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상은 언제나 복도에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 나는 학교에서 내놓은 문제아였다. 나를 감당할 수 없었던 선생님들은 내가 수업시간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래서 책상은 언제나 복도에 있었다. 평범한 학생들은 학교에 갈 때 걸어서 등교하든지 버스를 타고 가지만 나는 가까운 거리임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한번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데 멀리서 한 사람이 유독 나를 쳐다보았다. ‘왜 저렇게 빤히 쳐다보지?’ 하고 가까이 가보았더니 아버지가 그곳에 서 계셨다. 차마 아버지를 부르지 못하고 모른 척 지나쳤다. 그 날 집에 들어가는데 무서웠다. 평상시에는 나쁜 행동을 하고도 당당하게 집에 들어갔지만, 그날만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한참을 밖에 서 있는데 아버지가 아파트 복도에 담배를 피우러 나오셨다. 이때다 싶어 ‘다녀왔습니다’ 하고 냉큼 집으로 들어갔다. 다시 집으로 들어오신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보다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괜히 미웠다. ‘나 같은 딸이 오토바이를 탄다고 놀랄 일도 아니지’라고 생각했고, 아버지와 더 멀어졌다.
 변치 않는 엄마의 사랑으로 그 후에 나는 변했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싸우고 화가나 집으로 갔을 때, 엄마는 나에게 왜 화가 났는지, 화가 났어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차분히 알려주셨다. 그리고 차를 태워 다시 학교로 데려다주셨다. 선생님을 만나서 나 대신 왜 화가 났는지 설명하고, 대신 질책을 받으셨다. 학교에서는 매번 내가 사고를 칠 때마다 엄마를 불렀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유일하게 나의 손가락질을 대신 받아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나를 믿어주는 사람에게 더 상처 주고 싶지 않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180도로 달라졌다. 친구들과도, 선생님과도 싸우지 않았고 담 쌓고 지냈던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렇게 엄마와는 더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아버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 때문에 부부싸움을 할 때 방안에서 들려왔던 거친 아버지의 목소리가 마음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나는 못 키우겠으니 데리고 나가!”
 나는 그런 말들을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뒀다. ‘아버지는 나를 싫어해. 내가 지금 달라졌어도 여전히 나를 부끄럽게 여겨.’ 이런 생각에 내가 필요한 게 있을 때 빼고는 아버지와 대화를 하지 않았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후 아버지가 해외로 발령이 나면서 더욱 멀어졌다. 사랑을 못 느끼는 것은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을 등지고 있어서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한 해, 아버지는 해외에서 혼자 생활을 하시면서 건강이 나빠지셨다. 한국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오셨을 땐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암이 온몸에 퍼져 있었다. 그렇게 병원에 계신 4개월이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 아버지와 가깝게 보낸 유일한 시간이다. 어색한 부녀 사이였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대화를 나눴다. 아픈 곳은 없는지, 불편한 곳은 어딘지 물어보면서 천천히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할수록 대학생활은 어땠는지부터 필요한 건 없는지, 남자친구는 있는지 부녀지간다운 대화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숨겨놨던 나에 대한 마음을 이야기해 주셨다.
 “네가 네 살쯤 됐을 때, 흰 눈을 보며 놀던 모습이 정말 예뻤어. 눈을 뒤집어 쓴 채 나한테 달려온 너를 털어주다가 손가락에서 결혼반지가 빠져버린 거야. 그런데 잃어버린 결혼반지보다 작고 말랐던 네가 감기에 들까 봐 더 걱정됐단다. 네가 결혼하면 꼭 아빠한테 결혼반지 선물해줘야 돼. 그리고 네가 오토바이를 타는 걸 처음 봤을 때, 다치지 않고 집에 와주어서 감사했다. 분명 혼내야 하는데, 혼내면 홧김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칠까 봐 아무 말도 못 했단다. 너에게 상처 줬던 일들이 있다면 미안하다. 너랑 함께하지 못한 게 한이 될 것 같구나.”
 20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처음 만나면서 감동이 밀려왔다. 아버지는 나를 빼면 완벽한 아버지였다. 그래서 나는 항상 아버지에게 부족하고 숨기고 싶은 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에서 만난 나는 아프고 다칠까 봐 보듬어 주고픈 딸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은 언제나 나를 향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는데, 나는 그 사랑에 등지고 앉아 있었다. 지금까지 아버지를 오해하고 미워했는데 아버지가 아프고 난 후에 놓치고 살아온 그 큰 사랑을 얻었다.
지금은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는 나의 아버지지만, 마음으로 만난 아버지는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사랑의 빛을 내리쬐고 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최지나(한양사이버대학원)
마음쓰기 콘테스트에 지원할 글을 쓰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제 마음을 살펴보고 찾게 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오랫동안 내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게 된 것 같습니다. 지난달 <투머로우>에 실린 아버지에 대한 칼럼들을 읽으며, 저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참 무심하고 쌀쌀맞게 대했던 우리 아버지. 아버지도 나를 사랑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제 마음에 숨겨둔 아버지의 사랑을 찾았습니다. 아마도 이런 대회가 없었다면, 평생 찾으려 하지도 않았을 마음입니다. 제 마음을 더듬어보며, 아버지의 사랑을 찾게 해주신 <투머로우>, 그동안 아버지를 미워했던 마음을 사랑으로 바꿔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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