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말이 아닌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것

어머니가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오해하여 서운함과 외로움 속에서 살던 정림·정진 두 자매. 각각 케냐와 인도에서 자신을 향한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발견했다. 사람은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두 자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 언니 정림
부모 자식 간에 제대로 대화하지 못하고 보낸 세월이 적지 않다면, 이혼 후 여성이 경제적 독립을 해내기란 쉽지 않다. 정림과 정진, 두 자매의 어머니도 가난과 바쁜 일상으로 항상 예민해 한창 사춘기인 아이들과의 교류가 부족했다. 첫째 정림은 그런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했다. ‘부모라는 의무감으로 자신을 키운 게 아닌가’ 하는 불확실함으로 점점 어머니를 미워하게 됐다.

▲ 정림_백제예술대학교 뮤지컬과를 졸업하고, 굿뉴스코 9기로 케냐를 다녀왔다. 세계적인 뮤지컬 배우가 되어 꿈과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꿈을 주는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힘이 되고자 한다
▲ 정림_백제예술대학교 뮤지컬과를 졸업하고, 굿뉴스코 9기로 케냐를 다녀왔다. 세계적인 뮤지컬 배우가 되어 꿈과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꿈을 주는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힘이 되고자 한다

동생의 행복, 나도 느끼고 싶다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정림 씨에게는 무의식중에 ‘엄마는 나를 두고 갔어.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눈물을 흘리며 어쩔 수 없이 두 딸을 떼어놓아야 할 수 밖에 없던 어머니의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함께 살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서운한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노래를 좋아했던 그녀는 예술고등학교 성악과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반 고등학교보다 비싼 등록금에 레슨비 등 학비가 많이 들어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우셨던 어머니는 그녀에게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길 간절히 부탁하셨다. 어머니라면 당연히 자식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하려고 했으며, 어떻게 해서든 성악을 공부하고 싶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자신의 뜻대로 안 되면 불평도 많이 했다. 옷을 사주셔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짜증내면서 던져버렸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동안 느낀 외로움과 받지 못한 사랑을 보상받으려고 하는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마음으로 인해 어머니가 받는 고통은 전혀 감각하지 못했다.
이혼 가정에서 자란 것을 불평하며 살기는 여동생 진이도 마찬가지였다. 진이는 외롭고 허무한 마음을 날마다 술로 달래며 방황했다. 그러나 인도로 해외봉사를 간 후, 진이가 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내용의 편지들을 보내왔다.
‘엄마, 전 인도에서 너무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절 낳아줘서 너무 고마워요. 한국에 돌아가면 꼭 효도할게요♡’
“진이가 어머니에게 ‘낳아줘서 감사하다’고 말한다는 것은 정말 깜짝 놀랄 일이었어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뀐 동생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인도로 갔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지만, 오히려 인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해 하는 동생처럼 저도 바뀌고 싶었어요.”
1년 후, 그녀는 ‘해외봉사는 역시 힘들고 가난한 나라로 가는 것이 좋다’는 동생의 조언에 따라 케냐로 해외봉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케냐에 도착해서 보니, 케냐는 아프리카 내에서도 잘 사는 나라였다고^^;;)
케냐로 출발하는 날, 그녀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짐을 들고 집을 나서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그녀를 꼭 끌어안고 “안 가면 안 되니? 아프리카 그 먼 곳에 꼭 가야겠어? 말라리아도 있고 위험할 텐데”라고 걱정하며 슬프게 우셨던 것이다. 그녀는 “괜찮아,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 그렇게 위험하지 않대”라고 말하며 어머니를 달래드려야 했다. 어머니께서 얼마나 자신을 걱정해주시고 함께 하고 싶어 하는지 뼛속까지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케냐에서 그녀는 봉사단 문화공연팀의 팀장을 맡았다. 빨리 공연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단원들이 공연을 잘 못하면 짜증을 냈지 무엇이 어렵고 잘 안되는지 알아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단원들은 그녀를 점점 멀리했다. 어머니께 전화 드려서 속상한 마음을 말했다.
“내가 공연을 지도하면서 너무 뭐라고 했는지, 단원들이 나를 멀리해. 맛있는 거 먹어도 나한테는 나눠 주지도 않고….”
며칠 후, 어머니는 국제우편으로 딸이 좋아하는 초콜릿, 라면 등을 한 상자에 가득 넣어 보내주셨다. 정성스레 쓴 편지에는 ‘다른 단원들과 꼭 나누어 먹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가 상자에 한가득 담아 보내주신 것은 사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말라리아에 걸렸다. 평소 화를 잘 내는 성격이라 다가가기 쉽지 않던 현지 아주머니께서 ‘말라리아에 걸리면 입맛이 없어도 잘 먹어야 낫는다’며 납작한 타원형 모양의 빵인 짜파티를 주셨다. 짜파티는 행사 날에만 먹는,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주기 어려운 귀한 음식이었다.
항상 아주머니의 거친 말투와 행동을 보며 서운함과 매정함을 느꼈던 그녀가 자신을 안아주는 따뜻한 품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은 말이 아닌,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갔다.

 
 
알고 싶어진 어머니의 마음
해외봉사 현장에서 지내는 동안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는 정림 씨. 단원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교류도 잘 못하고 마음을 표현하는 데도 서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음을 나누지 않았기에 어머니를 오해하고 서운함을 느꼈던 것이다. 예전에는 자신의 기분이나 의견에 따라 결정을 내릴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고 함께 지혜를 모은다. 어머니의 마음도 알고 싶어졌다.
“이젠 어머니께 많이 여쭤보고 대화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머니와 제가 닮은 면이 많았어요. 무뚝뚝한 성격, 건조한 말투, 게다가 입맛이나 사소한 취향도 똑같았어요. 예전에 어머니와 통화할 때는 무뚝뚝한 말투만 듣고 제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많아서 힘든데다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지 속으로는 제 걱정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가끔 부산에 있는 집에 가서 어머니와 함께 잘 때면, 어머니는 자다가도 일어나서 그녀의 손을 찾는다. 그렇게 딸의 손을 꼬옥 잡고서야 다시 편안히 주무신다. 그녀는 이제 굳이 ‘사랑한다’고 말해주시지 않아도 어머니의 마음을 느낀다.

현재 정림 씨는 연극영화 입시학원에서 학생들에게 뮤지컬을 가르친다. 수업에 집중을 못하거나 열심히 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 다그치기보다는 ‘요즘 어려운 일 있니? 고민 있어?’ 하고 물어본다. 들어보면 대부분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마음을 터놓고 지내지 않아 생기는 문제. 그녀는 학생들과 똑같은 어려움을 겪어봤기에 그들이 너무나 잘 이해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그렇게 학생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꿈을 위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오늘 하루도 삶의 보람을 느낀다.
 

디자인 | 이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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