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진의 In 아프리카, 아프리카 人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케냐인들에게 외계도시 같은 도시다. 고향을 떠나 몰려온 400만 명이 한 도시 안에서 북적북적 살아가며 우여곡절한 삶이 연출되지만 그곳에 사는 케냐인들의 꿈은 여전히 뜨겁고 역동적이다.

 

하쿠나 마타타는 어디 갔지?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단어가 있다. 근심과 걱정을 모두 떨쳐버린다는 끝내주는 말,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 동부 아프리카의 공용어인 스와힐리어로 ‘아무 문제없어’라는 의미다. 아프리카인들의 낙천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이 짧은 표현은 ‘케세라세라Que sera sera’, ‘카르페디엠 Carpe diem’, ‘오빤 강남스타일’ 등 의 문구들과 함께 세계적인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워낙 유명한 경구가 되다보니 하쿠나 마타타 커피숍, 하쿠나 마타타 서적, 하쿠나 마타타 포장마차 등 별별 데에서 차용되고 있다.

이 마법의 문구에 매료된 사람들은 하쿠나 마타타를 실천하며 사는 유쾌한 아프리카인을 현실에서 만나보길 꿈꾼다. ‘라이온 킹’에 등장하는 티몬과 품바처럼 즐거움으로 가득 찬 현지인과 함께라면 일상에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쉽사리 발견하기 어려운 넉넉한 마음의 자세를 아프리카에서 느끼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심한다. 언젠가 아프리카에 가면 꼭 본토 발음으로 하쿠나 마타타를 외쳐봐야지!

마침내 부푼 꿈을 안고 케냐 나이로비에 도착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쿠나 마타타는 어디 갔지?

그들이 보는 나이로비의 첫인상은 아마도 폐비닐과 흙먼지 쌓인 거리 위로 우중충한 고물차들이 매연을 뿜으며 달려가는 모습일 것이다. 고층 빌딩과 판자촌, 산뜻한 공원과 쓰레기장이 공존하는 혼잡한 도시. 이곳의 눈 닿는 모든 곳에는 북적북적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뭔가 바쁜 일이 있는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그들에게서 하쿠나 마타타의 여유로움은 찾기 어렵다.

 

과밀인구와 교통체증이 심한 나이로비

20세기 초반까지 허허벌판이었던 나이로비는 100년 안팎의 짧은 역사 동안 인구 400만의 거대 도시로 성장했다. 지금도 해마다 4퍼센트씩 인구가 늘고 있다. 월드뱅크의 조사에 따르면 2030년에는 나이로비의 인구가 600만 명에 다다를 것으로 예측된다. 케냐 국토의 0.11퍼센트에 불과한 면적에 케냐 인구 10퍼센트 가까운 사람들이 빽빽이 뭉쳐 살고 있다. 좁은 면적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도시는 제 기능을 발휘하기도 버겁다. 나이로비가 멕시코시티, 베이징, 선전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교통체증이 심한 도시라는 IBM의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다. 꼼짝도 앉는 나이로비의 도로 위에 갇혀 반나절을 허비하고 나면 하쿠나 마타타를 기대하던 외국인들의 환상은 여지없이 깨져 버린다.

필자는 어느 날 직장 동료 벤자민과 함께 나이로비에서 두어 시간 떨어진 작은 산골 마을을 방문했다. 산 굽이굽이를 따라 나있는 꼬부랑길을 차로 달리는 동안 나이로비와는 전혀 다른 케냐를 느낄 수 있었다. 열대의 진한 초록 숲이 회색빛에 익숙한 눈의 피로를 풀어주었고, 스피커를 거치지 않은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산뜻하게 귀를 간질였다. 촉촉한 공기는 콧속이 시원해지도록 깨끗했다. 기분이 좋아진 필자는 운전을 하고 있던 벤자민에게 말을 걸었다.

“시골과 나이로비는 굉장히 다르네요. 자연이 정말 보기 좋아요.”

“나이로비에는 돈은 있지만 다른 건 없죠. 이게 진짜 케냐의 모습이에요.”

“케냐 사람들도 그런 걸 느끼나 봐요?”

“나이로비와 지방은 전혀 다른 곳이에요. 나이로비는 마치… 외계인이 사는 도시 같죠.”

나이로비와 지방의 차이는 단순히 도시와 전원이라는 환경적인 면만이 아니다. 대다수의 케냐인들은 나이로비에 부족 문화가 없다는 것에 이질감을 느낀다. 케냐의 43개 부족들은 그들의 조상이 나고 죽은 각자의 고향 땅에 모여 산다. 케냐의 도 단위 행정구역 또한 부족의 분포에 따라 나뉘어 졌다. 키쿠유 족이 사는 니에리, 루히야 족이 다수인 카카메가, 캄바 족이 모여 있는 마차코스 등 지역의 이름만 들어도 어느 부족이 사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각 지방에서 부족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케냐에서는 정말로 이웃집에 사촌이 산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웃사촌’이라는 표현으로 가까운 이웃 간의 좋은 관계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케냐에서는 정말로 이웃에 사촌이 산다. 집성촌처럼 가까운 친족들이 마을을 이뤄 혈연을 바탕으로 한 강한 유대감이 만들어진다. 서로의 집안사정을 훤히 알다보니 자연스레 몸가짐을 함부로 하지 못하고 예절을 중시한다. 공동체 안에서 노인은 공경 받고 젊은이는 겸손하며 아이는 다스려진다. 다른 이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수모를 주는 언행은 금기와 같고, 강도짓이나 사기 역시 흔하지 않다. 같은 부족끼리는 한 가족이라는 의식이 있기에 지방 사람들은 서로를 돕고 보호하는 데 익숙하다.

고향을 떠나 나이로비에 사는 사람들은 그 따뜻함을 그리워한다. 연어가 모천으로 회귀하듯, 도로시가 캔자스로 돌아가듯, 휴가철이 되면 시골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버스 정류장이 붐빈다. 고향 땅은 도시에서 지친 자식들을 어머니처럼 품어준다. 흙과 나무, 새소리와 맑은 바람, 그리고 낙천적인 여유가 있는 곳. 가족들이 있기에 어려움이 와도 ‘아무 문제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곳. 우리가 상상하던 하쿠나 마타타의 땅이다.

 

도시에서 큰돈 벌어 금의환향하는 게 케냐인의 꿈

고향이 좋다면서도 나이로비로 상경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꾸준히 늘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단순하다. 10년 혹은 15년 정도 바짝 고생하고 돈을 벌어 금의환향 하는 것. 나이로비에서 평생 살려는 이는 많지 않다. 마치 해외에 파견된 노동자가 타국에서 돈을 벌어 오롯이 고국으로 보내듯이, 나이로비 사람들은 월급을 모아 고향집으로 보낸다. 시골에 남아있는 가족들은 그가 보낸 돈으로 전답을 사고 가축을 기르며 가세를 키운다. 나이로비의 형제가 도시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부족함 없이 지내도록 고향에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케냐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삶은, 도시에서 큰돈을 벌어 시골로 돌아와 큰 저택을 짓고 친척들을 도우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로비에는 케냐 43개 부족에 더해 인근 아프리카 출신 외국인, 서양인과 인도인 등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북적인다. 지역의 부족 사회에서 보호받던 사람들은 누가 친구인지 적인지 알 수 없는 차가운 도시에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이것이 지방과 나이로비를 구분 짓는 결정적인 차이다. 혼자 살기에 이웃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돈을 벌기 위해 뭐든 새롭게 시도해 볼 수 있다. 돈 버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면 잠시 접어놔도 된다. 운전을 하다가 시비가 붙으면 고함도 한번 쳐보고, 만만한 상대가 보이면 슬쩍 바가지도 씌워보는 것이다. 고향에서는 깨끗하게 마을길을 쓸고 닦던 아낙이 나이로비에서는 아무 공터에나 쓰레기 더미를 투척한다. 이웃 사람이 누군지, 뭐하고 사는지는 더 이상 관심거리도 못된다.

카카메가에서 상경한 지 20년이 되어가는 피터 칼라음보는 ‘나이로비는 거짓말쟁이의 도시’라며 자신이 나이로비에서 얼마나 많은 사기를 당했는지, 그리고 그에 버금가게 얼마나 많은 사기를 쳤는지 이야기했다. 그는 누구든지 나이로비에 오면 성격, 식습관, 옷차림 등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시골뜨기에게 쉽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나이로비에서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거친다. 그리고 그들은 점차 시골과 다른 도시의 생활방식에 익숙해져 간다. 케냐의 전통적인 시골과 매우 다른 외계도시 나이로비의 독특한 분위기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외계도시 나이로비에서 살아남기

우습게도 나이로비 사람들은 고향집에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노래를 하다가도 나중엔 이 외계도시가 얼마나 훌륭하고 위대한지 찬양하며 말을 마친다. 나이로비를 거짓말쟁이의 도시라고 말했던 사기꾼 피터 칼라음보는 대화 내내 케냐에 나이로비가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했다. 나이로비에서 디자인을 하는 청년 제임스는 ‘나이로비에서 케냐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케냐인들은 시골처럼 끈끈한 정과 평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나이로비가 있기에 그들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나이로비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돈을 모은다. 돈을 향한 과도한 욕망이 도시의 범죄율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수의 일반 시민들은 자신과 고향 가족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성실히 일을 한다. 매일 새벽이면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몇 시간을 걸어 일터로 향하는 부지런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나이로비 집에 많은 가구를 놓지 않는다. 음식과 옷도 저렴한 것을 고른다. 조금씩 아끼고 절약해 만든 돈은 고향 땅에서 가축과 밭이 되어 가족들을 기쁘게 해준다. 케냐는 이렇게 성실하게 일하는 시민들이 있어 아프리카에서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기대하던 하쿠나 마타타 정신과는 썩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지나간 생활 방식이다. 아프리카인이라면 티몬과 품바처럼 유쾌할 것이라는 생각은 외국인이 보는 오만한 편견일 뿐이다. 케냐 사람들은 더 이상 하쿠나 마타타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래를 생각하고 계획하며 더 멋진 나라를 준비하고 있다.

 

송태진
2008년 부룬디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다. 2015년 12월부터 아프리카 케냐 GBS TV방송국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직접 느낀 경험들을 그의 따뜻한 필치로 소개한다. 쏭태의 생생한 아프리카 이야기 블로그 http://blog.naver.com/impor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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