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힘들게 군생활 하는 사람을 뽑는다면 ‘나’일 것 같다. 새벽같이 일어나 점호에 구보, 훈련, 작업, 밤에는 경계근무까지…. 몸도 피곤한데 선임들의 짜증까지 받아내려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모님께 전화 걸어 하소연하니 “야, 남자가 그 정도도 못 버텨?” 하는 핀잔이 날아온다. 군생활, 왜 나만 힘든 걸까? 선임들로부터 사랑받으며 지낼 수는 없는 걸까? 예비역 병장 여인택 씨의 책 ‘군대심리학’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Q. 군 생활이 정말 힘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제가 힘들어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아무도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으니 말이죠. 그래서 포기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A1. 군대는 자칫 무기력無氣力을 배우기 쉬운 곳
반복적으로 피할 수 없는 부정적인 환경에 노출되다 보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자포자기하기 쉬운데, 이를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과 스티브 메이어Steve Maier는 잔인하고도 매우 중요한 실험을 했습니다. 개를 상자에 가두고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했지요. 첫 번째 그룹의 개가 있는 상자는, 개가 코로 버튼을 누르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의 개가 있는 상자는, 개가 무엇으로 버튼을 누르든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게 설계했지요. 흥미로운 건 24시간 후였습니다.

이후 개들은 새로운 상자로 옮겨졌는데, 그 상자는 중간에 있는 낮은 칸막이를 넘으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그룹에 있었던 개는 담을 넘어 전기충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그룹의 개는 충격을 피하려 하지도 않고 구석에 웅크리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계속적으로 경험한 결과 쉽게 포기하는 경향, 즉 무기력함이 학습된 것입니다.

이 실험은 쉽게 성취할 수 없는 어려운 과제를 반복적으로 주다 보면 학생의 학습능률이 떨어진다는 중요한 교훈을 주며, 이는 군대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겪는 ‘실패’가 많습니다. 주특기를 잘하지 못해 듣는 꾸중은 그렇다 해도, 선임의 이유 없는 괴롭힘, 생활관에서나 교육훈련 중에 발생하는 불합리한 임무 분담 등은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실패의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1년 9개월에서 2년 동안 절망적인 일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면 전기충격 장치 속의 개처럼 어느 순간 무기력이 학습되죠.

이럴 때는 그런 상황을 참기보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전기충격장치에 굴복하고 만 개가 다른 집단의 개들에게 도움을 청했더라면 ‘담만 뛰어넘으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겠지요. 도움을 청하는 말한 마디면 누구라도 그런 경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A2. 도움을 청하는 건 용기 있는 행동이다
무기력의 수렁에 빠지기 전에 “도와주세요!”라고 소리 높여 외쳐야 합니다. 그 한마디가 가진 힘은 생각보다 큽니다.

‘잠깐이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고 물건을 벤치에 둔 채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 다녀와 보니 물건이 없어졌습니다. 놀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으면서 도둑이 물건을 가져가도 신경조차 쓰지 않다니 말입니다.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죄송하지만 제가 화장실이 급합니다. 이 물건 좀 봐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부탁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개인적인 책임감을 안겨줌으로써 물건을 잃어버릴 일을 피할 수 있습니다. 부탁받은 그가 도둑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이처럼 도움이 필요하다고 밝히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필요에 대한 인식 perception of need’이라고 합니다. 당신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 수 있도록 힘껏 외치세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걸 깨달을 겁니다.

샐리그만 교수는 무기력이 학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는데, 그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긍정적인 낙관주의 역시 학습될 수 있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것을 없앤다고 긍정적인 것이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군대든 사회든 우울증 같은 부정적인 것을 없애고 방지하는 데에만 급급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심어줄 수 있는 대안이 병행되어야하는데 말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도움의 메시지를 표출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학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 미시건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여인택 씨의책 ‘군대심리학’에는 장병들이 군생활을 하면서 겪을 만한 상황 45개에 대한 명쾌한 해결책이 실려 있다.
미국 미시건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여인택 씨의책 ‘군대심리학’에는 장병들이 군생활을 하면서 겪을 만한 상황 45개에 대한 명쾌한 해결책이 실려 있다.

Q. 훈련소 생활도 훌쩍 지나고, 어느새 자대로 배치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엄청 떨립니다. 사회에서 알바나 인턴을 하며 면접 볼 때도 이보다 떨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실수하면 어쩌지?’ 싶어 겁도 나고요. 앞으로 2년 동안 같이 지내야 할 사람들을 만나는데, 어떻게 해야 좋은 점수를 딸 수 있을까요?

A1. 인간의 마음, 알고 보면 허점투성이
처음 접한 정보가 어떻게 마음을 제어하는지 실험을 통해 살펴봅시다. 1974년 사회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1부터 100까지 숫자가 적혀 있는 룰렛 회전판을 돌리는 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실 이 회전판은 10 또는 65에서 회전이 멈추도록 미리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참가자들에게 ‘UN에 가입한 아프리카 국가는 몇 개국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놀랍게도 룰렛이 10에 멈추는 것을 본 이들은 그 수를 상대적으로 적게 추측했고, 65에 멈추는 것을 본 이들은 상대적으로 높게 추측했습니다. 룰렛의 숫자와 UN에 가입한 아프리카 국가의 수는 전혀 상관없었지만, 처음에 접한 숫자가 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거죠.

이처럼 사람들이 뭔가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첫인상에 근거하는 것을 ‘닻 내리기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합니다. 닻을 내린 곳에 배가 머물 듯이 처음 입력된 작은 정보가 대상 전체에 대한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믿기지 않습니까?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레스토랑 17’과 ‘레스토랑 97’이 오픈했습니다. 이들 중 어느 레스토랑의 음식이 더 비쌀까요? 아마도 레스토랑 97이라고 답하겠죠. 심리학자 클레이턴 크리처Clayton Critcher와 토마스 길로비치 Thomas Gilovich의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대다수도 레스토랑 97의 음식이 비쌀거라고 추측했습니다. 17과 97이라는 숫자 차이일 뿐인데도 그 숫자가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기준점이 된 거죠.

이쯤 되면 마음이 얼마나 허점투성이인지 알 수 있겠죠.

 

A2. 지금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듯
이런 닻 내리기 효과는 소비심리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명품 브랜드를 싼 값에 내놓았다고 해봅시다. 사람들은 분명히 ‘질이 안 좋아서 싼 걸 거야.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라며 의심할 것입니다. 명품 브랜드의 고가전략이 통하는 이유는 그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마음이 이미 ‘비싼 가격’에 닻을 내린 까닭이죠. 그래서 싼 가격이 이상해 보이는 겁니다.

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닻 내리기 효과에 의해 첫인상이 앞으로의 자대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자대로 간 첫날 선임들의 눈에 비친 이미지가 그들의 내면에 닻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첫사랑의 추억을 잊지 못합니다. ‘처음’이란 단어가 가진 신비한 힘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팁을 알려드리자면, ‘근접효과’가 있습니다. 몇몇 대학에서 한 실험에 의하면, 학생들은 자주 마주치는 상대에게 이유 없이 호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 상대를 전혀 모르는데도 말입니다. 누구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과 친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같은 아파트나 동네에 사는 또래와 더 빨리 친해지는 것도 그렇습니다.

점수를 따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 그 사람 근처에서 마주칠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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