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밥 한 그릇보다 내일의 꿈을 위해!

물수제비 달인, 종이비행기 오래 날리기 국가대표. 내가 가진 가장 자랑스러운 두 가지 타이틀이다. 이런 특이한 장기를 가지게 된 것은 내가 살던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터넷, 케이블 방송은커녕 수신되는 지상파 조차 KBS1, MBC, EBS가 전부였고, 마을로 들어오는 교통편이라고는 하루에 4대 들어오는 버스가 전부인 시골마을에서 할 수 있는 놀이들은 주로 맨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물수제비를 잘 뜨고 종이비행기를 오래 날리기 위해 물리학 이론, 공기역학을 공부하고 논문도 찾아보면서 수만 번의 연습을 거듭한 끝에, 지금은 대학내일에도 소개되고 기네스북에도 도전을 준비할 만큼 달인이 되었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무언가에 하나 꽂히면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시골청년의 서울 상경기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주경야독晝耕夜讀
내가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살았던 경북 상주의 시골마을에는 초등학교 동창이 14명밖에 없을 정도로 학생 수가 적었고, 4교시까지만 수업을 하는 수요일이면 책가방 대신 낚시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갈 만큼 PC방보다 저수지가 많은 곳이었다. 자동차보다 경운기와 트랙터가 많은 동네인 만큼 농사와 가축 기르는 일은 나와 떼어 놓을 수 없는 일과였다.
우리 집은 소박한 시골 마을에서도 형편이 어려운 편에 속했다. 학기 중 평일에 가축을 기르고 주말마다 농사를 짓는 것은 기본이었고,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는 매 방학마다 친척 형님이 운영하는 경기도에 있는 공장에서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하루 15시간씩 일을 했다. 겨울방학 두 달, 여름방학 한 달, 평일은 아침 9시에서 밤 12시까지, 토요일은 아침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일을 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보테기 위해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육성회비 미납 독촉장과 결식아동으로서 덩그러니 마주하게 되는 점심시간의 텅 빈 교실풍경이었다. 그렇게도 가난은 어렸던 내게 불편하고 부끄럽고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드는 굴레였다.

오늘의 밥 한 그릇보다 내일의 꿈을 위해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아버지께서 내게 “우리나라에서 의무교육은 중학교까지니,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공장에서 기술을 배우는 게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려운 집안 살림 탓에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고, 그렇게 할머니의 손에 자라는 아들의 고등학교 뒷바라지가 걱정이 되셨나보다. 아들이 스무 살이 될 무렵 이미 환갑을 맞으실 나이가 되신 아버지께서 언제까지 일을 하실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나는 또래 아이들이 귀찮아하며 가기 싫어하는 보충수업을 너무나 받고 싶었고, 하루에 15시간씩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을 아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할머니, 고모, 누나와 단칸방에 지내야했기 때문에 방에서 공부를 할 수 없어도, 단 한 번도 소홀히 시험을 치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힘든 생활에서 유일한 낙인 학교생활을 포기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40살 차이나는 늦둥이가 반기를 든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일을 하던 공장의 사장님인 친척 형님께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게 학교를 다녀도 좋으니, 고등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도록 아버지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경기도에서 공장을 운영하던 친척 형님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렇게 농사와 공장 아르바이트로 학업을 이어나가던 고2 여름방학, 내게 천금과도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지금까지 외국인 노동자들과도 잘 어울려 지내며 일을 하던 성실함이면 한 번 믿어볼 만하다’시면서 공장의 사장님이던 친척 형님이 남은 고등학교 1년 동안은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물론 조건이 걸렸다. 남은 고등학교 1년 동안 고등학교 학비와 기숙사비를 지원해줄 테니,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하면 첫 학기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주시고, 만약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지 못 할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즉시 친척 형님과 함께 공장에서 일을 하기로 말이다. 당시 시골에 살던 우리 집이 70만 원이었고 대학 등록금은 입학금을 포함하여 450만 원이었으니, 내게 대학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도 돈이 없어서 못 가는 곳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만 해도 학자금 대출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등록금이 없으면 대학을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친척 형님의 약속은 있었으나 아버지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 고등학교 2학년에 아버지께는 편지 한 통을 남겨두고 고등학교 기숙사로 가출을 했다. 지금도 기억에 나는 편지 내용 중 한 부분은 ‘한 달의 월급보다, 짧게는 제 가까운 미래를 위해서 길게는 제가 앞으로 기를 제 자식을 위해서 투자를 해보고 도전을 해보고 싶습니다. 저의 시간을 돈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과외 한 번, 학원 한 번 다니지 못 하는 학업 조건에서도 선배들이 수능을 치르고 난 뒤 버린 EBS 문제집과 교사용 참고서를 받아서 하루에 4시간씩 자며 이를 악물고 1년을 흔들림 없이 공부했다. 절박한 마음과 그에 따른 노력이 빛을 보게 되어 드디어 서울에 있는 홍익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을 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학비를 충당하며, 형편 때문에 휴학은 엄두도 못 내고 8학기를 연속으로 다니며 졸업을 했다. 그렇게 바쁘고 정신없이 산만큼 나의 진로와 미래에 대한 내적인 고민에는 충분한 시간을 쓸 수 없었다. 남들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돈을 벌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으나 마음 한켠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는 학업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취업을 해서 돈을 벌게 되면 분명히 지금 내가 사는 고시원보다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적어도 이번 달 월세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고, 학비를 벌기 위해 주말에 쉬지 못 하는 일은 없겠지’, ‘아니야 잘 생각해보자. 지금이야 당장 좁은 방에 변변치 못한 식사를 하며 사는 게 불편할 수 있겠지만, 내가 훗날 어느 정도 이런 불편들을 해결하게 되면 그 때가 되어 나는 무엇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까.’
4년을 쉬지 않고 달려온 이 시기가 돼서야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었고,‘얼마나 빨리 가는지 보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진학하고 싶어 하던 신문방송학과의 전공 공부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도서관에 가서 커뮤니케이션학에 관한 전공서적을 공부하던 중, 도저히 독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론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전공 서적의 저자인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의 윤석민 교수님을 찾아뵙고 직접 청강을 허락받았다. 그 외에도 관심 있는 수업을 진행하시는 교수님께 편지를 쓰고 직접 찾아뵙고 청강을 허락받아 1년 동안 20학점 정도의 수업을 들으며 중간·기말고사도 치르고 과제도 냈다. 청강 수업이기 때문에 성적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밤을 새면서 공부하고 퇴고를 거듭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소속된 곳 없이 청강 수업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나중의 취업 걱정을 해주기도 하셨지만, 나는 이 과정이 내가 훗날 돌아봤을 때 내 삶에서 가장 능동적이고 진취적으로 살아간 기간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성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다는 즐거움, 내가 연구하고 싶은 분야를 조사하는 설렘을 만나게 되었고, 돈을 벌기 위해 빨리 사회생활에 뛰어들기보다 못 다한 학업을 이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나의 꿈을 응원해준 한국장학재단
내 나이 25살, 못 다한 공부에 아쉬움을 가지고 편입을 준비하던 그 해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아들 고생 많지! 지식은 금이다. 힘내라!!!!’
아마 저 말씀은 어려운 집안 형편에 고등학교, 대학교 뒷바라지 하실 여력이 못 돼서 공부를 만류하셨을 아버지의 십년 묵은 사과의 말씀이라는 것을 안다. 고등학교 때 집을 나서며 남겨둔 편지를 보신 뒤로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다시 편입을 준비하는 아들에게 단 한 번 싫은 소리, 조바심 내는 소리 하지 않으시고, ‘뒤를 받쳐주지 못 해서 미안하지만, 집안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만큼 공부 해 봐라’라고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다시 어렵게 시작한 편입시험에서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에 진학할 때는 친척 형님께서 입학금과 첫 학기 등록금을 내주셨지만, 이제는 더 이상 도움을 청할 친척 분도 없었기 때문에 시험에 통과한다고 해도 당장 입학금과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렇게 어려운 형편 때문에 좌절할 무렵, 한국장학재단에서 학자금 대출, 국가장학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든든학자금 대출은 졸업하고 취업한 후에 대출 받은 학자금을 갚을 수 있어서 학비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거나 휴학을 하지 않고도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고, 등록금의 액수에 상관없이 전액 대출을 해주는 제도였기 때문에, 집에서 학비를 전혀 보조받지 못하는 학생도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또한 우리집은 기초수급 대상자와 소득분위 하위 1분위를 오갈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대학에 합격하면 소득분위에 따라 등록금의 대부분을 국가장학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50대 1을 넘는 경쟁률의 편입 시험을 아르바이트와 병행해야 하는 어려운 도전이었지만, 합격하기만 하면 입학금과 등록금을 지원해주는 한국장학재단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초조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