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26일, 독일 마르크트오버도르프 국제 콩쿠르 무대에서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첫 소절이 울려 퍼지자 서양의 푸른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라흐마니노프 <블레스트 아트 다우 Blessed Art Thou> 등 수준 높은 합창곡을 드라마틱하게 불렀다. 한국 전통 민요인 <각설이타령>도 한국의 한과 아름다움, 유쾌함과 우아함까지 담아내 박수갈채를 받았다.

 
 

Q1. 합창 첫소리는 완벽한 화음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첫소리의 완벽한 화음을 위한 단원들의 노력이 궁금합니다. 예를 들면 멤버 서로에 대한 마음가짐, 각 파트별 노력, 손끝, 눈 맞춤 등 지휘자와 하나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수연_합창이 완벽하려면 각 파트가 완벽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이 완벽한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음정 시험을 담당하는 솔페지오 선생님인데요. 매일 한 사람 한 사람 시험을 봅니다. 개개인이 완벽한 소리를 내기 위해서 벌칙도 있어요. ^^ 첫소리를 절대음으로 내기 위해서는 집중력이 필요한데 혼이 날 때가 많습니다. <바흐코랄>책을 교재로 삼아, 멜로디와 화성, 정확한 피치를 연습하는데, 그러면 청력이 발달되어야 합니다. 멤버들 간에는 서로 싸우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는데, 서로 말하지 않아도 몸으로 느끼고, 온전히 귀를 기울이면 그 작은 차이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같은 ‘도’ 소리이지만 도에도 미세한 차이의 음의 영역대가 있다. 최상의 퀄리티는4-4-0㎐. 그리고 4-4-7㎐까지 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평소 4-4-2㎐의 ‘도’음을 냈다고 한다. 그리고 4-4-4㎐의 소리를 내기위해 그들은 14년간 매일같이 사투를 벌여왔다. ‘도’ 소리가 4-4-6㎐ 혹은 4-4-7㎐이면 높은 ‘도’ 소리로 음이 맞지 않다고 느낀다.

오은희_여러 사람이 한 소리를 낸다는 의미는 합창의 최정상인 ‘유니즌’을 뜻합니다. 각 파트에서 소프라노, 베이스가 유니즌이 되면 테너와 알토를 유니즌 시키고 그 다음에는 전체를 유니즌시킵니다. 항상 4-4-4㎐의 소리의 피치로 노래를 불러야 하기에 쉽지는 않습니다. 유니즌은 먼저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소리도 하나가 될 수 있고, 한 곡을 부를 때 슬프게 혹은 기쁘게 부르거나 놀라는 마음으로 부를 때 모든 멤버가 감정도 하나로 통해야 합니다. 많은 멤버들이 한소리를 내기 위해 아침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하루 종일 파트 연습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를 정말 자세히 알아가는 거죠. 내 옆의 단원 한 명 한 명이 ‘급한 성품이다, 내성적이다, 느긋하다’ 등등 노래에도 다 묻어나기 때문에 유니즌을 만들 때에는 이런 다른 모습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단순히 소리만 합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합쳐야 완벽해집니다.
 

 
 

Q2. 다양한 음악적 배경을 가진 단원들이 모여 노래하다 보면 기량에 차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단원들이 하나가 되어 조화로운 소리를 낼 수 있는 노하우가 있습니까?

오은희_저는 알토 파트 장인데요. 알토 파트에서는 9명이 콩쿠르에 참가했습니다. 9명 중에 잘하는 순서를 따지면 실력을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타고난 목소리 자체가 좋은 반면 어떤 사람은 목소리가 허스키하지만 굵은 저음을 냅니다. 어떤 사람은 납작하지만 선명한 소리를, 어떤 사람은 멀게 소리를 내는 것 같으면서도 풍성한 소리를 냅니다. 정말 신기한 것
은 알토 화성음을 만들 때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리가 다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단점은 보완하고 서로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주면서 말입니다. 선명한 음을 내야 하는 곡은 선명한 소리를 가진 단원의 힘을 입고, 풍성한 곡에서는 풍성한 소리를 내는 단원의 힘을 입어 유니즌을 만들었습니다.

올해 ‘제14회 마르크트오버도르프 국제콩쿠르’에는 미국, 독일, 스위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쿠바, 인도네시아 등 10개 팀이참가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혼성 합창단 10개 팀과 여성 합창단 5개 팀의 경합 속에서 ‘퍼펙트’라는 찬연한 결실을 맺었다. 혼성부문 2등상은 미국 오레곤대학 합창단이, 3등은 우크라이나, 미국, 인도네시아 팀이 수상했다.

Q3. 다른 사람과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유니즌이 가능한 것인데, 다른 사람의 목소리와 화합하는 게 말처럼 쉽게만은 보이지 않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이수연_처음 노래를 부를 때 제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립니다. 단장님은 자주 ‘잘 들리는 소리만 들으려고 하느냐? 잘 안 들리는 소리도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제 목소리 다음으로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의 목소리는 잘 안 들립니다. 그것은 들으려고 노력해야 들리는 겁니다. 저희는 다른 파트까지 다 외울 정도로 연습하기 때문에 파트별 악보를 거의 외우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깊게 듣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음악에서도 다른 사람의 소리를 더 느낄 줄 알아야 하고 상대를 본받기도 해야 하고요. 그래서 한 파트의 음이 틀리면 모두가 귀가 쫑긋해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가끔‘저 사람이 딴 생각을 해서 소리를 대충 내고 있구나. 소리를 함부로 내고 있구나!’ 그런 것이 다 들립니다.
콩쿠르 당일때에는 몸이 피곤하기보다 귀와 정신이 피곤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정말 깜짝 놀라는 일이 벌어졌어요. 라흐마니노프의 곡 <Blessed Art Thou>가 울려 퍼질때 테너 파트에 천사가 내려온 것 같았어요. 콩쿠르 직전까지 테너의 노래가 부족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예쁜 소리가 났습니다. 심오하기로 유명한 라흐마니노프 곡은 마지막 콩쿠르 당일까지 저희 발목을 잡았던 난이도가 높은 곡이었습니다. 남성 파트만 첫 소절을 먼저 부르는데 지휘자 선생님은 여러 가지 색깔과 감정을 요구하셨습니다. 노래 중간에 향유를 들고 온 여인들의 눈물을 표현해야 하고, 천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난해한 곡이었는데 저희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소화를 잘 해낸 것 같습니다. 1999년 이 콩쿠르에서 지휘자 아발랸 선생님이 특별 지휘자상을 수상하셨고 콩쿠르에서 새로운 도전을 주목받았는데, 저희가 혼성합창 최고상을 받아서 선생님께 좋은 선물을 드린 것 같아서 기쁩니다. 선생님이 가장 혼신의 열정을 담으신 곡이고 저희에게는 가장 한계를 뛰어넘는 곡이었습니다.

오은희_미국, 우크라이나, 스위스 등이 참여했는데 특히 우크라이나 팀이 굉장히 잘불렀어요. 동양 사람보다 훨씬 소리가 좋고 실력이 뛰어났어요. 뭘 하나 해도 정말 프로다웠습니다. 무대에서 표현하는 것도 굉장히 자유롭고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청중을 향해 오픈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것도 보였어요. 우크라이나에서 온 합창단은 체격이 저희 두 배는 될 정도이고 수상 경력도 많았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량이 아주 뛰어났습니다.
우리가 러시아 말이라 잘 모르지만 콩쿠르에서 <에르게붕Ergebung>이라는 지정곡을 불렀는데 그 팀이 우리와 정말 다르게 부르는 겁니다. 예를 들면 지휘자 아발랸 선생님은 험상궂은 날씨를 표현할 때 ‘포르테(세게)’는 두려움의 표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악보가 ‘피아노(여리게)’라는 악상 기호가 나오면 힘이 다 빠져버린 상태라고 하셨요. 그렇게 하나하나 다 설명해주셔서 이 음악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악보와 상관없이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이 꽤 있는 겁니다. 완벽하고 정확하게 노래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지휘자들이 원하는 음악이 있기 때문에 악보를 100% 따르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악보에 적힌 악상을 그대로 살려 노래를 지휘한다는 점에서 아발랸 선생님은 참 훌륭하세요. 악보를 먼저 철저하게 탐구하시고 작곡가가 그려놓은 악상 기호의 이유를 찾아서 이야기하시고 악보 안에 살아있는 세계를 지키시고 계셨어요. 악보를 기본적으로 100%로 따를 때 비로소 자유로움이 생기고 곡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원들은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쉼 없이 연습했다. 그들은 목이 쉬어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절대음을 요구하는 지휘자 아발랸 선생의 훈계와 질책도 계속됐다. 하지만 그런 질책은 실력이 부족한 합창단들의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원들은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쉼 없이 연습했다. 그들은 목이 쉬어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절대음을 요구하는 지휘자 아발랸 선생의 훈계와 질책도 계속됐다. 하지만 그런 질책은 실력이 부족한 합창단들의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Q4. 합창단과 함께하면서 이번 독일 콩쿠르에 함께 참가할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영광일 것입니다. 단원 개개인이 음악성 향상과 좌절, 다시 극복했던 성악가로서의 행보에 대해 에피소드와 함께 들려주십시오.
이수연_합창단에서는 퍼스트 소프라노, 세컨 소프라노 등 멤버간에 실력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퍼스트 소프라노가 노래를 더 부릅니다. 하지만 박은숙 단장님은 ‘음악(노래)을 잘 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십니다. ‘음악은 마음에서 나와서 표현되기 때문에 타고난 소리가 조금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음악을표현하기 위해 어떻게 마음의 길을 표현해 내야 하는지,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먼저 ‘마음을 다스리는 연습’에 더 집중하도록 가르치십니다. 만약 자신이 노래를 잘 못부른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의 소리 뒤로 숨을 수 있잖아요. 가끔 독창이나 듀엣을 하면 벌거벗은 것처럼 실력이 그대로 드러날 때가 있어요. 그때 본인의 현주소를 발견하고 슬럼프에 빠지게 되죠. 저 역시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뒤로 숨기도 했어요. 하지만 단장님은 그런 합창을 하는 태도가 아니라고 하세요. 모든 단원들의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 부르는 것이 합창이지 소수가 부르는 것이 아니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항상 자신 없는 사람에게는 더 큰소리로 소리내어 부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숨어서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가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킵니다. 그 결과 모든 단원들의 실력이 급 성장하고 있습니다.

오은희_소프라노, 알토는 자신이 가진 음색으로 정해지는데 저는 소프라노이지만 음색이 좀 낮고 두껍기 때문에 알토 파트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저희가 봄, 가을에 미국 마하나임 음악학교에서 음악 공부를 하는데 솔로 레슨도 받고 곡도 준비합니다. 저희 알토 파트에서 완전히 알토 음색을 내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런 공부를 할 기회가 주어지면 기량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공부하며, 이런 점 때문에 그라시아스 합창단 내에서 배움의 열정을 가질 수 있는 만족도는 큽니다.

성 안드레아스St. Andreas성당에서 노래부르는 그라시아스 합창단
성 안드레아스St. Andreas성당에서 노래부르는 그라시아스 합창단

Q5. <어린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는 ‘배를 한 척 만들기를 원한다면 바다를 보며 비전을 갖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콩쿠르에서 1등 하는 것이 그라시아스의 궁극의 목표였는지 궁금하며, 개인적인 비전과 꿈에 대해 이야기해 주십시오.

오은희_저는 대학에서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선생님이 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라시아스에 오디션을 볼 기회가 생겼고, 세계 최고 소프라노가 되는 새로운 꿈이 생겼어요.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1년간 봉사하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지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고, 이제는 인생도 꿈도 달라졌습니다. 그라시아스 단원들의 목표는 세계 최고의 합창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합창단의 노래로 희망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독일 콩쿠르는 그 꿈을 향해 달려 나가기 위한 스텝입니다. 콩쿠르에서 1등을했다는 것은 ‘다음 세대의 음악이 이런 식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요. 1등을 한 저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세계인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줄 더 많은 과제들이 우리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수연_제 꿈이기도 하고 합창단의 꿈이기도 한데요. 궁극적으로 전 세계를 다니며 음악이 필요한 이들에게, 상처로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음악에 무관심했던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입니다. 제가 합창단에 들어온 지도 벌써 9년의 세월이 흘렀고 20대를 합창단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합창단의 꿈이 제 꿈이 된지는 5년이 됐습니다. 박은숙 단장님은 항상 지금의 제 모습을 보지 않고, 저희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꿈과 소망의 눈으로 저희를 보는 단장님이 계셔서 제 마음도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해,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꿈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올라가는 건 몇 년 내려가는 건 한순간

 
 

Q. 마르크트오버도르프 콩쿠르 최고상 수상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비단 독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합창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대회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 콩쿠르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팀이 추구하는 색깔이나 음악성이 향후 세계 합창계의 트렌드를 주도한다고 봐도 될 정도예요. 많은 합창단들이 최고상 수상팀의 음악을 롤모델 삼거나 벤치마킹하거든요. 합창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그만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콩쿠르입니다.

Q. 이번에 그라시아스가 부른 <Blessed Art Thou>는 깊이가 있는 만큼 준비하면서 사연도 많을 것 같습니다.
이 곡을 표현하기에는 저희 합창단의 음악적 기량이나 마음의 깊이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보리스 아발랸 선생님은 러시아의 거의 모든 음악에 통달하신 러시아 합창계의 거장이세요. 그런 아발랸 선생님마저도 이 곡을 ‘정말 위대하다고 손에 꼽는 곡 중하나’라고 하셨으니, 그 깊이를 알 만하죠?
자신이 지휘하는 합창단이 이 곡의 맛과 의미를 정확히 살려 완벽하게 부르는 것이 필생의 소원이라고도 하셨어요. 아발랸 선생님이 러시아에서 지도하던 합창단은 24명으로 인원이 부족해 이 곡을 부를 수 없었거든요. 그러던 중 저희 합창단과 함께 마르크트오버도르프 콩쿠르에 출전하면서 이 곡에 도전하기로 하셨습니다.
문제는 저희 단원들이 아발랸 선생님의 이 곡에 대한 이해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는 거예요. 선생님께서는 이미 1999년에 이 콩쿠르에서 최고 지휘자상을 받으셨거든요. 선생님은 머릿속에서 가사의 의미와 작곡자가 표현하고픈 섬세한 감정을 하나하나 다 이해하고 계신데, 정작 저희는 그렇지 못하니까 굉장히 안타까워 하셨어요. ‘최고로 실력을 발휘해 불러도 3등 정도 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저희가 최고상을 받는 걸 보며 적잖이 놀라신 눈치였어요.
저희에게는 세계 합창대회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마르크트오버도르프 콩쿠르에서 진짜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어요. 다른 무대보다 몇 배로 긴장하면서도 온마음으로 집중하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기적을 이룬 것 같아요.

Q. 그라시아스가 추구하는 ‘진짜 음악’이란 어떤 음악입니까?
이번 콩쿠르에 출전한 어느 합창단은 <Saturn토성>이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웅~’ ‘위옹위옹’ ‘휘익~’ 같은 기묘한 소리를 내기도 했어요. 클래식음악을 따분하게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희한하고 독특한 소리로 임팩트를 주어 음악에 빨려올 수 있도록 특이한 시도를 많이 하는 것이 요즘 합창음악 의 추세입니다.
반면 저희가 추구하는 ‘진짜 음악’이란 음정, 가사, 화성 등 곡의 모든 음악적 요소에 대한 기준을 악보에 두고, 그 곡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있는 그대로 꺼내서 청중들에게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희 그라시아스의 목표이자 역할입니다. 작곡자의 심중이나 의도를 전혀 생각하거나 마음에 두지 않고 소리를 내면 아발랸 선생님이나 단장님이 굉장히 화를 내셨어요. 진짜 음악이 아니기 때문이죠.
이번 콩쿠르에서도 심사위원들이 기교나 테크닉이 아닌, 순수하게 음악성만을 추구한 우리의 손을 들어줄까 걱정도 되고 두근거리기도 했어요. 저희는 밖으로 보이는 ‘쇼’보다는 오직 음악으로만 승부했거든요. 심사위원들께서도 그런 저희의 마음을 이해하시고 상을 주셨다는 마음이 듭니다.

Q. 그라시아스가 세계최고가 되기까지 단장님의 지도가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단장님께서 저희에게 강조하시는 것은 ‘노래를 잘해야 한다, 테크닉을 정확히 익혀야 한다’가 아니에요. 포기하고 싶고 한계를 만났을 때 고통 너머에 있는 세계를 바라보며 다시 일어서서 한걸음 내딛는 마음의 힘을 가르쳐주십니다.
최고상을 받는 것도 힘들지만 그 실력을 유지하는 건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모든 실력을 발휘해 일생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노래를 불렀는데, 모든 노래를 그 정도로 부르는 건 힘든 일이죠. 사람은 누구나 최고의 위치에 오르면 여유를 갖고 안주하고 싶은 마음을 갖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단장님께서는 ‘세계 최고의 상을 받았지만 여러분이 그 기량을 유지할 수 없다면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다시금 마음에서 긴장의 끈을 동여매고 초심으로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안주하거나 지금 수준에 머무르고 싶은 생각을 하는 것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구나. 가져서는 안 될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런 마음을 훌훌 털어 버리는 거지요.
최고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 몇 년의 시간과 함께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유를 부리고 내려가는 건 한순간이거든요.

 
 

Q. 앞으로 어떤 음악가로 성장하고 싶습니까?
음악이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깊이 파고들어갈 수 있는, 끝이 없는 예술입니다. 깊이 사고할수록 깊은 음악이 나오기 때문에 생각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작곡가가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지 생각해내서, 그 깊은 세계를 관객들에게 있는 그대로 여과없이 표현해 주는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다. 음악으로 사람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소망과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꿈입니다.

Q. 마지막으로 그라시아스의 음악을 사랑해주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이번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한류문화인진흥재단과 함께 후원금 모금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1,716분이 9천만 원이 훨씬 넘는 후원금을 내 주셨어요. 후원금 못지않게 언제나 저희를 응원하고 있다는 댓글에 힘을 얻었어요. 그라시아스를 사랑해주시고 믿어주시는 모든 분들, 그리고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지원해주시는 가족들께 감사합니다. 이번 콩쿠르 수상의 기쁨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더 큰 꿈을 향해 달려가고 싶습니다.

최고상 수상은 진지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취재|이상훈 사진 |홍수정

 
 
독일 마르크트오버도르프 국제합창 콩쿠르 심사위원들은 지휘자 보리스 아발랸의 음악에 대해 존경을 표했다. 러시아 공훈예술가로 1999년 독일 마르크트오버도르프국제 합창제에서 특별 지휘자상을 수상했던 보리스 아발랸. 그가 합창의 변방으로 불리는 동양의 합창단을 이끌고 최정상에 오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독일 마르크트오버도르프 콩쿠르는 합창계에서 최고입니다. 더 높은 콩쿠르를 듣지도 알지도 못하며, 모든 합창 전문가들도 같은 의견입니다. 이 콩쿠르가 넘버원이라고 확신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유명한 합창단도 이 콩쿠르에서 자기의 실력을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이번 콩쿠르에서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최고상을 수상해서 굉장히 기쁩니다.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스텝을 한 단계 올려놓은 것으로 정말 중요한 결과물입니다. 지금은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두말 할 필요없이 멋지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제가 자부심을 느끼는 수준에 도달했고, 심사위원들이 채점한 결과도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물론 이 콩쿠르는 저 혼자 준비한 것이 아닙니다. 합창단원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열심히, 진지하게 노력했는지 모릅니다.또 박은숙 단장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입니다. 합창단과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는데 단장이 제가 없을 때에도 지도를 잘 했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 이뤄낸 것입니다. 심사위원들이 제게 찾아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보여준 음악에 대해 감사합니다. 많은 합창단이 쇼를 하듯 이벤트처럼 합창하는 반면 당신은 순수하게 음악성만을 추구했습니다.”
보리스 아발랸은 정말 솔직하고 진실하게 음악을 공부해왔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처럼 음악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그가 걷는 음악의 길과 방향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휘자 아발랸의 이런 정신은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합창을 통해 유럽에서 또 다시 인정받았다.
박은숙 단장 역시 ‘심사위원들보다 더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분’으로 그를 표현했다.
“5살 때 합창계에 입문해 60년 이상 몸 담고 계시고, 11개 콩쿠르에서 우승했습니다. 이태리, 영국, 독일, 러시아 등 모든 레퍼토리를 섭렵하고 계시고 여기 심사위원보다도 더 뛰어난 음악성의 소유자입니다. 소니 클래식에서 낸 5종의 음반을 포함해 모두 20여 종의 앨범을 내셨습니다. 러시아 합창계에서는 최고의 공훈 예술가로 인정받고 있고, 많은 저명한 음악인들이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그라시아스의 고백2
15년 전, 지휘자도 없던 아마추어 합창단이 세계 최고가되었다. 꿈을 믿지 않는 '나' 자신과의싸움.
그것이 합창단원들의 가장 중요한 싸움이었다. 같은 꿈을 꾸는 선생님을 만나 더 힘 있게,
꿈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누군가 우리의 음악을 듣고 행복과 기쁨을 얻는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노래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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