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 탈출하기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자신의 책 <프레임>에서 계획을 세웠지만 실패하는 원인을 자신의 의지에 지나치게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불타는 의지, 각오, 과거의 실수에 대한 깨달음,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는 자기확신 등을 보면서 현재의 의지가 미래에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하지만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은 수시로 변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욕도 친구와의 말다툼, 어머니의 꾸중, 예상 못한 트러블, 혈당이나 호르몬의 변화 등 작은것에 언제든 사그라들 수 있다. ‘나’라는 존재는 절대 이성적이지 않다.

마트에 갔다가 ‘이것도 사야지, 저것도 사야지’ 하며 자기도 모르게 카트 가득 물건을 샀다가 계산대에서 당황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도 새해라는 분위기에 취한 나머지 ‘새해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하고 지키지도 못할 계획을 세웠다가 결국 좌절에 빠지는 게 아닐까.

 
 
인간은 혼자 힘으로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수시로 흔들리는 자신을 믿을 수 없다면 혼자서 아등바등 애를 쓰기보다 멘토를 찾아 도움을 받는 건 어떨까. ‘멘토mentor’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유래된 말이다. 오디세우스 왕은 트로이 전쟁에 출전하면서 아들 텔레마코스를 친구 멘토에게 맡겼다. 멘토는 자상한 친구, 엄한 아버지 노릇을 하며 텔레마코스를 정성껏 키웠다. 10년 후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오디세우스 왕은 아들이 훌륭한 청년으로 자란 것을 보고 ‘과연 멘토다!’라며 크게 기뻐했다. 그때부터 멘토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정신적 스승이나 인도자를 뜻하게 되었다.

멘토라고 해서 꼭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거나 연배가 높은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공부나 운동 등 목표를 공유하는 주변의 친구도 얼마든지 서로에게 건전한 자극을 주는 멘토가 될 수 있다. 최근 출시되는 운동용 스마트폰 앱이나 스마트워치에 같은 제품을 쓰는 사람들끼리 서로 운동량을 비교하는 기능이 탑재되는 것도 같은 원리다.

최근에는 화상채팅을 활용해 서로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독려하는 ‘웹캠·SNS 스터디 모임’도 생겨났다.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이 나태해지는 자신을 절제하기 어려워지자, 뜻이 맞는 학생들과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독서실 출석시간, 공부량, 쉬는시간 등을 화상카메라나 SNS로 점검하고 어길 경우 규제를 가하는 모임을 만든 것이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이를 두고 ‘과거와 달리 정보·통신 환경이 발달하면서 예전과 다른 식으로 자신을 통제해 목표를 이루려는 젊은이 특유의 방식’이라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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