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orrow’s Book Club

단순한 기쁨, 책 읽는 사람 바라보기
며칠 전 점심을 먹고 교차로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다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는 분을 발견했습니다. 오토바이였는지 자전거였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안장에 거꾸로 앉아 뒷자리에 책을 내려놓고 읽고 있었습니다. 책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게 너무나 익숙한 책,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였습니다. 천 페이지가 넘는 책을, 점심 시간에, 작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읽는 어른이라니! 너무 반가웠습니다. 신호등 불빛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몇 십 초 동안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어떻게 그 책을 읽게 되었는지, 어떤 부분이 제일 재미있는지, 몇 번이나 읽었는지…. 여쭤보고 싶은 질문들이 많았지만 간신히 참았습니다. 신호가 바뀌고 횡단보도를 건너오는데 둥둥 구름 위를 걷는 듯 왜 그리 기분이 좋던지요.

책 읽는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도 제게 기쁨을 줍니다. 언젠가는 길을 걷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신호대기중이던 트럭 운전자분이 운전대 위에 책을 올려놓고 읽고 있었습니다. ‘아, 저렇게 책을 읽을 수도 있구나!’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약속 장소에서 사람을 기다리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수영장에서, 찜질방에서, 미용실에서, 병원에서, 공원 벤치에서, 지하철에서, 기차 안에서, 비행기 안에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운전하는 도중 책을 읽는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습니다. 책 읽기의 새로운 시공간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운전하며 책 읽기? 운전 안하며 책 읽기!
저도 그 트럭 운전자분처럼 운전하는 도중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분께서 직접 편집하신 책이라며 책 선물을 주셨습니다. 서울대 의대 40회 동기들이 졸업 30주년 기념으로 펴낸 에세이집 <그때 연건동 28번지>. 어떤 인연으로 그 책을 편집하게 되었는지 여쭤봤더니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책 내용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차가 많이 막혀 길 위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운전대 위에 책을 펼쳤습니다.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신호가 바뀌면 앞을 보며 운전을 하다가 차가 멈춰서면 다시 책 읽기를 반복하며 집으로 왔습니다. (운전 중 책 읽기는 위험합니다. 따라하지 마십시오!)

인공지능 시대, 책 읽기 풍경
얼마 전 서울대 연구팀이 개발한 무인자동차가 고속도로 시험주행에 성공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GPS수신기와 주변을 읽는 카메라, 차간 거리 실시간 측정용 레이더 등 각종 센서와 주행 프로그램이 신경망처럼 한 몸으로 작동한다고 하니 몇 년만 기다리면 자율주행하는 차에 가만히 앉아 책 읽기에 몰입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인공지능 시대는 책 읽기 풍경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모습들도 아주 많이 바꿔놓을 것 같습니다. 구글은 지난 5월 18일 연례 개발자 회의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똑똑한 서비스’를 발표했습니다. 서비스 이용자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주는 가상의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 사람이 말로 지시하는 명령을 수행하는 인공지능 스피커 ‘구글 홈’, 친구가 졸업식 사진을 보내면 자동으로 졸업사진인 것을 인식하고 ‘congratulations’ 같은 단어를 추천 단어로 올려주는 모바일 메신저 ‘알로’를 연내에 출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알로에선 사람 간 대화뿐만 아니라 인공지능과의 대화도 가능하다고 하니 2014년에 개봉한 영화 <her>가 우리의 현실이 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책을 스캔하기만 하면 듣고 싶은 목소리로 전환되는 인공지능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에게 비서가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주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책을 읽어주고, 집안일을 해주고, 건강관리를 해주는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유토피아를 열어 주리라 상상해 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광경은 충격이었습니다. ‘인간의 지적인 활동까지 그대로 따라하는, 아니 그 이상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있다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 기계로 대체될 수 있는 인간, 그래서 결국 인간이 필요 없게 되는 세상이 오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르자 인공지능이 호의적으로만 보이진 않습니다.

 

인간 vs 기계, 지배할 것인가 지배당할 것인가
지난 4월 29일 서울 시청 8층에서 열린 유발 하라리 강연회에 갔습니다. 그날 20여분 유발 하라리의 기조발제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엔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의 내용보다 2016년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사인 인공지능에 관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머지않는 미래에 인류는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이나 해야 하며 그 일마저 나중에는 인공지능이 하게 될 것이라고, 인간이 현명한 선택을 하면 그 혜택은 무한하지만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인류의 멸종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자신은 그 답을 알지 못하고 기술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것, 마음
뇌과학자이자 인공지능 전문가인 김대식 교수는 기계적인 일은 기계가 더 잘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이미 기계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기계한테 100퍼센트 진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가 기계에게 이기기 위해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한다고 합니다.

‘인간다움’이 무엇일까? 계속 질문해 봅니다. ‘인간다움’이 무엇일까?

인간이 기계와 다른 점은 인간에겐 마음이 있고, 그 마음으로 ‘느끼고 공감’할 줄 아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눈물 흘리기도 하고, 타인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존재, 가족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속상한 일이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존재,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늘 옳을 수는 없다며 스스로 자만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과거에는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표현할 때 기계처럼 열심히 일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기계처럼 일해서는 기계와의 레이스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인간답게 느끼고 생각하며, 사랑하고 실천하는 삶은 인간이 기계에게 자리를 내주기 어려운 영역과 이유를 제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허남숙
읽어주는 사람, 역사학을 전공했으나 역사책보다 문학책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스무 살 무렵, 레몽 장의 <책 읽어주는 여자>를 읽고 ‘책 읽어주는 여자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고,TV 교양프로그램, 어린이 프로그램 구성작가로 한동안 일했다. 지금은 도서관과 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일을 하고 있으며, 책 읽어주는 친구 엄마, 책 추천하는 이모, 책 읽기를 권하는 동네 언니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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