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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책장연중캠페인 '아버지와 가까이'
정성미 | 승인 2017.08.02 12:28

얼마 전, 한 기사를 보았다. 미국의 카네기연구소가 ‘급작스런 사직’을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원인을 조사한 결과, 13%의 사람들이 ‘업무부담’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87%의 사람들은 ‘인간관계 문제’로 직장을 갑자기 그만두었다고 답했다. 그 만큼 주어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람들과 소통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어딜 가나 마음에 안 드는 구성원이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성격을 가진 사람들과 갈등을 빚곤 한다. 새로 직장에 들어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부장님은 말이 안 통해.” “내 직속선배는 정말 이상해.”라고. 그런데 그 직장에서는 “이번에 꼴통이 하나 들어왔어.”라고 할지 모를 일이다.

그 기사에서는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해 세 가지를 조언했다. 첫 번째, 입방문mouth visit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안부를 물으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손 방문hand visit. 떨어져 있는 지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요즘으로 하면 문자메시지나 메일, SNS를 통해 근황을 주고받는 것이 되겠다. 세번째는 발 방문foot visit이다. 말이나 글로 소식을 주고받는 것 다음에는 직접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경조사에 얼굴을 비치는 것이 친밀하고 넓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마음 방문’에 서툴렀던 나

그 세 가지 조언대로라면 나는 인간관계에 성공했어야 한다. 학창시절부터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위의 세 가지 방문을 잘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먼저 다가가 어울리고 생일이나 기념일을 잊지 않고 챙겨주는 등 적극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이끌었다. 그러나 그 시절 내가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맺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기쁠 때 기쁨을 맘껏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지?’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거리낌 없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었나?’ 기억을되짚어 보면,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의 인간관계는 다분히 의례적이고 형식적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겉으로 좋은 척하고 살았고, 즐거운 척하고 살았다.

그러다 문득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에 당황하기도 했다. 그래서 예전의 나처럼 세 가지 방문으로도 인간관계의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한 가지 조언을 덧붙이고 싶다. 바로 마음 방문 heart visit이다.

사람들과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일. 나는 그것이 서툴렀다. 감동적인 책이나 인상 깊게 읽은 책들을 책꽂이에 꽂아두듯이, 마음을 나눈 사람들의 마음을 책장에 꼽아둔다고 한다면, 내 책장은 헐렁한 상태였다. 그런 내 마음책장에 다양한 장르의 마음이 수북이 꽂힌 것은 얼마 전부터의 일이다.

 

“너희들을 잘 키우고 싶어서 그랬다”

몇 년 전, 갑작스런 사고로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 전까지 우리 집은 아버지, 어머니와 딸 넷이 평범하게 살았다. 내가 결혼하여 분가한 뒤로는 동생들과 문자메시지나 채팅으로 안부

를 주고받으며 지냈다. 갑자기 동생이 세상을 떠나고 가족들에게 변화가 생겼다. 동생의 빈자리를 맘 아파하며 남은 가족끼리 자주 소식을 전하고 마음의 안부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평소 말이 거의 없으시던 아버지도 핸드폰으로 문자 보내는 법을 배워 자주 안부를 전하셨다. 눈도 어두우시고 손도 투박하여 오타가 많은 메시지였다. 때로는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암호문과 같은 문장들이 날아오기도 했지만, 반가웠다.

우리 아버지는 참 말이 없으신 분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시면 딸들이 시시덕거리며 떠들어도 저만치 떨어져 우두커니 앉아 계셨다. 아버지는 우리 딸 넷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 졸업하도록 졸업식 장에 한 번도 안 오셨다. 가게 문을 닫아둘 수 없다고 그러신 것이었는데, 우리 딸들은 내심 섭섭했다. “멀지도 않은데 잠깐 문 닫고 오시면 될 텐데….

우리가 딸들이라 그래. 아들이었으면 졸업식장에서 같이 사진 찍고 그랬을텐데….”라고 했다. 그러면 동생은 “아냐, 언니. 우리가 못생겨서 창피해서 안오시는 거야. 헤헤헤.” 하고 일부러 실없는 소리를 했다. 우리 본가는 남아 선호사상이 유별나서 딸들은 자식 취급도 안 할 정도였다. 그래서 아버지도딸로 태어난 우리를 마지못해 키운다고 생각했다.

동생을 잃은 뒤, 아버지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알 수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너희 잘 키우고 싶어서 열심히 장사했다. 천 원이라도 더 벌어서 좋은 신발 신겨주고, 백 원이라도 더 벌어서 좋은 거 먹이려고 하루도 쉬지 않고 가게에 붙어 있었어. 그렇게 대학까지 가르쳤지만, 니들 마음은 잘 키워주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내 생각이 100% 틀린 것이었다. 우리에게 더 잘해주고 싶어서 하루도 쉬지 못한 아버지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한번은 엄마가 “니네 아빠가 어떤 분인지 아냐? 자기 위해서는 돈한 푼도 안 쓰면서 너희들 먹일 과일은 그 가게에서 제일 비싼 걸로 사오셨다. 예쁜 딸들한테 예쁘고 맛있는 것만 먹여야 한다고….”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 죄송했다.

‘가족이라면서 이렇게 마음을 모르고 살았구나!’

 

내 생애 최고의 콘서트

얼마 전, 아버지는 평생을 지키던 가게를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일을 하다 쉬셔서인지 무기력해지시고 시름시름 앓으시더니 갑자기 노인이 되셨다. 그래서 아버지께 이야기했다.

“아버지, 그냥 지내시지 말고 악기를 배워보세요.”

“악기는 무슨! 콩나물대가리도 모르고 ABCD도 모르는데 무슨 악기를 하냐?”

예상대로 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내말을 받아치셨다.

“아버지, 음악 좋아하시잖아요. 오카리나 같은 건 비싸지도 않고 배우기도 쉽대요. 폐활량도 좋아진다니까 한번 해보세요.”

그런 얘기를 나눈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내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서 동영상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다. 동영상 화면을 열자 아버지 얼굴이 커다랗게 나오더니 오카리나를 불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로 셀프 촬영을 하신 것이었다.

“쉬이 쉬이 쉬~ 삑, 쉬이 쉬이!”

‘홀로 아리랑’의 곡조를 한 음 한 음짚어 가시는 아버지. 박자도 틀리고 일명 삑사리라고 하는 음이탈이 연신 발생했지만 표정만큼은 여느 음악가 못지않게 진지하셨다. 아버지의 연주를 듣는데 코끝이 매큼해지더니 눈물이 흘렀다.

‘못한다고 하시고선 언제 이렇게 연습하셨대?’

내가 한 얘기를 귓등으로 들으신 줄 알았는데, 가까이 사는 막내딸에게 계명과 운지법을 크게 적어달라고 하여, 한 음 한 음 연습하신 아버지. 딸에게 보여줄 생각을 하며 연습하시는 내내 얼마나 즐거우셨을까? 나중에 알고 보니, 매일 방에 앉아 오카리나를 불어 대는 바람에 엄마에게 구박깨나 받으셨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딸에게 콘서트를 열어주신 것이다. 내 생애 최고로 감동적인 콘서트였다.

 

사람과 마음으로 만나는 순간,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순간

얼마 전에 방송된 ‘응답하라. 1988’에 주인공 덕선이가 생일을 제대로 챙겨 주지 않는 가족들에게 삐쳐서 집을 뛰쳐나간 뒤, 따라나선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이러한 내레이션이 흐른다. “어쩜 가족이 더 모른다. 하지만 아는 게 뭐 그리 중요할까? 결국 벽을 넘게 만드는 건 시시콜콜 아는 머리가 아니라 손에 손잡고 끝끝내 놓지 않을 가슴인데 말이다.” 공감되는 구절이다.

사람들과 관계에 있어서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대부분 틀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마음 방문이 중요하다.

대화를 하되, 좋은 얘기나 잘한 것을 얘기하려고 하지 말고, 마음을 열고 자신이 어려웠던 얘기나 잘못한 얘기 등 부족하고 말하기 부담스러운 얘기들을 꺼내놓아 보자. “내가 이렇게 잘못을 했어. 생각이 짧았어.” “미안하다. 그땐 내가 잘 몰랐어.” 등 얘기하다 보면 그 사람과 마음으로 만날 수 있다. 어렵게 꺼낸 얘기에 서로 서로 공감을 하는 순간, 그것처럼 따뜻하고 행복한 순간이 없다.

책장에서 쉽고 재미있는 책뿐만 아니라 어렵고 딱딱하더라도 고전도 꽂아놓고 봐야 하듯이,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도 마음 방문을 해야 한다. 전혀 안 통할 것 같은 사람이라도 마음으로 만나 얘기해 보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지금 내 마음책장에는 여러 책들이 꽂혀 있다.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사랑을 품은 아버지를 비롯해, 언제나 내 잘못을 따지지 않고 감싸 안아주는 남편과, 취조하는 말투로 사람 속을 뒤집지만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선배, 너무나 털털한 나머지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다니지만 창의력 넘치는 디자인을 내놓는 후배 등….

마음책장에 새로운 마음을 꽂고 또 전에 꽂아놓은 마음을 꺼내 보는 즐거움과 감동이 기대이상이다.

 

정성미
어린이 잡지 <키즈 마인드>의 편집장인 그녀가 아버지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글을 기고하면서 자신은 아버지를 닮은 딸이라고 자랑하듯 말했다. 시원스럽게 웃는 모습이 꼭 닮은 아버지와 딸. 7월의 커플로 뽑고 싶다.

정성미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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