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여행가 도용복 회장

세상에 이토록 자유로운 삶을 살다니! 300백 일은 기업 경영으로, 65일은 오지 탐험으로 산다는 (주)사라토가 도용복 회장. 올해 나이 72세인 그가 ‘더 늦기 전에, 가슴이 뛸 때 떠나야 한다’고 마음먹고 다닌 지 22년째. 무역상도 아닌 그가 147개국을 두루 다닌 여행전문가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리 건강을 자신하더라도 현지 시차 적응부터 음식, 잠자리, 의복 등 불편한 일이 한둘이 아닌데, 청춘도 아닌 50대에 도용복 회장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를 부지런히 다녔다. ‘지금 하지 않는 일은 영원히 못 한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인생의 로드맵을 다시 그렸기 때문이다.
청년 때 정말 하찮은 사람이었다고 스스로를 말하는 그는 바닥에 등을 붙이지 않겠다는 각오와 일념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정점에 오를 즈음 건강에 이상 신호가 왔는데 베트남 전쟁 당시 비행기가 지나다니며 시원한 물을 뿌려주는 것을 기뻐하며 땀을 씻어낸 그 물이 원인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40대에 고엽제의 후유증을 앓고, 악화된 건강 때문에 고통의 시간을 일에 몰입한 도 회장. 그는 버킷리스트에 슈바이처의 봉사지인 아프리카 가봉부터 남미의 아마존 오지까지의 여행을 적어놓았고, 더 늦기 전에 시작해보리라 다짐했다.

지구 건너편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다
도 회장은 첫발을 내디뎌 시작한 오지 여행에서 ‘외로움’을 느꼈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알게 됐다. 그래서인가 타지에서 경험하는 작은 베풂과 손길에도 감동을 느꼈다.
“타지에서 끼니에 허덕이던 내게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이 웃으며 건넨 야채에서, 어린 시절 당신 드시라고 어렵사리 장만한 암탉을 “아들놈 튼튼해야지”라며 내 보리밥 위에 무심히 던지신 아버지의 정을 느꼈습니다. 올리브 수확을 멈추고 밥 보따리를 풀어 같이 먹자며 소매를 끌던 모로코 아낙들의 손길에서 한겨울 가마솥에 고이 챙겨둔 고구마를 몰래 꺼내 손자 손에 한 움큼 챙겨주던 할머니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마치 자연주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나는 마침내 소박함 속에서 참다운 삶을 살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미래의 북소리를 들었다”며 문명을 벗어나 숲 속에서 살며 느낀 마음을 작품 <월든>에서 자세히 표현한 것처럼, 도용복 회장 역시 세계 오지의 뒷골목에서 소박한 서민과 그들의 문화를 만나면서 삶을 반추했다.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났고, 문화를 접했고, 서민들의 음악을 들었다. 그는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도 고정관념도 사라졌다고 고백한다. 특히 아마존 여행 중 지구 반대편 안데스 산맥 속 타킬레 섬의 삶은 ‘그 자신의 고향’을 떠올리게 했다. 흙담 너머 보이는 길과 옥수수밭, 티티카카 호수는 그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인디오 여인들이 달걀과 야채, 감자를 이고 나와 판 뒤 일용 잡화를 사는 모습은 마치 고갱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했다. 아마존 정글 속의 인디오 일가족을 만난 기억들, 운동회 때 만국기처럼 널려있는 마당의 빨래, 새소리, 바람 소리가 그의 몸과 마음을 머물게 했다.

물이 귀한 나라, 시에라리온 프리타운 시내를 지나는 아이들의 양손에는 물통이 들려있다.
물이 귀한 나라, 시에라리온 프리타운 시내를 지나는 아이들의 양손에는 물통이 들려있다.
중미에서 가장 넓은 나라 니카라과에는 수많은 화산이 있다. 거리 행사에서 만난 이들.
중미에서 가장 넓은 나라 니카라과에는 수많은 화산이 있다. 거리 행사에서 만난 이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첫 인상은 아주 산뜻하다. 핵문제로 반미 열기가 이란을 덮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그런 낌새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첫 인상은 아주 산뜻하다. 핵문제로 반미 열기가 이란을 덮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그런 낌새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야루보족 여인들이 아이를 안고 물길을 지나고 있다. 아마존 여전사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웃음짓는 그녀는 여느 인디오와 다르지 않다.
야루보족 여인들이 아이를 안고 물길을 지나고 있다. 아마존 여전사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웃음짓는 그녀는 여느 인디오와 다르지 않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자 요르단 최고의 역사 보물 '페트라'. 사막 한가운데 건설된 고대 도시를 탐험하는 그는 역사 앞에, 대자연 앞에 한낱 미물인 자신을 자주 발견한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자 요르단 최고의 역사 보물 '페트라'. 사막 한가운데 건설된 고대 도시를 탐험하는 그는 역사 앞에, 대자연 앞에 한낱 미물인 자신을 자주 발견한다.
길 위의 학교, 배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비록 TV나 전기가 없는 곳에 살지만 이방인에게 스스럼없이 야채며 밥을 나눠줄 수 있는 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동정이든 인류애든 상관없이 인간 본연의 순수성이라 믿어요. 여행의 매력이 그런 인간의 심연을 차곡차곡 담아가는 게 아닌가요. 여행을 통해 때론 비정하고 때론 거친 인생에서 결과를 중시했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소하게 얻는 과정의 중요성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인가 그는 50세의 나이에 여행을 시작했고 70세가 넘은 지금도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여행을 시작할 때도 그의 짐은 간편하다. 현지에서 단돈 몇 달러짜리 중국제 옷을 사 입고 침낭과 모기장만 들고 다니는 여행길은 그에게 배움의 학교였다.
“화장실과 샤워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으로 가다 보니 혼자 떠나는 여행을 많이 합니다. 147개국 중의 100개국 정도가 혼자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음식도 저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어서 아주 맛있게 먹습니다. 벌레나 뱀, 심지어 식인 물고기도 먹어보았습니다.(하하하) 신기한 것은 여러 나라를 여행할수록 몸과 마음이 좋아졌어요. 특히 돈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사람과 자연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나눔에 대한 열망도 커지고 사업에 몰두할 때 느낄 수 없는 충만함 또한 경험하게 됐습니다.”
매년 10개국을 여행하는 그는 책상 앞에서 고민하는 청춘보다 더 열정적으로 지구촌 오지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지혜와 지식을 배웠다.
아프리카에선 초원을 내달리는 집채만 한 코끼리 떼의 습격을 받아 죽을 뻔했고, 남아공의 케이프타운 빈민가에선 강도를 만나 목숨만 겨우 건지기도 했다. 브라질의 아마존에선 먹이를 찾아 강가로 내려온 재규어의 습격을 받아 상처를 입기도 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도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삶은 남루해도 마음은 부자인 지구촌 곳곳의 사람 때문이었다.

음악과 함께하는 세계 여행
이런 사연이 이슈가 되어 10년 전부터 그는 기업과 대학가에서 꾸준히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내고 있다. 기자를 만난 날 그는 잠시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기 건너편으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는 빠르게 작은 수첩을 펼쳐 들었다. 이미 빼곡하게 적혀있는 스케줄 사이로 새로운 강연이 잡히는 순간이었다. 도 회장이 강연에서 무엇보다 뺄 수 없는 것은 음악에 관한 이야기이다. 파바로티에게 사사한 적이 있을 만큼 그는 음악에 열의가 높다.
“브라질의 삼바, 아르헨티나의 탱고,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적도 부근에서는 그들의 인정만큼이나 경쾌한 리듬이 흐릅니다. 축제의 나라 엘살바도르에서는 음악회나 공연장에서 보는 공연보다는 거리 연주단이 눈에 많이 띕니다. 흥겨운 라틴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이 절로 흥을 돋우는데, 평균 나이 65세가 넘는 할아버지들이 3~12명으로 구성된 밴드도 있습니다. 동유럽으로 여행을 시작한 것은 음악에 대한 동경 때문으로, 자녀 교육 문제로 오페라에 큰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장미의 나라 불가리아, 체조요정 코마네치로 유명한 루마니아, 동양적 아름다움이 넘치는 부다페스트, 조용한 음악의 도시 프라하 등 동유럽의 국민 생활 자체에 음악이 늘 함께합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그는 유언장을 써놓고 마지막을 준비한다. 젊은 날 최선을 다해 살았고, 자신을 찾기 위해 항상 떠날 준비를 했던 그에게 지구 저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늘 위험이 따르는 여행이기에 가족을 염려한 작은 배려였다. 사람들을 만나 울고 웃었던 그가 청춘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의사소통이 안돼 못 간다는 사람은 의사소통이 되어도 못갑니다. 돈이 없어서 못 간다는 사람은 돈이 생겨도 못 갑니다. 지금 한발 내디뎌 전 세계로 떠나보십시오.”


사진제공 | (주)사라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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