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동양인 건축사 1호, 권혁천

아프리카 대륙의 면적은 3,020만km2로 각기 다른 풍부한 자원을 가진 58개의 나라가 모여 있다. 아프리카에 중국, 인도의 시장 지배력이 확대되고 있지만 유독 한국기업의 진출은 드문 편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의 근시안적이고 닫힌 시각을 꼬집는 건축가 권혁천대표. 아프리카에 첫발을 내디딘 2008년부터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 활동 중인 그의 아프리카 케냐를 향한 ‘건전한 호기심’에 대해 소개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케냐를 방문했을 때, 한국인 기업인으로 함께 자리했던 동양인 건축사 1호 권혁천 씨는 한국의 (주)Seven Degree 건축사무소 대표이기도 하다. 여의도에 있는 39층 롯데캐슬 트윈타워를 설계한 건축가로, 국내 100여 군데의 크고 작은 건물을 설계한 다채로운 경험이 있는 그는 아프리카야말로 ‘기회의 땅’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기아의 나라로 표현합니다. 사실 ‘내셔널지오그래픽’과 왜곡된 방송 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를 그렇게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대해 대한민국 청년들이 건전한 호기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아프리카 순방을 한 것도 멀리 보면 다 후세를 위한일입니다. MBC <복면가왕>처럼 이제 아프리카에 관한 잘못된 편견을 버리고 건설적인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한국 젊은이들이 ‘과포화 상태인 한국의 취업 전선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 새로운 땅 아프리카에 진출해야 할때’라고 조언한다.

아프리카보다 한국이 더 위험해
2008년 아프리카 케냐를 처음 방문한 권혁천 대표는 지난 2013년 케냐에 설계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진출을 했다. 그는 ‘아프리카에 대해 정확하게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한쪽으로 치우친 편견의 돋보기로 쳐다보기 일쑤다’라고 말한다.
“가끔 아프리카로 일하러 오겠다는 사람이 있지만, 위험수당을 달라고 합니다. 위험수당이라니요? 제가 볼 땐 한국이 더 위험해 보입니다. 한국 사람의 순수함은 많이 사라지고, 요즘은 한국 사람 자체가 점점 흉기가 되지 않습니까? 매일 사람들 간에 상처 주고 상처 받고 힘들어합니다. 가족들끼리 전날까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가 다음 날 부모가, 자녀가 갑자기 자살하잖아요. 아프리카란 곳이 훨씬 정신적으로 안정되어있습니다. 물론 인생은 어디를 가나 힘든 점이 있지만 아프리카이기 때문에 힘들다는 보편적인 인식은 사라져야 합니다.”그는 그 많은 나라 중에, 왜 아프리카 케냐를 선택한 것일까?

아프리카, 감자넝쿨같은 기회의 땅
방송국 국장으로 지내던 한 지인의 지극한 부탁으로 2008년 아프리카 케냐 방송국 설계를 맡은 권 대표는 우연히 찾아온 작은 기회와 건전한 호기심이 지금의 그를 아프리카로 한 발 내딛게 만든 것이다.
일주일간 아프리카 현장을 답사하기로 했던 권 대표에게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사건이 일어났다. 지인이었던 방송국 국장은 일주일 일정을 잡고 온 권 대표에게 3주 후에 출발하는 항공권을 건넸다. 그때 지인은 무슨 배짱으로 아무 말도 없이 티켓을 바꿔버린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순순히 받은 권대표는 어떤 심경이었을까?
“일주일 지낼 만큼만 짐을 갖고 나왔기 때문에 당황스러웠어요. 하지만 돌려서 생각해보니 제가 미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터라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였습니다. 일단 한번은 아프리카로 직접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건전한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 같아요. 그 작은 호기심 때문에 저는 계획을 대폭 수정하고 2주 더 아프리카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일정을 바꾸었지만, 방송국 건축 허가는 또 다시 지연되었다. 또 건축을 진행할 여건이 도저히 갖춰져 있지 않아 그는 결국 그곳에서 6개월을 머물게 되었다.
“아프리카에 도착하고 건축이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니 장비나 기술, 모든 면이 뒤떨어져 있었어요. 그런 생각을 가지니 모든 게 불편했습니다. 일을 지켜보면서 입에서 불이 나올 정도였어요.(하하하) 한국 사람답게 일을 빨리 끝내려고 공사장의 사람들을 독려하면서 건축했는데, 건물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는 겁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건축가의 자부심이 땅으로 추락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배운 저의 스타일이 오히려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순간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산이 허락해야 내가 산에 오를 수 있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더군요.”
한국에서 이미 크고 작은 건물 100여 채가 건축되는 과정까지 지켜보았던 그가 아프리카로 떠났을 때에는 자부심이 남달랐다. 하지만 그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그동안 자신의 틀 안에서 갇혔던 시각이 얼마나 협소했는지 알게 되었다.
“아프리카 1,600m 고지에 건축자재를 이동하기 쉽지 않고, 한국과 작업환경이 다른데도 무리하게 일을 끝내려고 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건축하려면 그 상황에 맞는 나름의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한옥을 지을 때엔 한옥에 맞는 건축양식이 필요했듯이요. 그게 지혜인 겁니다.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세상을 다 아는 듯이 굴었던 오만함을 깨닫고 부끄러웠습니다. 시대적, 환경적으로 필요한 저마다 발달한 양식이 있는데, 아프리카에서는 자재가 부족해서 나름의 지혜로 건물을 지을 수 있더라고요. 물과 시멘트 섞는 비율도 다르고, 자재도 없으니 사람들이 일일이 손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이 많았던 한 여름 밤의 꿈은 막을 내렸습니다.”
아프리카 케냐 사람들은 한국 사람보다 성품이 밝고 여유롭다. 자연 경관도 아름다워 좋은 심성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부디 아프리카가 미개하다는 표현은 하지 말아주세요. 멋있고 인테리어가 잘된 건축만이 최고는 아닙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아프리카만의 건축 양식에 지혜로움이 담겨 있습니다.
서양적인 관점에서 보면 거칠고 투박해보일지 모르나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절박함이 건물 곳곳에 묻어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케냐의 건축 양식을 조금 정돈시키는 게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고요.” 건축은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어야 구현되는 종합선물세트와 같다. 이름 모를 일꾼의 힘이 보태져 건물이 완성된다. 특히 좋은 건축물은 일하는 사람들의 기술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도 얻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어려움 속에서 길은 새롭게 열리고
자신의 이름 석 자가 담긴 건축물이 세워지는 것을 보는 것이 모든 건축가들이 갖는 로망이다. 그는 아프리카 케냐라는 지구 반대편 나라에 방송국을 설계했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케냐에 가야 겟다는 생각은 특별히 들지 않았다. 바쁜 한국의 일상 속에서 조금씩 잊혀져갔다. 땅에 씨를 심는 일은 인류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마치 그 씨가 땅속에서 어떻게 자랄지 예측할 수 없다고 해도 말이다. 권 대표의 마음에는 한 가지 씨앗이 땅에 심겨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꿈이란 열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시기와 우연이 필요한 법이다. 권 대표가 한국에서 다시 일에 몰입할 즈음 케냐 파라다이스 그룹에서 한국의 권 대표에게 요청했다. 케냐에서 가장 큰 사파리 파크 호텔의 컨벤션 센터를 설계해 달라는 러브콜이었다. GBS 방송국 결과물이 참작된 것으로, 방송국 국장이 두 번째로 좋은 기회라고 권유했다.
“설계와 모형을 만들어서 보여드렸는데 굉장히 반응이 좋았습니다. 투자의 문제로 미완성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 제대로 된 일을 해보자며 새로운 제안을 받았습니다. 케냐 국제공항 내 호텔 푸드코트를 만들어달라는 제안이었습니다. 한국인이 케냐 국제공항에서 일을 한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건축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꿈이, 이뤄지는 것이죠. 전통 케냐 호텔에 현대적인 비즈니스 센터를 지어달라는 요청도 잇달았습니다. 그걸 끝내니 바로 케냐 KICC에 120명이 들어가는 카페 겸 레스토랑을 멋있게 만들어달라는 부탁도 받았어요. 한국에서 비행기와 배로 각종 장비를 다 가져와서 만든 것이 지금 케냐의 명물이 되었습니다.”감자 하나를 캐기 위해 땅을 팠을 뿐인데 감자들이 넝쿨에 엮여 딸려 나오듯, 아프리카에서 그는 의도하지 않게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2015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주최하는 행사가 케냐국제컨벤션센터KICC에서 열리면서 KICC 내 전시장에 무빙월을 설치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한국에서도 높이 10m의 무빙월은 드물어요. 대부분이 6~7m입니다. 미국에는 17m도 있지만 일단 WTO의 요청으로 방음, 통행, 설치 시간을 계산하니 최고의 전문가여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었어요.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는데, 정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영어와 스와힐리어 현지어에도 낯선 제가 첫 무대에 올라간 그때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바니 제누(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마이 네임 이즈 헨리 시미유. 그렇게 첫 말을 떼는데 좌중의 모든 사람이 다 웃더라고요.” WTO측 직원들은 모두 백인이었다. 그들 앞에서 브리핑이 끝나자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그는 결국 사업을 따냈고, 무빙월 설치 전문가를 한국에서 불러 일을 시작했다. 7억 원짜리 프로젝트가 성공리에 끝났지만 일의 시작과 끝이 때로는 인력으로 되지 않는 것처럼, 잔금 3억 원이 융통되지 않아서 잠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럴 때도 권 대표는 오히려 무슬림 하우스를 짓는 일로 어려움을 면할 수 있었고 새로운기회가 계속 그 앞에 펼쳐졌다. 베냉, 잠비아 등 아프리카 곳곳에서 청소년 센터를 짓는 일의 설계 파트와 그 일이 진행되는 것을 맡은 것이다.

그가 아프리카를 진짜 사랑하는 이유
“아프리카라는 환경을 무시하고 제 자신만의 실력만을 내세웠을 때는 보이지 않던 세계가 이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검은 피부가 마음에서부터 사라지고 나니, 그들이 나에게 친구요 가족이 되었고 온전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나와 다름 없는 사람이었고, 마치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인심과 순수함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는 아프리카 케냐가 제 마음의 고향이 되었고, 아프리카에서 꿈을 펼쳐보고 싶습니다.”세상 사는 데 어려움이 없다면 성장은 없을 것이다. 고인물이 썪고 가득 담긴 물에 더 이상 담을 수 없듯이, 매일 찾아오는 크고 작은 갈등, 어려움을 잘 극복하는 사람은 마음이 물처럼 아래로 흘러가는 사람이다.
권 대표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대화하면 할수록 그와 마음이 연결된 사람들의 극진한 배려와 마음 씀씀이에 애정을 느꼈다.“예전에 시골 마을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줍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아요. 그들은 제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케냐 사람들은 굉장히 부지런합니다. 아침7시가 되면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를 하고, 사람들이 출근하기 위해 서두르곤 합니다. 때로는 한국 사람보다 엄청 잘 사는 사람도 만나 깜짝 놀라곤 합니다.”
최근에 그는 아프리카에 사는 무슬림들과도 일을 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다른 문화권 사람들을 겪으면서 인생의 항로에 가장 중요한 경험을 하고 있다. 건축가는 설계를 할 때 많은 판단을 해야 한다. 좁지 않게, 얕지 않게, 어떤 판단이 다음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적절한 판단력도 필요하다. 그런 결정들이 모여 하나의 건축물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건축가의 판단이 정확하려면 삶이그만큼 그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줘야 한다. 삶을 통해 건축가의 마음이 무르익으면 좋은 건축물로 나타난다. ‘천재성과 수고로운 노력이 좋은 건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많은 것을 공감하고 사랑할 수록 자연스럽게 나타난다’고 믿는 권 대표는 현재 아프리카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분명 그는 벌써 아프리카에 건축가로 이름 석 자를 남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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