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루켄카냐 Adolphe Rukenkanya 부룬디 청소년·체육·문화부 장관

현재 청소년들이 당면한 문제 앞에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정책적으로 고심이 많은 아돌프 루켄카냐 장관이 한국에서 열린 제4회 세계청소년부장관포럼에 참석했다. 지난 날 그가 겪은 고난과 좌절은 부룬디 청소년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사명감을 갖게 했다. 부룬디 내전을 예방하고 화합을 모색하는 그의 한국 방문을 소개한다. 


▲ 아돌프 루켄카냐/한국에 두번째 방문인 그는, 스포츠로 두각을 나타내고 교수로 재직했다. 현 대통령의 권고로 장관이 된 그는 청소년들이 마음을 절제하고 겸비하며 배움에 더욱 매진할 수 있도록 교육정책을 펼쳐 나가고 있다.
▲ 아돌프 루켄카냐/한국에 두번째 방문인 그는, 스포츠로 두각을 나타내고 교수로 재직했다. 현 대통령의 권고로 장관이 된 그는 청소년들이 마음을 절제하고 겸비하며 배움에 더욱 매진할 수 있도록 교육정책을 펼쳐 나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1988년. 아돌프 루켄카냐 장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운명적인 큰 고통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룬디에는 10년간 후투족과 투치족, 두 부족간의 권력 싸움이 있었는데, 투치족의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후투족 출신 대통령이 살해당했다. 그 여파로 벌어진 부족간 전쟁은 살해와 고통의 점철이었다. 당시 대학의 조교수였던 아돌프 루켄카냐는 사랑하는 어머니, 형과 형수와 조카들을 모두 내전으로 잃었다. 생에 그렇게도 잔인한 아픔이 있을 수 없을 만큼 그는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
“자국민을 보호할 수도 없으면서 쿠데타를 일으켜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숱하게 앗아간 것이죠.”
내전의 희생양으로 시민들이 안타깝게도 무수히 목숨을 잃었다. 어느 나라에서든 권력 싸움은 마침내 피비린내를 내고야 말지만 부족간의 권력 다툼으로 부룬디는 큰 혼란에 빠졌다.

부룬디 청소년체육문화부 장관이 된 운명
2005년에 부룬디의 대통령이 된 피에르 은쿠룬지자는 후투족 출신의 정치인으로, 아돌프 루켄카냐 장관의 학교 제자이기도 했다. 그는 1993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된 부룬디 내전 후 최초로 가장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당선된 대통령이다. 2010년 7월 1일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는 91.62%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투치족들은 처음에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대통령은 반군 출신의 후투족이었기 때문이다.
내전 이후 대통령은 아돌프 루켄카냐 장관에게 정치를 하며 돕기를 간청했고, 그는 임기 2년의 장관이 되었다.
피에르 은쿠룬지자 대통령은 두 부족간의 장벽을 허물고 지혜롭게 갈등을 해소시켜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과거 쿠데타는 개인적인 사욕으로 인해 일어난 것으로, 2015년 대통령 선거로 인해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킬 여지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학비를 다 내고 대학을 다니는 사립대 학생들과 학비를 면제받는 국립대 학생들 간의 장학금 불균형 제도로 인해 대학에서 청년들의 데모도 일어나고 있다. 데모에 가담하는 불안정한 청소년들의 올바른 교육도 시급해서 그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최근 부룬디에서는 인구조사가 있었는데 부룬디 인구의 60% 청년층이었습니다. 그들의 실업문제가 심각한데, 부룬디 정부에서도 그런 일을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정부는 청년들에게 직업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직접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기업정신을 심어주려고 합니다. 이런 주제로 세계청소년부장관포럼 때 부룬디 정부가 청소년을 위해 일하려는 방향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특히 정부는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젊은이들을 위해 학교를 많이 짓고, 임신 여성에게 무료 검진도 실시해왔습니다.”
부룬디 청년들이 부룬디 문화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문화 교류의 행사도 많이 열고 있다.


▲ 1. 제4회 세계청소년부 장관포럼에 참석한 아돌프 루켄카냐 장관이 청소년들의 문제와 그 대안을 발표했다. 2. 2014년 IYF 부룬디 월드문화캠프에서 400명의 부룬디 청소년들이 참가하여 꿈을 갖게 됐다.
▲ 1. 제4회 세계청소년부 장관포럼에 참석한 아돌프 루켄카냐 장관이 청소년들의 문제와 그 대안을 발표했다. 2. 2014년 IYF 부룬디 월드문화캠프에서 400명의 부룬디 청소년들이 참가하여 꿈을 갖게 됐다.
공부에 관심이 없던 소년이 공부에 매력을 느끼게 되다
어릴적부터 공부에 특별한 뜻이 없었던 소년 아돌프 루켄카냐를 공부하도록 이끌어준 것은 어머니였다. 그렇게 익힌 공부 습관으로 그는 인재 전문학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고, 그 결과 프랑스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불어, 영어 등 언어학에 큰 관심을 가졌고 법률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스포츠 동아리에도 가입해서 활동했는데, 스포츠는 그에게 많은 가능성과 길을 열어주었다.
“국내 선수권 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가서 메달을 따기도 했어요. 유럽에서는 최고급 기계와 스포츠 센터를 이용할 수 있고, 혈당 수치나 근육 상태도 직접 체크하는 첨단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었죠. 그래서 법공부를 하다가 그만두고 스포츠학으로 전공을 바꿔서 연구했습니다. ”
 프랑스는 이미 스포츠의 선진화가 이뤄져 있다. 그래서 산소호흡량, 운동 후 심장 박동수 등을 체크하여 관리하는 시스템 사용으로 선수들이 메달을 따기도 했다. 프랑스 보르도대학 교수님과 공동연구를 했고, 미국의 워싱턴대학에서도 공부하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해외 유학을 했던 그는 일본에서도 관광업 관련 공부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식당을 차려 많은 사람들과 음식문화를 통해 친해지고 섬기고 싶다고도 말한다.
그의 학구열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특히 공부할 때 좋아하는 과목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했다. 그는 밤새 내일 공부할 과목과 오늘 공부하는 과목의 연관성을 찾고 고민하며 날을 지새기도 했다.
“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으며 고민했습니다. 내가 생각한 것과 실제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이 다른지, 스스로에게 따지며 알아내고자 했지요.”
영국과 세네갈의 대학에서도 학위를 받았고, 부룬디에서는 신체학과 운동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고 전문적인 기술을 도입해서 지도하는 일은 부룬디에서 아돌프 루켄카냐 장관이 처음이었다.
“장관직을 맡으며 교수직을 그만두기도 했지만, 작년까지 바이오매카닉 스포츠학 교수였습니다. 스포츠 코칭 이론을 주로 가르쳤죠. 르완다에서는 한동안 스포츠 전문가로 일하기도 했어요. 국제스포츠연맹에서도 초대받아서 일하고, 마다카스카르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아돌프 루켄카냐 장관
2014년 4월 18일 새벽 5시 30분. 부룬디 청소년들은 여느 때보다 이른 아침에 기상했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IYF 부룬디 월드문화캠프에 약 400명의 젊은이들이 참여했다. 전통 공연팀의 무대를 비롯해 태권도, 건전댄스, 피아노 연주 등 각양각색의 공연이 펼쳐졌다. 캠프 사이 사이에는 아프리카 청년들이 꾸밈없는 목소리로 아카펠라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아돌프 루켄카냐 장관은 월드문화캠프에서 청소년들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면밀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올해 7월에도 한국 월드문화 캠프에 참여해 학생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목격했다.
“부룬디 청소년들이 한국캠프에서 한국인들이 어떻게 일하고 교육하는지 많은 것을 배우기를 바랍니다. 또한 편협한 사고에 사로잡히지 않고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안목을 키우기를 바랍니다 ”
19년 전 스포츠 코치였던 그가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육상선수권대회가 있어서 코치의 자격으로 선수들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 당시 육상 1,500미터에서 한 선수가 은메달을 따기도 했다. 아돌프 루켄카냐 장관은 19년 전과 지금의 한국 모습을 비교해 눈부신 발전을 해온 한국의 경제 성장의 원동력은 교육과 성실히 일하는 자세에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국가를 위해 일하는 좋은 인재가 양성된 것을 발견한 그는 부룬디의 미래와 젊은이들을 위해 훌륭한 마인드를 심어줄 수 있는 한국의 훌륭한 리더를 부룬디 월드캠프에 초대하고자 했다.
지난 날의 슬픔으로 인해 자신의 부귀영화보다 국가를 위해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 아돌프 루켄카냐 장관. 누구에서든 배우려고 하는 낮고 겸비한 그의 마음의 행보가 아름답다.

인물사진 | 홍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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