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질랜드 의료봉사 첫날, 한 청년이 퉁퉁 부은 얼굴을 안고 이승호 원장을 찾아와 고통을 호소했다. 어금니 충치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잇몸에 고름이 가득찬 것이다. 치과치료가 처음인 청년이 두려움에 소리치며 우는 바람에 간신히 고름을 뽑아내고 돌려보냈다. 다음날 다시 찾아온 청년은 활짝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작은 의술이 누군가를 기쁘게 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흥분되는지! 이만큼 보람된 휴가가 또 있을까.

이승호옥수수치과 대표원장. 굿뉴스의료봉사회 회원으로 매년 여름 아프리카를 찾아 환자들을 치료하며 의사의 사명감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을 갖는다. 2008년부터 케냐, 가나, 말라위, 케냐, 코트디부아르, 탄자니아, 케냐, 스와질랜드 순으로 방문하며 의료봉사를 펼쳐왔다.
이승호옥수수치과 대표원장. 굿뉴스의료봉사회 회원으로 매년 여름 아프리카를 찾아 환자들을 치료하며 의사의 사명감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을 갖는다. 2008년부터 케냐, 가나, 말라위, 케냐, 코트디부아르, 탄자니아, 케냐, 스와질랜드 순으로 방문하며 의료봉사를 펼쳐왔다.
옥수수치과 이승호 대표원장은 2008년부터 매년 아프리카에서 여름휴가를 보낸다. 올해는 8월 6~13일, 한국인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남동부의 스와질랜드로 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둘러싸여 있고, 동쪽으로 모잠비크와 인접한 스와질랜드는 남한 면적의 6분의 1, 인구 125만 명의 작은 나라다. 고산지대, 열대우림, 동물의 왕국의 무대인 사바나 지대로 이뤄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과 달리, 스와질랜드 사람들은 절대빈곤과 질병 속에서 살아간다. 만성 통증, 부인과 질환, 안질환 환자등도 많을 뿐만 아니라, 일부다처제로 인구대비 에이즈 환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으며, 평균수명도 세계 최하위인 32세 수준이다.

12명의 의료진이 8일간 2천 명을 진료한 강행군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고자 스와질랜드를 찾은 굿뉴스의료봉사회 소속 10명의 의료진과 12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콸루세니 초등학교에 의료캠프를 차렸다. 진료과목은 내과, 한방과, 검안과, 치과였으며 약국과 주사실도 운영했다. 2명의 현지의료진과 15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8일간 약 2천 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이승호 원장이 매일 진료한 치과환자는 약 70명이다.
아침 6시 30분에 기상하고, 7시부터 30분간 아침식사를 한 뒤, 8시까지 의료봉사 캠프로 이동한다. 8시부터 12시 30분까지 오전진료를 한 뒤, 1시 30분까지 점심식사를 하고 5시 30분까지 오후진료를 했다.
스와질랜드는 1903년부터 1967년까지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현지인과 영어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하지만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영어를 잘하지 못해 현지어인 스와티어로 불편사항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현지 대학 간호과에서 기본간호 및 조산원 교육을 받고 있는 대학생들이 자원봉사자로 지원하여 통역과 치과보조 등 도움을 주었다.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갈 때마다 현지 자원봉사자를 선발해 교육시켜 치과보조 업무를 맡깁니다. 그렇게 하면 환자의 불편사항을 정확하게 전달받을 수 있고, 환자들도 현지인이 함께 있으니까 훨씬 편안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어 현지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하루 일정이 끝난 뒤에는 스와질랜드 현지인들과 문화교류를 했다. 스와질랜드 학생들이 의료진과 봉사자들을 위해 마림바 5~6대로 연주를 했는데, 그 맑고 깨끗한 소리에 푹 빠질 정도였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 의료진들도 함께 따라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충치가 심해서 고통을 호소했던 환자가 치료를 받은 후 이젠 다 나았다며 감사해했다.
충치가 심해서 고통을 호소했던 환자가 치료를 받은 후 이젠 다 나았다며 감사해했다.
모든 진료과목이 다 그렇지만 특히 치과는 보조를 맡은 자원봉사자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모든 진료과목이 다 그렇지만 특히 치과는 보조를 맡은 자원봉사자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치약과 칫솔조차 구하기 힘든 열악한 나라
스와질랜드에는 현재 의과대학이 없어 환자는 많지만 의사는 부족한 실정이다. 가까운 남아공에서 공부하고 온 소수 의사들이 수도 중심부에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데 진료비가 굉장히 비싸다. 서민들은 쉽게 병원을 이용할 수 없어 의료혜택을 받기 힘든 열악한 사정을 어느 현지인에게 듣기도 했다.
“9개월 된 남자 아기가 계속 토하고 열이 나서 병원에 데려갔더니 장염이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약값으로 수십만 원을 요구해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대요.”
스와질랜드는 빈부격차가 굉장히 심하다. 일부 부유층 외에는 굉장히 가난한 삶을 살고 있어 한국에는 흔하디흔한 치약과 칫솔도 없이 사는 사람이 많다.
“스와질랜드 사람들은 칫솔질을 제대로 하지 못해 구강건강이 매우 심각했습니다. 치약과 칫솔이 없어서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치아를 닦는 것 같더군요. 심한 치통에 치아도 빠져 음식물을 씹고 침과 혼합시켜 삼키지도 못하는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치약과 칫솔이 없으면 어떻게 칫솔질을 하면 되는지 물어보는데,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갈 때마다 1,000개 정도 되는 치약과 칫솔을 가져가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진료도 좋지만 예방은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올바른 칫솔질 방법을 빼놓지 않고 교육한다.
“충치가 생기지 않도록 구강보건 지식을 널리 알리는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진료를 할 때 어려움 중의 하나가 현지인들이 구강보건 지식이 없어 충치치료로 살릴 수 있는 치아를 빼달라고 고집 부릴 때입니다. 치료하기보다 제거해야 제대로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상식 때문이죠. 진료를 하는 한편, 자원봉사자를 교육시켜서 현지인들에게 올바른 칫솔질과 구강보건 지식을 교육합니다. 교육을 이수한 사람들에게 치약과 칫솔을 나눠줬죠. 현지인들의 호응도 좋았고, 피드백도 활발했습니다.”

치료보다 더욱 중요하고 효과적인 것은 예방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칫솔질 방법을 가르쳤다.
치료보다 더욱 중요하고 효과적인 것은 예방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칫솔질 방법을 가르쳤다.
잊고 있던 ‘슈바이처의 꿈’을 되찾아준 아프리카
이승호 원장이 아프리카를 찾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다. 병원을 운영하면서 짧게 병원을 비운 적은 있었지만, 일주일 이상 진료를 쉬고 아프리카에 가는 게 처음에는 마음에 부담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하지만 병원과 집을 시계추처럼 오가며 쉬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는 패턴에서 벗어나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단다.
“감옥 아닌 감옥처럼 저 자신을 옥죄며 살아온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의사가 병원을 비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결국 진료를 쉬고 아프리카로 갔지요.”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수없이 접한 아프리카였지만, 현실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한국에서는 의사를 만나 진료받는 게 일상이었지만, 그곳 사람들에게는 평생의 소원일 만큼 절박했다.
그렇게 의술을 펼친 지 벌써 올해로 8년째. 그는 특히 2년 전 탄자니아 분주초등학교에서 의료봉사를 했던 추억을 잊지 못한다. 제대로 된 책걸상조차 없는 열악한 형편에서 공부하던 아이들…. 구강보건 교육을 받으면서 생전 처음 보는 치아모형을 신기한 듯 올려다보는 검은 아이들의 하얀 눈망울을 그는 잊을 수 없다. 교육이 끝난 후, 우르르 몰려와 궁금한 것들을 쏟아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단다.
“의대를 다니면서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막상 의사가 된 후 오랫동안 바쁘게 지내면서 그런 꿈을 잊고 매너리즘에 빠져 살았어요. 그런데 아프리카 의료봉사는 잊고 있던 꿈과 소망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습니다. 의사로서 제가 가야 할 위치와 방향을 다시금 찾은 것이죠.”

의술을 조금이나마 아프리카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시작한 의료봉사.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들의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 무기력하던 내 마음에 힘을 북돋워주고 생기를 주었다’고 말한다. 한국에 돌아온 뒤 환자를 대하는 마음의 자세도 달라졌다. 병의 치료뿐 아니라 환자들과 마음의 소통을 중시하고 그 목소리에도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환자를 진료하는 게 더 이상 일이 아닌 즐거움이 되었다고 한다. 아프리카 의료봉사를 하며 얻은 기쁨을 그는 의사답게 당뇨병에 비유해 설명한다.
“당뇨병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인슐린이 분비되는 양이 적어서 생기는 당뇨가 있습니다. 둘째, 인슐린의 양은 정상인데 우리 몸에서 인슐린을 받아들이는 수용체에 문제가 있어 우리 몸에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하면서 우리 삶도 풍족해져 어지간해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합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의료봉사를 하다 보면 ‘아, 그동안 내가 행복하지 않았던 것이 인슐린과 같은 행복의 조건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조건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수용체에 문제가 있었구나’ 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프리카는 마음의 수용체를 치유해 감사를 가르치고 행복을 선사하는 곳입니다. 여러분도 기회가 되면 의료봉사에 함께하셨으면 합니다.”

유난히 긴 폭염이 계속됐던 올여름도 다 가고 어느덧 선선한 가을이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어김없이 뜨거운 여름이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이승호 원장은 머나먼 아프리카로 휴가를 떠날 것이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더없이 큰 힘을 얻는 아프리카, 그의 마음은 이미 그곳으로 향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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