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손길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용수의 삶을 산 지 어느덧 20년, 프로 무용수가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연의 흥망興亡이 나에게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더욱 더 분명하게 느낀다.

잘하면 좋고 못하면 좌절하는 ‘세상의 이치’

무대에 서는 일을 하면서 많은 배우들을 만나는데, 그들의 유형은 제각기 다양하다. 무대 위에서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내뿜지만 무대 밖에서는 무척이나 조용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배우, 연습실에서는 굉장한 연기를 선보이지만 무대공포증이 있어서 실수를 자주 하는 배우, 자신의 실수를 남이나 주변 환경 탓으로 돌리는 배우, 자신의 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배역들의 연기와 동선까지도 살뜰히 챙기는 배우, 오랫동안 준비를 한 탓에 작품에 완전히 빠져든 나머지 공연이 끝나면 우울증을 겪는 배우… 각양각색의 배우들이 있지만, 수많은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무대 위에서 마음껏 자유로워져라.”

공연 중인 김병조.

오랫동안 준비한 무대를 두 시간 안에 전부 선보이는데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그리고 그 실수로 인해 작품 자체를 망쳐버린다면 그로 인한 허망함과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런 부담을 안고 무대에 서는데 어떻게 마음껏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큰 무대에서 나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채, 수백 개의 눈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부담은 배가 된다. 무대 위 배우들이 긴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무대 위에서 긴장하지 않은 것처럼, 자유로운 것처럼 연기할 뿐이다. 자신이 무언가를 잘하면 스스로를 기특해 하거나 뿌듯하게 여기고, 실수를 하면 좌절하고 실망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예술가들은 누구보다도 자신만의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도 이러한 세상의 이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래서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의 자유로운 감정까지도 세팅해버린다.

나도 과거에는 이런 이치 속에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무대에서 실수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많이 했다. 공연이 다가올수록 불면증과 소화불량을 겪었고, 무대위에서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잡혀 자유롭게 공연을 펼칠 수 없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마찬가지다. 한번은 맨발로 공연하는 작품에서 혼자 신발을 신고 무대에 오른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굉장히 공들여 준비한 무대였는데, 내 실수 때문에 공연을 망쳤다는 사실에 괴로웠던 나는 2주 동안 방에 틀어박혀 마음 속 깊숙이 동굴을 파며 자괴감에 빠졌다.

좋은 공연을 만드는 것은 내가 아니다.

2017년 가을, 국립무용단 정기공연인 ‘춘상(정구호 연출, 배정혜 안무)’이라는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이 공연은 국립극장의 레퍼토리 시즌 개막작으로서 굉장한 작품이었다. 이렇게 큰 공연에서 주역을 맡은 적도 처음인데다 세간의 관심까지 받고 있어서 긴장이 많이 됐다. 무엇보다도 내가 맡은 배역을 소화해야하는 점이 제일 부담스러웠다. 대학을 갓 졸업한 뒤 사랑에 빠진 스무 살 남자를 연기해야 하는데, 36살에 애도 둘인 내가 요즘 젊은 사람들의 감정과 행동을 풋풋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작품 속 모든 장면에 등장하는 역할이어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담 또한 엄청났고 첫 주연이어서 잘하고 싶은 욕심도 컸다. 그 부담감이 너무 커서 연습이 원활하게 되지 않을 정도였다. 내 몸에 익숙한 한국 장단이 아니라 가요에 맞춰 춤을 춰야 했고, ‘기술적으로 고난이도의 안무 때문에 무대 위에서 실수하진 않을까’ ‘파트너와의 호흡이 안 맞으면 어떻게 하나’ 등의 염려가 나를 힘들게 했다. 이렇게 걱정이 가득한 상태로 무대에 올라가면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서 이 한마디로 마음을 다잡았다.

“나에게 달려 있지 않다.”

<춘상>

무대에서의 실수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 예상이 가능하다면 실수할 일이 없을 것이다. 아울러 배우는 정말 멋진 연기를 선보였다고 해도 음향이나 조명 파트에서 실수해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바를 100퍼센트 못 보여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유명한 산악인은 ‘아무리 내가 산을 잘 타도, 산이 날 받아줘야 산에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는데, 그 말에 백 번 공감한다. 나 역시 무대가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대 스태프들이 한마음으로 조명, 음향 등의 장비를 조작해주어야 하고, 관객들이 무대를 아름답게 봐주어야 한다. 무대 어느 한 부분이 미끄러워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공연의 흐름은 끊길 수밖에 없지만, 이런 부분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무대가 날 받아주길 바라며 나를 내려놓
는 수밖에 없다. 심혈을 다해 무대를 준비했어도 연습도중 발목을 접지르면 그날 공연은 이미 끝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더라도 그 실수가 오히려 관객의 마음을 더 움직인다면, 그 실수는 굉장히 가치 있어진다.

‘춘상’ 공연 당일, 그 무대를 느끼고 싶어 극장에 미리 도착해 조명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무대에서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객석에 앉아 무대 위 내 모습이 관객에게 어떤 시선에서 비춰질지 상상하기도 했다. 무대에 나를 맡기고 공연을 시작했던 그날, 내가 어떻게 춤을 췄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무대의 시작과 끝이 너무 행복했다는 기억만 날 뿐이다. 한국무용계에 새로운 반향을 불러일으킨 ‘춘상’은 내가 연기했던 캐릭터를 포함하여 모든 배우들이 관객과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막을 내렸다.

삶이라는 긴 연극을 대하는 법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가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공연이 잘되고, 못한다고 해서 공연이 꼭 실패하는 것만도 아니다. 무대의 성패는 오롯이 내게 달려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럼 비로소 내 모습 그대로 무대 위를 온전히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낮은 마음이다. 관객이 감동을 받는 무대가 내가 잘했느냐 못했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면, 내가 잘했다고 우쭐해질 이유도 없고 실수했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인생이라는 긴 연극무대에 나를 내려놓고 겸비한 마음으로 선다면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김병조
20대에 국립발레단 최연소 연수단원으로 활동하며 각종 콩쿠르에서 주목받던 발레리노였다. 군 제대 후 한국무용으로 전공을 바꿔 2011년에 국립무용단에 입단해 무용계 내에서 화제가 되었다. 이후, 김병조는<춤, 춘향>, <어린, 봄>, <춘상> 등에 출연했으며, 제8회 젊은작가전에서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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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조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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