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여행할 세 번째 유럽 도시는 스위스 몽트뢰다. 음악인과 문학가들이 사랑한 도시 몽트뢰. 무엇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그들의 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스위스에서 가장 큰 호수 레만호. 그 북동쪽 호숫가에 있는 작은 도시 몽트뢰는 기후가 온난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이 찾는 국제적인 휴양지다. 몽트뢰를 중심으로 레만호 주위에는 호텔과 주택이 즐비하고, 포도를 재배하는 곳이 많다. 호수 북쪽에는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아 있고, 남쪽으로는 프랑스 에비앙의 알프스가 있다.

▲ 스위스 몽트뢰 마르쉐광장에서 바라본 레만호 전경과 프레디 머큐리 동상
▲ 스위스 몽트뢰 마르쉐광장에서 바라본 레만호 전경과 프레디 머큐리 동상

선착장, 가로등, 시계, 그리고 시옹성
나는 레만호 동쪽 끝에서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수 반대편에 펼쳐진, 구름이 걸쳐 있는 멋진 산의 모습이 그림 같았다. 푸른 호수와 멋진 산등성이를 함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몽트뢰, 조용한 호숫가를 따라 이국적인 꽃과 나무도 많아 산책하는 것이 여유롭기만 했다. 고요하고 시원한 호수 맞은편에는 만년설이 덮인 멋진 산이 보였다.
탄탄하게 만들어진 호수의 선착장, 가로등, 시계가 스위스 냄새를 물씬 풍겼다. 그 모습이 멋있어 사진을 남겼는데, 보면 볼수록 멋진 장면이다. 도시와 호수 사이로 보기에도 야무진 스위스 열차가 가로질러 달렸다. 호숫가를 한참 걷다 보니 저 멀리 근사한 고성이 보였다. 바이런의 시에 나와 유명해진 시옹성城이다. 스위스의 대표적인 고성으로 더없이 멋진 자태를 자랑하지만, 내부에는 지하 감옥 등 섬뜩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호수의 암반 위에 세워진 시옹성은 9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알프스를 넘어오던 상인들에게 통행세를 징수하기 위해 세워졌다. 그 후 12세기에 사보이Savoy 왕가에서 성을 사들여 임시 거처, 무기고와 감옥 등으로 사용했으며,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프랑소와 보니바르가 4년간 쇠사슬에 묶여 갇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이 일을 소재로 서사시 <시옹성의 죄수>를 지었다. 기둥 어딘가에는 바이런의 이름도 남아 있다. “속박할 수 없는 마음의 영원한 정신이여. 자유여, 그대는 지하 감옥에서 가장 빛난다.” -<시옹성의 죄수> 중 유럽 곳곳에서 멋진 고성들을 많이 보았지만, 호숫가에 자리한 고성의 자태는 특별했다. 시옹성은 멋지기만 한 것이 아니다. 숱한 세월, 격한 사건을 겪으며 지금까지 굳건하게 서 있기에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비장하게 느껴졌다. 고요한 길을 계속 걸었다. 곳곳에 호수를 배경으로 피어난 꽃들이 특별나게 아름다워 보였다.

▲ (위에서 부터) 1. 스트라빈스키 홀 뜰에는 여러 예술인들의 동상이 있다. 그 가운데 기타를 들고 있는 비비 킹의 모습 2.<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은 1967년부터 매년 7월에 열리는데, 작년에는 우리나라 재즈 가수 나윤선 씨가 재즈 보컬 경연의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되어 화제가 되었고, 재즈 페스티벌에서 공연도 했다. 3.올 4월에 열렸던 <몽트뢰 국제합창제> 홍보물
▲ (위에서 부터) 1. 스트라빈스키 홀 뜰에는 여러 예술인들의 동상이 있다. 그 가운데 기타를 들고 있는 비비 킹의 모습 2.<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은 1967년부터 매년 7월에 열리는데, 작년에는 우리나라 재즈 가수 나윤선 씨가 재즈 보컬 경연의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되어 화제가 되었고, 재즈 페스티벌에서 공연도 했다. 3.올 4월에 열렸던 <몽트뢰 국제합창제> 홍보물


전설적인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제2의 고향
몽트뢰에서 숙박하면 호텔에서 트램, 버스, 푸니쿨라 등 교통수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박물관 할인 혜택도 있는 리비에라 카드를 준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카드를 발급받았는데, 대중교통 이용시 표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아 상당히 고생했던 일이 떠올라 정말 아쉬웠다.
느긋하게 호숫가 산책로를 계속 걷다 보면 마르쉐광장이 나온다. 여기에는 전설적인 영국 밴드 퀸Queen의 보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호수를 바라보며 서 있다. 왼손에 스탠드형 마이크를 쥐고 오른손은 주먹을 쥔 채 하늘을 향해 내뻗은 모습만으로도 그의 폭발적인 공연 모습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퀸의 앨범 녹음 장소이기도 했던 몽트뢰는 프레디 머큐리가 생전에 도시의 아름다움에 반해 즐겨 찾은 곳이다. 당시 몽트뢰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운틴 스튜디오가 있었다. 퀸이 생전 처음 그곳을 방문했던 1978년, 때마침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고, 퀸은 당시 제작하던 앨범 이름을 <재즈>로 결정했다. 퀸은 레코딩 결과에 반해 나중에 스튜디오를 통째로 인수했다. 머큐리는 평소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원한다면 몽트뢰로 오게.” 머큐리 사후에 발매된 <메이드 인 헤븐> 앨범의 커버는 그가 가장 좋아했던 마르쉐광장 앞에서 찍은 사진으로 제작되었다. 그가 남긴 한 구절의 글귀는 ‘나에게 몽트뢰는 제2의 고향’이다.
머큐리 동상 왼편 마르쉐광장과 호수가 만나는 곳에는 아주 아름다운 선착장이 있다. 원형으로 생긴 이 선착장은 호수 아래로 기둥이 없이 공중에 떠 있는 구조라 아주 신비하게 보였으며, 주위 풍경과 정말 잘 어울렸다. ‘마르쉐’는 프랑스어로 ‘시장’이라는 뜻인데, 광장 옆에 아름다운 시장터가 있었다. 바닥은 평범하지만 지붕 구조가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나라 재래시장도 이렇게 아름다운 지붕 아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머물다
몽트뢰 중심가에 스트라빈스키 홀이 있는데, 그곳에서 세계적인 음악 행사인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과 <몽트뢰 국제합창제>가 열린다. 1967년에 시작된 재즈 페스티벌에는 필 콜린스, 밥 딜런, 스팅 등 유명 스타들이 스쳐갔다. 그들이 쏟아낸 선율이 닿았을 호숫가 산책로에는 예술혼이 쌓여 있다. 퀸, 스트라빈스키 외에도 차이코프스키, 바그너, 루소, 바이런, 헤밍웨이, 오드리 햅번 등이 몽트뢰에 흔적을 남겼다. 가수 딥 퍼플의 ‘스모크 온 더 워터’의 소재가 된 카지노도 몽트뢰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스트라빈스키 홀의 옆 뜰에는 의자에 앉아 사색에 잠긴 스트라빈스키의 동상이 있고, 서쪽에는 기타를 들고 있는 비비 킹의 동상이 있었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1910년부터 몽트뢰 옆 클라랑스Clarens에 거주하며 그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봄의 제전> 등을 작곡했다. 아마 그는 호숫가를 거닐며, 황금빛으로 출렁이는 물결을 보면서 음악적 영감을 받았던 모양이다.

▲ (좌) 레만호에 있는 시옹성의 전경 (우_위)노란색 차양이 인상적인 몽트뢰 팰리스 호텔 (우_아래)마르쉐광장과 레만호가 만난 곳에 있는 선착장 전경
▲ (좌) 레만호에 있는 시옹성의 전경 (우_위)노란색 차양이 인상적인 몽트뢰 팰리스 호텔 (우_아래)마르쉐광장과 레만호가 만난 곳에 있는 선착장 전경

헤밍웨이는 몽트뢰에 머물면서 <무기여 잘 있거라>를 썼다. 소설 속에서 몽트뢰는 중요한 배경 중 하나로 등장한다. 주인공 프레데릭이 자신의 아이를 가진 사랑하는 연인 캐서린과 재회한 후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선택한 곳이 바로 몽트뢰이다.
스트라빈스키 홀 맞은편에는 그랑뤼에 위치한 ‘몽트뢰 팰리스 호텔’ 등 노란 차양이 인상적인 멋진 건물들이 많다. 회색 지붕과 베이지색 벽면에 노란색 차양들이 포인트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무척 아늑하고 고급스러웠다. 몽트뢰 시내 곳곳에서 스위스풍의 탄탄하고 세련된 디자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내가 처음 몽트뢰에 방문했을 때는 호숫가의 작고 아름다운 휴양도시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은 알면 알수록 많은 예술가와 작가의 사랑을 받은 대단한 곳이었다. 지극히 아름다우면서 세계를 움직인 예술인들이 머문 조용한 도시, 이것이 스위스의 힘임을 알 수 있었다.

글쓴이 이상훈
코코넛 디자인의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는 그의 유럽명소기행의 감흥을 7회에 걸쳐 연재한다. 지중해 나라 모나코(7월호),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이탈리아 베로나(8월호), 스위스에서 가장 큰 호수 레만호가 있는 몽트뢰(9월호), 알람브라 궁전의 스페인 그라나다, 체코 프라하, 이탈리아 모데나와 볼로냐, 그리고 이탈리아 밀라노가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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