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진의 in아프리카, 아프리카人

케냐의 한 방송국에서 PD로 일하고 있는 송태진 씨가 아프리카를 투머로우에 소개한다. 대한민국 남아라면 2년 남짓의 군생활 동안 나라를 지키고 온 것에 대해서 지극히 당연하고 자랑스러워 하지만, 케냐의 군인들은 그러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 자세한 이유를 들어보자.

존경 받지 못하는 케냐의 군인들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 외세의 잦은 침략에 시달려왔다. 그때마다 앞장서서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 건 군인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국민들은 군인을 생각할 때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침략에 맞서 자발적으로 조직된 군인들을 ‘의병義兵’, 즉 의로운 군인이라고 일컫는가 하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대한독립군 참모중장 안중근을 ‘의사義士’라고 높여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훌륭한 군인’이란 단순히 전투를 잘한다는 의미를 넘어 조국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인격적으로도 완성된 사람을 뜻한다. 우리 국민들이 군에 대한 신뢰와 감사를 얼마나 크게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좋든 싫든 한번은 ‘늠름한 군인 아저씨’가 된다. 그런데 군복무를 마친 남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증상이 하나 생긴다. 틈날 때마다 군대 이야기를 떠벌리는 것. 추운 겨울 야간 근무 중에 젖은 수건을 공중에 던졌더니 그대로 얼어붙어 땅에 떨어지더라는,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놀랍고 기묘한 이야기들 말이다.

필자는 강원도 화천에서 2년을 꽉 채운 군 생활을 했다. 필자 역시 남들과 마찬가지로 틈틈이 군대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런데 아프리카 케냐에서 현지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군대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우리와 매우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단 케냐인들은 내가 군인이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주춤거리며 이런 반응을 보인다.

‘오, 너 그런 사람이었어?’
군인이었다니 멋지다. 대단한걸. 이런 긍정적인 반응이 아니라, 어쩌다 그렇게까지 되었냐는 식의 안쓰러워하는 반응이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알게 된 사실. 케냐 사람들은 군인을 볼 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고마운 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윙윙 돌아가는 날선 엔진 톱처럼 조심해야할 위험한 존재로 느낀다. 근처에 군인이 보이면 행인들은 꼬투리라도 잡힐까 슬금슬금 그를 피해 길을 간다. 군인들의 고압적이고 거만한 태도에도 불만이 많다. 우리나라 할머니들처럼 군인 궁둥이 두드려주고 짐 보따리 좀 같이 들고 가자 요청하는 사람은 없다. 괜스레 용돈 쥐어주며 군생활 힘내라고 격려해주는 아저씨도 당연히 없다. 케냐나 한국이나 나라를 지키는 군인의 기본적인 역할은 비슷할 텐데 왜 케냐의 군인들은 존경 받지 못하는 것일까?

왜 군인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써야 하지?
좀 더 자세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군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군인은 ‘공부를 못하는 가난한 집안의 사람이 하는 일’이고, ‘거칠고 위험하며 썩어빠진 녀석들’인데다 심지어는 ‘저주 받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몇몇은 케냐 군의 무능력과 부패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에게 한국의 학생들은 종종 군인들에게 편지를 쓴다고 말해주었다. 군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편지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그런데 그들은 도통 이해를 하지 못했다. 대학생 스탠리는 위문편지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내게 물었다.

“음…. 그런데 왜 학생들이 군인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써야 하지?”
“그들이 나라를 지키고 있잖아. 힘든 환경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한국인들은 혹시 군인들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지 희생. 적합한 단어야.”
“참나, 희생이라니!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해. 군인에게 하나도 고맙지도 않고. 케냐군인들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오히려 시민들을 못살게 구는 집단이지.”

군인에 대한 케냐 인들의 감정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상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장사를 하듯, 군인 역시 돈을 벌기 위해 전투를 하는 것이지 다른 특별한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단지 직업의 하나일 뿐 군인들에게 각별한 감정을 갖고 감사해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아니 군인에 대한 감사는 둘째 치고 경멸과 조롱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내가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 화랑 관창과 같은 훌륭한 군인과는 너무나 다른, 낯선 모습의 군인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02년 런던에서 열린 영국 왕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 참석한 아프리카 소총부대 군인들.
1902년 런던에서 열린 영국 왕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 참석한 아프리카 소총부대 군인들.

부족을 위해 스러져간 케냐의 전사들
사실 케냐 사람들에게 군인이 예전부터 이런 나쁜 이미지였던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케냐에는 부족과 공동체를 지키는 전사들이 있었다. 남자라면 전사가 되는 것이 당연했고, 전투를 하지 못하는 자는 결혼도 하지 못하고 남자 대접도 받지 못했다. 전사들은 만인의 존경을 받는 긍지 있고 위대한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아프리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익히 들어온 용맹한 마사이 전사가 케냐의 한 부족이다. 소를 몰고 다니며 목축을 하는 마사이족은 정착해서 농사를 짓는 키쿠유족과 종종 부딪치곤 했다. 그때마다 마사이와 키쿠유의 전사들은 창과 곤봉을 들고 부족을 위해 싸웠다. 전투는 그들에게 신성한 일이었고, 전장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전사의 영광이었다. 사람들은 위대한 전사를 기리는 노래를 불렀고, 영웅을 배출한 집안은 존경을 받았다. 마사이, 키쿠유, 칼렌진 등 어느 부족이든지 군인이란 그들이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자부심이고 정체성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들은 하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천둥을 부르는 막대기를 들고 있는 백인들에게는 가장 용맹한 전사도 이길 수 없다고. 마법을 쓰는 백인들은 해안 지방에서부터 차츰 아프리카 전 지역을 장악해 갔다. 백인들의 군대는 적은 숫자였지만 좀처럼 이길 수 없었다. 전사들은 탄환을 맞지 않도록 마을의 주술사와 장로들에게 축복을 받았다. 하지만 하얀 사람들의 총알은 전사들의 방패와 심장을 함께 꿰뚫었다.

19세기, 케냐 뿐 아닌 아프리카 전역에서 토착민들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열강과의 전투가 벌어졌다. 가나의 아샨티, 나미비아의 헤레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줄루 등 아프리카의 전사들은 무기를 들었다. 긍지를 잃지 않기 위해,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일어섰다. 천둥을 부르는 백인들의 기관총과 대포를 향해 달려갔다. 전사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백인들의 천둥을 부르는 막대기, ‘총’을 이길 수 없음을. 그러나 그들은 나서야만 했다. 부족을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움을 해야만 했다. 그들은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난 전사들이었다. 지금 죽지 않는다면 부끄럽게 될 것이었다.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 앞에서 사열 중인 현재의 케냐 군인들.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 앞에서 사열 중인 현재의 케냐 군인들.

아프리카의 너른 평원. 어느 날, 푸름이 짙게 깔리고 모든 것이 풍족한 축복 받은 그 대지를 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백여 년 전 이 땅 위에 대치했던 두 부류의 군인들의 모습이 평지 위에 그려졌다. 총과 포로 무장한 소수의 백인들, 그리고 반대편에는 창과 곤봉을 들고 있는 수많은 전사들. 전사들이 전투의 춤을 춘다. 노래를 하고 발을 구르며 조상들의 가호를 빌었다. 그리고 함성을 지르며 용맹하게 진격한다. 귀를 찢는 총성이 그들의 함성을 덮었고 강풍에 꽃이 떨어지듯 우수수 검은 전사들이 땅에 쓰러졌다. 그들은 일어나지 못한다. 더 이상 춤을 추지도, 노래를 부르지도 못한다. 푸른 초원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이상하게도 환상을 보듯 그 장면들이 내 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평원에서 일어나는 살육이 너무나 끔찍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 아까의 비극이 이어서 펼쳐졌다. 단 한 번의 전투에서 수천, 수만의 전사들이 죽어갔다. 그들은 죽었고 백인들은 기뻐했다.

우울한 환상은 계속 이어졌다. 벌판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 사람들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처음에 그들은 머리가 고불고불한 검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변해갔다. 내 눈 앞의 환상 속에서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 전사들이 일그러지더니 점차 하얀 옷을 입은 동양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눈을 감지도 못하고 땅에 엎드려진 동양인들의 피가 대지를 빨갛게 적셨다.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우리의 조상들이었다. 다름 아닌 나의 아버지들의 아버지들이었다. 아프리카의 전사들과 조선의 의병들은 같은 운명을 맞이했던 것이다. 죽음을 알고도 적에게 달려가야만 했던 아프리카 땅과 우리 땅의 군인들….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을 때 환상은 사라졌고 들판은 다시 평화로웠다.

민족을 억압하는 비열한 앞잡이가 되다
전사들을 쓰러트린 백인들은 식민지 군대를 창설했다. 새로이 모집된 젊은 군인들은 과거에 부족과 공동체를 지키던 고고한 기품의 전사들과는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백인들의 편에 붙은 근육질 앞잡이일 뿐이었다. 군인들은 영국 식민정부를 도와 자기 민족을 억압했다. 심지어 그 군대의 이름은 ‘국왕의 아프리카 소총부대KAR·King’s African Rifles였다. 이미 명칭에서부터 케냐 사람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발견할 수 없었다.

식민통치 기간 케냐 군은 자기 민족을 위해 싸우기보다는 이름대로 국왕, 즉 영국을 위해 싸웠다. 아프리카인들을 꼼짝 못하게 틀어막았고, 크고 작은 분쟁 지역에서 영국을 위해 나섰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미얀마의 정글에 파병되어 일본군의 인도 침략을 저지했고, 케냐 인들의 독립 운동이었던 ‘마우마우 봉기’ 당시에는 자국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등 영국의 식민 지배를 든든히 협력했다.

그때부터였다. 케냐 인들에게 군인의 의미가 달라진 것이. 가장 존경 받아야할 전사들이 가장 타락한 자가 되어 그들의 위에 군림했다. 이제 군인은 더 이상 위대한 전사가 아니었다. 그저 무력으로 민족을 억압하는 비열한 앞잡이였다. 가난한 집안의 불량배들이 아니면 군인이 되려하지 않았다. 군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괴롭히는 거칠고 위험한 썩어빠진 녀석들이었고, 사람들의 저주를 받는 인생을 살았다. 그렇게 군인들은 케냐 인들의 경멸과 조롱을 받는 집단이 되었다.

국민의 신뢰를 받을 때 케냐는 더 발전한다
군인들을 향한 케냐인들의 원망과 분노는 세대를 이어 전해져왔다. 이미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50년이 넘었다. 케냐 군은 더 이상 영국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국왕의 아프리카 소총부대’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그런데도 케냐의 국민들은 군인에게 정을 주지 않고 있다. 스탠리가 나에게 말한 것처럼 케냐 국민들은 군인들에게 고마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군인들도 일제치하에서 수모를 당했다. 그들도 앞잡이 취급을 받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자존심을 회복했다. 예전에 벌판에서 숭고하게 숨을 거둔 우리의 의병들처럼 오늘날 한국군은 국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 든든하게 나라를 지키고 희생하는 군인으로서 사랑 받고 있다. 비록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권력과 관련된 어두운 이미지가 덧씌워지긴 했지만 군대의 근본 기능, 소중한 것을 지키는 임무에 대해 의심을 갖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우리의 조상들과 함께 평원에서 피를 흘린 케냐 군인들은 여전히 식민지배 당시의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 케냐 사람들이 케냐 군인들에게 고마워하든 욕을 하든 상관없이 그들은 지금 국민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 케냐 군은 열강의 식민 지배를 위해 이용당하는 용병이 아니라 오래 전 부모와 가족, 그리고 소중한 것들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감수하던 전사들처럼 나라를 지키고 있다. 케냐 인들은 식민지배 기간 만들어진 잘못된 관념에서 벗어나 그들을 보호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알아야한다. 자신을 보호해주는 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없으면서 단합과 발전을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케냐 군이 없으면 케냐도 없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케냐가 성장하길 바라는 것은 뿌리 없는 나무를 높이 자라게 하려고 애를 쓰는 일과 같다.

그런데 최근 들어 케냐 군의 이미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케냐의 시끄러운 이웃 소말리아에 자리 잡은 테러단체들의 세력이 커지며 국민들이 군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알 샤바브Al-Shabaab’는 2013년 나이로비 대형 쇼핑몰 테러, 2015년 가리사 대학교 테러 등으로 수많은 케냐 인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케냐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 샤바브에 대해 분노하고 그들을 처단하길 원한다. 그런데 무슨 수로 그럴 수 있나? 오직 군대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국민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목격한 케냐의 젊은이들은 자발적으로 군대로 향했다. 바로 군인의 기본 목적,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케냐 군의 임무는 결코 가볍지 않다. 혼란 속에 있는 소말리아나 남수단에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되기도 하고, 테러가 일어나는 위험한 현장에서 싸우기도 한다. 케냐의 국경지대는 늘 총성이 울린다. 전사하는 군인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이 되고자 지원하는 케냐의 젊은이들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분명 어려운 길이 될 것이 자명한데도 그들은 전장으로 가길 원한다. 막강한 백인들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앞으로 돌진했던, 그 옛날 위대한 전사들의 정신을 쫓아 나라를 위해 희생하길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희생정신을 가진 케냐의 군인들을 이제 케냐 국민들도 인정하고 받아들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 국민들이 마음을 열면 군인들도 더 친절하고 따뜻하게 국민들을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식민지배 기간 만들어진 잘못된 관념에서 벗어나 군과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다. 군과 국민의 단합에서 시작되는 식민 잔재의 청산은 케냐 사회에 만연한 또 다른 식민지배의 관념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케냐 국민들이 군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킬 때 케냐 인들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더 건전하고 뛰어난 나라를 만들 것이다. 한국이 그러한 것처럼 국민과 군이 협력하여 더 훌륭한 국가를 만들 것이다. 꼬부랑 할머니가 군인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바나나를 건네고 ‘고맙네, 젊은이’라고 말할 날이 머잖아 찾아올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아프리카의 빈곤과 부정부패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개선되어 있지 않을까?

송태진
2008년 부룬디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다. 지난해 12월부터 아프리카 케냐 GBS TV방송국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직접 느낀 경험들을 그의 따뜻한 필치로 소개한다.
쏭태의 생생한 아프리카 이야기 블로그 http://blog.naver.com/impor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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