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정부지원학자금 수기공모전 장려상

2014년 2월의 어느 오후, 나는 러시아 이르쿠츠크의 바이칼 호수 앞에 서 있었다. 한국장학재단 지구별 꿈도전단 3기로 뽑혀 영화촬영을 위해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광활한 대륙을 횡단하고 있었을 때였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도착한 첫 번째 도착지가 바로 바이칼 호수였다. 나는 온통 얼음으로 뒤덮여 꽁꽁 얼어붙은 그 바다 같은 호수 앞에 홀로 서서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 거대한 자연 속에서 처음 느꼈던 감정은 커다란 외로움이었다. 그리고 기쁨과 환희, 슬픔이 조금 섞인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나를 억누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 장은진_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4학년. 영화를 만나고 난 후 그 삶을 사랑하게 된 그녀는 한 NGO단체의 영상팀에서 ‘사람을 살리는 영상’을 제작하면서 배우고 있다. 많은 촬영과 시나리오 집필, 생계를 위한 일거리 폭탄에 허덕이면서도 따뜻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 장은진_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4학년. 영화를 만나고 난 후 그 삶을 사랑하게 된 그녀는 한 NGO단체의 영상팀에서 ‘사람을 살리는 영상’을 제작하면서 배우고 있다. 많은 촬영과 시나리오 집필, 생계를 위한 일거리 폭탄에 허덕이면서도 따뜻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나는 온몸을 얼려버릴 듯한 칼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2시간 동안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서 생각했다. 곧이어 눈물이 터져 나왔는데, 처음에는 그래도 지금까지 버텨준 내 자신이 대견해서, 그 후에는 이 모든 것이 감사해서 울었다. 그 때의 나는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같은 꿈을 꾸는 팀원들과 함께 영화를 찍는 과정 속에서 자연이 만들어 놓은 최고의 로케이션 현장 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순간 나에겐 그 모든 것이 너무 감사했고, 감사했고, 감사했다.

아픔의 외줄타기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내 삶은 참 치열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인문대 합격증을 받았을 때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글이 쓰고 싶었다. 언제나 나의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그런 내가 가진 명확한 꿈이 바로 영화였다. 입시만 끝난다면, 어른이 된다면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실컷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앞에 놓인 현실은 수백만 원대에 이르는 등록금이었다. 대학교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대학 등록금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마련해주겠다던 아빠의 어깨가 근심으로 축 처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크게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입학했던 당시에 이미 은행에서 등록금 대출을 받았던 오빠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이제 너도 알아야한다’고 말했던 것 같다. ‘대체 뭘 알아야 하지?’ 라고 반문했던 나는 이 돈이라는 존재가 정말로 크다는 것을 학교를 다니면서 자연스레 알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장애였다. 모든 것을 뒤틀리게 하고,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막고, 결국에는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게 만드는 바이러스였다. 학교에서 돈이나 등록금을 걱정하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고, 모두가 새내기의 발랄함을 마음껏 즐기고 있을 때에 나는 돈이 없어 같이 나가서 먹지 못한다는 것이 부끄러워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야 했다.
첫 등록금은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었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설상가상으로 아빠는 허리 디스크로 병원에 입원하셨고 우리 집은 마치 외줄을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그 상황 속에서 나는 무기력했다. 슬퍼하고 분노했다. 나는 꿈이 있었지만 그것을 이루기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식당에서 일할 때 손님으로 들어왔던, 카메라를 든 내 또래로 보이는 영화 촬영팀을 보고 박탈감에 혼자 울며 거리를 걸었던 그 기억은 아직도 나에게 아픈 시간으로 남아 있다. 똑같이 영화라는 꿈을 안고 살면서도 나는 왜 이곳에서 서빙을 해야 하고 저 사람들은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지 너무 서럽고 슬펐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돈이 없어 할 수 없다는 것만큼 억울한 일은 없었다.

 
 
긴 터널에서 빛을 만나다
그 후, 한국장학재단의 든든학자금에 대해 알게 되었다. 취업 후에는 돈을 갚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처음 국가장학금이 나와 등록금 고지서에 뜬 ‘0’이라는 숫자를 보았을 때의 그 감격은 도저히 잊을 수 없다. 이제 학업의 길에서 나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학교에서 나의 감성을 일깨워주는 좋은 수업들을 집중적으로 들을 수 있었고, 훌륭한 교수님과 친구를 만났다. 전공수업뿐만 아니라 닥치는 대로 내게 필요한 수업을 들었다. 철학, 영상디자인, 방송영상, 영화, 심리학 등등 가리지 않고 흡수했다. 영화와 학업을 같이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코 포기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니 성적도 좋아서 학업우수 장학금도 받았다.
이러한 노력은 그대로 나의 꿈의 자양분이 되어 나를 도왔다. 이런 학업적인 도움 말고도 내가 학자금대출과 국가장학금으로 벌었던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나중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청춘의 시간. 어쩌면 등록금과 돈 때문에 잃어버렸을 수도 있었을 그 청춘의 시간을, 나는 나의 꿈을 향해 사용할 수 있었다.

나의 영화, 나의 이야기, 나의 인생
여전히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나에겐 꿈이 있었고, 꿈을 향해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크게 변했다. 그것이 나를 지탱해주는 희망의 끈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내가 노력하는 것 뿐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대학교 때부터 시작했던 영화에 대한 나의 꿈은 이제 점점 더 현실과 가까워지고 있다. 그동안 총 6편의 단편영화를 연출/촬영했고, 그 중에서 어려운 형편 속에 있던 대학생이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인물에게 도움을 받는 <청색시대>라는 영화는 전주국제영화제 특별 섹션에서 상영되었다. 처음으로 영화관의 스크린에 나의 영화가 상영되고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로 나를 전율하게 했다. 선과 악을 다루는 판타지 장르인 <회回>라는 시나리오로 서울국제사랑영화제의 본선 진출작으로 올라 감독으로서 처음으로 개막식에 초청받기도 했다.
내가 영화를 하며 만났던 사람들은 처음으로 내가 아직 어린 여성이라는 점에 놀라고, 두 번째로 비전공생인데도 영화를 하고 있다는 점에 놀라고, 세 번째로 나의 이야기가 매우 풍부하다는 점에 놀란다. 그리고 나의 영화를 본 사람들, 혹은 내 시나리오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나의 작품들을 ‘어두워 보이면서도 따뜻하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 평가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마치 내가 달려왔던 인생의 길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꿈에 꿈을 덧칠하다
2013년도 겨울과 2014년도의 시작은 나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2월에는 한국장학재단의 지구별 꿈도전단 3기로 뽑혀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큐멘터리 영화를 촬영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횡단열차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미래의 나에게 지금 이 설레임과 각오를 꼭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영화를 찍기 바란다고, 믿는다고 얘기했다. 그곳에서 나는 나의 영화의 방향성을 잡게 되었다. ‘따뜻함과 나눔이 살아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자’라고 다짐했다. 내가 영화를 시작하면서 받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잊지 말고 그 따뜻함이 그대로 담겨있는 영화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첫걸음으로 어느 한 NGO 단체의 영상팀에서 관련 영상을 촬영하고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배움의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학교에 다니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다니지 못하는 수많은 친구들의 현실을 보면서 내가 받았던 나눔의 손길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국장학재단의 장학금들이 바로 나를 향한 ‘후원’이었고, 후원자였음을 깨달았다. 나는 장학금을 통해 배움의 길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그렇게 꿈을 선물받았고, 이 꿈이 자라 희망이 되었으며, 이 희망은 곧 나의 빛나는 미래가 되었다.

 
 
미래를 향해 딛고 일어서다
이제 나는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며 나의 꿈과 미래를 향해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두렵기만 했던 보이지 않는 미래가 이제는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다. 비록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꿈이 있고 희망이 있는 한 그 미래는 밝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나는 내가 받았던 배움으로 훨씬 더 깊이 있고 풍부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었고, 지금도 꾸준히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배움의 기회를 갖게 나를 ‘후원’해준 한국장학재단의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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