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허룬유업 회장 왕보화王保華

13억 소비자를 놓고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중국 시장! 수백 배나 덩치가 큰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당당히 승리하고 중국 No.1로 우뚝 선 CEO가 있다. 베이징허룬유업北京和潤乳業의 왕보화 회장이다. 그는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어머니의 정성으로 요구르트를 만든 것이 고객을 사로잡은 비결이라 말한다.

명품 반열에 오른 요구르트, 허룬
‘비싸고 좋은 제품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경제학 분야의 오래된 상식이다. 많은 돈을 들이면 제품의 질은 당연히 좋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그런 제품을 ‘팔아서 수익을 거두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고객이 큰돈을 기꺼이 지불하고 제품을 사도록 하려면 ‘이 제품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믿음을 심는 데 성공한 제품들은 이른바 ‘명품’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고객들로부터 사랑받는다.시계, 가방, 옷, 자동차 등 세상에는 많은 명품이 존재한다. 그런데 요구르트에도 명품이있다면? 중국 베이징허룬유업에서 만든 요구르트가 그렇다. 허룬 제품의 가격은 경쟁사들 제품보다 서너 배는 비싸다. 절대 할인판매를 하지 않으며, 광고비 지출도 전혀 없다. 그런데도 판매량은 두세 배 가량 많다. 덕분에 중국 내 시장점유율 20%인 허룬 요구르트지만 나머지 80%를 차지하는 다른 요구르트 회사들의 수익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낸다.
 이뿐만이 아니다. 허룬이 신제품을 내놓으면 다른 업체들은 이를 표절 내지 모방한 제품을 내놓느라 바쁘다. 허룬과 발음이 비슷한 ‘훠룬’이란 브랜드까지 있을 정도다. 이만하면 그 인기의 비결이 절로 궁금해진다. 이처럼 허룬 요구르트를 소비자들이 믿고 찾는 제품으로 키워내기까지 허룬의 왕보화 회장은 오랫동안 홀로 외로운 싸움을 치러야 했다.

고급화 전략과 박리다매의 유혹 사이에서
식품가공학을 전공한 왕보화 회장은 대학 졸업 후 국영 유가공업체에 취업해 공장장자리까지 올랐다. 이 때가 90년대 중반으로, 그즈음 중국은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넘어가는 변혁의 시기였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함께 다국적기업들의 중국진출 러시가 이어지면서, 국영기업들 역시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왕 회장이 창업을 결심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유제품을 만드는 게 제 본업이었고, 농촌 출신이다 보니 패션이나 유행을 타는 사업에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일용품이나 식품 사업에 관심이 많아 1999년에 지인 두 명과 요구르트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지인들은 30만 위안(약 5천만 원)의 자금을 투자하고 그는 기술을 투자하는 형식이었다. 투자자들은 돈만 댔을 뿐 요구르트에는 문외한이었기에 경영과 제품 생산은 오롯이 그의 몫이 되었다. 당시 중국은 식생활에 서구화의 바람이 불면서 요구르트 소비량이 차츰 늘어나고 있었다.
수도인 베이징 주변에만 무려 200개가 넘는 요구르트 회사가 난립하는 ‘요구르트의 춘추전국시대’였다. 이토록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다른 요구르트에 없는 독자적인 전략이 필요했다.
“우선 생각난 것이 박리다매였어요. 싼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어필하고 판매량을 늘려 벌충하는 방식이죠. 그런데 평소 경영에 자문을 해 주시던 선생님 한 분이 제안하신 것이 ‘질 좋은 원료로 최고급 요구르트를 만들어 팔라’는, 이른바 고급화 전략이었습니다.”
‘앞으로 중국은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여 부유층이 늘어나고 고급제품에 대한 수요도 늘어날 테니, 처음부터 부유층을 타겟으로 하라’는 것이 요지였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와서 생각하면 트렌드를 정확히 예측한 조언이었지만, 당시 왕 회장으로서는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이름도 없는데, 가격까지 비싼 고급으로 만들면 누가 사먹을까?’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2004년에 정부에서 요구르트 공장 허가제를 실시하면서 관리가 한층 엄격해졌습니다. 정부 기준에 맞추느라 품질을 높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대기업보다 가격을 비싸게 받는 게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았어요.”
이때부터 끝도 없는 캄캄한 터널을 지나듯 지루한 마음의 싸움이 시작됐다. 고급원료를 쓰는 바람에 원가는 상승했지만, 판매가는 선뜻 높일 수 없었다. 요구르트는 식품이라 장기간 보관도 어렵다. 시간이 흐를수록 적자는쌓여갔고, 동업자들 역시 손을 털고 나가버렸다. ‘지금이라도 박리다매로 전략을 바꿀까?’ 하고 갈등하면서도 그는 묵묵히 참고 견뎠다. 하지만 회사는 결국 파산 직전에 이르렀다. 모든 상황이 절망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뭄에 단비 같은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회의를 주관하는 왕보화 회장.허룬은 창업 17년 만에 생산직 200명에영업직 300명 등 5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건실한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회의를 주관하는 왕보화 회장.허룬은 창업 17년 만에 생산직 200명에영업직 300명 등 5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건실한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허룬의 연구인력은 4명에 불과하지만,특유의 개발전략을 앞세워 다른 기업들이 상상도 못한 참신한 제품을 내놓는다.
허룬의 연구인력은 4명에 불과하지만,특유의 개발전략을 앞세워 다른 기업들이 상상도 못한 참신한 제품을 내놓는다.
허룬은 뉴질랜드의 낙농업자들이 중국에 세운 목장에서 생산된 청정우유만을 고집한다. 덕분에 다른 업체들이 멜라민 검출 등으로 크게 곤욕을 치를 때도 허룬은 성장을 거듭했다.
허룬은 뉴질랜드의 낙농업자들이 중국에 세운 목장에서 생산된 청정우유만을 고집한다. 덕분에 다른 업체들이 멜라민 검출 등으로 크게 곤욕을 치를 때도 허룬은 성장을 거듭했다.

수백 배 큰 대기업과 싸워 이긴 다윗 같은 기업
“사장님 회사의 요구르트가 맛과 품질이 아주 뛰어나더군요. 혹시 저희한테 납품할 의향이 없으십니까?”
월마트 중국법인 구매 총책임자의 전화였다. 왕 사장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월마트라면 전세계 직원 수만 230만명에 달하는 유통업의 공룡 아닌가. 중국에서도 60여 개의 매장에 2만 3천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월마트에 납품한다는 것은 제품의 우수성에 대한 보증수표와도 같았다. 화합할 화和에 윤택할 윤潤을 붙여 ‘허룬和潤’이란 브랜드도 만들었다. 막혀 있던 일이 술술 풀려가자 그는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을 경우 얼마 못 가 월마트에서 퇴출될 위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5kg짜리 대용량 요구르트를 판매하고 1년쯤 지났을 때, 대기업인 꽝밍光明 요구르트 4kg 용량이 월마트에서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저희 판매량이 절반으로 떨어지더군요. 그런데 꽝밍의 판매량이 점점 줄더니 월마트에서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2008년에는 중국 1위 업체 이리伊利에서 5kg짜리 요구르트가 나왔어요. ‘베이징올림픽 공식 후원 제품’이라는 라벨까지 달고서요. ‘이번엔 진짜 망했구나’ 싶었는데 얼마 안 가 그 제품도 판매량이 줄더니 결국 철수하더군요.”
현재 허룬유업의 연매출은 2억 위안(약 334억 원) 규모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중국 1,2위를 다투는 이리(연매출 7조 287억 원)나 멍니우蒙牛(연매출 6조 413억 원)에 비하면 수백 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 기업이 요구르트에서는 쟁쟁한 대기업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 그야말로 골리앗과 싸워 이긴 다윗을 보는 듯하다. 그에게 승리의 비결을 물었다.“좋은 요구르트를 만드는 관건은 원료입니다. 원료가 좋으면 발효기술이 좀 떨어져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허룬 요구르트에는 한국산 설탕에 덴마크·프랑스산 유산균, 미국산 과일이 들어갑니다. 가장 중요한 우유는 뉴질랜드의 낙농업자들이 중국 내에 세운 목장에서 나온 것으로, 엄격한 품질과 위생 관리를 거쳐 생산됩니다.”
2008년은 중국 유제품 업계가 한바탕 직격탄을 맞은 해다. 분유 등 중국산 유제품에서 화학물질인 멜라민이 검출되면서 업계 전반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영업이익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2012년에는 영유아용 분유에서 수은이, 우유에서는 간암을 유발하는 독소물질이 검출되면서 업계는 다시 한 번 크게 요동쳤다. 하지만 허룬의 매출은 오히려 이때 더 크게 성장했다. 품질 하나는 어딜 내놔도 자신 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관리한 덕이었다.
“허룬은 결코 돈이나 이윤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오직 고객의 신뢰만을 크게 생각합니다. 신뢰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니까요.”

중국 내 대도시의 고급쇼핑몰에 진열된 허룬 요구르트. 중국인 외에 중국에 거주하는 외교관 및 그 가족들, 해외기업 주재원들도 허룬 제품의 열렬한 팬층이다.
중국 내 대도시의 고급쇼핑몰에 진열된 허룬 요구르트. 중국인 외에 중국에 거주하는 외교관 및 그 가족들, 해외기업 주재원들도 허룬 제품의 열렬한 팬층이다.

맛과 제조법은 모방해도 정성은 모방할 수 없다
고객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철학을 지닌 허룬의 제품들은 중국인들로부터 크게 사랑받고 있다. 허룬의 150g짜리 오리지널맛 요구르트 한 병은 우리 돈 2천 원, 반면 이리나 멍니우의 유사제품은 훨씬 큰 500g짜리가 같은 가격에 판매된다. 그런데도 판매량은 오히려 두세 배 더 많다.
허룬 요구르트는 TV나 스타들의 SNS에도 심심찮게 오르내리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다이빙선수 출신의 배우 티엔량이 친구들과 식사를 하며 올린 SNS 사진에 허룬 요구르트가 나오는가 하면, 인기드라마 ‘중국식관계’나 미녀배우 위엔산산의 인터뷰화면에도 허룬 제품이 잡혔다. 물론 PPL이 아니라 그 스타들이 실제로 허룬 제품을 즐겨 먹기에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회장님은 도대체 어떻게 회사를 경영하시느냐?’고 묻습니다. 무슨 특별한 경영비법이 있는 것도, 그렇다고 제가 경영학을 배운 것도 아닌데 말이죠. 저는 다만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는 음식처럼, 온 가족이 맘 놓고 즐길 수 있는 요구르트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할 때 어떻게 할까요? 신선하고 좋은 재료에 정성을 담아 한껏 실력을 발휘해서 음식을 만들 겁니다.
저희 허룬에서 신제품을 내놓을 때면 먼저 직원들이 그 제품을 집에 가져가 가족들과 먹어본 뒤에 출시합니다. 오늘날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는 많지만, 고객의 행복을 추구하는 회사는 많지 않습니다. 소비자들이 먹었을 때 맛있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 그것이 저희 허룬의 목표입니다.”
왕 회장의 말대로라면 허룬이 명품이 될 수 있었던 건 좋은 재료 때문도, 그가 20년 넘게 요구르트라는 한우물을 파며 쌓아올린 노하우 때문도 아니었다. ‘먹는 것이 사람을 만든다You are what you eat’는 서양속담이 있다. 허룬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은 단순히 요구르트만 먹는 것이 아니다. 요구르트에 담긴, 진정 고객을 생각하고 위하는 그 애정과 정성을 함께 먹는 것이다. 그 마음이 요구르트에 녹아 있는데 어찌 먹는 이가 건강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중국의 요구르트 시장은 13조 8천억 원 규모이며, 2020년에는 그 두 배로 성장할 전망이라고 한다. 허룬 요구르트의 성장잠재력은 그만큼 무궁무진하다. 왕 회장은 ‘내년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직영점을 낼 예정이며, 한국과 홍콩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13억 중국인의 입맛과 건강을 책임진 요구르트를 한국에서도 만나게 될 그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왕보화 회장
대학에서 식품가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스물셋의 젊은 나이에 국영 유가공업체 공장장이 되었다. 퇴사후 허룬유업을 창업해 마흔넷이 된 지금까지 20년 넘게 좋은 요구르트 만들기에만 몰두하며 오늘도 신제품 아이디어를 찾아 세계를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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