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디지털고등학교 교사 김미래

빡빡한 전공 공부, 어려운 가정 형편 등의 이유로 간절히 바라온 교사라는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김미래 씨. 그러나 인도에서 해외봉사를 하며 만난 유치원 아이들이 그의 잠들었던 꿈을 일깨워주었다. 현재 대학원 교육학 석사 공부도 하며 기간제 교사로 타이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그의 얼굴이 유난히 행복해 보였다.

외향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학급 반장이었던 고등학생 시절, 어떻게 하면 학급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그저 즐거웠던 김미래 씨. 그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여고생 시절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틈나는 대로 친구들의 모습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찍기도 했고, 의미 있는 장기자랑을 해보려고 꼬박 밤을 새 뮤지컬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성품을 살려 활동적이고 창의적이며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직업인 교사를 꿈꿔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능 성적에 맞춰 계획에 없던 공대에 들어갔고,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재수나 편입은 힘든 상황이었다. 게다가 한때 품었던 교사의 꿈에 대한 미련으로 그는 혼란스러운 대학생활을 보냈다.

나를 위해 떠난 인도
공대 공부에는 가뜩이나 흥미가 없는 데다 계속된 고민과 방황으로 학점도 점점 떨어졌을 무렵이었다. 1년 과정의 해외봉사 프로그램인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뜨거운 희생정신이 있다기보다는, 현재 무거운 걸음으로 막막한 길을 걷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요량으로 인도 비제와라에 지원했다.

“1년 동안 인도에서의 생활은 1, 2주짜리 단기 봉사와는 완전히 달랐어요. 5월 초가 되니 기온이 50도를 육박하는데, 아무것도 없이 코로만 숨을 쉬자니 뒷골이 당기고 목구멍이 턱턱 막혀와 물수건으로 코를 막고 숨을 쉬어야 했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몸은 적응했는데, 정작 저를 힘들게 한 것은 저 자신이었어요. 특히 무언가를 계획했을 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좌절했죠.”

길을 걷다 너무 더워 물을 얻어먹으려고 방문한 집의 할머니와. 한 시간 가량 대화도 하며 친구가 됐다.
길을 걷다 너무 더워 물을 얻어먹으려고 방문한 집의 할머니와. 한 시간 가량 대화도 하며 친구가 됐다.

겸손한 마음으로 얻은 기회
하루는 인근 유치원에서 봉사를 하기 위해 찾아가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말했다.
“저희가 유치원 아이들을 위해 무료로 율동과 동요를 가르치고 싶어요.”
“영어도 못하면서 무얼 하려고 이곳에 온 거죠?”
쌀쌀맞은 원장의 대답에 순간 그는 화가 났다고 한다. 가난하고 하찮게 생각했던 인도 사람이 봉사를 해준대도 거절을 하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제가 좋은 마음으로 도우려고 했지만 원장의 거만함 때문에 일을 못하게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작 그 거만함 위에 우뚝 서 있는 사람은 저 자신이더라고요. 원장님 말씀대로 사실은 영어도 못하면서 그런 저를 인정하기 싫었던 거예요. 봉사하러 인도에 갔지만, 제가 그들을 무시하고 있었던 거죠.”

남들에게 베푸는 것조차 자신의 마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발견한 그는 다음날, 다시 유치원에 찾아가 공손하게 말했다.

“영어 실력은 부족하지만 아이들의 부모님도 좋아할 만한 재미있는 수업을 만들겠습니다.”

원장은 다시 찾아온 열정을 칭찬하며 일주일에 두 번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그때 그는 사람의 마음은 노력이나 능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을 가졌을 때 비로소 상대방이 마음을 열어준다는 것을 알았다.

수업을 하는 동안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중간중간에 손수건으로 닦다 보니 손수건이 물기를 잔뜩 머금은 걸레처럼 될 정도였지만 한국말을 배워 ‘차렷!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천연덕스러운 아이들을 보면 마냥 행복했다고. 몇 달 후, 인도의 스승의 날인 Teacher’s Day에 대표 어린이가 감사 편지를 읽으며 노란 꽃으로 만든 화관을 그에게 씌어줬고, 원장은 그를 명예교사로 임명해주었다.

시따르따 대학교에서 단원들이 준비한 문화 교류 행사에 초청하며 사람간의 교류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시따르따 대학교에서 단원들이 준비한 문화 교류 행사에 초청하며 사람간의 교류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유치원 봉사하며 다시 발견한 꿈
유치원 명예교사로 박수도 받았지만, 얼마 후 미래 씨는 그만 큰 실수를 저질렀다. 유치원에 가는 길에 스피커와 스마트폰을 연결하는 잭을 놓고 온 게 생각나서 다시 갖고 오느라 수업 시작시간에 8분 정도 지각한 것이다. 잠깐인 것 같았던 그 사이에 사건이 벌어졌다. 그가 담당한 반의 일곱 살 어린이가 장난을 치다 다섯 살 어린이를 밀어 넘어뜨려 무릎을 다치게 한 것이다. 그가 시간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사고였기에, 원장은 그를 불러 교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나무랐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의도적으로 늦은 것도 아니고, 처음 실수한 건데 너무 한 것 아닌가?’ 하며 박차고 나왔겠지만, 부족한 저를 받아주고 명예교사라는 이름도 선사해 준 원장님과 아이들의 신뢰를 저버렸단 생각에 아무 할 말이 없었어요. 힘없이 유치원을 나와 한창 길을 걷고 있을 때였어요. 갑자기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어요. 동네 꼬마들인 줄 알고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걷고 있었죠. 그런데 한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티처~’라고 부르길래 뒤를 돌아봤더니 우리 반 아이들인 거예요. 제가 원장님께 혼나는 모습을 본 아이들이 저를 위로해주고 싶어 몰래 숨어 1시간 동안 저를 기다렸다고 해요. ‘내가 뭐라고 아이들이 이렇게….’ 그만 왈칵 울음이 터졌죠.”

교사로서 눈물을 보이기가 부끄러웠겠지만, 오히려 아이들은 자신들 앞에서 감격스러워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친근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구멍가게에서 설탕과자를 사와 그늘 밑에서 아이들과 하나씩 나누어 먹다 문득 아이들의 꿈이 궁금했다고 한다.

“네 꿈이 뭐야?”
“전 의사가 돼서 저기 커다란 고물과 쓰레기를 들고 가는 구부정한 할아버지처럼 허리가 아픈 분들을 치료해주고 싶어요.”
“예쁜 옷 많이 만들어서 친구들과 나눠 갖고 싶어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는 아이들이 선풍기 하나 없는 덥고 어둑한 교실에서 갱지를 공책 삼아 공부하는 환경을 문제 삼지 않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웃으며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힘은 꿈이라는 걸 알았다.

“성장통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교사가 해 줄 수 있는 게 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어요. 인생을 살아가는데 원동력이 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힘든 과정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마음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더라고요. 그렇게 놓쳐버린 줄만 알았던 교사의 꿈을 다시 갖게 됐어요.”

제가 교사의 길을 택한 것은 단지 인생 선배로서 제가 겪었던 고민과 어려움을 똑같이 겪고 있는 여러분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꿈 때문이에요
제가 교사의 길을 택한 것은 단지 인생 선배로서 제가 겪었던 고민과 어려움을 똑같이 겪고 있는 여러분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꿈 때문이에요

꿈★은 이루어진다
마음이 절실하면 하늘도 돕는 것일까. 그가 해외봉사를 마치고 복학했을 때, 공대에서도 교직과정을 이수하면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사실 공대생은 가뜩이나 빡빡한 전공 공부와 과제에 치여 교직이수 공부를 하다가도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지난 1년간 인도에서 지내는 동안 큰 꿈을 얻었기에 인생에 있어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로 여기며 교직이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에게 교직이수 공부는 즐거움으로 다가왔고 자연스레 성적도 대부분의 과목에서 A+를 맞았다.

대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 부산디지털고등학교에 근무 중인 과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번에 교사 신규채용을 하는데 지원해보라는 것. 좋은 기회라 여기고 면접을 봤다.

“교사가 되면 목적과 꿈 없이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인성이 가장 중시되는 교육을 하고 싶습니다.”

인성이 먼저 갖춰진 학교를 이상으로 여기는 교장선생님이 그를 좋게 봐주었고, 며칠 뒤 그는 고등학교 교사 신규채용과 대학원 입학시험에 동시에 합격하는 겹경사를 누렸다.

나의 속마음을 먼저 꺼내놓다
학생에게 가장 좋은 교구는 교사의 이론이 아닌, 교사가 실제 삶 속에서 배운 인생의 가치와 경험을 전해주는 것 아닐까. 현재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미래씨는 해외봉사를 하며 변한 자신의 이야기를 종종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우리 가족이 지금 화목하다고 생각하면 손들어보세요.”
“쌤! 우리 가족 완전 콩가루예요!”
“전혀 화목하지 않아요.”
“전 동생이 완전 싫어요.”

한 명 한 명의 가정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낯설어하고 드러내놓고 싶어 하지 않는 학생들의 성향을 잘 알기에 그는 자신의 이야기부터 꺼낸다.

“제가 초등학생 때, 알코올중독에 걸린 것처럼 술을 드셨던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모습을 봤어요. 그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가득한 마음으로 살았죠. 그런데 제가 해외봉사를 갔을 때, 지부장님에게 마음 한편에 어둡게 묵혀두었던 가정사를 털어 놓게 되면서 알았어요. 정작 제가 딸로서 아버지의 입장에서 왜 술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었는지, 가족의무관심으로 인해 얼마나 외로웠을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을요. 너무 죄송스러웠어요.

그렇게 저는 아버지를 용서했고, 냉랭했던 아버지와의 사이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어요. 제가 교사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는 제게 탁월하게 잘 가르치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인생 선배로서 제가 겪었던 고민과 어려움을 똑같이 겪고 있는 여러분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꿈 때문이에요.”

그가 꺼내놓는 잔잔한 인생사를 진지하게 듣는 학생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줌으로써 가족을 향한 불신, 그리고 그 불신에서 비롯되는 비행과 방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다는 것이 교사로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믿는다. 한창 성장과정에 있는 그들을 향해 관심을 놓지 않는다면, 자신이 그랬듯 학생들도 아픔을 뛰어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걸.

김미래
2012년 굿뉴스코 봉사 단원으로 인도에 다녀와 현재 부산대학교 교육학과 교육과정 및 교육방법 전공 석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으며, 부산디지털고등학교 전자교과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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