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K팝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아이돌 스타들의 무대를 보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철저한 자기관리의 결과물인 날씬한 몸매와 수만 명 관객들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담력. 무엇보다 서너 명, 많게는 열 명 가까운 멤버들이 팔다리 각도까지 똑같게 한 몸처럼 움직이는 군무群舞야말로 아이돌 매력의 정점頂點이다. 때로는 발목이 접질리더라도 진통제까지 맞아가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연습에 매달리는 아이돌들이지만, 그 칼군무는 단순히 연습을 많이 한다고 나오는 건 아니다. 기자이자 영화감독인 이학준 씨가 실제 걸그룹 매니저로 1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 <대한민국에서 걸그룹으로 산다는 것은>에 실린 이야기를 살짝 엿보자.
모델파는 모델파대로 연습 무단이탈로 응수하며 대립각을 세워 나갔다. 스타제국 본부장과 매니저들은 그런 소녀들을 호되게 다그치고, 좋은 말로 타일렀다. 하지만 몇몇은 여전히 연습 때면 흐느적대는 춤과 건성건성 부르는 노래로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모래알처럼 하나하나는 반짝이지만 결코 진흙처럼 뭉치지는 못하는 이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뜻밖에 반전의 계기가 찾아왔다. 그들에게 드림콘서트에 출연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매년 5월 무렵 열리는 드림콘서트는 10대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톱가수들만이 설 수 있다. 장소는 수용인원 6만 명의 상암 월드컵경기장. 국내 팬들만 아니라 세계의 K팝팬들이 달려오는, 말 그대로 꿈의 무대다. 자기네 가수들을 출연시키려는 기획사들의 경쟁이 하도 치열해, 주최측은 기획사마다 두 팀에만 출전권을 주었다. 그 중 하나가 아직 정식 데뷔도 하지 않은 그들에게 배당된 것이다.
“나뮤, 나뮤! 파이팅!”
구호를 외치며 본 무대에 오른 나인뮤지스의 공연은 그 어느 때보다 완벽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시큰둥하던 관객들도 어느 새 열띤 응원과 박수를 보냈으니까. 아니, 완벽을 넘어 아름다웠다. 행여 동료들이 턱에 걸려 넘어질까봐 사인을 주고받는 배려심을 보였다. 자기 파트가 끝나면 다음멤버가 카메라에 잘 나오도록 몸을 살짝 굽히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동안 마음에 쌓아왔던 벽을 허물고 나니 어느새 눈빛 하나만 봐도 척척 통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화려한 의상과 현란한 춤 솜씨보다, ‘One for All, All for One’, 하나가 된 그 마음이 아홉 명의 아가씨들을 한껏 빛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