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장학 수기 우수사례

나는 요즘 영상 수업을 즐겨 듣는다. 처음부터 관심 있던 분야는 아니었다. 여러 번의 해외봉사에서 촬영을 담당하며 느낀 매력 덕분에 깊이 있는 공부가 하고 싶었다. 특히 작년부터 꾸준히 듣는 영상분석 수업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이번 학기 첫 영화는 <8月의 크리스마스>이다. 주인공은 사진사이다.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지만, 전처럼 사진을 찍으며 평범한 여생을 보낸다. 렌즈 밖 사람들을 관찰하는 그의 직업을 볼 때, 사진사의 삶이란 다른 사람의 생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는 메시지가 내게는 어렵지 않게 다가왔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인생은 계절과 함께 흘러간다. 계절이 언제 시끄럽게 온 적 있던가.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의 삶은 평범했기에 아름다웠다.

‘내게 8월은 어떤 의미일까?’ 영화를 보며 스스로 물었다. 지구별 꿈 도전단 이후, 나의 8월은 한여름보다 더 뜨거운 자신감을 가졌음을 깨닫는 시기였다. 누군가는 평범하다 할지 몰라도, 이 글은 마지막 학년을 맞아 쓰는 대학생활의 마무리랄까. 영화 한 편을 본 평론가의 마음으로 대학교에 입학해 지금까지 겪은 여름들을 차근차근 따라가려 한다.

 

라오스 학생이 마치 화가가 그린 듯한 풍경화를 그려주었다.
라오스 학생이 마치 화가가 그린 듯한 풍경화를 그려주었다.

2012년 여름부터 2013년 여름
전남 나주 시골에서 상경한 새내기의 첫 여름방학은 허무했다. 주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던 나는 이른 휴학을 결심했다. 동시에 휴학하기 전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기숙사 룸메이트의 조언으로 해외봉사를 지원하여 라오스에 다녀왔다. 시골 아이의 눈에 비친 그곳은 아직도 생생하다. 렌즈를 통해 본 마젠타(4원색 중의 하나로 빨강보다는 보라가 약간 섞인 심홍색) 빛의 라오스,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고 실컷 담았다. 그때부터 일회성의 봉사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던 것 같다. 혼잣말로 ‘다시 오겠다’ 다짐했다. 나는 휴학한 후에도 해외봉사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보고 지원했다. 인도네시아로 떠난 두 번째 해외봉사는 아주 소수를 대상으로 진행됐던 이전의 활동과 달리, 큰 규모의 활동이라 그런지 성격이 달랐다. 활동을 할수록 드는 한 가지 생각은 직접 팀을 꾸려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렌즈로 본 마젠타 빛의 라오스를 배경으로 신나게 게임을 즐기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고 실컷 담았다.
렌즈로 본 마젠타 빛의 라오스를 배경으로 신나게 게임을 즐기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고 실컷 담았다.

2014년 여름부터 2015년 여름
실현할 기회는 멀리 있지 않았다. 라오스 해외봉사에서 인연을 맺은 선배가 먼저 내게 손을 내민 것이다. 그동안 해외봉사나 영상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던 선배였다. 함께 프로젝트를 짜보지 않겠냐고, “다시 오겠다”라고 한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분명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믿었고 함께 라오스를 다녀왔던 다른 멤버들을 모았다. 그렇게 ‘응답하라오스’가 첫 걸음을 뗐다. 모든 팀들이 그렇겠지만 우리가 서류심사를 통과할 것이라고, SNS응원전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면접을 잘 해낼 것이라고 확언할 수 없었는데, 최종 스무 팀에 선정되었다. 우리 팀을 선정해주시고 소중한 기회를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그토록 가고 싶었던 라오스 땅을 다시 밟았다. 오전에는 루앙프라방에 위치한 국립 고아원학교에서, 오후엔 수파누봉 대학교에서 활동했다. 두 곳 모두 컴퓨터 관리 수준이 심각했다. 기증 받은 컴퓨터들은 불안정한 전기 설비에 방치되었고, 번개를 맞아 망가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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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은 IT교육만 계획했지만, 컴퓨터 문제를 파악해 컴퓨터 수리 교육까지 범위를 넓혔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성실하게 따라와 주었다. 우리도 긍정 에너지를 받아 숙소에 돌아와서도 열심히 회의하고 만들어온 자료를 수정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는 미디어 담당이었으나 컴퓨터 수리법을 배워 수리 담당으로도 활동했다. 봉사인원 네 명이 전부라 일이 버거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카메라맨으로서 알 수 있었던 사실은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담겼다는 점이다.

계획했던 2주가 지나고 우리는 서로 결과물을 발표했다. 키보드도 어색해하던 아이들이 파워포인트를 활용해 관중들 앞에서 멋지게 발표했을 때, 내 눈은 카메라가 아닌 아이들을 향하고 있었다. 눈에 직접 담고 싶었나보다. 우리 팀의 결과 보고는 전적으로 나의 것이었다. 얕은 프로그래밍 실력 탓에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구현하지 못하는 나 스스로가 미웠다. 그러나 옆에서 한결같이 응원해준 팀원들이 있었기에 다시 힘을 냈다.

활동 마지막 날 준비한 영상을 보여줄 때, 나는 진한 감동을 느꼈다. 형편없는 영상에도 불구하고 손뼉쳐주는 아름다운 아이들과 선생님들. 스크린이 없어 흰 색 벽면에 펼쳐진 영상의 모양이 틀어지기도 했지만 그 모습은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있다. 그때 준비해 놓았던 영상 덕에 한국으로 돌아온 뒤의 활동 보고 작업은 수월했지만 부담은 두 배였다. 결과를 어떻게 보여주는가도 과정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팀원들은 우리가 상을 받기 위해 봉사한 것이 아니듯이, 우리가 가서 무얼했는지 진심을 담아 만들면 된다며 격려해주었다. 결과는 대상! 네 명 모두 기대하지 않았던 상이라 어안이 벙벙한 채로 인터뷰를 하고 사진촬영을 했다. 합격했다는 소식을 SNS에 올렸을 때, 친구 한 명이 ‘콘텐츠에 진실함이 더해지면 못 이룰 게 없다’는 댓글을 달았다. 그 함의가 대상을 받고 나서야 와 닿았다. 아주 멋진 마무리를 지을 수 있어 행복한 날이었다.

 

 
 

도전은 계속된다!
2015년 8월 26일, 해단식을 한 지 딱 1년째 되는 날이다. 개강을 앞둔 졸업반이지만 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그동안 나와 우리 팀의 리더는 해외봉사 프로그램스태프가 되어 활동했다. 큰 임무에 따르는 책임감이 무겁기도 했지만, 지구별 꿈 도전단에서 다져놓은 탄탄한 밑거름 덕분에 잘 해낼 수 있었다.

다른 멤버들은 사회의 일원으로 열심히 활동하는 중이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물어본다. “해외봉사 한 번 갔으면 됐지 또 가?” 지구별 꿈 도전단을 통해 찾은 나의 목소리를 내 보자면, 해외봉사를 향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있었기에 내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대답하고 싶다. 자신감을 잃고 휴학을 결심했던 시골 아이에서 이제는 큰 프로젝트의 스태프로, 그리고 영상학도로 자라날 수 있었다고 말이다.

앞으로도 나는 더욱 멋진 활동을 향해 지구가 작은 별로 보일 때까지 도전할 것이다!

 

 
 

유한솜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신념으로 시골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해외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는 졸업반. 홀로 걸어서 국토를 종주할 만큼 패기가 있다. 현재 다섯 번째 해외봉사를 하고 돌아와 유럽 여행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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