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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2층 옥상에서처럼2017 투머로우 캠페인 '아버지와 가까이'
김소리 기자 | 승인 2017.07.19 12:36

과일의 껍질을 벗기지 못하면 알맹이의 참맛을 볼 수 없다. 삶 속에서 실패를 경험하면서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와 나 사이의 껍질이 비로소 벗겨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내 실패까지 당신의 일로 여기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항상 나에게 마음을 열고 계셨다.

 

1시간이고 2시간이고 훈계하시는 아버지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별이 보이는 2층 옥상에 올라가 대화를 나누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셨다. 고민을 해결해 주셨고 모르는 것들을 항상 재미있게 알려 주셔서 나는 아버지에게 질문하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기 어려워졌다.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셨는데 나에게는 술을 아예 배우지 말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술을 드신 후에는 대화가 아닌 훈계를 하셨다. 보통 1시간에서 2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긴 훈계였다. 내가 길게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었다. 내가 몇마디 말을 꺼내면 아버지가 훨씬 길게 말씀하셨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아버지를 향해 나도 모르게 불만이 쌓여갔고 급기야는 훈계를 듣는 것이 지겨워 아버지 말씀에 반박하며 자리를 피했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는 대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기에 이르러 아버지와 용건 위주로 표면적인 이야기만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절대로 주식에 투자하지 말아라’

아버지가 수백 번이 넘게 훈계했음에도 대학에 들어가서 술을 배웠다. 요즘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그때 마신 술이 지금까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아버지는 또 절대로 주식에 투자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사회 생활 초년에 주식에 투자해 아버지가 맡겨주신 돈을 포함해 큰 손해를 보는 일을 겪었다. 처음에 적은 금액을 투자 했을 때 수익률이 꽤 괜찮았다. 그래서 점차 투자 액수를 늘렸는데 회사에서 받는 급여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돈 버는 게 쉽다는 생각이 들었고 점점 자신감이 커졌다. 손해 볼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장밋빛 환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투자 원칙을 무시했고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가볍게 여기면서 내 생각대로 밀고 나갔다.

결국 미수거래(주식을 담보로 주식을 외상으로 사는 제도)를 하다가 돈을 잃고 빚쟁이 신세가 되었다. 돈이 많으면 편리하고 좋지만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돈이 많으면 돈과 함께 큰 손해와 고통이 따라 오는데 그걸 몰랐다. 실패하고 나서야 주식 투자를 처음 시작할 때 돈을 조금 주며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이것만 가져가서 해봐라. 남은돈은 네가 결혼할 때 써야지.”

아버지는 내가 돈을 모조리 잃어버릴 줄 아셨다. 그러면서도 힘들게 벌어 모은 돈을 내주셨고 내 장래까지 생각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내 이야기를 듣지 않으셔. 아버지와는 대화가 전혀 안 돼’ 하는 내 생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냉정하게 나를 재평가해 보아야 했는데…

처음에는 운이 없어서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금융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하며 스스로를 위로해 보았지만 아니었다. 위기 상황에도 넘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다. 손해를 안 볼 거라는 막연한 생각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학창시절에 시험을 며칠 앞두고 공부를 해야 하는데 ‘우선 놀고 보자’는 마음으로 미루기가 일쑤였다. 시험 전날이 되면 ‘밤에 공부해야지’ 하고 밤이 되면 ‘일단 자고 내일 새벽에 열심히 해야지’ 하다가 시험을 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음에 해야지’ 하는 생각 이면에 ‘다음에는 할수 있다’는 자신감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는데도 계획대로 하지 못할 때는 냉정하게 자신을 재평가해 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술을 배우지 말라는, 절대로 주식에 손대지 말라는 아버지 말씀에 속으로 ‘조금씩 하는 건 괜찮아’라고 대꾸했는데, 근거 없는 자만심에서 나온 말이었음을 실패한 후에야 알았다.

 

뒤늦게 감사에 젖는다

결혼을 했고 6년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예쁜 딸의 아버지가 되고 보니 생각이 깊어지면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고민을 하곤 하는데, 19년 후에나 필요한 딸의 대학 학자금 문제부터 내가죽은 뒤 딸이 어떻게 살까 하는 문제까지 별별 생각이 다 났다. 딸이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이것저것 대비해두려고 하니 모든 부분에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능력 없는 사람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 아버지가 나를 위해 얼마나 절제하고 희생하며 사셨는지가 더듬어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쉬는 날이 없이 일하시며 젊은 날을 보내셨다. 감기약 두 박스를 아예 사놓고 아픈 날에도 항상 출근을 하셨다. 회사 일을 하는 틈틈이 논밭에서 일도 하셨는데, 그 안에 내가 누리는 모든 혜택이 들어있는 걸 몰랐다. 요즘도 아버지는 나보다 더 부지런하게 사신다. 퇴직한 이후에 재취업하셨고 농사일도 하시면서 가족의 행복을 위해 계속 뛰신다.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하시려고 즐겨 드시던 술도 술값을 아끼려고 집에서 드셨는데, 술의 힘을 빌려 아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마다 아들이 외면하고 듣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나는 아버지의 훈계를 지겹도록 많이 들었기 때문에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한마디 말씀도 듣지 않았다. 아버지가 ‘절대로!’ 하시며 충고해 주실 때 귀로만 듣지 않고 마음에 담았다면 실패를 면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하기 싫은 건 안 하고 살았는데 아버지는 달랐다. 당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내 요구를 들어주시려고 최선을 다하셨다. 어렸을 때 컴퓨터를 사달라고 계속 졸랐던 적이 있는데 몇 달 후에 아버지가 사주셨다.

아버지는 최근까지도 종종 컴퓨터를 사주신 일을 회상하며 흐뭇해하신다. 나는 모든 걸 당연하게 여겼기에 별 감흥이 없었다.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이제야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고 뒤늦게 감사에 젖는다. 아버지는 내말을 안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었다. 몇 달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서 컴퓨터를 사주시는, 아들을 참 사랑하는 분이었다.

 

마냥 행복한 아들로 언제까지나

주식에 투자해 손해를 본 사실을 아버지께 차마 말씀드릴 수가 없었는데 그것이 아버지와의 거리를 좁힐 수 없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다음에 말씀드려야지’ 하면서도 계속 미루다보니 마음 한켠이 늘 불편하고…. 나는 여전히 실패로 흘러가는 마음의 구조를 갖고 있었다. 근거 없는 자만심에 또 한 번 의존했다간 실패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어주식 사건을 아버지께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이미 알고 계셨다는 듯 문제를 삼지 않으셨다. 나는 이어서 또 이렇게 말씀드렸다. “아버지, 그동안 아버지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모두 맞았습니다. 아버지,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내 말을 중간에 한 번 끊지도 않으시고 다 들으시더니 그간의 모든 노고가 잊혀지는 듯 기뻐하셨다.

아버지와 나는 오래 전 2층 옥상에서처럼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중압감이 자리 잡았던 아버지의 마음이 행복으로 채워지는 걸 보니 나 역시 행복했다. 이제는 아들뿐 아니라 손녀까지 온 마음으로 사랑하시는 아버지. 그 아버지 앞에 마음을 다 열고 서고 싶다. 잘한 것 잘못한 것 모두 버리고 마냥 행복한 아들로 언제까지나 아버지 품 안에 머물고 싶다.

김소리 기자  sori3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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