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왕따로 인해 유달리 콤플렉스가 많았던 이라면 특히 백도형 씨의 수기를 주목하자. 2015년에는 그처럼 용기를 내서 한번쯤 해외봉사를 해보라고 권한다. 가슴에 어둠을 안고 대학에 입학한 과거의 한 청년이 어떻게 대인관계를 회복하고 거침없이 도전하게 됐을까?
현재 기분 좋은 하루하루를 사는 그의 내면적 힘을 소개한다.

▲ 백도형_대구과학대학교 간호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아프리카 말라위로 가서 병원을 세울 꿈을 꾼다.자신처럼 불행한 이들에게 진심어린 관심과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열혈청년이다.
▲ 백도형_대구과학대학교 간호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아프리카 말라위로 가서 병원을 세울 꿈을 꾼다.자신처럼 불행한 이들에게 진심어린 관심과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열혈청년이다.
1990년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교실에서 일어난 학생들 간의 권력 관계를 파헤친 이 소설은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강자와 약자의 모습을 담아내어 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불행한 것은 소설 속 이야기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현재 진행형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백도형 씨는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을 툴툴 털고 일어났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굿뉴스코를 알게 되고 그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지독히도 발목을 잡았던 부끄러움, 자존심 등 불쑥 일어나는 감정을 자제하고 겸손함을 배울 수 있게 된 게 무엇보다 감사하다는 그가 입을 열었다.

왕따는 누구나 당할 수 있다
급성 패혈증으로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던 어린 시절, 한쪽 코와 귀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잦은 수술로 병원생활을 했던 백도형 씨. 그는 어김없이 장난이 짓궂은 아이들의 놀림감이 됐다.
마치 어린 코끼리를 묶었던 밧줄이 어른 코끼리가 되어도 그 정신까지도 묶어두어 꼼짝 못 하게 하는 것처럼 도형 씨도 그러했다.
어린 시절 아이들은 악동처럼 장난의 도가 지나치기 마련인데 당하는 이는 일평생을 괴로움이라는 밧줄에 묶여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의 어린 친구들도 잔인했다. 그리고 때로는 그에게 분노를 안겨주기도 했다. 놀림은 계속됐고 아이들이괴롭히는 수준은 입에 담기도 어려울 만큼 난폭했다. 그는 오랫동안 왕따를 겪은 경험 때문에 괴로움에 짓눌렸다.
“어린 시절 유일한 희망을 준 것은 병원에서 만난 간호사들이었습니다. 백의 천사로 불리는 간호사가 매우 아름다워 보여서 그들처럼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막상 간호학과에 들어가서 여학생들과 지내니 적응이 잘 안 되고, 과에 남학생이 몇 명 안 되서 남자들끼리 돈독해질 기회도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점점 인간관계가 좁아졌습니다. 부끄러움도 심해 점점 사람들에게도 무뚝뚝하게 대하게 됐어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어려워진 가정 형편 속에서 학자금 대출까지 받아 공부하던 그는 점점 이상과 현실의 벽에 부딪혀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한다. 그는 미래의 방향을 잃어버렸다. 마음을 잡지 못했고,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술과 게임에 젖어 지내던 주변 친구들처럼 자신을 불행한 학생이라고 여겼다.
“간호사가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휴학했습니다. 우연히 굿뉴스코를 알게 됐고, 태국-베트남-캄보디아 동남아 3개국 봉사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작정 외국으로 떠나고 싶었어요. 여행을 하고 싶었어요. 대구육상세계선수권 때 촬영 보조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았고, 동남아 해외봉사에 참여 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대학생들의 마인드가 남다르고 밝았어요. ‘마인드를 배워야 한다’는 처음 들었지만 당장 급한 대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봉사를 마치자마자 그는 기숙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24시간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직장 상사를 만나며 그의 무지개 빛 꿈은 다시 무너지게 된다.
“3일 동안 욕만 들으니 도저히 견딜 수 없더라고요. 그땐 세상 물정도 몰랐고 상처만 심하게 받았어요. 그래서 굿뉴스코 센터를 찾아갔어요.”
무엇보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다는 그는 해외봉사만은 꼭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릴 적부터 형성된 고집과 아집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다는 염원대로 그는 2012년 아프리카로 해외봉사를 떠났다. 도전, 교류, 변화를 추구하는 굿뉴스코 모토가 어느새 그의 마음에도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진심을 모르고 가출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도형 씨는 여전히 외모 콤플렉스와 들리지 않는 귀 때문에 내면적인 자괴감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아프리카에서 수시로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하루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힘들었어요. 무엇보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남의 도움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극에 달했습니다.”
봉사하러 간 곳에서 오히려 쓸모 없는 사람이 되어 간다는 생각에 눈치를 보던 그는 대형 사고를 치기로 결심했다.
“가출을 했어요. 남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못 들으니 사람들이 저를 귀찮아하겠다는 오해가 생겼어요. 그래서 자존심이 상했죠. 하루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센터에서 나갔어요. 정말 우스운 것은 가출하는 날 평소 정신이 약했던 아프리카 현지인과 마주쳤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갑자기 정신이 멀쩡해지더니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면서 저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겁니다. 깜짝 놀랐어요. 그를 뿌리치고 어디론가 걸어갔는데, 그 친구가 ‘동양인이 가출했다’며 ‘보거든 센터로 연락해달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어요. 그 소식을 들은 지부장님과 동료 단원들이 저를 찾으러 왔죠.”
원치 않았지만 숙소로 돌아온 그는 처음으로 단원 한 명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형의 몸이 불편한 것은 우리도 잘 알아. 하지만 그런 형을 도와서 봉사 활동을 함께하고 싶어. 형이 부족한 점이 있다면 우리가 채워 줄게. 우리 함께 마음을 모아서 시작해 봐. 형.”
“그동안 내가 못났다는 생각에 빠지니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돌아볼 여유가 없어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두렵고 편치 않을 뿐이었죠. 이 모든 게 어려운 가정 형편, 들리지 않는 귀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것만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행복은 뜻밖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1년간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점점 제 가슴은 따뜻하게 변했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말라위의 한 유명한 약학 대학의 대학생들 앞에서 도형 씨는 아프리카로 온 사연을 담은 연극을 공연했다. 물론 동료 단원들이 함께 준비해준 덕분에 가능했다. 아프리카 대학생들은 그의 이야기에 반했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그에게 공감했다. 연극이 끝난 이후 아프리카 대학생들이 굿뉴스코 센터로 찾아왔고 도형 씨도 아프리카 친구들과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그는 자신의 여린 모습을 문제 삼지 않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정’을 느꼈다. 상대를 배려하는 ‘겸손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신의 결핍이 오히려 다른 사람과 조력할 수있는 좋은 재료가 된다는 점도 알게 됐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고 작은 어두운 과거가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잘해야만 한다고 가르쳐요. 그 전에 저도 약한 사람을 보면 위로만 할 뿐이었는데, 이제는 한 사람을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게 됐어요.”
아프리카에서 그는 사람 사는 법을 배웠다. 사회의 강자가 아닌 약자의 위치에서 그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는 여유를 품게 됐다.
“아프리카에서 고집부리며 독단적이었던 제가 바뀌면서 저 역시 자유로워졌죠. 지금은 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활력을 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아팠던 그가 세상을 다 얻었다
그는 꿈이 생겼다. 아프리카 말라위에 병원을 세우는 것이다. 그의손길이 필요한 사람들과 젊음을 가치 있게 보낼 계획이다. 도형 씨는 자신의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수많은 조력자를 얻었다고 말한다.
“굿뉴스코에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제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애를 쓰지만 얻은 것이 없이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면, 지금은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듯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생겨서 행복합니다. 아프리카에 1년 봉사를 다녀온 것만으로도 이미 남다른 경쟁력을 가진 대학생이 됐습니다. 허드렛일부터 누가 어떤 것을 시켜도 할 수 있는 마음을 배웠어요.”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는 자기 계발에 매진하고 있다. 과거 그는 형편을 탓하며 시간을 허비했다면 현재 그는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며 적극적으로 활동 중이다.
도형 씨는 해외봉사를 포함한 3년 동안 대학생 문화 공연 팀장, 청소년 선도 및 교육 활동, 통역 봉사, 청소년 센터 건축 봉사, 교내 봉사동아리 회장 등 누구보다 다양한 활동을 해왔고, 자신이 원하는 넓고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됐다.
“항상 진심 어린 사랑과 관심, 배려를 해주는 분들을 만나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피해 의식도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성격이 진취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올해 여름에는 댄스페스티벌 팀장도 맡아서 경험을 쌓았는데 정말 신기했어요. 얼마 전 취업 동영상 경진대회에서도 해외봉사를 바탕으로 한 저만의 스토리로 대상을 받았어요. 학과 사무실에도 찾아가서 학장님께 대상 플래카드를 보여 드렸는데, 학과장님과 교수님이 학과의 영광이라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는 현재 간호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국가 장학금, 학과 근로장학금, 교내 장학금, 배정장학금 등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고 있다. 특히 그는 전문 기술을 익히며 미래의 꿈을 위해 정진하고 있다. 내면이 강한 사람은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가기 쉽다. 내면이 강해진 도형 씨의 2015년은 희망차 보인다.
 


사진 | 배효지 기자 디자인 | 전진영 기자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