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말이 아닌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것

#2 동생 정진

초등학교 1학년, 아직 이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정진 씨의 부모님은 이혼하셨다. 그녀는 세 살 많은 언니와 함께 아버지 손에 맡겨져 자랐다.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가정조사를 위해 “집이 편부모 가정인 사람 손들어”라고 하면, 반에서 손을 드는 사람은 그녀를 포함해 단 두 명. 당시 이혼은 흔하지 않은 경우였다.

 
 

하필 자신의 집안이 이혼가정이라는 사실에 그녀는 피해 의식이 생겼다. 사춘기 때 부모님의 이혼을 겪으면서 성격이 예민해진 언니한테 많이 맞기도 했다. ‘가족도 나를 힘들게 하는데, 남들은 내게 얼마나 잘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람 사귀는 것도 꺼려졌다.

캄캄한 밤하늘 외로운 별 하나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일이 바쁘신 어머니는 얼굴도 보기 힘들었고, 대화할 시간도 없었어요. 제가 잠든 시간에 어머니는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셨고, 제가 학교에 간 후에 어머니는 일어나 출근하셨어요. 제게 관심을 가지고 챙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이 홀로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기분이었죠.”
그녀는 혼자서 사는 법을 터득하려고 했지,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이해하며 함께 살아갈 줄은 몰랐다. 그러니 친구 관계도 좋을 리 없었다. 누군가와 마찰이 생기면 다른 친구들에게 그 사람에 대해서 험담을 할 뿐, 그 사람이 왜 그래야 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제 주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듣지 않았어요. 제 생각은 맞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틀렸다고 생각했거든요. 동물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사람도 아닌 동물한테 왜 옷 입히고 간식 먹인다고 돈을 쓰냐? 정말 돈 아깝다’라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대학생이 된 후로는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술 마시고, 열심히 놀며 외로운 마음을 달래보려고 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갈 때면 이상하게도 허무함만이 남았다. 캄캄한 밤 중천에 떠 있는 쓸쓸한 별 하나. 꼭 외로운 자신의 모습 같은 그 별을 보며 그녀는 눈물을 흘리곤 했다.
“마음에 진정한 즐거움 없이 인생을 왜 사는 건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지쳐가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학교에서 해외봉사 포스터를 보았어요. 해외봉사를 하며 만나는 새로운 세상에서는 신선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 정진_부경대학교 공업디자인과 2학년을 마치고 굿뉴스코 7기로 인도를 다녀왔다. 굿뉴스코를 통해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행복을 알게 된 자신처럼 많은 대학생들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으로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지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 정진_부경대학교 공업디자인과 2학년을 마치고 굿뉴스코 7기로 인도를 다녀왔다. 굿뉴스코를 통해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행복을 알게 된 자신처럼 많은 대학생들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으로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지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포도주스 한 모금에 행복이

잘 씻지 않는 인도 사람들이 처음에는 더러워 보여서 싫었지만, 이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와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 이야기해주는 그들이 너무 고마웠다.
또 해외봉사를 하면서 청소, 설거지, 빨래까지 해야 하는 것이 번거롭고 짜증스러웠지만, 하루 종일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힘들고 피곤하셨을 텐데도 꼭 집안일은 다 하고 잠자리에 드신 어머니가 떠올라 또 한 번 감사했다. 감사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알아갔다. 
‘묵묵히 우리를 위해 집안일을 하신 어머니의 마음은 보통이 아니었구나!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절대로 못 하셨을 일이야.’
인도에 있는 딸에게 메일을 보내기 위해 컴퓨터를 못하시는 어머니께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셨고, 독수리 타법으로 친 메일을 보내주셨다.
‘잘 지내고 있어? 몸은 건강해? 인도가 많이 덥지? 엄마는 잘 지내고 있어.’
하루는 잠을 자고 있는 한밤중에 “인도에 테러가 일어났다는데, 넌 괜찮냐?”며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뉴스를 보다 걱정이 되서 곧바로 전화하셨던 것이다.
“예전엔 어머니가 제게 무관심한 것 같아서 서운할 때가 많았어요. 하지만 홀로 딸들을 먹여 살리려니 일이 바빠서 마주할 시간도 별로 없었고, 무뚝뚝하셔서 표현도 잘 못하셨던 것이지, 어머니께서는 저를 항상 염려하시고 생각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한국에 있는 언니에게서 ‘힘들다’는 내용의 편지를 많이 받았는데, 그녀가 인도에서 보내는, 행복하다는 내용의 편지와는 대조되었다. 동생이 어떻게 사는지, 무엇이 그리 행복한지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던 언니는 인도로 2주간 여행을 왔고, 동생의 달라진 모습을 보았다. 결국, 언니도 케냐로 해외봉사를 가기로 했다.
“인도에서는 포도주스 한 모금에 행복을 느껴요. 똑같은 포도주스라도 인도에서는 먹기가 쉽지 않아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 있거든요. 그때 전 돈을 많이 벌고 많은 것을 가진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없는 형편 속에 있다 보면 작은 것에도 큰 행복과 감사함을 체감할 수 있다. 그녀는 불행한 것이 아니었다. 사랑받으며, 많은 것을 누리고, 감사할 일들이 가득했지만, 단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예전의 진이가 아니야
한국에 돌아온 후,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그녀는 ‘너 예전의 진이가 아니야. 다른 사람 같아’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알콜 중독자가 될 뻔했을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던 그녀는 이제 전혀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그녀의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 채워져 이젠 술로 허전함을 달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하는 것도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다른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나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펼쳤던 그녀가, 이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어머니를 오해하여 오랫동안 서운함을 느끼며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자신의 생각은 틀릴 수도 있으며 그러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바꿔준 굿뉴스코를 감사해하는 정진 씨. 그녀는 자신처럼 많은 대학생들이 굿뉴스코를 다녀와서 달라지길 바란다. 그래서 현재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부산지부에서 근무하며 많은 대학생들에게 해외봉사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대학시절을 목적 없이 방황하며 보내는 학생들이 많을 거예요. 저처럼 물질적 풍요로움이 아닌, 진정한 행복을 만나길 바랍니다.”

디자인 | 이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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