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TBN 방송국 국장 얀 볼코프 세르게이비치

TV는 1929년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매체다. 전세계 TV 이용자 수는 40억명으로, 휴대폰(20억 명)과 컴퓨터(10억 명) 이용자 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 기술의 발달로 적은 인력과 비용으로 손쉽게 방송국을 세울 수 있는 시대, 그러나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지며 선정적·자극적인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공익성과 객관성이라는 언론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면서도 성장을 거듭해 온 방송국이 있다. 러시아의 TBN이다. TBN 국장 얀 볼코프가 말하는 TBN의 성장비결은 무엇일까?

TBN은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한데, 어떤 방송국인가요?
“TBN은 러시아의 미디어 그룹인 Russian Broadcasting Network·RBN에 소속된 방송국입니다. RBN 산하에는 TBN 외에도 어린이 방송, 음악 방송, 영어 방송, 히브리어 방송 등 8개의 방송국이 있는데요. TBN은 186개국으로 송출하는 기독교 방송입니다. 24시간 방영되며 송출방식은 위성, 케이블, 인터넷, IP방송 등 다양합니다. 전세계적으로 러시아어를 쓰는 인구가 약 3억 명 정도 되는데, 그 모든 사람들에게 방송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직원 수는 150명 정도 되지요.”

TBN 홈페이지에는 TBN을 ‘가족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영속적인 가치를 지닌 방송’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미디어의 일차적인 목적은 정보제공입니다. 저희 TBN은 사람들이 가진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뉴스, 아동교육, 인성교육, 영화, 스포츠, 요리, 여행 등 어떤 연령대의 시청자라도 재미있게 시청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영하고 있습니다.
‘영속적인 가치’란 영적인 진리, 즉 복음을 사람들에게전하는 일입니다. 시청자들은 집의 거실이나 부엌, 또는 침실에서 TV를 봅니다. 힘든 일로 절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하던 사람이 채널을 돌리던 중 TBN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바뀌고 인생이 바뀝니다. 실제 저희 TBN 시청자들 중에는 이런 사례가 많습니다.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저희의 사명입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TV 방송국은 KBS, MBC, SBS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1995년 종합유선방송 (케이블방송)이 도입되면서 영화, 음악, 리빙 등 장르별로 특화된 채널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20여 년이 지난 현재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에는 149개 방송사가 가입해 있을 만큼 우리나라의 TV 방송은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양적 성장이 반드시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각 방송사들은 어떻게든 시청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제작하는등 무리수를 감행한다. 공정성이 최우선 가치가 되어야 할 뉴스 프로그램은 유명인의 사생활을 다룬 가십성 기사로 채워진다. 진지하게 생각해야 이해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같은 교양 프로그램은 외면받고, 예능이나 먹방 등 생각없이 웃고 즐기는 프로그램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러시아는 어떨까.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월드 팩트북World Factbook에 따르면 오늘날 러시아의 TV 채널 수는 3,300개에 이른다. 러시아 국민 1억 4,200만 명 중 75%인 1억 650만 명이 날마다 TV를 시청한다.
 
한국에서는 방송사 간 시청률 경쟁률이 치열해지면서 여러 가지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어떻습니까?
“오늘날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저질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세계 어디서나 있기 마련입니다. 러시아도 예외는 아닙니다. 상업주의는 도덕적·영적 가치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 하니까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폭력과 범죄를 다루고 다른 사람을 고발하는 보도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희 TBN 직원들은 도덕적·영적으로 가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런 프로그램이 이 사회를 발전시키니까요. 폭력 없는 방송, 복음을 위한 방송은 TBN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TV는 동시에 수만 명이 시청하는, 영향력이 큰 매체입니다. 재미있고 유익한 콘텐츠를 제작하기가 힘들지는 않습니까?
“물론 어려움이 있지만 오히려 그 어려움이 더 발전할 기회를 줍니다. 저희는 기독교 방송이다 보니 기독교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모두를 위해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단순히 유익한 콘텐츠를 넘어 시청자들이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어려운 상황들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지요.
또 힘든 만큼 보람도 큽니다. 저희는 몇 년 전부터 ‘전세계 호텔이 TBN’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의 호텔과 계약을 맺어 그 호텔에서 TBN 채널이 방영되도록 하는 일인데요. 이탈리아, 체코, 아프가니스탄 등 여러 나라의 호텔에서 우리 방송을 봤다고 연락을 해 올 때면 정말 기쁩니다. 한번은 제가 아는 목사님이 가족들을 데리고 불가리아로 갔습니다. 어느 호텔에 머물렀는데 아이들이 찬송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아, 호텔에서 기독교 캠프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이들은 호텔에서 나오는 TBN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고 찬송가를 배웠다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보람을 느낍니다.”
 얀 볼코프는 현재 TBN의 업무를 총괄하는 국장이자 RBN의 전무 이사로 재직 중이다. RBN 본부를 운영하는 한편 다른 기업들과의 계약 및 파트너십 체결, 재정, 전략 수립 등 회사를 좌우하는 사안들이 그의 검토를 거친 후에야 결정된다. ‘아주 바쁠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훌륭한 동료들이 많이 도와주어 별로 힘들지 않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가 TBN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의 일이다. 그 전에는 <탑 시크릿Top Secret>이라는 신문사에서 일하며 언론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고 한다.

1997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신문사에 입사해 최고 상업책임자CCO·Chief Commercial Officer로 일하셨습니다. 그 경험이 현재 방송사 업무에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탑 시크릿>은 러시아에서 굉장히 유명한 신문으로, 광고를 유치하고 신문을 배포하는 것이 제 업무였습니다. CCO로 일하면서 언론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언론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기독교인인데, 이 언론을 잘 활용하면 복음을 전하는 훌륭한 수단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러다 TBN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신문사에서 터득한 경험을 바로 적용해 일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 한 번 발행되는 신문에 비해 TV 방송국은 실시간으로 바쁘게 돌아갑니다.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물론 TV와 신문 사이에는 차이점이 많습니다. TBN에 갓 입사했을 때는 신문사에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부지런히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나 경영기법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TV든 신문이든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은 같습니다. 그래서 적응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요.”

1999년 작은 규모로 출범한 TBN이 지금은 186개국에 방송을 내보내는, 러시아어권에서 가장 큰 규모의 기독교 방송이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빠르게 성장한 비결이 뭘까요?
“하나님이 저희를 축복하시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저희 직원들은 실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하나님이 직원들에게 은혜를 입혀주셔서 매순간 창조적인, 훌륭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하십니다.
또 저희 TBN은 ‘어떻게 하면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합니다. 또 폭력이나 두려움 같은, 이 사회에 만연하는 부정적인 가치는 다루지 않고 영적인 가치를 다룹니다. 이같은 TBN 프로그램의 차별점을 시청자들께서도 금방 인식하고 많이 사랑해 주신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은 얀 볼코프 전무의 인생에서 굉장히 특별한 해다.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자선활동을 시작한 지 꼭 20년이 된 해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의 이력서 맨 윗줄에도 이런 구절이 적혀 있다. ‘1997~현재: 교도소를 대상으로 자선사업 진행 중.’
 

현재 진행하고 계신 교도소 자선사업이란 어떤 것입니까?
“크게 사회적 자선사업과 영적 자선사업이 있습니다. 사회적 자선사업은 재소자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을 지급하는 일입니다. 상수원 복구작업도 합니다. 재소자들이 깨끗한 물을 쓰면 피부병 등 여러 가지 질병에서 나을 수 있으니까요.
 영적인 자선사업으로는 저와 목사님들, 자원봉사자들이 교도소를 방문해서 예배를 드리고 재소자를 위한 기도회를 엽니다. 교도소 봉사를 시작한 게 1997년이었는데. 갈수록 규모가 커져서 지금은 100곳이 넘는 교도소의 재소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발트 해 연안국가의 교도소들까지 지원하며, 함께하는 자원자도 4천 명이 넘지요. 죄를 짓고 사회와 격리되었던 분들이 저희의 활동을 통해 변화되어 사회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분들이 재소자였다니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때 제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말씀하시는 표정이 참으로 행복해 보입니다.
“이런 기쁨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가게에 가서 식료품을 구매하듯 ‘기쁨 500g만 주세요’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사회를 이루는 근본은 가정입니다. 부모님이 죄를 지어 재소자가 되더라도 그 자녀들에게 부모님은 여전히 가장 소중한 존재, 기다려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크리스마스 앤젤 트리Christmas Angel Tree’라는 프로그램을 실시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재소자들이 가족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저희는 재소자들에게 아이들한테 보낼 크리스마스 엽서를 쓰게 하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주고 싶은지 묻습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사다가 엽서와 함께 아이들에게 전달합니다. 기념촬영도 하고요. 그리고 그 아이들의 편지나 그림을 받아서 다시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 부모에게 전달 합니다. 이 과정에서 오가는 것은 단순한 편지나 선물이 아닌, 가족 간의 사랑과 희망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희한테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만약 재소자 한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그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도 함께 바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소자는 사회로 돌아간 뒤에도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테고요. 그러면 우리 사회는 더욱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정말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그동안 크리스마스 앤젤 트리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만 있으면 하나만 이야기해 주세요.
“노보시비르스크에 크리스티나라는 여자아이가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감옥에 계셔서 크리스티나는 14년이나 부모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크리스티나의 어머니가 딸에게 보낼 엽서를 저희한테 써주시면서 ‘딸을 위해 드레스를 하나 사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크리스티나는 여러 경연대회에 참가해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드레스를 갖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드레스를 선물했더니, 크리스티나는 너무 기뻐하며 감격스러워했습니다.
그때 크리스티나는 할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두 사람 다 기독교인이 되어 감옥에 계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어머니도 기독교인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고, 아버지도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크리스티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네 꿈이 뭐니?’ 크리스티나가 한말은 제 심금을 울렸습니다. ‘저도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아빠 손을 잡고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싶어요.’ 여느 가정에서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크리스티나에게는 14년 동안 이루지 못한 간절한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티나가 17살이 되었을 때 그 꿈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청년들의 삶은 풍족해졌지만 인터넷중독, 게임중독, 자살 등과 같은 정신적인 병폐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한 이후 빠르게 성장한 러시아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을 것 같습니다.
“러시아 역시 현대화가 이뤄지면서 청소년들에게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신세대들은 태어나자마자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 무방비로 노출됩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중독에 따른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각종 범죄도 늘어나고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등도 사회를 어렵게 하는 문제들입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중독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난 뒤에 범죄에 빠져들고 사람들의 삶이 무너집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허무함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모든 것을 갖추더라도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결국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공허함이 사람들을 내면에서부터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긍정적인 변화를 갈구합니다. 저는 기독교인으로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의 교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이를 물리치고 사람들의 마음에 소망과 밝은 미래,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각종 병폐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을 위해 TBN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토크쇼와 공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희는 젊은이들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 그리고 젊은이가 다른 젊은이에게 마음의 메시지를 보내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을 위한 콘텐츠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앞으로는 더 시간을 들여 유익한 콘텐츠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자 합니다.”

언론은 흔히 ‘양날의 검’에 비유된다. 올바르게 사용되면 사회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전파함으로써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다. 하지만 잘못하면 대중의 원시적 본능을 자극하고 흥미 본위의 보도를 일삼는 황색언론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폭력 없는 방송, 영적인 가치를 전하는 방송을 모토로 차별화를 꾀하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TBN.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자세를 잊지 않고 발전을 거듭하길 기대해 본다.

얀 볼코프 세르게이비치
1978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미디어 그룹 RBN의 전무이사로, 그룹 산하 기독교방송인 TBN과 어린이 방송 등 세 방송국의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본업인 방송사 경영 외에 재소자들이 출소 후 사회에 복귀해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돕는, 마음과 마음을 잇는 리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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