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고 싶다! 연중특집 | 변화

엄마가 암에 걸리셔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밖에 모르던 여학생이 뜨거운 나라 탄자니아에서 아가타 아주머니와 마음을 나누며 새로운 윤은지로 태어났다.

 

작년 한 해 탄자니아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는데, 그 기간이 나에게는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과 같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여동생, 나 이렇게 네 명이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 화목했던 우리 가정에 문제가 찾아왔는데 엄마가 유방암에 걸리셨다. 철이 없던 나는, 엄마가 입원하고 아버지는 엄마를 돌보시느라 바쁜 틈을 타 친구들과 밤늦게 돌아다니며 놀았다.

초등학생이었던 동생을 돌보지도 않고 친구를 내 인생의 전부로 여기며 내 멋대로 했다. 엄마의 병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많이 걸리는 병이고 치료 받으면 금방 나을 거라는 생각에 크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재미와 즐거움만 추구하며 지내고 있는데 어느 날, 그 누구보다 강했던 아버지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셨다. 아버지는 엄마가 암에 걸리자 매일 직장에서 병원으로 퇴근해 엄마를 정성껏 간호하셨고 낮에는 회사일로 매우 바쁘셨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나에게 전화해 동생이 어떻게 지내는지 물으시고 꼼꼼히 챙기셨다. 그런데 할머니로부터 내가 심각한 중2병 증세를 보이며 멋대로 행동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속이 타셨던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가 흘리는 눈물을 보고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자격증도 따고 아르바이트도 하는 등 나름대로 성실히 잘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과 다시 갈등을 겪으면서 1주일 간 가출을 하기도 했고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 마음을 잡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대학교에 입학해 1년의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낸 후, 꿈을 갖고 싶기도 하고 내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해외봉사활동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마음으로 만나는 법을 알려준 마마 아가타와 중국인을 위한 행사를 준비하며.
마음으로 만나는 법을 알려준 마마 아가타와 중국인을 위한 행사를 준비하며.

마마 ‘아가타’가 쓰러진 후

탄자니아의 날씨는 굉장히 후덥지근했지만 견딜 만했다. 그런데 같이 간 단원들과의 관계 때문에 부대꼈고 특히 우리가 마마라고 부르는 ‘아가타’ 아주머니와 지내는 것이 힘들고 순탄치가 않았다. 마마는 탄자니아 IYF 센터에서 봉사단원들의 식사를 준비해 주시고 여러 청소년활동을 뒷바라지해 주시는 현지인 아주머니시다. 마마가, 다른 나라에 와서 적응해 가고 있는 나를 너그럽게 봐주지 않고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것 같아 짜증스러웠고 특히 명령하는 듯한 말투가 불쾌했다. 한국에서 부모님도 이겨먹고 살던 나였기에 마마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 마음을 닫아버렸다.

마주쳐도 못 본 체 지나가고 인사도 하지 않았으며 혼자 힘든 일을 하고 계셔도 도와드리지 않았다. 내 주변에 마마가 없는 듯이 행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한 곳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서 부엌 구석에 자리를 잡았는데 저쪽에서 채소를 다듬고 계시던 마마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뿐이었다. 그날 마마는 병원으로 실려 가셨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냥 바라볼 뿐이었다. 너무 죄송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러면서 문득 암으로 투병하시던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를 떠올리면 늘 ‘나는 왜 그런 행동밖에 할 수 없었을까’ 하고 후회스러웠는데 비슷한 일이 또 생겼다고 생각하니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우울했다. ‘마마가 잘못되면 어쩌지?’ ‘내가 지금까지 마마를 어떻게 대했지?’ ‘지금 마마는 어떤 상태일까?’ 수많은 생각들 속에서 염려 하느라 잠도 잘 수 없었다.

다행히 이틀 후에 마마가 무사히 센터로 돌아오셨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았지만 몸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는데 정말 감사했다. 마음 같아서는 마마에게 곧장 달려가 반가움을 표현하면서 안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마마가 안정을 취하셔야 할 것 같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마음도 있었다.

마마는 천천히 움직이며 평소에 하던 일을 하셨지만 전보다 많이 약해보였다. 그런 마마를 보니 ‘또 쓰러지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이면서 기회가 있을 때 아주머니와 대화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탄자니아는 영어를 사용하지만 나이가 든 분은 스와힐리어를 쓴다. 그래서 대화를 하기 위해 스와힐리어를 배우기로 마음먹고 매일 열심히 공부했다. 언어실력이 워낙 부족해서 마마와 이야기하는 게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신기하게 우리 둘은 마음으로 통했다. 봉사단 선배들이 종종 ‘말을 잘 못해도 마음으로 통하니 행복했어요’라고 하면 이해가 안 되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지방으로 어린이캠프를 하러가는 길에 탄자니아 풍경을 만끽하려고 차 지붕에 올라갔다
지방으로 어린이캠프를 하러가는 길에 탄자니아 풍경을 만끽하려고 차 지붕에 올라갔다

싫어했는데 소중한 것이 담겨 있을 줄이야

마마는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셨다. 어떻게 해외봉사단을 만났으며, 왜 평생 봉사단학생들을 위해 살 마음을 가졌는지를 설명하셨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새 마음을 심는 일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마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매년 한국에서 오는 봉사단원들을 자식같이 생각했기에 한 명 한 명 알아가는 게 즐거웠는데 표현하는 게 서툴러 학생들과 부딪히기도 했다고 하셨다. 나는 마마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줄 전혀 몰랐다. 나를 싫어하고 그래서 함부로 말한다고 생각했다.

마마와 대화하면서 한국에 있을 때의 내 삶을 돌아보았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부모님의 잔소리와 꾸지람 속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마음이 담겨 있을 것 같았다. 딸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 딸을 사랑하는 마음, 딸을 위해 모든 걸 주고 싶은 마음…. 아버지는 엄마가 아프셨을 때 병원비를 마련하기도 힘드셨을 텐데 우리에게 맛있는 것, 좋은 것을 사주시기 위해 일요일에도 일을 하시곤 했다. 부모님의 그런 마음과 사랑을 볼 눈이 없어서 짜증만 내면서 지내온 것이다.

멀리 탄자니아에서 마마 아가타를 통해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깨우쳐간다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지나간 일들이 새롭게 다가왔고, 마마와 어느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마마는 내가 가볍게 던진 농담에도 큰 소리로 웃으시며 “네가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탄자니아를 밝게 비추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너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야.”라고 말해주셨다. ‘사람과 마음으로 만나는 맛이 이런 거구나!’ 마마와 나의 웃음소리 때문에 봉사단 센터의 부엌이 조용할 날이 없었다.

 

굿뉴스코 15기로 탄자니아에 다녀온 윤은지 씨는 경영학을 전공하는 여학생이다. 해외봉사활동 중에 현지 사람들과 교류하고, 함께 간 단원들과 갈등을 겪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체험담을 기고해 주었다.
굿뉴스코 15기로 탄자니아에 다녀온 윤은지 씨는 경영학을 전공하는 여학생이다. 해외봉사활동 중에 현지 사람들과 교류하고, 함께 간 단원들과 갈등을 겪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체험담을 기고해 주었다.

나는 누구보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내 이야기를 하기에 바빴는데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다 보니 상대방의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 사이가 저절로 좋아졌다. 말하는 것도 좋지만 듣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또 ‘듣는 맛’을 알게 됐다.

오늘도 탄자니아를 생각하면 뜨거운 날씨와 함께 마마 아가타의 행복한 미소가 떠오른다. 한국에 돌아온 지 1년도 안됐는데 ‘언제 다시 돌아갈까’를 생각하며 꿈에 부푸는 윤은지가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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