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다 보면 어려움도 있고 슬픔도 있으며, 기쁨도 있고 행복도 있다. 그런데 기쁨과 행복이 없어서가 아니라, 있어도 슬픔이나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해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사는 사람이 많다.

 
 
오래 전, 내가 잘 아는 남미 어느 나라의 영사님이 찾아와 “목사님, 제 딸을 도와주세요!” 하고 부탁했다. 영사님은 딸이 어릴 때 이혼한 분이었다. 아내는 이혼하자마자 먼 나라로 떠나 소식이 없었다. 영사님은 어린 딸과 함께 살았는데, 딸은 엄마가 몹시 그리웠다. 하지만 아빠 앞에서는 엄마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아빠가 엄마를 너무 미워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도 그런 사연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딸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문을 잠그고 엄마를 생각하며 울었다.
엄마는 딸에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고, 딸은 엄마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10년이 흘러도 딸의 마음에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매일 그리움이 찾아와, 스무 살이 되고 스물다섯 살이 되어도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그리움에는 이상한 힘이 있어서 젊은 아가씨의 마음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가씨의 방문은 안으로 잠겨있었고, 방안에서 아가씨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끌려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한번 만나고 싶고, 전화 통화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엄마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엄마 소식을 물을 수도 없었다.
어느 날, 이 아가씨의 마음에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움에 불행하다는 생각이 더해졌다. 주위에 아픔을 나눌 가까운 친구도 없었다. 부유하고, 아버지의 사랑도 받고, 공부도 그런 대로 했지만, 아가씨는 그리움과 불행을 친구 삼아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 날에는 ‘내가 언제 이 불행에서 벗어나지? 나에게도 행복이 찾아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5년의 삶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으며, 오늘도 그랬기에, 그리움과 슬픔과 고독만이 자신의 곁에 머물러 있을 것 같았다. 기쁨이나 사랑이나 행복은 결코 찾아올 것 같지 않았다. ‘지금까지 사는 것도 지겨웠는데, 앞으로도 이렇게 산다면 살아 있을 필요가 있을까?’ 살아야 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운명이 그런 것이라면 굳이 살려고 발버둥칠 이유가 없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삶이 더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토록 엄마를 그리워하며 울었는데, 엄마는 왜 전화 한 번 안하지? 아빠를 떠날 때 엄마는 나도 버린 거야. 그러니 전화를 왜 하겠어? 이젠 남은 것도 없는데,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이제는 마음에서 그리움도, 불행도 아닌 죽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죽어버릴까? 그래, 그게 좋아. 그리움 속에서 고독하게 사느니 이 지겨운 세상 끝내는 게 나아.’
이 세상에는 기쁨도 행복도 없지만, 죽으면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일어났다. 여기보다는 거기가 훨씬 좋을 것 같았다. 아가씨는 매일 죽음이라는 친구와 사귀었다. 죽음과 가까워지다 보니 죽을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죽지?’ 자신이 죽으면 아빠가 어떻게 될지 생각도 되었지만, ‘아빠 생각은 말자. 어차피 아빠는 아빠고, 나는 나인데…’ 하고 지워버렸다.
죽음을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고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매력도 있었다. 자살을 시도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실패했다. 아버지와 한 집에 살면서 아버지 몰래 죽는 것이 쉽지 않았다. 세 번을 실패했다.
아버지의 마음에 ‘내가 딸을 잃겠구나!’ 하는 절망이 찾아왔다. 그래서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는 영사님을 따라 그분이 사는 아파트로 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영사님 딸이 나를 보자마자 자기를 찾아왔다고 생각해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시간이 흘러도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방문을 열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부탁했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얘야, 아빠의 소원이다! 제발 문을 열어다오.”
얼마 후 방문이 열리고, 나는 그 아가씨와 마주앉았다. 내가 목사지만 성경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일곱 살 때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야기, 여덟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이야기, 어릴 때 물고기 잡고 잠자리를 잡아서 놀던 이야기…. 그리고 고통 속에서 살다가 열아홉 살 때 소망을 갖게 되었고 삶이 변한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 나도 열아홉 살 때까지는 가난했고, 슬픔과 고통 가운데 살았다. 그리고 그 나이에 하나님을 만나 삶이 변했다.
아가씨는 이상하리만큼 내 이야기를 잘 들어 주었다. 내가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가씨의 마음에 닿고, 내 속에 있는 기쁨과 소망이 그 마음에 닿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눈 지 두 시간쯤 지났다. 아가씨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조금 느낄 수 있었다. 그때쯤 해서 나는 이야기를 마쳤다. “내 아내는 한국 전통요리를 잘해. 괜찮으면 내일 점심 때 아버지와 함께 우리 집에 와. 그러면 한국 전통요리가 어떤 것인지 맛보여 줄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날 점심 즈음에 아가씨는 손에 작은 선물을 들고 아버지와 함께 우리 집에 찾아왔다. 아가씨는 내 아내가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이것저것 물었다.
“사모님, 이 음식 정말 맛있어요. 요리하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저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절망이 가득 차고 어둠이 덮여 있던 아가씨의 마음에 기쁨과 소망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그 아가씨의 마음에 세상에 있는 모든 소망을, 행복을 넣어주고 싶었다.
시간이 흘렀다. 계절도 여러 번 바뀌었다. 영사님이 한국을 떠날 때가 되어 나를 찾아왔다.
“한국은 저의 두 번째 고향입니다. 저는 한국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한참 이야기하다 영사님은 구식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누르더니 나에게 건네주었다.
“여보세요.”
영사님, 딸이었다.
“너, 지금 어디 있어?”
“목사님, 캐나다 몬트리올에요. 여기서 요리 학교에 다녀요. 목사님 댁에서 식사할 때 요리사가 되려고 마음먹었어요. 공부를 마치면 프랑스 식당을 차릴 거예요. 그때 꼭 몬트리올에 오셔서 제가 만든 요리를 드셔야 해요.”
다시 시간이 흘렀다. 영사님이 한국을 떠난 지도 제법 되었다. ‘지금쯤 그 아가씨는 요리 학교를 졸업하고 몬트리올 어디쯤에서 식당을 경영하고 있겠지….’ 그 아가씨가 남편도 만나고 자녀도 낳고, 그리고 손님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며 행복할 것 같다.

박옥수
현 기쁜소식강남교회 담임 목사이며, (사)국제청소년연합 IYF 설립자로 각종 중독과 범죄로 고통받는 청소년을 선도하고 있다. 마인드 강연 전문가로도 활동하며 매년 국내외에서 개최되는 대학생캠프에 초청 받아 강연 중이다.
저서로는 17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 외 40여 종이 있다, 이번 호에서는 진심어린대화를 통해 변화된 한 20대 여성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디자인 | 전진영 기자 일러스트 | 최지웅 기자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