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의 스콜라리 감독은 쪽지 한 장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쪽지에는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풍림화산風林火山(빠르기는 바람처럼, 조용하기는 숲처럼, 공격할 때는 불처럼, 서 있을 때는 산처럼)’ 등의 구절이 적혀 있었다. 모두 <손자병법孫子兵法>에 실린 명언들이다. 그 덕분일까? 브라질은 7전 전승으로 왕좌에 올랐다. 인터넷 황제 손정의, 빌 게이츠, 맥아더, 몽고메리 등 세계를 제패한 리더들은 모두 <손자병법>을 읽고 리더십과 경영의 마인드를 터득했다고 한다. 대체 어떤 책이기에…?

 
 

2,500년을 이어져 온 생존전략의 총집결체
기원전 500년의 중국은 무려 140여 개가 넘는 나라들로 잘게 쪼개진 채 치열한 싸움을 주고받으며 패권을 다투고 있었다. 역사는 이 시기를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라고 부른다. 온갖 세력이 난립하며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을 나타낼 때 ‘춘추전국’이라는 말을 쓰는 것만 봐도 그 격동의 폭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만하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으로 돌변하던 이 시대에 가장 크게 번성한 나라 중 하나가 오吳였다. 오나라에는 손무孫武라고 하는 탁월한 전략가이자 장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은 바로 이 손무가 쓴 병법서다. 손무를 손자孫子라고 하는 것은 공자, 맹자, 한비자 등에서 보듯 고대 중국에서 존경받는 인물의 성 뒤에 ‘자子’를 붙여 존칭으로 삼은 것이다. 병법兵法이란 군사를 지휘하여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 오늘날로 말하면 리더십과 생존전략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흐르는 황하 강처럼, 2,500년 전에 저술된 이 책이 아직도 생명력을 발휘하며 경영자와 명사들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도서관이나 서점에 있는 수십만 종의 책들 중 2,500년 뒤에도 베스트셀러로 남아 있을 책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사실만 봐도 <손자병법>의 가치를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현인 손자가 제시한 21세기의 리더 & 리더십 상像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는 오나라를 140여 개나 되는 나라들 중에서도 으뜸가는 선진국으로 키워냈다. 그렇다면 그에 못지않은 글로벌 경쟁시대인 오늘날, <손자병법>에 담긴 가치와 마인드를 배운다면 대한민국 또한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하루 세 끼만 먹어도 중산층으로 여겨지던 시절을 보내며 자랐다. 자식들에게만큼은 어떻게든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돈 버는 것을 최우선가치로 삼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열심히 살아왔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5천 달러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선진국으로 불리기에는 아직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국민소득 5만~10만 달러의 선진국으로 거듭나려면 단순히 돈과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선진국으로서의 덕목, 이른바 마인드까지 갖춰야 진짜 선진국이다. 그 성장과 리더십의 마인드란 무엇일까?
<손자병법>의 주요구절들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道者, 令民與上同意도자 여민여상동의
도란 백성(아랫사람)들이 윗사람과 뜻을 같이하는 것이다
손자병법은 13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첫째는 ‘시계편始計篇’으로, 전쟁을 앞두고 생각해야 할 계획, 계산 등을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위 구절이 눈길을 끈다. ‘도道’란 우주의 질서이자 생활에서 구현해야 할 도리를 지칭하는 말로, 넓은 의미에서 리더십도 포함된다. 리더십의 대상은 바로 사람이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아랫사람과 윗사람이 한뜻이 되어야 이길 수 있다. 손자는 기원전 500년에 이미 사람의 중요성을 간파했던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상을 서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창조성이란 점들을 연결하는 것이다Creativity is connecting dots’라는 명언을 남겼다. 점이란 무엇인가? 경영자인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력, 기술력, 자본 등을 뜻한다. 이런 요소들은 하나하나 있을 때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하나로 연결되면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발휘한다. 그 일은 오롯이 사람, 지도자만 할 수 있다. 지도자에 의해 뜻이 하나가 된 조직은 승리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將者, 智信仁勇嚴也장자 지신인용엄야
장수(리더)는 지혜, 믿음, 어짊, 용기, 엄격함을 갖춰야 한다
그렇다면 아랫사람들을 자신의 뜻에 따라 손발처럼 움직이려면 리더는 어떤 덕목을 발휘해야 하는가? 손자는 智지, 信신, 仁인, 勇용, 嚴엄 다섯 가지를 꼽는다.
지智, 즉 지혜란 무엇인가? 위기가 닥쳤을 때 잔머리를 굴려서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진정한 지혜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우리 스스로 선택하며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상대가 우리를 선택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예컨대 앞으로 여러분이 취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대, 즉 ‘회사’에서 나를 선택해 주어야 일할 수 있다. 사업을 한대도 마찬가지다. 내가 개발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객’이 선택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여러분의 친구나 교수님이 나를 선택해 줄 때 비로소 나의 능력도 빛을 발한다. 상대방이 언제든 나를 선택하도록 마음을 다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다. 아랫사람을 이끌 때도 마찬가지다. 야단을 쳐서 끌고나가는 것보다 칭찬하면서 끌고나가는 것이 훨씬 쉽고 효과적이다.
신信은 독자 여러분도 알다시피 신뢰다. 솔선수범하는 리더가 아랫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 기원전 1100년 무렵 문왕文王을 도와 주周나라를 세운 강태공姜太公이란 현자가 있었다. <육도六韜>와 <삼략三略>이란 병법서를 남기기도 한 강태공은 리더가 갖춰야 할 솔선수범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병사들이 앉기 전에 먼저 앉지 말고, 병사들이 먹기 전에 먼저 먹지 말고 … 병사들의 막사에 불이 켜지기 전에 네 막사에 불을 켜지 말고, 겨울에는 외투를 여름에는 부채를 쓰지 마라. 그러면 병사들은 너를 위해 전력을 다해 싸울 것이다.’ 신뢰야말로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임을 기억하자.
인仁은 어질다는 뜻으로, 아랫사람에 대한 정성이라 하겠다. <손자병법>에는 ‘視卒如愛子시졸여애자 故可與之俱死고가여지구사(병사들을 사랑하는 자식같이 대하면, 함께 죽음도 무릅쓸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역시 춘추전국 시대에 활약한 위魏나라의 장군 오기吳起이다. 그는 장군이었지만 병사들이 먹는 것과 같은 음식을 먹었다. 병사들이 군장을 매고 행군할 때도 말을 타지 않고 역시 군장을 매고 걸었다. 부하 중 하나가 종기로 고생할 때는 손수 종기를 칼로 째고 입으로 고름을 빨아 치료해 주었다. 오기의 통산전적은 74전 69승,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높다. 부하들에 대한 그의 지극정성이 전투력으로 승화된 것이다.
勇용은 1차적으로는 용기를 가리키지만, 2차적으로는 열정과 긍정까지 포함한다. 찰리 채플린이 코미디언이 되기 전 철공소에서 일할 때, 하루는 사장이 그에게 ‘빵을 사다 놓으라’고 했다. 채플린은 빵과 함께 포도주 한 병을 사다가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저녁때가 되어 사장이 빵을 먹으려고 보니 포도주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채플린을 불러 ‘웬 포도주냐?’고 물어보니 그는 ‘부모님이 모두 알콜 중독으로 돌아가셔서 이복동생을 데리고 살 길이 막막했다. 사장님이 나를 써 주신 덕에 우리집 빵 문제가 해결되어 감사의 의미로 포도주를 사왔다’고 말했다. 채플린이 부정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면 ‘아니, 배 고프면 직접 사다 먹지, 왜 날 시켜?’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매사에 위축되고 뻗어나가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세계를 상대로 성장할 청년이라면 모름지기 열정과 긍정적인 사고로 무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를 상대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엄嚴이다. 부하를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이지만, 리더라면 그보다 먼저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다스리고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손자의 위대함은 단지 <손자병법>이라는 불멸의 고전을 저술한 데 있지 않다. 그 속에 담긴 원리를 몸소 실천한 데 있다. 손자가 오나라 왕 합려를 도와 강대국 초楚나라를 쳐부수자, 합려는 손자를 일등공신으로 대우하며 ‘왕 자리만 빼놓고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여느 사람 같으면 크게 기뻐했을 일이나, 손자는 달랐다. ‘아, 이거 큰일 나겠구나. 왕이 내게 높은 자리를 주면, 틀림없이 내게 빌붙으려는 사람이 몰려들어 나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세력이 생길 거야. 그러면 왕의 세력과 부딪혀 마찰이 생기고 큰 화가 닥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손자는 ‘공功을 세우고 물러서지 않으면 후환이 생기고, 난세를 평정한 무사는 정치를 왕에게 맡기고 떠나야 한다’며 왕이 준 상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여생을 초야에 묻혀 살았다. 영광은 윗사람에게 공은 아랫사람에게 넘기고, 책임은 자신이 지는 리더의 마인드를 손자의 삶에서 엿볼 수 있다.

多算勝다산승 少算不勝소산불승
많이 계산하면 이기지만, 적게 계산하면 이길 수 없다

전쟁은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인 게임이 아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생존을 위한 싸움이다. 그래서 손자는 전쟁의 승패를 가늠해 볼 수 있는 7가지 조건으로 칠계七計를 제시했는데 다음과 같다. ‘왕은 어느 쪽이 더 훌륭한가? 장수는 어느 쪽이 유능한가? 기상과 지리는 어느 쪽에 유리한가? 법령은 어느 쪽이 잘 지키는가? 군대는 어느 쪽이 강한가? 장교와 병사는 어느 쪽 훈련이 잘 되었나? 상벌은 어느 쪽이 분명한가?’
따라서 전쟁은 시작하기 전, 참모들과의 회의를 통해 충분히 검토하고 계산한 뒤에 시작해야 한다. 전쟁의 모든 요소를 정확히 예측하고, 예측한 대로 철저히 준비하고, 준비한 대로 충분히 연습시켜 숙달시킨 뒤에 전쟁을 해야만 이길 수 있다. 승산이 없는 전쟁은 애시당초 시작하지 않는 게 옳다. 하지만 인생에서는 승산이 없는 싸움을 치러야 할 때도 많다. 그래서 손자는 전쟁이란 근본적으로 궤도詭道, 즉 속임수임을 강조한다. 잘 싸우면서도 못 싸우는 것처럼 위장하고, 가까이 있는데도 먼 것처럼 속이고, 적을 분노케 혹은 교만하게 만들고, 서로를 이간시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병력이나 무기 등의 열세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리더를 꿈꾸는 여러분의 지침이 될 고전, <손자병법>!
<손자병법>은 영어로는 ‘Art of War’라고 번역한다. 문자 그대로 ‘전쟁의 기술’이라는 뜻이다. 병법이라는 단어를 아주 적절하게 옮겼지만, <손자병법>은 단순히 전쟁에서 싸워 이기는 기술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손자는 인류역사상 최고의 군사전략가였지만, 그는 오히려 전쟁을 어쩔 수 없을 때 치러야 하는 차선책으로 여겼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전쟁을 치르면 무수한 인명이 살상되고 엄청난 비용이 소모된다. <손자병법>은 ‘군사를 일으키려면 전차 천 대와 수송차량 천 대, 무장한 병사 십만 명이 필요하고 식량을 천 리 길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손님을 접대하고 전차와 갑옷 등을 수리하려면 하루 천금이 든다는 것. 실제로 미국은 베트남과 전쟁을 치르면서 약 4,943억 달러(500조 원)나 되는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었고, 이는 미국의 재정을 크게 악화시켰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손자병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될 겸손과 포용의 리더십을 담고 있다. ‘나라가 망하면 다시 세울 수 있지만 죽은 사람은 다시 살릴 수 없다’는 화계편火計篇의 구절은 <손자병법>의 인간존중 및 생명존중 사상을 잘 담아내고 있다. 손자가 자신이 치른 전쟁으로 사라진 생명들을 애도하며 말년을 보낸 사실 또한도 이를 뒷받침한다. 개인적으로 <손자병법>을 대할 때마다 앞으로 중국이 미국을 누르고 세계의 중심국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처럼 ‘솔선수범과 신뢰 없이는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인간존중 사상이 중국인의 의식 바탕에 깔려 있어서다.

<손자병법>은 모두 13편, 6,109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분량 같지만, A4 두 장이면 다 들어가는 ‘콤팩트compact’한 책이다. <손자병법>에는 ‘팩트fact’ 즉 구체적 사실이 아닌 추상적 원리가 기록되어 있어 읽기 어렵다. 세상경험이 많지 않은 20대 청년들이 속뜻까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구절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임팩트impact’, 그 내용의 깊이와 해석의 폭은 참으로 깊고 크다. 시중에는 역사적인 사례와 교훈 등과 함께 친절한 풀이를 곁들인 <손자병법> 해설서가 많이 나와 있으니, 그 책들부터 먼저 읽어보자. 그러면 어느 날, ‘아, 그 구절이 이런 뜻이었구나’ 하고 머릿속에 불이 들어오는 날이 올 것이다. <손자병법>과 친구가 되자. 장차 가정, 회사, 조직, 국가를 이끌 여러분에게 리더십과 마인드의 지침서가 되어 줄 것이다.

도움말  서경석 (예비역 육군 중장, 전 동티모르 대사)
베트남 파병 맹호부대 소·중대장 시절 ‘대한민국 최고의 싸움꾼’으로 명성을 날렸다. 육군대학 교관, 특전사 여단장, 6군단장을 지냈으며 전역한 뒤에는 모교인 고려대 객원교수로 <손자병법>과 지도자론을 강의했다. 2010~2012년에는 동티모르 대사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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