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파란 하늘이 내가 찍은 최초의 자연이었다. 불치의 병을 앓으면서 앞날이 불투명하고 막막했을 때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바라본 웅대하고 아름다운 풍광은 내게 미래를 약속해주는 희망의 시그널과 같았다.
그때 내 마음에 돋아난 사진가의 꿈은 이제 묘목의 시기를 지나 나무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나는 찍힌 사람도, 찍는 사람도 모두 미소짓게 하는 소박하고 따뜻한 사진을 찍고 싶다.

카메라로 사람을 촬영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카메라 뷰파인더로 바라보고 셔터를 눌러 이미지로 변환시킨다는 의미다. 사진은 피사체의 눈빛, 미소, 입가의 주름, 손의 작은 제스처와 그 사람의 성격까지 담는다. 물론 한 사람의 인생을 사진에 담는 작업은 배우고 또 배워야 할 인생과제처럼 끊임없이 나를 자극한다. 한 나라의 전 대통령, 전대통령 영부인, 여러 국가의 장관들, 교수들, 연예인 등 그들이 내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담길 때면 매번 부담과 떨림과 함께 황홀함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사진을 찍기 위해 여러 방향에서의 생김새, 미세한 표정변화, 피사체의 성품을 캐치하고자 바라보는 시간은 마치 한 사람의 마음을 더듬어가고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느 날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생각해본다. 10년 전 내가 카메라를 들고 이렇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상상이나 했었을까? 이렇게 멋진 분들을 만나볼 수나 있었을까?

나의 어릴 적 꿈은 사진작가였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해 학교에서 학비를 지원받아 공부해야 했다. 사진학과에 가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소리에 쉽게 그 꿈을 포기했다. 그리고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하루하루를 독하게 보냈다. 대학 졸업 이후 직장에 취직해 정신없이 보내던 어느 날 갑자기 파란 하늘에 먹구름이 끼듯 내 인생은 칠흙 같은 암흑으로 깜깜해졌다.

2005년 어느 날 갑자기 얼굴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퉁퉁 부어올랐다. 동네 병원에서 신장이 좋지 않은데 정확한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다. 사이렌이 울리는 응급차에 실려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일주일 후 병실에 앉아 있는 엄마와 침상에 누워있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이 알려준 병명은 면역계 이상으로 온몸에 염증이 생기는 불치병인 만성 자가면역질환 루푸스였다. 마치 드라마에서나 보던 비운의 주인공이 앓던 불치병이 나에게 생길 줄을 상상이나 했었을까? 이 병은 내가 잘 아는 언니를 몇 년 전 하늘로 데리고 간 병이기에 나도 곧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적군과 아군도 구분 못하고 아군과 싸우는 내 몸속의 세포들을 진정시키고, 신장을 공격한 루푸스 균을 잠재우기 위해 당장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링거를 통해 온몸으로 투여되는 항암제가 머리 쪽으로 퍼져갈 때면 뇌가 따끔거리고 매운 느낌까지 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베갯잇에는 머리카락이 흥건하게 빠져 있었다. 점점 머리숱이 적어지고 얼굴은 부어 거울 보기가 싫었다. 속이 메스껍고 구토증이 나서 아무리 먹어도 살이 빠지고 말조차 하기 힘들었다. 점점 두려워지고 한없는 좌절 속에 빠졌다. 아직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 내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려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니 루푸스는 나의 몸뿐 아니라 정신까지 약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한 홍수정이란 인간의 삶에 대해 돌아보았다. 그동안 나만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살아온 나는 내면보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겉모습만 포장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겉모습은 정상처럼 보여도 부담스러운 일을 만나면 피하며 살아온 내 마음은 불구자와 같았다. 헛살아온 23년 동안의 삶에 회의감까지 들고 공허함이 커지면서 거리의 청소부 아저씨, 지나가는 거지도 나보다 훨씬 나아보였다. 포장이 벗져진 나의 진짜 모습을 점점 발견해 가면서 부모님이 살아계신 것, 밥을 먹거나 물 마시는 것, 대소변을 보는 것, 옷을 입거나 따뜻한 집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 하나하나가 너무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2005년 여름 친구와 함께 국제청소년연합에서 주최한 월드캠프에 참가했다. 거기에서 1년 동안 해외봉사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미리 다녀온 선배 단원들의 신세계 같은 체험담을 들으면서 나도 너무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안정을 취하며 간호를 받아야 할 시기에 1년 동안이나 해외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고 ‘몸이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하지? 봉사하기는커녕 피해만 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해외봉사를 가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 마음 한편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내가 지금 여기서 형편에 굴복해 주저앉는다면 나는 평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23년을 그렇게 내 한계 안에서 이기적으로 헛살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내 한계 속에서 벗어나보고 싶었다. 그때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 해주신 ‘네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항상 너와 함께하신다’는 말씀은 내 마음에 힘을 주었고 마음을 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년 동안 아르헨티나로 해외봉사를 가겠다고 한 나의 결정에 부모님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셨다. 병원에서도 지금은 갈 수 없다며 한국에서 치료를 잘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확고한 내 마음을 보신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허락하셨고 담당 의사선생님도 아르헨티나에 있는 루푸스 전문병원의 의사를 소개해주었다.
건강할 때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해외봉사활동의 기회가 주어졌다. 사진을 좋아하던 나에게 아버지와 오빠는 멋진 카메라를 선물해 주었고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비행기에 올라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아르헨티나의 한 공원에서 단원들과 함께 건전댄스를 추었다.
아르헨티나의 한 공원에서 단원들과 함께 건전댄스를 추었다.
현지친구 에벨린, 고등학생들과 함께 놀이공원에서
현지친구 에벨린, 고등학생들과 함께 놀이공원에서
<투머로우> 기자로 취재하면서 즐거운 한때
<투머로우> 기자로 취재하면서 즐거운 한때

그곳에서의 삶은 나에게 잃어버렸던 꿈을 되찾아주며 나를 행복한 사진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아르헨티나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건 하늘이었다. 맑은 하늘색 바탕에 솜사탕 같은 하얀 구름들이 피어오르는 한 폭의 그림 같은 하늘을 자주 보곤 했다. 카메라에 예쁜 하늘을 담을 때마다 작은 행복을 느꼈다.
남미의 파리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에는 아름다운 건물, 공원, 풍경들이 많다. 하지만 아름다움 뒤에 감춰진 어두움도 볼 수 있었다. 인종차별을 감수하고 아르헨티나로 이민 와서 매일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볼리비아 사람들,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람, 양부모와 사는 학생들, 어린나이에 미혼모가 된 여학생, 마약에 빠져 미래가 없어 보이는 학생 등. 그들에게 다가가서 나의 이야기를 해주며 해외봉사를 하는 동안 주변사람들에게 받은 사랑과 건강한 마음을 전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함께 간 단원들과 함께 마음이 어려운 학생들을 초대해 그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줄 학생수련회, 아카데미를 열고 함께 건전댄스를 하며 그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나는 그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었고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난 우리 집이 너무 싫어요. 우리 아빠는 친아빠가 아니에요. 저 가출하고 싶어요. 다른 친구들은 즐거워 보이는데 전 너무 힘들고 답답해요.’ 너무 예쁜 얼굴을 가진 친구 에벨린에게 감추어진 어두운 마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랐지만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댄스를 하며 웃는 동안 우리는 마음이 흘렀고 에벨린의 마음은 점점 밝아졌다. 며칠 전에 내 카메라에 찍힌 에벨린의 얼굴은 굉장히 어두웠는데 함께 이야기하며 지낸 후 다시 내 카메라에 담긴 에벨린의 얼굴은 너무 행복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찍는 행복한 사진작가였다.

아르헨티나에서의 일 년은 이기적으로 살던 나의 마음을 녹여주었다. 마음으로 사귄 친구들 덕분에 내 병을 잊었고 누구보다 건강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또한 지부장님과 대화하면서 루푸스를 통해 내 마음을 돌아보고 진정한 감사와 행복을 알게 되었다.
일 년 후 마음도 몸도 건강해져서 돌아온 나는 그 이후로도 삶의 한계들을 넘어가며 역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서울랜드에서 개최한 ‘Culture’ 행사에서 전시총괄국 팀장을 맡아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다. 온두라스 대사관에서 일하며 새로운 경험도 하고 스페인어를 쓰거나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국제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한편 황열병예방접종을 받을 수 없어 루푸스 환자라면 엄두도 못내는 아프리카 케냐와 가나에 출장을 가서 아프리카 월드캠프를 취재하였다. 가기 전에 ‘황열병에 걸리거나 말라리아에 걸리면 어쩌지?’ 하며 걱정했지만 같이 간 동료들이 말라리아에 걸려도 나는 모기 한 번 물리지 않고 건강하게 취재를 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에도 나는 카메라를 들고 남극과 북극만 빼고 세계 6대륙을 모두 다녀왔다.

 나는 지금 <투머로우> 잡지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다양하고 새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투머로우>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잡지이다. 이곳에서 나는 마음의 세계를 배우고 행복한 취재를 하면서 지내고 있다. 내 능력 너머의 한계를 느낄 때도 많지만 이곳에서 나는 세계의 리더들과 만나고 밝은 마음을 가진 젊은이들을 취재하면서 마음의 세계를 배운다. 그리고 오늘도 카메라와 마음에 행복을 담으며 즐거운 걸음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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