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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빛을 지키는 등대지기가 되다푸른등대 기부장학금 학생 수기 최우수상 채인영
채인영 | 승인 2018.06.05 12:06

스무 살, 비상하지 못하다
2017년 3월, 정든 학교와 12년간 나를 지켜주었던 학생이란 신분을 떨쳐내던 날, 나는 어른이 되었다. 뭐가 그리 설레는지 환하게 웃는 친구들을 바라보던 나의 마음에는 짙은 회색 먹구름이 가득 찬 것 같았다. 학교라는 그늘아래 같은 조건에서 함께 부둥켜왔던 친구들에게서 평소 느껴보지 못했던 거리감이 느껴졌다. 나의 마음엔 ‘무섭다’라는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기약 없는 책임감과 출발선의 위치부터가 다른 나와 또래 친구들의 경제력 차이가 나를 옥죄었다. 대학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서슴없이 구입하고, 자취를 하겠다며 좋은 방을 알아보는 친구들과 달리 가난해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는 당장 등록금과 기숙사비가 걱정이었고, 홀로 버텨야 하는 대학 생활이 막막했다.

어두운 현실에 가로막히다
부모님의 실직으로 대학생 언니는 급하게 학교를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고등학생 막내는 저소득층에게 지원을 잘 해주는 기숙사형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나는 유배와 다름없는 대학 생활을 쓸쓸하게 홀로 이겨내야 했다. 처음 부딪혀보는 사회에서의 홀로서기는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입학금, 학회비, 교재비, 단체복, MT 비용 등 생각 이상으로 많은 돈들이 한꺼번에 필요한 경우가 잦았다. 동기들은 부모님이 지원해주시는 돈으로 제때 납부할 수 있었지만, 나는 차마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 없었다. 가난함과 무능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내 상황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고 비통했다. 부득이하게 새내기가 되었던 그달에 한국장학재단에서 생활비 대출을 받게 되었다. 어른이 되면 절대 대출만은 받지 않아야겠다던 나의 오랜 다짐이 현실 앞에서 너무도 쉽게 무너져버렸다.

어둠 속에서 푸른 등대를 발견하다
급한 불을 끄고 난 후, 남겨진 빚과 함께 살아갈 앞으로의 생활이 막막했지만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느꼈다. 평소 좋아하던 분야인 ‘영상’의 재능을 살려 지원서를 냈던 대외활동들이 줄줄이 합격 소식을 전해왔다. 활동비가 지급되는 활동들이었기에 공부와 병행한다면 조금은 벅차겠지만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다는 마음에 더없이 기뻤다.

하지만, 대외활동들은 영상을 제작할 여건이 되어야 했다. 영상편집, PPT 제작, 인터넷 제출용 과제의 비중이 많았던 나의 전공수업에서도 노트북은 필수품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영상촬영을 위한 카메라도 필요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대외활동이었지만,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값비싼 장비가 필요한 모순에 가로막혔던 것이었다. 그렇게 막막함 속에서 좌절할 때 우연히 희망 가득한 푸른빛의 등대를 만났다.

도약을 위한 날갯짓을 시작하다
운명처럼 한국장학재단의 푸른 등대 기부 장학이 눈앞에 나타났다. 놀랍게도 나의 상황에 딱 맞는 기부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국내 4년제 대학교 재학생 중 방송관련 학과 재학생이며 소득 구간 3구간 이내인 자’ 당시 이 신청자격이 나에게 해당한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무너진 하늘에서 솟아날 구멍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경제적인 문제 앞에서 좌절되었던 나의 꿈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꿈을 향해, 비상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신청했던 푸른 등대 기부 장학은 ‘합격’이란 결과를 안겨주었다. 가난한 나의 형편에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장비들을 구비하고 난 후, 많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먼저 각종 대외활동과 학과 과제를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으며, 그간 배우고 싶었음에도 배우지 못했던 설움을 한꺼번에 풀어나갔다. 암울하게 시작한 나의 2017년은 좋은 학점과 좋은 활동 성과들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등대지기: 길잡이가 되어주다
맡은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는 일에 적응이 되어갈 때 쯤 ‘만약 푸른 등대 기부 장학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현실에 부딪혀 절망만 하고만 있었을 텐데… 이렇게 혼자 행복하게 성큼 꿈에 다가가도 되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도움의 크기를 키워나가자는 결심을 실천하고자 선택한 것은 ‘봉사’였다. 과거의 나처럼 방황하며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멘토링 봉사’, 그리고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안되어 교육의 필요를 느끼는 친구들에겐 ‘교육봉사’로 도움을 건네게 되었다. 처음엔 내가 받은 감사함을 다시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봉사였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깊어져 봉사를 하는 것이 되려 나의 행복이 되어버렸다. 소중하고 예쁜 아이들에게 웃음을 찾아줄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되어주겠다는 다짐은 삶의 목표이자 일상이 되었다.

어둡고 초라했던 나에게 푸르른 빛을 비추어 밝혀줬던 ‘푸른 등대’의 불빛. 그 은혜가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생각한다. 그 불빛 덕분에 내가 내딛는 걸음걸음이 더 이상 혼자만의 외로운 걸음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나의 꿈을 함께 응원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는 생각에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제는 내가 그 등대를 지키며 다른 이들에게 푸르른 빛을 보내는 데에 앞장설것이다. 나와 같이 가난으로 인해 꿈을 펼칠 수 없는 학생들이 생기지 않도록, 어둠 속에서 좌절하는 많은 학생을 희망으로 인도해 주고자 말이다.

채인영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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