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여행할 네 번째 유럽 도시는 스페인 그라나다이다. 아랍과 유럽 문화가 공존하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그라나다는 서유럽에 세워진 최고의 아랍 문화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tvN의 ‘꽃보다 할배’에서 알함브라 궁전이 소개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도 커졌다. 아랍 문화의 아름다움과 신비감을 느낄 수 있는 알함브라 궁전으로 가 보자.

▲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본 알함브라 궁전
▲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본 알함브라 궁전


그라나다에 도착하자마자 알함브라 궁전으로 향했다. 그동안 그라나다를 조용한 시골 마을 정도로 생각했는데,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관광객이 엄청나게 많아 가장 중요한 나스르 궁전을 보려면 예약하지 않으면 입장이 어려웠다. ‘알함브라 궁전’ 하면 독특한 분위기의 기타 연주곡이 떠오를 것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1896년)은 프란시스코 타레가가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을 찾은 느낌을 묘사한 곡으로 아라비아 풍의 정서가 물씬 풍긴다.
알함브라 궁전 내부는 크게 4개 구역으로 나뉜다. 9세기에 축성한 요새인 알카사바, 14세기에 완성된 알함브라의 핵심인 나스르 궁전, 여름 별궁 헤네랄리페, 그리고 16세기에 정복자 카를로스 5세가 지은 ‘카를로스 5세 궁전’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장소인 알카사바 요새를 시작으로 신비한 알함브라의 역사 속 여행을 시작했다.

알함브라의 애환을 담고 있는 알카사바
알카사바는 알함브라 궁전의 가장 앞쪽에 있으며, 그 입구는 말발굽 모양인 아랍 아치로 되어 있었다. 입구를 지나니 황토색 바닥 앞에 황토색 성벽과 망루가 우뚝 솟아 있었다. 각진 형태의 황토색 벽들이 마치 상기된 얼굴 같았고, 알함브라에 서려 있는 애환과 비통한 역사를 표출하고 있는 듯했다.
북쪽 성벽에 올라 바라본 알바이신 지구의 모습은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경사진 언덕을 베이지색 지붕을 쓰고 있는 하얀 색 집들이 사이프러스 나무와 함께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알함브라와 사뭇 다른 명랑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알카사바에서 가장 높은 벨라 탑에 올라가면 그리 크지 않은 종이 매달려 있다. 스페인을 통일한 이사벨 여왕이 그라나다를 함락한 기념으로 걸어놓은 종이라고 한다.

워싱턴 어빙이 찾은 <알함브라 이야기>
19세기 초, 미국 역사학자 워싱턴 어빙은 당시 폐허였던 알함브라 궁전에 머물며 무어인들과 알함브라에 얽힌 전설을 채집하고 기록해 <알함브라 이야기>란 책을 출간한다. 이 책은 1492년에 나스르 왕국이 멸망한 후 340년이 지난 1832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다. 책에는 당시 알함브라의 풍경을 비롯하여 이슬람 왕국의 슬픈 역사와 전설들이 담겨 있다. 800년 가까이 이베리아반도를 주름잡았던 무어인들이 물러가자, 그 땅을 다시 차지한 사람들은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위로 받으려는 듯 무어인들에 대한 상상을 꽃피워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워싱턴 어빙은 알함브라에 몇 개월 동안 머물며 이런 전설들을 찾아내었다. <알함브라 이야기>는 발간되자마자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고, 이때부터 이 궁전을 알함브라 궁전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스페인 정부에서 궁전을 복원해 오늘날 멋진 궁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 1.여름 별궁의 아세키아 정원 2.르네상스 양식의 카를로스 5세 궁전 3.알카사바 요새 4.나스르 궁전의 화려한 내부 장식 5.<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작곡가 프란시스코 타레가 ⓒLeronich
▲ 1.여름 별궁의 아세키아 정원 2.르네상스 양식의 카를로스 5세 궁전 3.알카사바 요새 4.나스르 궁전의 화려한 내부 장식 5.<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작곡가 프란시스코 타레가 ⓒLeronich


환상적인 색채의 조화, 나스르 궁전

알함브라의 모든 전설과 민담의 출처는 나스르 궁전이다. 나스르 궁전은 극도로 섬세함을 보여준다. 세련된 조각과 독특한 문양으로 장식된 기둥과 벽, 풍부한 색상으로 수놓은 화려한 천장, 금빛 문자와 장미꽃 무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타일 바닥, 빈틈 없이 코란으로 꽉 채워진 장식, 이들이 빛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색채의 조화를 경험하게 한다.
왕국 전성기에는 궁전 안에 일곱 개의 궁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정치 집무실이었던 메수아르 궁, ‘대사들의 방’이 있는 코마레스 궁, 사자 분수가 있는 라이온 궁만 남아 있다. 궁전에서 가장 높은 코마레스 탑은 안뜰 연못에 비친 모습이 아름다운데, 이 연못은 후에 인도 타지마할 수로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카를로스 5세 궁전과 여름 별궁
안뜰의 남쪽 끝에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건물이 붙어 있다. 그라나다를 점령한 이사벨 여왕의 외손자 카를로스 5세가 세운 궁전이다. 알함브라의 정중앙에 있는 나스르 궁전의 일부를 치고 들어와 지어진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정사각형인 외관과 달리 내부에는 원형 중정을 배치한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원래는 그곳에서 투우를 즐겼다고 하는데, 지금은 매년 여름 ‘그라나다 국제음악제’가 열린다.
나스르 궁전 같은 이슬람 건축은 겸손하면서 화려하다. 멀리서 보면 단순하고, 가까이 가면 명상적인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환상적이고 화려한 실내와 달리 바깥 모습은 지극히 평범하다. 반면 가톨릭 건축은 위엄이 있고 도전적이며 화려하다. 위압감을 줄 만큼 잘 생겼다.
발걸음을 옮겨 헤네랄리페로 갔다. 14세기에 세워진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왕들이 더위를 피해 휴식하던 곳이다. 헤네랄리페 별궁은 아랍 사람들이 얼마나 자연친화적인 삶과 물을 소중하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준다. 이곳에는 중앙에 있는 아세키아의 정원이 걸작인데, 이슬람 양식과 스페인 양식을 대표하는 정원이다. 이곳 역시 코란 글귀로 장식이 된 문양이 가득하다. 정원에서 바라보는 알함브라 궁전의 전경도 멋있다.

궁전의 예술성을 세계에 알린 오웬 존스
알함브라 궁전 장식의 예술성을 세계에 알린 인물은 오웬 존스Owen Jones(1809~1874)였다. 영국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였던 그는 세계 문양 디자인에 관한 독보적인 책 <The Grammar of Ornament:문양의 기초>의 저자로, 1851년 만국박람회에 공동 건축가로 참여 만국박람회 인테리어 장식에 알함브라 궁전에서 받은 영감을 적용했다.
오웬 존스는 수정궁 카탈로그에 이렇게 기록했다. “이는 그리스 장식의 우아함과 세련미를 능가한다. 무어인은 그리스인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형태를 추구했으며, 다양성과 상상력에 있어서는 그리스인보다 뛰어났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에 고양 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 <오웬 존스와 알함브라>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가진 적이 있다.


▲ 인도 타지마할의 모델이 된 나스르 궁전의 연못 ⓒBert Kaufmann
▲ 인도 타지마할의 모델이 된 나스르 궁전의 연못 ⓒBert Kaufmann


알함브라 궁전을 나와 성벽 주위를 따라 걸어 내려왔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붉은 벽과 파릇파릇한 나뭇잎들이 아름다웠다. 알함브라 궁전의 가장 멋진 외관을 감상할 수 있는 맞은편 알바이신 지구로 발걸음을 옮겨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 섰다. 황토색의 수직 수평의 벽면과 망루, 그리고 울창한 수풀과 사이프러스 나무가 낭만적인 정취를 풍긴다.
카를로스 5세 궁전과 가톨릭 성당의 첨탑도 함께 어우러져 멋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것이 알함브라만이 갖고 있는 이슬람과 가톨릭 미술의 조화일 것이다. 그라나다는 이슬람과 가톨릭의 문화가 수많은 전설은 낳으며 조화를 이룬 곳이며, 스페인을 꽃피운 터전이 되는 유서 깊은 곳이었다.

글쓴이 이상훈_코코넛 디자인의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는 그의 유럽명소기행의 감흥을 7회에 걸쳐 연재한다. 지중해 나라 모나코 (7월호),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이탈리아 베로나(8월호), 스위스에서 가장 큰 호수 레만호가 있는 몽트뢰(9월호), 알람브라 궁전의 스페인 그라나다(10월호), 체코 프라하, 이탈리아 모데나와 볼로냐, 그리고 이탈리아 밀라노가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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