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인물 윤덕수

영화 <국제시장>은 국내 박스오피스 사상 11번째 천만 관객 이상이 동원된 주인공이 되었다.
이념문제의 논란을 무색하게 하는 <국제시장>은 모든 연령대를 넘나들며 관객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었다. 우리들의 부모, 조부모 세대가 걸어왔던 희생의 발자취를 주인공 윤덕수의 삶에 함축하고 굵직굵직한 현대사 속 사건들을 아우르며 그렸기 때문이다. 한민족韓民族의 얼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국민 된 도리로서 누구든지 꼭 한번은 접해야 할 영화 <국제시장>을 소개한다.

 
 
영화는 진솔하지만 진지한 장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후 60년 짧은 역사 속에 경제 부흥의 주역 정주영을 비롯한 앙드레 김, 씨름 천하장사 이만기, 가수 남진 그리고 덕수와 영자의 연애 등을 재미있게 다룬다.

특히 친구 오달수(달구 역)의 코믹 연기는 영화의 감동을 더욱 짙게 남기는 양념이기도 하다. 화장지와 손수건 없이는 영화관을 나올 수 없을 만큼 <국제시장>은 관객들의 마음에 큰 여운을 남기며 어버이 세대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한다. 바로 이들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의 꽃받침이기 때문이다.

흥남항, 아버지의 유언이 시작된 곳
영화는 1950년 12월에 있었던 흥남철수작전으로 시작된다. 흥남철수작전은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 전쟁 기간에 있었던 일이다. 배경은 이러하다. 부동항을 얻으려는 야욕을 품은 러시아,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대립으로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나 휴전까지 3년간 진행됐다. 짧은 시간에 서울은 물론 국토의 대부분이 폐허가 되었다. 김일성 휘하의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우리 국군은 최후 방어선인 낙동강까지 밀리며 고전했다.
하지만 1950년 9월에 있었던 인천상륙작전이 기적적으로 성공하면서 UN군은 압록강까지 공산군을 밀고 올라갔다. UN군의 북진에 위협을 느낀 북한은 중국에 30만파병을 요청해 이에 한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남쪽으로 철수해야만 했다. 이 기간 중에 군수물자와 고립된 미군을 철수하도록 준비한 곳이 바로 흥남항이었다. 당시 미군 통역관이었던 현봉학 박사의 끈질긴 설득과 미국 알몬드 장군의 지혜와 배려정신으로 미군은 대부분의 군수물자를 흥남부두에 버려두고 폭파시키는 대신 10만여명의 우리 국민들을 배에 승선시켜 부산과 거제로 철수하게 했는데 이 사건이 바로 그 유명한 흥남철수작전이다.
흥남비료공장의 과장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4남매의 맏이었던 주인공 덕수는 바로 이 흥남철수 때 필사적으로 승선한 인물이었다. 열악한 승선조건 속에서 가족이 모두 배에 올랐는가 싶더니 불행하게도 등에 업었던 셋째 막순이가 사라지면서 덕수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이렇게 영화 시작단계부터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장면이 속출한다.
막순이를 찾으러 아버지는 하선했고, 함께 가겠다고 떼를 쓰는 덕수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없으면 네가 가장인 거 알지? 가장은 가족들을 책임져야 한다. 부산에 있는 네 고모네 가게 ‘꽃분이네’에서 만나자.”
절박함 속에서 유언과 같은 약속을 남기고 아버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결국 등장하지 않는다 . 동생 막순이를 잃었다는 자책감을 뒤로한 채 아버지가 남긴, 유언처럼 슬프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약속을 마음에 품고 덕수는 남은 가족과 함께 ‘꽃분이네’를 찾아가 부산 국제시장에서의 새 삶을 시작한다.

 
 
파독 광부 윤덕수의 사랑과 눈물
덕수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동생 끝순이를 등에 업고 학교에서 공부하고 하교 후에는 구두이 일을 해야만 했던 어린 시절 그는 미군에게 ‘기브 미 초코릿’을 외치며 배고픔을 달랬다. 하지만 아버지와 막순이를 다시 만나 리라는 희망과 가장의 신분으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고 했던 아버지의 뜻이 덕수로 하여금 난관을 넘게 했다.
그리고 부두에서 막노동을 하던 덕수는 파독 광부에 지원한다. 광부와 간호사를 서독으로 파견한 일은 6.25전쟁 이후 미국의 물자 지원이 끝난 1960년대 경제적 암흑기였던 대한민국을 일으킬 더없는 기회였다. 1차 파견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6,000명이 지원했고 대학생 신분의 지원자도 20%가 넘었으니 배고픔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당시의 경제 상황을 헤아려 볼 만하다.
그때 탄광 사고로 혹은 우울증으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 생명과 맞바꾸어 벌어들였던 외화로 우리 경제가 자립의 첫발을 내딛게 됐다는 사실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덕수의 지원 동기는 역시 가족이었다. 그 중에서도 동생 승규가 주 원인이었다. 서울대에 합격한 승규의 학비와 가족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가장의 사명감으로 이역만리 서독으로 향했다. 갱도가 무너져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그는 살아야만 했다. ‘가장은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에게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수 년을 그곳에서 보내면서 그는 외화를 벌었을 뿐만 아니라 파독 간호사 출신인 아내 영자를 얻는다.

아버지와의 약속, 동생을 위해 베트남으로
독일에서 돌아와 결혼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던 덕수. 선장이 꿈인 그는 해양대에 합격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돈벌이를 위해 베트남 전쟁 중 파월기업 사원을 자청한다. 철없는 막내 동생 끝순이의 결혼 자금과 고모네 가게 ‘꽃분이네’를 인수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알코올 중독자로 정상이 아닌 고모부가 꽃분이네를 처분하려고 하자 그 가게를 인수하기로 한 것이다. 덕수가 ‘꽃분이네’ 가게를 생계 수단으로만 인수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곳은 잃어버린 막순이를 찾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아버지의 분신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와의 재회를 꿈꾸며 약속을 간직했던 덕수에게 꽃분이네 가게는 목숨처럼 소중한 곳이었다. 하지만 베트남에 가는 일로 덕수는 아내 영자와 다툰다.

“장남이나 가장은 가정을 잘 돌봐야 하는 거 아이가?” “뭘 더해요? 왜 항상 당신만 희생해야 하냐구요? 당신 인생인데 왜 그 안에 당신은 없냐구요? 이제는 남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한번 살아보라고요.”
아내 영자의 대사처럼 이렇게 덕수의 인생에는 덕수가 없었다. 60년 전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약속이 덕수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된 윤덕수의 인생에는 덕수 자신을 위한 인생은 없었다. 다만 아버지가 걸어가야 할 길을 그가 걸어간 것이다. 어릴 때나 청년일 때나 가정을 이루었을 때나 노년일 때나 덕수의 삶을 시종일관 이끌어갔던 것은 흥남철수 때 남겼던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품는 동안 그에겐 가족이 우선이고 국가가 우선이었다. 베트남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어 노년까지 다리를 절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아버지와의 약속, 이산가족 찾기
갖은 고생을 하며 뒷바라지를 했던 덕수의 마음 한구석에는 당장이라도 ‘꽃분이네’로 찾아올 것 같은 아버지와 잃었던 동생 막순이를 향한 응어리와 그리움이 있었다. 이 그리움과 한은 1983년에 KBS 주최로 138일간 이어졌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에서 풀게 된다. 또 한번 눈물 없이 지나갈 수 없는 부분이다. 당시 실제로 만여 명의 국내 이산가족이 30여 년 만에 재회했던 그 감동은 전 세계를 울렸던 유례없는 일이었다. 덕수는 여기서 기적적으로 미국에 입양된 동생 막순이를 만나며 관객들에게 당시의 감동을 뜨겁게 전한다.

영화의 마무리는 멀리 영도다리와 최근 만들어진 부산항대교가 보이는 집에서 일흔이 넘은 노년의 덕수와 아내 영자의 대화로 끝이 난다. 숱한 기회에도 처분하지 않고 지켰던 ‘꽃분이네’를 이제는 팔자는 내용이었다. ‘아버지 연세가 많이 되어서 살아계셔도 이제는 올 수없을 테니까’라고 이야기를 맺는다. 자신에게 남겼던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평생을 보냈던 덕수의 마음을 감격스럽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자신을 고지식하게 여기는 자식들을 거실에 둔 채 자신의 방에서 아버지를 향해 흐느껴 울며 독백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아버지, 내 이만하면 약속 잘 지켰지예? 내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진짜 힘들었거든예.”

윤덕수, 우리들의 희생적인 아버지
윤덕수는 지난 6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을 일으켜 온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이름이다. 극빈 시절 이들의 희생은 지구 역사상 유례없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오늘의 후손이 풍요롭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국제시장>을 보고 난 후 이전에는 무심코 지났던 연세 많은 분들의 굽은 어깨와 허리가 존경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가족과 나라를 먼저 위했다고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지고 한없이 존경스러워진다. 그들 모두는 우리의 아버지이며 할아버지인 것이다.
영화 속에서 코믹하면서도 의미 있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덕수와 영자가 베트남에 가는 일로 다툴 때이다.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며 울부짖는 가운데도 애국가가 나오니까 싸우던 일까지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모습. 자신보다 가족, 자신보다 공동체로서의 국가가 훨씬 큰 비중을 차지했던 그때 그 시절에는 희생이 자연스러운 미덕이었다.
희생할 희犧자를 잘개 쪼개 의미를 살펴보면 소 우牛,양 양羊, 빼어날 수秀, 창 과戈로 구성되어 있다. 소와 양 중에 가장 우수한 것들을 바친다는 뜻이다. 결국 희생犧牲의 의미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바친다는 의미인 셈이다. 가장 귀한 것의 의미는 좋은 물건, 남을 위한 선한 행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대한민국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며 우리가 풍요로움을 누리고 사는 데에는 바로 수많은 윤덕수의 희생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언제부터인가 타인을 배려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 공동체의 뜻보다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에 가득 찬 사회로 변하고 있다. 자살과 이혼, 상상을 초월하는 중범죄 등 수많은 사회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도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출발한다. 우리를 행복하게, 번영하도록 이끌었던 이러한 희생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디자인 | 김진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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