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이족 언어로 ‘끝없는 평원’을 뜻하는 세렝게티Serengeti는 탄자니아 북부에서 케냐 남서부에 걸쳐 있는 드넓은 초원이다. 면적이 서울시 크기의 50배에 해당하는 3만 평방킬로미터로, 이 광활한 들판에 수많은 야생 동물들이 우리네 사회처럼 복잡한 관계와 양상을 보이며 살아가고 있다.

세렝게티 초원을 사파리용 지프차로 누비다 보면 얼룩말이 연출하는 ‘야릇한 포옹’이 눈에 곧잘 띈다. 얼룩말 두 마리가 서로 목을 어긋 맞대고 서 있는 모습은 관광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초식동물인 얼룩말은 탄자니아 세렝게티에서 케냐 마사이마라에 이르는 대장정의 이동을 긴 생머리를 풀어헤친 누Gnu 떼와 함께한다. 얼룩말이 억세고 기다란 풀을 뜯어먹고 나면 그 자리에 이어 솟아나는 부드럽고 연한 풀은 누 떼의 차지가 된다. 뛰어난 시력을 가진 얼룩말이 시야가 좁은 누 곁에서 포식자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장거리 보초’ 역할을 하고, 후각이 예민한 누는 얼룩말 곁에서 풀숲으로 찾아드는 맹수를 살피는 ‘단거리 보초’ 역할을 한다.

얼룩말은 이처럼 누 떼와 공생 관계를 유지함과 동시에 다른 얼룩말과 서로서로 목을 맞대고 포옹하면서 360도 시야를 확보하고 사방팔방을 경계하며 위험에 대비한다. 또 오래 서 있어서 목덜미 근육이 단단해지고 피로가 쌓이는데, 서로의 목에 기대어 쉬면서 피로를 해소하고 새 힘을 얻는다. 긴장감이 감도는 약육강식의 세렝게티에서 꿀맛 같은 안식과 평온을 누리는 시간인 것이다. 잠깐의 포옹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한 얼룩말은 다시 신나게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달린다.

포옹하는 것만으로도 병이 낫는다

이러한 ‘포옹’이 단지 얼룩말에게만 필요한 생존전략일까. 201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카네기멜론대학교 연구팀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심리학과 셸던 코헨Sheldon Cohen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건강한 성인 404명을 대상으로 ‘포옹이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조사했는데, 포옹을 나누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감기에 걸릴 가능성이 32% 정도 낮았다. 또한 포옹은 감기 증세를 약화시키고 면역력을 높이는 데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헨 교수는 ‘포옹은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 주고,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끼게 하여 역경에 직면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도울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라고 했는데, 서로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주목할 만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칼럼니스트 스테이시 콜리노Stacey Colino 씨는 미국의 주간지 <US 뉴스 & 월드 리포트>에 ‘포옹이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라는 제목으로 글을 기고하며 ‘하루에 한 번 포옹하면 의사가 필요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포옹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질병을 예방하며, ‘애착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옥시토신oxytocin’의 분비를 촉진하여 주위 사람들과 친밀한 정서적 관계를 갖도록 돕는다고 했다.

미국 클레어몬트대 대학원 교수이자 신경과학자인 폴 잭Paul Zak 교수는 ‘옥시토신의 분비가 증가하면 상대방과 정서적 공감대와 신뢰관계를 형성하기가 용이하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연구팀은 ‘포옹을 주고받으며 긍정적인 소통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옥시토신 분비가 원활하게 나타나며, 그로 인해 면역력이 강화되어 질병에서 빨리 쾌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백 마디의 말보다 뜨거웠던 한 번의 포옹

이렇게 포옹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 결과가 내 삶에서도 적용된 사례가 있다. 올해 초의 일이다. 나는 업무차 부룬디에 갔다가 거기서 오랜만에 발레리 키트완다Valery Kitwanda를 만나 가슴 뜨거워지는 포옹을 나누었던 것이다. 발레리는 나를 보자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나도 먹먹하고 찡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우리 둘의 인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국제청소년연합 르완다센터 지부장으로 있었다. 그때 콩고에서 온 발레리를 처음 만났다. 발레리는 콩고의 아주 깊은 산간 마을에 살던 불우한 청년이었는데, ‘시골에서 사느니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겠다’며 같은 마을에 살던 청년 한 명과 함께 걸어서 르완다까지 왔다. 큰물에서 놀아야 큰일을 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둘이서 한 달 넘게 걸어 수도 키갈리에 도착했는데, 막상 와보니 신분증도 없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쉽게 줄 리가 만무했다. 몇 주 동안 노숙하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버티다가 우연히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는 한국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발레리가 우리 집 대문을 두드렸는데, 50번도 넘게 두드리는 것 같았다. 나를 대뜸 보더니 일자리와 음식을 달라고 협박 같은 구걸을 했다. 우리에게서 무엇인가 도움을 받지 못하면 인생이 끝이라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발레리의 입술은 먹지 못해서 바싹 말라 있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나는 발레리에게 음식을 건네주며 센터에서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니 와서 배우라고 했다. 그날부터 발레리는 센터에 자주 와서 영어를 배웠고 경비원처럼 센터를 지키거나 센터에 공사할 일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돕기도 했다. 우리 가족, 봉사단 학생들과 함께 식사하고 놀기도 하며 무엇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발레리와 그렇게 몇 년을 지냈다.

부모도 없이 버려진 아이처럼 살다가 열일곱 살 나이에 정처 없이 르완다에 온 발레리. 생전 처음 자신을 품어주는 사람들과 지내다 보니 어느새 그에게 ‘이 사람들과 함께해야겠다. 나도 다른 사람을 위해 몸으로 봉사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자라고 있었다. 함께 밥 먹자고 부르고, 받아 주고, 끌어안아 준 것뿐인데 그 포옹 속에서 발레리는 진한 사랑을 느꼈던 것이다. 발레리는 르완다에서 몇 년을 지내다가 신분증을 발급받지 못해 부룬디로 갔고 그곳에서 여권을 받아 현재는 부룬디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런 발레리를 부룬디에서 다시 만났는데, 그는 작은 청소년센터를 담당해 일하게 되었다며 행복해 했다. 기뻐하는 발레리를 보니 내가 더 감격스러워 “발레리, 축하한다! 정말 기쁘다!” 하며 안아주었다. 발레리도 나를 끌어안으며 “고맙습니다!” 했다. 발레리의 행복이 내게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땀에 젖은 셔츠가 맞닿는 포옹을 나누며 느끼는 행복! 발레리와 나는 소리 없이 무수한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 한 번 포옹으로 몸과 마음을 충전하자

휴대전화를 서로 맞대기만 해도 자료가 공유되는 기술이 생기더니 요즘은 충전 패드에 전화기를 살짝 올려놓기만 해도 충전이 되는 신기술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얼싸안는 포옹은 우리 삶 속에서 얼마나 크고 신기한 일을 만들어낼지 궁금해진다.

성적에 조바심을 느끼며 무거운 가방을 양 어깨에 메고 다니는 동생이 있다면 한번 살포시 안아줘 보자. 닦고 쓸고 털어내도 현상 유지밖에 안 되는 집안일로 피곤해 하시는 어머니께도 따뜻한 포옹을 선사하고, 지친 얼굴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현관문을 여시는 아버지의 어깨도 꼭 안아드려 보자. 맞댄 어깨에 기대어 잠시라도 쉴 수 있다면, 토닥거림으로 ‘저는 당신 편입니다. 언제나 당신을 지지합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다시 거친 세상을 살아갈 마음의 호르몬이 한가득 분비되지 않겠는가! 행복 담은 따스한 마음을 공유할 수 있고 어려움을 이겨낼 새 힘을 충전 받을 수 있는 신기한 포옹의 힘을 아프리카 세렝게티의 얼룩말이 오늘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전희용
중학생 때부터 ‘아프리카 선교사’가 꿈이었다는 필자는 대학을 아프리카어과로 진학했다. 3학년 여름방학 때 졸업논문 주제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두 달을 머무른 그는 이제 그 꿈을 실행할 때라 결심했다고 한다. 현재 그는 아프리카 거주 16년차로서, 케냐와 르완다, 탄자니아 등지에서 선교와 함께 청소년 교육 전문가로서 활동해오고 있다. 자연과 동물의 세계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유익한 마인드에 대해 앞으로 <투머로우>에 정기적으로 기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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