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진의 〈In 아프리카, 아프리카 人〉

비닐봉지 사용하면 벌금이 4천만 원? 지난 9월, 나는 탄자니아와 케냐 사이의 국경 검문소 나망가에서 당황스런 사건을 겪었다. 탄자니아에 단기 출장을 갔다가 케냐로 돌아오는 길에 생긴 그 실랑이는 한국에선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권을 내밀고 통과를 기다리는 나에게 검문소 직원은 짐 가방을 열어봐야겠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의 영악한 관리들이 늘 그러듯 이 치 역시 뭔가 트집을 잡아보려는 게였다. 여행 몇 년차인가, 문제될 것은 애초에 소지하지 않아 주저 없이 가방을 열어 보였다. 다레살람에서 시연했던 전자장비와 길벗하려 넣어놓은 치누아 아체베의 책 한 권, 이 빠진 낡은 전기면도기, 그리고 출장 중 입은 꾸릿한 빨래가 들어있는 비닐봉지. 아무 문제없을 잡동사니 꾸러미였지만 그날 케냐의 공권력은 나를 범죄자로 만들었다.

“이 비닐봉지를 압수 하겠소.”

“잠깐만, 뭘 압수한다고요? 비닐봉지?”

“그래요. 이제 케냐에서는 비닐봉지를 사용할 수 없어요. 이렇게 큰 건 더욱!” 그가 강조한대로 내 빨래 봉지는 꽤나 큼직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버리기에 너무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었다. 나와 아내가 신혼여행 첫날 묵었던 제주 R호텔에서 가져온 특별한 세탁 주머니였던 것이다. 크고 질긴 호텔 세탁 주머니는 여행용 빨래 봉지로 딱 맞았다. 지난 수년간 제주 R호텔 로고가 찍힌 비닐봉지는 나의 여행에 동행하며 제 몫을 해왔다. 작은 구멍하나 내지 않고 소중히 사용해온 녀석이었다. 그런데 그걸 압수하겠다니, 친구를 떼어놓으려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직원에게 불평했다.

“이봐요. 이건 마약에 중독된 테러리스트가 아니에요. 그냥 빨래봉투라고요. 세계 곳곳에 가지고 다녔지만 아무도 이걸 빼앗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전혀 위험하지 않아요.”

“만약 당신이 여기서 비닐봉지를 버리지 않고 나이로비에 가면 경찰에게 체포 당해 재판 받을 테니까 버릴지 말지 잘 생각해 봐요.”

그의 말투는 자못 진지했다. 애꿎은 비닐봉지 때문에 경찰에게 붙잡혀 고생할 외국인을 걱정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나는 국경에 6년지기 빨래 봉지를 두고 와야 했다. 갈 곳 잃은 냄새나는 빨래들을 가방에 우겨 넣어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8월 28일부터 케냐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비닐봉지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케냐 정부는 가볍고 저렴한 이 물건을 제조, 판매, 사용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시켰다. 적발된 이는 4년 이하의 징역, 혹은 미화 4만 달러를 벌금으로 내야한다. 4만 원이 아니라 4만 달러다. 우리 돈 4천만 원이 넘는 현상금이 비닐봉지에 걸려있는 것이다. 케냐 국민의 월 소득이 20만원이 채 못되는 걸 생각해보면 평생 벌어도 못 모 을 엄청난 액수의 벌금이다. 경찰은 거리에서 비닐봉지를 사용하는 사람을 체포할 수 있고, 비닐봉지가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장소를 수색할 수도있다. 국경 검문소 직원은 그런 상황을 염려하며 내게 조언을 한 것이었다.

 

비닐봉지 없는 나라를 꿈꾸는 케냐

케냐는 원시 그대로 남아있는 자연을 이용한 관광 산업이 발달해있다. 세계인들은 생에 한번은 케냐 사바나 초원에서 야생동물들을 만나길 꿈꾼다. 케냐에서 환경 보호란 국가 산업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지금까지 케냐인들은 그러한 부분에 큰 경각심 없이 살아왔다. 이번 비닐봉지 금지법 시행을 계기로 케냐 정부는 국민들에게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다.

지금 현 세대에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일회용 비닐봉지는 내구성이 약해 한번만 사용해도 쉽게 파손 된다. 시장에서 집까지 물건을 옮기는 짧은 순간 사용하고 나면 버려야 한다. 버려진 비닐의 플라스틱 성분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분해되지 않고 환경을 파괴한다. 그렇다고 소각하면 공기 중에 다이옥신 등 오염물질을 퍼트린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게 분쇄되더라도 플라스틱 성분은 사라지지 않고 동식물의 체내에 쌓여 생태계 교란을 일으킨다. 또한 플라스틱 제품은 가볍기 때문에 바람에 날리고 물에 휩쓸리며 여기저기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청정 자연까지 깊숙이 침입해 더럽힌다. 육지나 해양의 생명체들이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삼킨 후 소화시키지 못해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수심 11,000m가 넘는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에 사는 심해 생물들마저 미세 플라스틱에 오염되어 있다는 발표가 있을 정도다.

부직포 봉투를 자랑하는케냐 소녀.
부직포 봉투를 자랑하는케냐 소녀.

현재 프랑스, 중국, 르완다 등 세계 40여 개국이 일회용 비닐봉투에 세금을 매기거나 금지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비닐봉지 대신 종이봉투나 장바구니를 권장하는 추세다. 그리고 케냐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강력히 비닐봉지 사용을 멈추려 하고 있다. 케냐 정부는 176개 비닐봉지 제조업체와 그곳에서 일하는 6만 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의 존망이 걸린 상황 속에도 이번 법안을 시행했다. 심지어 내수용이 아닌 수출용 비닐봉지의 생산도 금지시켰다. 비닐봉지 사용의 여지를 철저히 없앤 것이다. 제조업자들은 반발하며 법원에 청원했지만, 케냐 법원은 환경 문제가 상업적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결을 내려새 법안에 힘을 실어주었다. 케냐의 강력한 비닐봉지 금지법은 언론에 오르내리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시민의식이 자라나고 있는 케냐

그렇다면 실제로 법이 잘 적용되고 있을까? 비닐봉지 금지법이 시작되고 석 달째를 맞은 11월 중순 케냐 국민들은 새로운 규칙에 차츰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예전에는 빈손으로 시장에 가서 무료로 제공되는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왔지만 이제는 가방, 종이봉투, 포대자루 등 물건을 담아올 장바구니를 미리 준비한다. 그런 것이 없다면 우리 돈 200원에서 800원에 달하는 헝겊봉투를 구입해야한다. 이 가격은 가난한 가정에는 꽤나 부담되는 값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되도록 장바구니를 챙긴다.

30대 중반의 주부 ‘로렌’에게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못해 불편한지 물었을 때 나는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조금 불편하지만 환경을 위해 적응해야지요.”

케냐의 대형마트에서비닐봉지를 살 수도,찾아볼 수도 없다.대신 부직포 봉투가 가장잘 보이는 자리에 진열돼있다.
케냐의 대형마트에서비닐봉지를 살 수도,찾아볼 수도 없다.대신 부직포 봉투가 가장잘 보이는 자리에 진열돼있다.
작은 구멍가게에도부직포 봉투만 진열돼있다.
작은 구멍가게에도부직포 봉투만 진열돼있다.
장보는 아주머니들도재활용이 가능한 예쁜가방들을 챙겨 온다.
장보는 아주머니들도재활용이 가능한 예쁜가방들을 챙겨 온다.

그녀는 장바구니를 챙겨가는 행동으로 환경이 지켜진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로렌의 모습은 마치 홀로 케냐 전국을 청소하고 돌아오기라도 한 듯 의기양양했다. 로렌 뿐 아니라 필자가 만난 케냐 사람들은 대부분 환경을 위해서 비닐봉지 사용을 멈춰야 하는 데 동의했다. 종종 비닐봉지가 없어서 불편한 점을 토로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들도 케냐의 자연을 지켜야한다는 명제엔 고개를 끄덕였다.

케냐 국민들은 자신이 행동을 바꾸면 더 나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다. 보통 아프리카 사람들은 외부의 원조에 의지해 삶을 개선하려는 수동적인 성향을 보인다. 하지만 케냐 사람들은 비닐봉지 금지법을 실천하면서 스스로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엄청난 벌금이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압박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케냐인들이 환경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모습은 놀랍다. 환경 보호의 개념도 없이 집 앞 공터에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숲의 나무를 몽땅 베어 땔감을 만들고, 화전을 일궈 삼림을 파괴하던 그들이 지금은 자연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무책임한 마음에서 ‘내가 변하면 나라가 달라진다’라는 마음으로 변화되고 있다. 로렌의 모습에서 보듯 그들은 단순히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불편함도 감수 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으로 자라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일회용품 사용량은 세계적으로도 과한 수준이다. 한국에서 1년에 소비되는 일회용 컵만 해도 260억 개가 넘는다고 한다. 비닐봉지는 여전히 쉽게 구하고 사용할 수 있다. 그러한 것을 사용하면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일회용품을 사용한다. 간단히 사용하고 뒤처리할 필요 없이 버리면 되는 일회용품. 매우 편리하긴 하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언제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 이제는 우리가 케냐에게 배워야할 것 같다. 온 국민이 마음을 합쳐 환경보호를 외치는 케냐. 그들은 분명 머지않아 국민들이 한 마음으로 키운 협력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송태진
2008년 부룬디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다. 2015년 12월부터 아프리카 케냐 GBS TV방송국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직접 느낀 경험들을 그의 따뜻한 필치로 소개한다.

쏭태의 생생한 아프리카 이야기 블로그 http://blog.naver.com/impor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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