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 속 인턴, 사장의 멘토가 되다

주인공 벤은 친화력이 남다르다. 사람들이 찾아와 연애상담에서 가정불화, 사업적 고민까지 저마다의 사연을 꺼내놓는다. 직장에서 인턴인 그가 인간관계에서는 베테랑 해결사 역할을 하는 비결은 무엇인지 영화 스토리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30세 여성 CEO와 70세 시니어 인턴의 만남
지난 추석에 개봉된 영화 <인턴>이 누적 관객 300만 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별다른 홍보도 없이 입소문만으로 전체 박스오피스 2위를 유지하고 있다는데,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가는 어떨까? 여배우 앤 해서웨이의 싱그러운 미모와 출중한 패션 감각이 흥행을 북돋우고 있음은 당연한 얘기이고, 위아래 경계 없는 요즘 사회에 진정한 ‘어르신’을 연기한 로버트 드니로의 매력도 한몫을 한다는 게 공통된 반응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한 편이다. 주인공은 창업 1년 반 만에 온라인 패션몰 회사를 급성장시킨 30세의 여성 CEO 줄스 오스틴. 그 회사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시니어 인턴을 모집하는데 여기에 기업 임원 출신의 70세 벤 휘태커가 지원한다. 그는 면접시험에서 “음악가들은 은퇴가 따로 없다고 합니다.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죠. 제 안에는 아직 음악이 남아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가능성이 남아 있는데 나이 때문에 밀려난 벤은 마침내 인턴 재취업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그는 40년 직장생활의 경험을 살려 디지털 분야의 낯선 기업문화에 적응해간다.
한편, 깐깐한 일 중독자 줄스는 고령의 인턴이 불편했는데 어느 날 벤의 솔선수범한 행동과 따스한 마음을 발견하면서 그에게 운전대를 맡긴다. 출퇴근길을 함께 하는 벤의 눈에 줄스의 애달픈 삶이 조금씩 드러나는데… 회사에서는 창의적이고 명쾌한 결단력을 보이는 사장이지만, 그녀의 마음은 늘 헛헛하다. 투자자들은 그녀 대신 전문 경영인 영입을 거론하고,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여자와 바람난 상태다. 회사, 집안 문제를 속 시원히 털어놓을 곳 없는 줄스에게 아버지 연배의 벤은 깍듯한 태도로, 충심어린 조언을 건넨다. 그런 가운데 ‘인턴’ 벤은 점점 줄스의 마음에 ‘멘토’로 자리매김해 간다는 것이 대강의 스토리이다.

 
 
관계의 베테랑 벤이 발산하는 무한신뢰
요즘 사람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것이 대인관계라는데, 영화의 해피엔딩에서 벤을 보며 관객들은 부러움과 선망의 눈빛을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1973년식 가죽 가방에 필기구, 메모장, 커다란 계산기를 챙겨 다니는 그가 어떻게 온라인 직장에서 최고 인기를 얻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가 주는 무한신뢰가 답일 것이다. 벤에게는 상대방 마음의 빗장을 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마치 이솝 우화에서 나그네 옷을 스스로 벗게 하는 해님처럼 말이다.
줄스가 회사일로 갈등하고 있을 때, “혼자 시작해서 직원 220명의 굉장한 회사로 키운 게 누군지 잊지 마세요. 남들은 꿈만 꾸고 있을 때 사장님은 해내셨어요.”라고 말해주는 벤. 그는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는 것과 발을 내딛고 나아가는 것의 현격한 차이를 잘 안다. 직장생활 수십 년에 그도 독립하고 싶은 때가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은퇴할 때까지 꿈만 꿨던 자신과 달리 실제 이뤄낸 서른 살의 줄스를 벤은 온 마음으로 존경한다.
여자친구와 다퉜다는 직원에게는 이메일 말고 ‘직접 사과’라
는 정면돌파를 권하고, 부모님께 쫓겨나게 된 직원에게는 자기 집 방을 내주는 벤. 그런 그를 누가 마다할까? 지금은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것들이 수두룩한 세상이다. 불임여성은 인도인 대리모를 6250달러에 구할 수 있고, 멸종 위기의 검은 코뿔소는 15만 달러만 내면 사냥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벤이 가진 신뢰감은 돈으로 결코 구할 수가 없다.

사람이 서로의 허물이나 약한 부분을 알게 되면 마음에 연결고리가 생긴다. 누군가의 재난이나 고통을 내 마음에서 받아들일 때 의외의 친밀감과 신뢰감이 싹트는 법이다.
사람이 서로의 허물이나 약한 부분을 알게 되면 마음에 연결고리가 생긴다. 누군가의 재난이나 고통을 내 마음에서 받아들일 때 의외의 친밀감과 신뢰감이 싹트는 법이다.
벤의 무한신뢰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살 수 없는 신뢰감을 벤은 어떻게 마음에 구축했을까? 잠깐,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일부를 소개한다.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내버려두면 살이 찌는 체질이다. 대조적으로 아내는 아무리 먹어도, 운동을 하지 않아도, 살이 전혀 찌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인생은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노력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을, 어떤 사람은 노력하지 않고도 쉽게 얻는다. 그런데 살찌기 쉬운 체질로 태어난 것이 도리어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체중이 불어나지 않도록 매일 열심히 운동하고 식사도 절제해야 한다. 골치 아픈 인생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몸은 건강해진다. 그런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의 사람은 운동과 식사에 유의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체력이 점점 쇠퇴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이 공평한가’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는 법이다.”
체질적 약점을 가진 하루키처럼, 벤도 내세우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자신이 반평생 종사해온 전화번호부 인쇄업종은 아예 사라질 상황이고, 디지털 업무수행력 제로, 아들 부부도 반기지 않는 홀아비 신세에, 실속 없는 월급쟁이 임원 출신이라는 경력이 그렇다. 그런데 하루키처럼 벤도 그 약점들을 행운으로 받아들였다. 숨기거나 은폐시키지 않고 주변에 오히려 더 보여준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지금 심정은 이렇다고…’ 그러자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온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허물이나 약한 부분을 알게 되면 마음에 연결고리가 생긴다. 누군가의 재난이나 고통을 내 마음에서 받아들일 때 의외의 친밀감과 신뢰감이 싹트는 법이다.

내 주변의 동료, 선후배, 상사, 친구들 중 한 명이 벤과 같다면, 그래서 그에게 내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내 행복의 절반은 이미 이룬 셈이 아닐까.
내 주변의 동료, 선후배, 상사, 친구들 중 한 명이 벤과 같다면, 그래서 그에게 내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내 행복의 절반은 이미 이룬 셈이 아닐까.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으면 근육이 굳듯이, 마음도 체면이나 자존심에 가둬두면 경화된다. 먼저 마음을 열어보자. 사람 마음은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 상대에게 잘난 모습을 보이려고 하니 관계가 버겁고 삶이 팍팍해진다. 벤은 피오나와의 첫 데이트에서 약점투성이의 자기 소개부터 시작했었다.
벤의 또 다른 면모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자신의 풀이방식이 틀릴 수 있음을 말투나 표정에 담아냈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은 신뢰감 얻기가 수월하다. 성품이 유리 같은 사람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지고, 그래서 자기가 받은 상처에만 집중한다. 그 파편들이 남에게 흉기가 될 가능성은 인정하지 않은 채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믿어온 신념, 경험, 지식들이 잘못된 것일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는 벤, 그런 사람은 행복이 곁에 머문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십중팔구 벤처럼 나이들고 싶다 말한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만약 그렇지 못하더라도 주변의 동료, 선후배, 상사, 친구들 중 한 명이 벤과 같다면, 그래서 그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행복의 절반은 이미 이룬 셈이 아닐까 싶다.


글 | 조현주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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