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 총장의 2박 3일 홈스테이 in 서울

지난 7월, 제3회 세계 대학총장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조르각 카사니Jorgaq Kacani 총장. 알바니아 최대 규모 공과대학인 티라나폴리텍대학을 이끄는 그는 한국의 건축과 기술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포럼을 마친 뒤에는 건축가 오충환 씨의 초대로 한국 가정집에서 사흘간 머무르며, 사회와 문화 전반을 둘러보았다. 민박에 동행해 그의 한국 방문 소감을 들어보았다.

 
 
남동유럽에 위치한 알바니아, 이탈리아와 그리스 사이에 있는 한반도 면적의 7분의 1 정도의 나라이다. 냉전기 동구권에 대한 이미지 때문인지 왠지 딱딱하고 메마른 인상의 유럽인이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를 처음으로 만나던 날 기자가 느낀 건 푸근함이었다. 작년에도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바쁜 일정에 행사가 끝나고 곧바로 떠나느라 한국의 많은 것들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해 아쉬웠다고 한다. 이번에는 며칠 더 한국에 머물 수 있어 다행이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그가 이번 민박을 얼마나 기대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민박집에 도착하자 귀여운 꼬마 형제가 우리를 맞이했다. 그는 아이들을 무척 예뻐했다. 두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뽀뽀 세례를 하는 모습을 민박 내내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늦은 밤, 간단한 다과와 함께 식탁에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마치 아들 내외와 손주들과 함께 둘러앉은 할아버지마냥 다정해 보였다.

민박 기간 동안 조르각 총장을 내내 웃음 짓게 했던 집주인 오충환 씨의 아들 재롱둥이 현우.
민박 기간 동안 조르각 총장을 내내 웃음 짓게 했던 집주인 오충환 씨의 아들 재롱둥이 현우.
옛 정취 물씬 풍기는 민속촌에서 징검다리를 건너며 손을 흔드는 총장과 가족들.
옛 정취 물씬 풍기는 민속촌에서 징검다리를 건너며 손을 흔드는 총장과 가족들.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보며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다
이튿날, 관광에 나선 조르각 총장과 민박집 가족은 차에 몸을 실었다. 쭉 뻗은 서울 외곽순환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용인에 위치한 한국민속촌.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하던 조르각 총장에게는 최고의 장소였다. 전통혼례식과 마상무예를 보고, 엿과 냉면도 먹고, 건축가인 오충환 씨가 들려주는 아궁이나 온돌, 대청마루, 초가지붕 등 한국 전통건축에 대한 설명에는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기울였다. 한국의 전통가옥을 재현한 집들과 마을들이 오늘날 발전된 한국의 모습과 대비되어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옛날 집과 생활방식 등 과거 한국인들의 삶이 어땠는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 포럼기간에는 국립 과천과학관을 방문해 첨단기술을 보았습니다.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공부시키는 것도 학생들이 정보와 지식을 다루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티라나폴리텍대학교 산하에는 전자전기, 기계공학, 도시공학, 광산학鑛山學, 지리학, 수학, 정보통신학 등 7개 대학이 있다. 알바니아 산업과 과학을 이끌어갈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교육자로서 조르각 총장은 자연스레 한국의 건축이나 공업, 통신기술 등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자동차 창 밖으로 보이는 고층빌딩이나 고속도로, 다리 등을 유심히 쳐다보는가 하면, 알바니아에서도 현대 자동차와 삼성 휴대폰을 본 이야기도 했다. 한국의 발전한 모습을 보면 한국 공과대학의 높은 수준이 느껴진다며, 한국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가는 게 기쁘다는 말도 놓치지 않았다.

알바니아 나라 위치 및 소개정식 명칭:알바니아 공화국공용어: 알바니아어인구: 289만 명면적: 28,748 평방미터지리: 국토의 70%가 산악지대이고, 해안지역은 지중해성 기후이다.
알바니아 나라 위치 및 소개정식 명칭:알바니아 공화국공용어: 알바니아어인구: 289만 명면적: 28,748 평방미터지리: 국토의 70%가 산악지대이고, 해안지역은 지중해성 기후이다.

민주주의는 큰 선물
알바니아는 1992년까지 공산국가였다. 조르각 총장도 2,30대를 공산정권 아래에서 보냈다. 당시를 회고해보면 어려움도 많았고 맘대로 할 수 없는 것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어려움은 그가 더욱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던 촉매가 되었고, 열심히 공부한 덕에 당시로선 굉장히 높은 수준의 학교를 다니며 교수가 될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많은 것이 나아졌다고 말하는 그. 그는 민주주의를 큰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에게 자유가 허락되어 누구든 도전해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산업이 발달하고 정치가 안정된 한국을 보며 그러한 사실을 더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극복해낸 그였기에 오늘날 학생들이 큰 열정 없이 사는 모습이 많이 안타깝다고 한다.
“자유 안에서 마음껏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삶이 풍족해지면 젊은이들의 사고력은 쇠퇴한다고 합니다. 자칫 편안한 삶에 안주하려는 데서 벗어나 더 깊이 사고하고, 좋은 환경이 주어진 만큼 사회와 나라를 더 크게 발전시키는 것이 오늘날 젊은이들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새끼를 꼬아 짚신을 만드는 과정이 흥미로운지 슬며시 옆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새끼를 꼬아 짚신을 만드는 과정이 흥미로운지 슬며시 옆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에선 많은 것을 주고픈 한국인의 정이 느껴진다.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에선 많은 것을 주고픈 한국인의 정이 느껴진다.

친자식처럼 학생들을 여긴다는 그의 리더십
조르각 총장에게 학생들은 어떤 존재일까? 어떤 마음으로 대학을 이끌고 있냐는 질문에 총장은 ‘사람을 섬기는 마음’이라고 답했다. 가장이면 가장, 총장이면 총장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주변의 모든 이를 섬기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리더십이다.
학생들을 친자식처럼 여긴다고 말하는 그는 학생들이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사무실 문을 늘 열어둔다고 한다.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그런 그에게 배운 제자들이 성장해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낀다는 그를 보면서 ‘진정한 스승의 마음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알바니아는 유럽 내에서도 청년 인구의 비율이 높다. 하지만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어 경쟁이 치열해진 탓에 돈을 벌기 위해 이민 가는 젊은이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젊은이들을 위해 조르각 총장은 대학 내 연구를 활성화하고 스포츠와 다양한 문화활동을 즐길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대학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그런 학생들이 많아지는 것이 곧 나라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학생들과 학교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총장선거 투표결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처음에는 57%의 지지를 받고 총장으로 뽑힌 그가 다음 선거에서는 98%의 높은 지지율로 총장직 재선에 성공한 것이다. 현재 그는 자신을 믿고 뽑아준 학교를 다시 섬기고자 교육여건의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짧았던 2박 3일의 민박 동안 조르각 총장과 오충환 씨네 가정은 가족처럼 가까워졌다. 작은 것 하나에도 늘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표하는 총장을 보며 오충환 씨 부부는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고 한다. 공항에서 아쉬운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가족들 모두에게 진한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고는 ‘꼭 알바니아의 우리 집에 방문해 달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게이트를 지나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에 우리는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서로 섬기며 따뜻했던 지난 3일을 추억하면서 말이다.

담당 | 김성훈 기자 사진 | 박수정 캠퍼스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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