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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출발점은 절망에서 소망으로 마음을 옮길 때
박옥수 | 승인 2018.02.01 11:29

사람은 두 마음을 동시에 취하지 못하기에 행복을 보았을 때에는 고통이 보이지 않는다.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어도 보이지 않아서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다. 반대로 괴로워할 때에는 불행한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있지만 안 보이는 것이다. 최근 극심한 우울증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절망과 고통에서 행복 쪽으로 마음을 옮기는 길을 소개한다.

나는 사무실에서 사람들과 만나 일을 의논하기도 하고 상담을 하기도 한다. 나를 만나려고 약속도 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떤 때에는 먼저 이야기하던 사람과 상담시간이 길어져서 찾아온 사람이 나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이 왔다가 간 줄도 모른다. 그런 것처럼, 슬픔이 나를 찾아와도 내가 기쁨 속에 있으면 슬픔을 만날 시간이 없다. 슬픔이 나를 만나려고 오래 기다리다가 만나 주지 않으니까 그냥 가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슬픔이 왔는지도 모르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삶에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려움도 있다. 그런데 늘 기쁨을 발견하고 걸어가면 기쁘게 살 수 있다. 반대로 유난히 고통이나 괴로움이나 절망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삶이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려운 것 놔두고 기쁜 것부터 봐요. 기쁜 마음으로 불행을 보면 불행이 불행 같지 않고 기뻐져요.”

반대로, 슬픈 마음으로 기쁨을 보면 기쁨이 덜 기쁘고 슬퍼지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세계를 아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기쁨과 감사로 채운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하면서 살다 보면 참 재미가 있다.

한국에 부임한 어느 나라 영사님이 있었다. 그분은 우리가 하는 청소년 캠프 행사에 관심을 보여 나와 가깝게 지냈다. 하루는 그분이 내 앞에 앉아서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다.

영사님은 딸과 단둘이 살고 있었다. 딸이 열 살 무렵부터, 아내와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고 시간이 갈수록 부부 사이가 더 멀어지고 과격해졌다. 조용히 대화하려고 해도 어느새 거친 말들이 오갔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생각해서 이혼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내의 입에서 먼저 이혼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두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까짓것 이혼하지, 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잘 됐다. 나도 이혼하기를 바랐어.”

그렇게 원치 않는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갔다. 두 사람은 오랜 세월을 다퉈왔기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실제는 아니지만, 나는 그 부부가 대화를 이렇게 바꾸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본다.

“여보, 우리가 가진 문제로 하루 종일 이야기하면, 하루 종일 문제 안에서 사는 거잖아. 우리 이러지 말고 생각을 바꿔 보자.”

“어떻게?”

“우리가 행복했던 때를 이야기해보자. 나,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당신에게 푹 빠졌는데 그땐 당신이 정말 아름다웠어. 지금 아름답지 않다는 말이 아니고, 그때 당신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어. 당신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

이렇게 대화를 이어갔다면 그들은 문제를 덮고 행복한 삶을 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은 아내가 미워졌고, 남편의 마음이 미운 쪽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그래도 이혼은 안 해야지!’라고 남편도 다짐했지만, 어느 날 아내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말이 먼저 나온 것이다. 아내가 미운 쪽으로 마음이 이미 흘러가 있기 때문에 남편은 그냥 이렇게 사는 것이 미칠 것 같았고, 잘못하면 자기가 큰일을 벌일 것도 같았다. 그래서 남편도 “그래, 이혼하자” 하고 엉겁결에 결정했다. 정말로 원하지 않는 이혼이었다.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나, 당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게. 제발 나를 자유롭게만 해줘. 나, 가방 하나만 들고 나갈 테니 이혼을 허락만 해줘라. 나도 당신에게 미안해. 나, 정말 당신을 사랑하고 싶었고 사랑하려고 했는데, 이젠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쉬고 싶어.”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혼 서류에 서명하고 절차를 밟았다. 아내는 가방 하나만 들고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할 건지, 남편은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어린 딸에게 엄마는 “잠깐 어디 멀리 다녀올게” 하고는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로 가버렸다. 딸이 엄마에게 연락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영사님과 딸, 두 사람만의 삶이 시작되었다. 아내 생각만 하면 영사님도 화가 나서 자기도 모르게 아내를 욕하는 말을 해댔다. 그 소리를 듣는 딸도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아버지가 엄마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아니까 딸은 아버지 앞에서는 엄마 이름조차 꺼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이나 엄마를 떠나보낸 슬픔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슬픈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딸은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혼자 울면서 엄마를 그리워했다.

‘아빠가 얼마나 싫은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엄마가 나를 생각한다면 전화 한 번은 할 수 있을 텐데…. 혹시 전화가 왔었는데 아빠가 먼저 받아서 나한테 말하지 않는 걸까?’

여러 날을 기다렸지만 엄마에게서는 편지 한 통, 전화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엄마가 살아 계실까? 내가 싫은가?’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의 운명이 잔인하고 한스러웠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그런 마음을 이야기할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그냥 엄마가 그리워서, 혼자 울며 슬퍼하고 엄마를 그리워했다. 어느덧 딸은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엄마한테 왜 연락이 안 오지?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나? 아니야, 엄마는 나를 사랑해. 올 수 없는 이유가 있기억을 거야. 그 이유가 뭐지? 아무리 이유가 있어도 그렇지, 죽지 않았으면 어떻게 딸한테 이럴 수 있어? 그래, 엄마가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에게 사랑을 받아야 할 시간, 엄마에게 투정을 부려야 할 시간, 엄마에게 고맙다고 할 시간, 엄마에게 무얼 사달라고 졸라야 할 시간…. 그 모든 시간들을 엄마가 상자에 넣어서 지하실에 두고 가버린 것 같았다. 그리움, 기다림, 사랑하고픈 마음…. 언제 돌아오겠다고 약속이라도 했으면 그날을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지낼 수 있을 텐데, 엄마는 자신에게 그런 기쁨마저 주지 않은 것 같았다. 몹시 서러웠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열여덟 살이 된 소녀는 이제 숙녀 티가 나기 시작했다. 몸은 자랐지만 마음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어두움은 대학생이 된 딸을 놓아주지 않았다. 어느 날 마음에서 어떤 생각이 올라왔다.

‘지겹다! 나는 지난 세월 너무 슬펐어, 고독했어, 너무 외로웠어.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그 생각은 다음 단계로 이어졌다.

‘앞으로 내 삶은 어떨까?’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어두움, 슬픔, 고통, 괴로움만 인생길에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침침한 외로움 속에서 살다가 삶을 끝낼 것 같았다.

영사님 딸은 학교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깔깔대며 즐겁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텐데, 마음에서 그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친구들 생일 파티에도 가고 어울려 등산도 다니면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면 될 텐데…. 슬픔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오직 엄마를 잃은 외로움과 슬픔 속에서만 살았다.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왔다. 외로움과 슬픔에서 마음이 빠져나오면 되는데, 밝은 날이 저절로 오기를 기다리다가 안될 것 같은 절망에 빠져 죽음을 떠올린 것이다. 죽음 말고 다른 길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죽음이 찾아와서 고개를 숙이고 동의를 구할 때, 영사님 딸은 그렇게 하겠노라고 서명을 했다. ‘행복을 찾을 수 없는 인생, 죽어야겠다. 죽고 나서 행복하든 말든 상관없어. 어차피 살아 봐야 불행할 거니까.’

영사님 딸은 죽음이 자기를 끌고 가게 했다. 이제 어떻게 자신을 죽음에게 넘길지, 어떻게 죽을지를 결정하면 되었다. 죽기로 정하고 나니, 두려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죽음이 자신을 모든 외로움과 슬픔과 고통과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줄 것 같았다. 어쩌면 살면서 죽음처럼 그렇게 친숙하게 다가와서 따뜻하게 대해 준 존재는 없었다.

‘죽음, 네가 나를 고독과 외로움에서 건져줄 수 있어. 네가 나를 이 슬픔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어. 아무도 아름다운 꽃다발을 들고 나를 찾아와서 내 손목을 잡고 밝고 아름다운 동산으로 나를 인도하지 못했어. 나를 기억을 하는 존재는 아무도 없을 거야. 아버지 한 분 기억하시겠지. 하지만 아버지는 외로움과 슬픔과 고통에서 나를 건져주지 못해. 너만 그렇게 할 수 있어.’

죽음에게 자신을 맡기고 나니 편하고, 죽음이 고맙게 여겨졌다. 아버지는 슬퍼하시겠지만 그렇다고 고통 속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죽기로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자신을 죽음에 어떻게 넘길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예쁜 아가씨는 행복이 곁에 찾아와도 볼 만한 눈이 없고, 들을 만한 귀가 없었다. 그래서 죽음이 손을 내밀자 영사님 딸은 덥석 그 손을 잡았다.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지만, 죽음은 지긋지긋한 고독과 슬픔에서 자기를 벗어나게 해줄 탈출구였다. 아무도 자신을 억압할 존재가 없는 곳으로 떠나는 순간, 고독과 외로움과 그리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 강한 어떤 힘이 자신을 죽음으로 끌어당겼다. 거센 파도에 휘말린 듯, 거침없이 죽음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자살을 시도했다. 죽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한편으로 외로움도 있고 슬픔도 있었지만, 이제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렸다. 죽음이 자신을 어디로 끌고 갈지 모르지만…. 얼마 후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돌아보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병원이었다. ‘죽음이 나를 끌고 가다가 놓쳤구나. 왜 놓쳤지? 꼭 잡고 가지.’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이윽고 아버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근심스런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다 아버지 때문이야. 그러니까 미안하지도 않아’ 하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딸의 손을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따금 “미안하다, 사랑하는 딸아!”라고 하였다. 아버지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살았다는 게 좌절감을 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죽었으면 아버지가 몹시 슬퍼했겠구나. 괴로워했겠구나!’ 생각하니,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갑자기 어지러웠다.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고,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전과 같은 하루하루가 펼쳐졌다. 고독과 슬픔도 여전했다. 딸에게 아버지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딸이 그렇게 행동하니 아버지도 딸에게 자유롭지 못했다. 딸을 사랑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치만 보는 아버지. 아버지의 마음에도 슬픔이 깊게 자리 잡았다.

영사님의 딸은 또 죽음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마음만 아프게 하고, 정말 뜨기 싫었던 눈을 다시 떠야만 했다. 슬퍼하는 아버지를 바라보아야 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지긋지긋한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 그렇게 1년 8개월이 흘렀다. 아버지는 딸이 걱정스러우면서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으니 안심해도 될 듯했다. 하지만 딸은, 장난기 가득한 아이가 장난을 치고 싶어서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를 던지듯이, 마음에 쥔 것을 그냥 지워버릴 수 없었다.

어느 날 아침, 아버지가 출근하는 것을 확인한 뒤 딸은 어두운 삶에서의 탈출을 또다시 시도했다. 그런데 집에 두고 간 물건이 있어서 아버지가 가다가 돌아왔고, 딸을 찾아온 죽음은 아버지에게 다시 들키고 말았다. 죽음은 또 쫓겨나가고, 딸은 세상에 머물러야 했다. 아버지는 절망했다. ‘내가 사랑하는 딸을 잃고 말겠구나!’

영사님은 나를 찾아와서 딸 이야기를 했다. 딸을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 영사님 댁으로 함께 가면서, 나는 그 딸의 마음을 고독이나 슬픔에서 빼앗아 와서 즐거움이나 행복의 나뭇가지에 꽁꽁 매달아 놓고 싶었다. 행복에 묶여 내려오지 못하고 즐거워하다 보면 그동안 딸의 마음을 짓눌렀던 고통들이 문제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지? 영사님 딸의 마음을 절망에서 끄집어낼 수만 있다면, 슬픔에서 옮겨올 수만 있다면….’

소망스런 이야기를 하고 딸이 어느 정도 받아들이면 쉽게 해결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영사님을 따라 집에 도착하자 딸이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영사님이 딸에게 애원했다.

“얘야, 아빠는 너를 사랑해. 제발 문을 열어 줘.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일뿐이야. 너를 위해서 목사님을 모시고 왔어. 정말 바쁘신 분이야. 제발 문을 열어 줘.”

아빠의 간절한 애원이 딸의 굳은 마음을 녹였는지, 30분 만에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와 영사님 딸이 마주앉았다. 얼굴이 예쁘고 정숙하게 생긴 아가씨였다. 나는 절망의 안경을 쓰고 있는 그 아가씨에게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쉬지 않고 소망스런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음의 세계에 대해 설명하면서 외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 얼마든지 밝게 살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봐요. 보잉747 점보기의 무게가 350톤이나 된대요. 그걸 사람이 들어 올릴 수 있겠어요? 불가능해요. 그래서 비행기에 바퀴를 달아 엔진의 추진력으로 긴 활주로를 달려가게 해요. 시속 100, 200, 300, 400킬로미터….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다 보면 비행기의 무게가 속도에게 다 잡아먹혀요. 승용차가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리면 승용차의 무게가 500그램밖에 안 된다고 해요. 돌멩이를 힘껏 던지면, 속도가 있는 동안에는 돌멩이의 무게가 거의 작용하지 않아서 공중에 떠 있어요. 그러다가 속도가 떨어지면 돌멩이의 무게는 다시 증가해서 땅으로 떨어지는 거예요. 사람들이 비행기를 띄우려고 빠른 속도를 주었어요. 그러면 비행기가 위로 쉽게 떠올라요. 마음을 바꾸는 것도 그와 같아요.”

사람은 누구든지 기쁨을 만나면 기뻐하고, 미움을 만나면 미워하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영사님 딸이 마음에서 소망을 만나고, 기쁨을 만나고, 희망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도 행복해지는 법, 내 생각에서 벗어나는 법, 절망과 고통에서 마음을 옮기는 법…. 내가 하는 이런 이야기들이 아가씨의 마음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가씨가 내 이야기 속에 젖어들면서 그 마음에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자연히 외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었다.

두 시간이 흐른 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영사님 딸에게 아내 자랑을 했다. 우리는 어느덧 많이 친해졌다.

“우리 아내는 한국 전통 요리를 잘해.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보여주고 싶어. 네가 괜찮으면 내일 우리 집에 와. 한국 전통의 맛을 보여 줄게.”

“네, 갈게요! 고맙습니다.”

이튿날, 정오가 못되어 영사님과 딸이 작은 선물을 들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나는 전날 아내에게 영사님 딸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아내는 그 아가씨의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주고 싶어서 온 마음을 쏟아 음식을 장만했다.

우리는 한상 잘 차려진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이 음식 정말 맛있어요. 저는 요리가 취미거든요. 이것 어떻게 만드는지 설명해 주세요. 저도 이런 요리를 만들고 싶어요. 정말 맛있어요.”

영사님 딸은 마냥 행복한 모습이었다. 나는 바쁜 일이 있어서 영사님과 딸을 더 있으라고 하고 나왔지만, 두 사람은 우리 집에서 저녁때까지 즐겁게 시간을 보냈고, 돌아갈 때 음식을 많이 싸주자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엄마와 이별한 뒤 이렇게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은 처음인 듯했다. 그 후로도 영사님 딸과 이따금 연락을 하며 지냈다.

세월이 흘렀고, 어느 날 그 영사님이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한국은 저에게 제 2의 고향입니다. 한국을 잊을 수 없습니다. 목사님도 너무 고마웠습니다. 슬프게도, 본국에서 훈령이 내려와 저는 일주일 뒤에 대만으로 가야 합니다. 목사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휴대전화를 꺼내 번호 버튼을 누른 후 나에게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영사님 딸이었다. 정말 반가웠다.

“야, 오랜만이다. 잘 있었어?”

“예.”

“너, 지금 어디야?”

“목사님, 인사 못 드리고 왔는데,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지내고 있어요.”

“그래? 거기서 뭐하는데?”

“목사님 집에서 먹었던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요리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요. 프랑스 요리를 배워서 졸업 후 몬트리올에 식당을 차릴 거예요. 목사님, 우리 식당에 꼭 오세요. 제가 꼭 모실게요.”

다시 시간이 흐르고, 바쁜 일들이 많아서 영사님 딸과 연락하지 못했다. 아마 지금쯤은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고, 식당을 에서 요리를 만들며 즐겁게 지내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힘이 자기를 끌고 가는지 잘 모르는 채 슬픔으로, 절망으로 끌려간다.

조금만 생각하고 눈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 그것들을 금방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 눈은 매우 신기해서, 내가 산까지 가지 않아도 먼 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 빛에 그 풍경을 담아서 내 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다.

예쁜 영사님 딸의 얼굴도 가까이 있지 않아도 빛에 그 모습을 담아 내 눈으로 가지고 들어오면 그의 얼굴이 보인다. 이렇게 신기한 눈처럼 마음도 신기한데, 사람들은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서 어둡고 고통스런 생각에 끌려 다닌다. 그래서 슬프고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세계를 알아 고통과 절망에서 벗어나 밝고 복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란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의 설립자이며 목사이다. 세계 최초로 마인드교육을 창시한 청소년 문제 전문가로 전 세계를 다니며 강연한다.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길, 곧 마음의 세계를 성경에서 찾은 그는 젊은이들에게 물질세계가 아닌 마음의 세계를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한다. <나를 끌고가는 너는 누구냐>에 이어 재작년 교보인터넷 청소년부문 19주 연속 1위에 오른 <마음을 파는 백화점>을 냈고, 지난해엔 <내 안에 있는 나 아닌 나>를 출간했다.

박옥수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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