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 SOUTH ASIA!

미얀마, 필리핀,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등 저마다 개성 강한 11개 나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땅, 동남아시아. 먹는 것, 입는 것, 생활하는 모습이 전혀 다르지만, 그곳에서 1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고 온 굿뉴스코 단원들의 이야기 속에는 동일한 마음의 세계가 흐르고 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힘들수록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잊고 살던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찾았다는 세 청년의 당찬 해외봉사 도전기!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해외봉사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먼 해외에까지 가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대학에 가면 꼭 해외봉사를 가리라 다짐하곤 했다. 글로벌 시대, 영어는 기본으로 해야 하는 언어가 되었는지라, 1년 동안 영어권 국가에 가서 봉사도 하고 영어도 배워 오고 싶었다. 그래서 굿뉴스코 지원서를 쓸 때 1·2·3 지망국 모두 영어권 나라를 썼다. 1지망은 자메이카였는데, 희한하게도 굿뉴스코에서는 매년 자메이카가 그렇게 인기가 많다고 했다. 영어를 배우기에도 좋은 나라라고 해서 더 가고 싶었다.

남을 위해 나를 낮추는 봉사의 참 의미를 깨닫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1차, 2차, 3차 워크숍이 진행될 때마다 나는 지원국이 계속 바뀌었다. 심지어 다른 지원자들은 파견국이 확정되어 출국일정을 정하고 있을 때까지도 나는 지원국이 바뀌었다. 이미 마음에서는 지구 한 바퀴를 다 돌았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나라에 가며 언어가 무엇이든 그곳에서 1년 동안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다면 다 아름답고 소중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굿뉴스코의 목적은 나를 낮추고 희생하는 봉사인데, 나도 모르게 그곳에서 뭔가를 얻으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마음을 비울 수 있었고,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미얀마행이 결정됐다. 그런데 다른 나라는 적어도 2명 이상이 함께 굿뉴스코로 파견되었는데, 미얀마로 가게 된 것은 나 혼자였다. 주변에서는 ‘혼자 가도 괜찮겠냐?’ ‘못 버티고 돌아오는 거 아니냐?’ ‘어떻게 혼자 갈 생각을 했냐? 심심하고 외롭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모험이나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성격상 크게 두려움 같은 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부담스러운 게 있다면 나는 20년 동안을 부산에서만 지낸 부산토박이라 한 번도 공항에 발을 디뎌본 적이 없다는 사실. 외국에 가는 것보다 공항에 가는 게 더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결국 예정된 출국일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그 다음날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그때는 참 당황스럽고 무섭기까지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미얀마식 입담배 ‘꽁야’, 그리고 천연 선크림 ‘따나카’
말레이시아를 경유해 미얀마에 도착해보니 인종이 다양했다. 사람들의 피부색도 다양하고 중국어로 된 간판이 많은 것을 보며 ‘아, 미얀마에는 중국 사람들도 많구나’ 하는 사실을 느꼈다. 일단 미얀마에 온 이상 남들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다. 누구도 갖지 못한 나만의 경험과 스토리는 내 인생의 큰 재산이니까.
그리고 내 전공인 치위생학과 관련된 것들을 찾고 또 느끼고 싶었다.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사람을 만나면 치아부터 먼저 살펴보는 버릇이 있는데, 사실 미얀마 사람들의 치아를 보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IYF 미얀마 지부 사람들은 대체로 양호한 편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치아가 좋은 사람이 거의 없었고 잇몸도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알고 보니 미얀마 사람들은 ‘꽁야’라고 해서 잎사귀 뒷면에 석회를 바르고 빨간 물이 나오는 나뭇조각을 얹어 싸서 만든 입담배를 즐긴다. 처음 미얀마에 왔을 때 바닥에 군데군데 핏자국 같은 빨간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꽁야를 씹으면서 생긴 이물질을 뱉은 흔적이었다. 꽁야에는 석회가 들어 있어 계속 씹으면 치아도 상하고, 혀도 두꺼워 발음도 어눌해지지만 미얀마 사람들에겐 입담배이기 때문에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하고 계속 씹는다고 했다. 치위생을 전공한 나로서는 너무 안타까웠다.
그런가 하면 미얀마에는 ‘따나카’라는 천연 선크림도 있다. 따나카 나무를 토막내어 돌판 위에 올려 놓은 뒤 물을 몇 방울 떨어 뜨리고 나무껍데기와 함께 맷돌 갈듯이 돌리면서 갈면 노란 액이 나온다. 그것을 피부에 바르면 마르면서 시원해지고 자외선도 차단해 주는 역할을 한다. 미얀마 전통의 천연스킨 겸 선크림인 것이다. 나도 실제로 발라봤는데 한국에서 팩을 하고 난 느낌과 비슷했다.

▲ 친구들과 함께 물놀이 하러 딴따웅묘(깨끗한 산마을이란 뜻)에 가서 기념촬영을 했다.
▲ 친구들과 함께 물놀이 하러 딴따웅묘(깨끗한 산마을이란 뜻)에 가서 기념촬영을 했다.
K팝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스타가 되다
미얀마에서 굿뉴스코 단원으로 있는 동안 현지 IYF 회원들과 함께 학생캠프, 어린이캠프, 한글캠프 등의 행사를 준비했다. 학생들을 위해 한글·영어·보컬·댄스·요리·태권도 등 다양한 아카데미도 운영했는데, 나는 주로 한글교실과 댄스 아카데미를 맡아 가르쳤다.
내 주위의 미얀마 친구들은 유난히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한국어 공부를 하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그들의 꿈은 아주 소박했다. 한국어를 잘하고 싶다거나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것, 한국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다는 것 등이었다. 어떤 친구는 내게 “난 네 덕분에 처음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어. 한국 친구도 네가 처음이야.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하는 얘기를 했다. 그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별로 내세울 거리도 없는 사람인데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나를 좋아해 주는 것에 대해 ‘아, 내가 한국에서 태어난 것도 감사한 일이구나’ 싶었다. 건강하게 계시는 부모님을 향해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미얀마는 공연문화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아 작은 공연만 있어도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고 신기해한다. 한국은 예체능 분야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지만 미얀마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 중 <드림하이>처럼 예술고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며 로망을 갖곤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마침 나는 한국에 있는 동안 댄스 동아리 활동을 좀 했었는데, 그 춤을 미얀마에서까지 추게 될 줄이야! 매니저님의 지시로 힙합과 <강남스타일>을 접목시켜 만든 퍼포먼스로 공연을 했는데, 그 때 미얀마 학생들이 보여준 반응은 K팝 아이돌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한 번도 댄스를 춰보지 않은 미얀마 학생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댄스 아카데미를 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카데미를 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었고, 또 그렇게 준비한 댄스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게 너무도 뜻깊었다.

▲ 미치나로 가려면 사흘이나 기차를 타고 가야한다. 기차 안에서 찍은 사진인데 기차가 워낙 느리다 보니 한치의 흔들림 없는, 자연친화적인 풍경사진이 나왔다.
▲ 미치나로 가려면 사흘이나 기차를 타고 가야한다. 기차 안에서 찍은 사진인데 기차가 워낙 느리다 보니 한치의 흔들림 없는, 자연친화적인 풍경사진이 나왔다.
한국에서 20년 동안 배우지 못한 감사와 도전을,
미얀마에서 11개월 만에 배우다
미얀마에서 지내는 동안 크게 아팠던 적이 있다. 마치 식물이 된 것처럼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 그래서 며칠간 입원하면서 미얀마 사람의 간호를 받아가며 병실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때의 내가 느낀 부끄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미얀마 사람들을 위해주러 왔는데 오히려 미얀마 사람들이 나를 위해주고 있다 생각하니 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고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굳은 결심으로 왔지만, 정작 내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런 내 부끄러운 모습까지 다 보여주었을 때 마음이 통하면서 그들과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미얀마에서 배운 첫 번째 정신은 ‘감사’였다.
두 번째로는 ‘도전정신’을 배웠다. 해외봉사를 가기 전에는 어느 정도 될 가능성이 있는 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성이 없는 일에도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개인적으로 국어과목을 싫어하고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나였지만, 굿뉴스코 단원들을 대상으로 한 수기 공모전에도 참가했다. 그밖에도 마라톤이나 영어 말하기 대회 등 가능성이 없는 일에 도전하고 부딪혔을 때 상은 둘째 치고 나 자신이 한층 더 성숙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독자들에게 내 굿뉴스코 활동을 글로 소개하는 나 자신이 신기할 따름이다.

꽁야를 많이 씹어 심각해진 미얀마 사람들의 구강상태를 보며 나는 새로운 꿈을 하나 품고 돌아왔다. 처음 미얀마에 갔을 때는 학생 신분으로 봉사를 간 것이었다. 전공공부가 끝나고 치위생사 자격증을 따면 그때는 교수님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의료봉사를 가서 미얀마 사람들의 치아를 치료해 주고 싶다.
그 꿈은 전공과목을 열심히 공부하고 익혀야지만 이룰 수 있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꿈이 있으니까 나 자신을 추스를 수 있다. 예전에는 치열한 경쟁의식 속에서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공부했지만, 지금은 그 꿈을 생각하며 공부하고 있다. 힘듦 속의 행복이라고나 할까? 치위생사가 되어 미얀마로 의료봉사를 갈 그날을 기대해 본다.

글 | 장은혜 (동주대 치위생과 2학년,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12기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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